문화집단 너느로는 ‘왜 전통연희는 대중화되지 못할까’라는 질문을 통해 만났다. 전통연희를 기반으로 연극, 미술,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재미있는 우리만의 창작을 해보기로 했다. 2016년 21세기 굿 음악 프로젝트 ‘너른 오늘(다시 보고 다시 듣는 경기도 도당굿)’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은평뉴타운에 예술공간 ‘나무가 모인 숲’을 조성, 은평구를 거점으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예술하기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가 서로를 알 수 있다면
다둥이 가정, 실버세대가 많은 장기전세 주택. 요즘처럼 아이가 귀한 시대에 다둥이들이 모여 있는 단지라니 과연 대한민국 아이들이 여기 다 모여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매일 등하굣길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햇살 같은 웃음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간지럽힌다. 그러나 이 음악 같은 재잘거림도 누군가에게는 일상을 괴롭히는 고통이 될 수 있는 법. 쾌적하게 살 권리는 누구나 누려야 할 인간의 조건이지만, 놀이터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육두문자와 고성에 의해 아이들의 놀 권리 역시 박탈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두 가지의 상충하는 권리가 모두 존중될 수는 없을까. 문화집단 너느로의 마을 활동은 이렇게 움트기 시작했다.
2015년, 문화집단 너느로의 유은경 대표는 육아 동지 엄마들과 머리를 맞댔다. 일주일에 단 하루일지라도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언어폭력으로부터 지키고, 이웃에게 소음에 대한 불편을 잠시나마 해갈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자고. 그렇게 18가구가 함께 모여 놀이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30명 넘는 미취학 아이들을 그냥 마냥 뛰어다니게 할 수는 없는 노릇. 너느로는 예체능을 전공한 육아 동지들과 연극놀이, 미술놀이 등을 이어갔다. 아이들은 예술로 함께 다채롭고 풍성한 놀 권리를 쟁취해나갔다. 기다리는 법을 알지 못하는 시기의 아이들이 기다리는 법을 터득하고, 타자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통해 ‘함께 즐거운’ 놀이를 획득해나가면서 말이다.
똑똑똑, 하고 싶은 것 있으세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예술로 쑥쑥, 씩씩하게 자라나는 동안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해갈은 했지만 해결 못 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이들과 놀이터를 둘러싼 소음문제였다. 우리가 서로를 알 수 있다면, 내 손주는 아니지만 동네 손주 삼고 싶고, 내 부모는 아니지만 동네 어른 삼고 싶은 정도의 마음만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이 영원할 것 같은 이웃 간 세대 간 반목에 균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너느로와 육아 동지들은 아파트 민원의 발원이자 실버세대의 상징적 아지트인 ‘경로당’의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어렵게 문을 열고 들어간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은 소음이 아니라 ‘외로움’과 싸우고 있었다. 100세 시대, 가족도 친구도 삶에 죽음에 내어주고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이 누가 있으랴. 무료하기만 한 하루를 유료(?)하게 보낼 방법이 필요하다. 외로움에 지지 않게, 나다움을 지킬 수 있게. “하고 싶은 것 있으세요?” 너느로는 어르신들의 관심사에 맞는 강좌나 프로그램을 찾아 연계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또 놀러 올게요!”라는 마지막 인사를 잊지 않고 재차 문을 두드려 말을 건넸다. 이후 예체능 전공자 육아 동지들과 함께 기획한 <경로당 프로그램>을 통해 본격적인 마을 활동으로 진입했다. 특히 미술활동은 실버세대의 최애 장르였다. 어르신들은 외로움이라는 빈자리를 예술에 선뜻 내어주었다. 너느로는 ‘예술로 만남’을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가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어느 날, 경로당 어르신들이 놀이터의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떡 먹어라아!” 경로당에 남은 쌀이 맛난 떡이 되어 아이들의 입으로 냠냠 꿀꺽 넘어가게 된 것이다. 비존재가 존재가 되는 순간 빚어진, 달콤한 꿀떡 같은 현실이었다.
라면 먹고 갈래?
우리 마을에 예술 하는 사람들이 산다는 소문이 이어지면서 ‘작지만 행복한 공간’(이하 ‘작공’)이라는 마을 도서관의 연락으로 너느로는 청소년들을 만나게 되었다. 작공은 연신내 로데오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에게 언제든 오라고 말을 걸어주는 공간이다. 경계 짓고 구분하기 좋아하는 어른들에 의해 ‘밖’이 되어버린 청소년들. 작공은 담배 문제로 어른들과 대거리하는 청소년들을 작공 ‘안’으로 불러들였다. “밥 먹었어? 라면 끓여줄게. 들어와” 이보다 더 강렬한 MSG의 이끌림이 있을까. 침샘을 자극하는 작고 행복한 무기다.
라면을 먹는 청소년들에게 “뭘 하고 싶어?” 물으니 “하고 싶은 것 없다” “핸드폰만 하고 싶다”고 했다. 그중 누군가 “랩을 하고 싶다”라고 했다. 작공은 너느로와 바로 랩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자작랩’이라는 시제는 청소년들을 머뭇거리게 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 어릴 때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 시설에 사는 아이들이 랩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것은 행복하지 않은 시간의 이야기가 더 많았다. 아이들은 자작랩을 써 내려가며 말할 수 없이 힘들어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나를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찾아 나간 것이다. 아이들과 지역 축제를 다니며 공연을 했다. 교통비가 나오면 아꼈다가 공연 노동에 대한 임금으로 돌려줬다. 아이들의 낮았던 자존감이 점점 회복되었고, 우울증으로 약을 복용하던 청소년은 상태가 호전되어 약을 줄이게 되었다. 한 청소년은 랩을 써보니 자신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며 문예창작과 대입을 준비하고 있다. 그 외에도 청소년들에게 일어난 일상의 작은 변화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모든 변화는 비단 자작랩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작공과 너느로의 존재가 아이들의 생각과 일상을 바꾸어냈다. 밖 대신 ‘밥’이다.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한 이웃이 아파트 아래로 스스로 몸을 던졌다. 가족의 불화 끝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힘들지 않은 사람,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우리가 처한 힘듦이 변화할 수 없는 값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바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다둥이 엄마들은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부족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나를 위한 시간은 ‘없다’고 봐야 적합하다. 너느로는 이웃의 죽음을 통해 우리 자신을 위한 시간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역 맘까페와 협력하여 작당프로젝트를 작당모의 했다. 유휴공간을 빌려 비누를 만들고 모기퇴치제도 만들었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았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통해 잠시라도 회복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이 짧은 작당의 시간을 기대하며 내일이 오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그렇게 내일도 모레도 무사히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랬다. 문화집단 너느로가 ‘나무가 모인 숲’이라는 예술공간을 마련한 뒤부터는 희곡 읽기를 시작했다. 내가 입을 열면 책 열 권은 나온다고 모두 입을 모아 말하기에 너느로는 올해 모노드라마를 만들자고 계획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중단된 상태다. 만나지 못하는 지금, 우리의 짧은 작당의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또 소중하게 느껴진다.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너느로의 폭 넓은 세대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예술 활동은 세대 간의 교류로 이어진다. 세대 공감 프로젝트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의 시작은 앉아있기 힘든 어린이들과 일어나기 힘든 할머님들의 만남이었다. 너느로는 할머님들에게 어디서 살았는지, 무엇을 하며 살아오셨는지, 살면서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는지 등 질문을 던지고 할머니들 스스로 이야기를 적도록 했다. 할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적으면 어린이들이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재현하며 연극을 만들었다.
이야기에 나오는 할머니의 엄마는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재현하는 어린이의 엄마가 맡았다. 연기하려면 대본 분석도 필요한 법, “할머니 어릴 때 말이야.” 그러면 “할머니도 어릴 때가 있었어요?”로 시작해서 “6.25 전쟁 때문에 이북에서 내려올 때 기차에 자리가 없어 아버지와 내 몸을 묶어 기차 지붕에 매달려 타고 왔는데 기차가 터널을 지나면 옆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없어지더라.” 하면 어린이들은 “육이오가 뭐예요?” 하며 질문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70년 80년이라는 나이의 간극을 무색하게 하는 대화의 장이 펼쳐진다. 어린이들은 어린 할머니의 말과 삶을 재현하며 감각해본다. 할머니들은 자신이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연출한다. 하나의 살아있는 역사가 어린이들의 머리가 아니라 몸에 새겨지는 것이다. 어느 할머니의 마지막 일기는 이렇게 끝났다. “여러분 그때는 나도 몰랐어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고 아름답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할머님의 말씀을 들으니 코로나 이후에도 우리가 예술로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나도 선명해진다.
어느 날, 버려지는 재료들을 깨끗이 씻어 경로당에 가서 리사이클링 아트를 시작했다. “함께 해봐요” 하면 “이걸 해야 해?” 귀찮아하시면서도, 이제 사용이 끝난 것들을 전혀 새로운 것으로 탄생시키는 할머님들의 모습을 보면 늘 울림이 있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다”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님들이지만 예술을 통해 언제나 “당신이 끝이 아님”을 손끝에서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할머님들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이야기를 돌려드리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이신다”고.
다시 창작을 앞두고
너느로는 마을에서 공연하기를 즐긴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공연하기를 추구한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너느로가 품었던 질문, 전통연희의 대중화에 대한 해답이 아닐까. 문화집단 너느로는 올해부터 작은 공연을 만들려고 한다. ‘사회적 거리’라는 여백을 ‘여유’로 즐기면서 만남을 지속하기 위한 아주 작은 공연들이다. 유은경 문화집단 너느로 대표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어린아이도, 청소년도, 어르신들도 만나졌다. 예술로 무엇을 해야겠다 의도한 만남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너느로 덕분에 은평 사람들은 예술이 일상에서 만나지는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생활예술과 전문예술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예술에서 발현하고자 하는 사회에서 빚어진 삶의 문제들을 마을 사람들이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유은경 대표는 말한다. “아직 이 사회가 해내지 못하는 일들에 예술이 있다. 코로나 시대에도 예술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와 가치는 여기 마을 속에 있다” “우리는 아직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이 남았다”고. 문화집단 ‘너느로’의 뜻 그대로 매일 오늘처럼 한결같이 예술로 만남을 얼마나 더 너르게 넓혀가게 될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홍은지
백송시원 엄마, 연극하는 송김경화
낭만유랑단 소속으로 작가, 연출, 배우를 하면서 가끔 홍보물디자인도 하는데, 어느 한 역할에 고정되어 있지 않으려 한다. 혜화동1번지 6기동인으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신의 입자> <체체파리> <제 12장 불완전성 정리> <프라메이드> <섹스인더시티> <백한덕브이> 등이 있다.
layair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