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소식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새로운 소식이 전파되는 경로, 새로운 소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관찰해볼 만한 일이다. 처음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도시 봉쇄로 인해 텅빈 우한(武漢) 거리 모습이 뉴스로 연일 보도되고, 플라스틱 물통을 방역 장비로 쓰는 우스꽝스러운 모습 등이 인터넷을 통해 퍼졌으며, 봉쇄로 치료를 받으러 가지 못하는 딸을 살리기 위해 바리케이드 앞에서 울부짖는 어머니의 모습 등이 드라마틱하게 전해져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모두의 일이 될지 예견하지 못한 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을 끼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지난 1월, 국내에도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이제는 중국이 아니라 우리 동네 소식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해졌으며, 내 생활반경 안에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전국 상황도 중요했지만, 내가 사는 지역 상황이 궁금해진 사람들은 시나 구의 홈페이지, 지역 맘카페를 드나들면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확인했다. 베를린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2월 말, 이탈리아로 스키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대거 코로나 확진자로 판명되고, 급속도로 전국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3월 중순에는 학교와 유치원, 레스토랑 등이 문을 닫고, 대부분의 회사원도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전국뉴스보다는 지역뉴스와 신문을 확인하면서 자기 동네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은 기본적으로 주 정부별로 다른 시스템과 정책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로 주별로, 도시별로 혹은 지역구 별로 다르게 진행되었다.
국가지원부터 지역사회의 후원과 지지까지
문화예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독일 헌법은 예술을 사회가 보호해야 할 귀중한 가치로 정하고 동시에 문화정책 수립과 관련된 주요 역할을 연방 정부가 아닌 16개 주 정부에 위임하고 있다. 주 정부도 행정의 주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그려주는 역할을 담당할 뿐 실질적으로는 시·군 규모의 지방자치단체들과 지역 문화예술기관 당사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는 지역사회의 강한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독일의 문화예술은 지역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오랜 전통이 있었고, 예술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 것을 사회적 책임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프리랜서/소기업/자영업자에게 ‘즉시 지원금(Soforthilfe)’을 지급할 때 문화예술인을 포함하였다. 베를린의 1인 자영업자(문화예술인 포함)부터 5인 이하의 팀 및 소기업에는 3개월간 최대 9천 유로(한화 약 1천 200만 원)의 직접 지원금을 지급하였으며, 10인 이하에는 최대 1만 5천 유로(한화 약 2천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였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문화예술행사가 취소되고, 입장권이 환불 조치되면서 이로 인해 예술가 사회보험* 가입자들의 수입이 끊기고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을 고려하여, 변동된 예상 수입을 신고하여 보험료를 재산정하거나, 보험료 납부가 어려울 경우 지불 조건 완화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예술가 사회보험(Künstlersozialversicherung) : 대부분의 예술가가 고용 관계에 놓이지 못하고 자영 예술가로 활동하면서 적은 소득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독일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따라 고용 관계를 갖지 못한 프리랜서 예술가들을 사회보험체계 안에서 보장하기 위해 독일 연방정부에서 1981년에 관련법을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예술가들이 법적 사회보험 가입대상의 자격을 취득하여, 근로자와 같이 의무적으로 연금보험, 의료보험 및 요양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예술가 역시 근로자와 동일하게 사회보험료의 50%를 자기가 부담하고, 나머지 50%는 국가가 20%, 언론, 출판사, 갤러리 등의 저작권 사용자가 30%씩 납부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또 예산이 지원되었던 문화 프로젝트 및 행사가 코로나19로 인해 조기 종료되는 경우, 공공 예산 및 보조금법률에 따른 사례별 조사 후 이미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소비된 예산은 회수하지 않기로 하였고, 행사 취소로 인해 남은 예산만 반납하도록 했다. 이 밖에 소상공인, 프리랜서(예술가 포함)의 6개월간 주거비 보조를 위해 110억 유로(한화 약 15조 4천억 원)를 추가 지원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가 차원의 문화예술에 대한 든든한 지원과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은 문화예술에 대한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이다. 앞서 언급한 국가 및 주 차원의 지원 이외에도 #Saengerhilfe(성악가돕기), #support your local artist(지역예술가 돕기), #join us at home(집에서 함께해요), #ich will kein geld zurueck(환불받지 않겠습니다.) 등의 온라인 해시태그 운동 등 예술가들과 함께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성악가돕기 운동에는 스타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참여하면서 일주일만에 10만 유로(한화 약 1억 3천만 원)를 모금하였다.
문화예술계에서도 스스로 위기를 헤쳐나가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960년대 후반부터 최근 공연까지 600여 편의 공연 영상을 공식 홈페이지에서 모두 무료로 공개하였고,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를 비롯하여 유명 오케스트라들이 온라인으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한 사례는 유명하다. 매년 5월에 열리는 베를린 연극축제(Theatertreffen)도 가상 공간에서 개최(Virtual Festival)되었다. 음악가나 예술가 개인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연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 자체는 수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는 당장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큼 중요한 자신의 ‘작업’을 지속시켜나가는 활동이기도 했다.
그런데 수업도 일도 만남도 모두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데에 지친 사람들은 쏟아지는 온라인 행사에 피로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기 활동 반경 안에서 적정한 거리를 두고 대면할 수 있는 문화예술 행사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고, 홈스쿨링과 육아로 지친 부모들, 함께 놀 친구를 잃은 아이들도 대안적인 놀이로서 특별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기 동네의 재발견에 나섰다.
‘우리 동네’에서 놀자
베를린과 함부르크 등 북독일 지역에서만 쓰이는 ‘키이츠’(Kiez, 동네)라는 단어가 있다. 이 지역만의 특별한 지역문화를 일컬을 때 많이 쓰인다. 예를 들어, 독일의 화가 이름을 딴 베를린의 ‘콜비츠 키이츠’는 콜비츠 광장을 중심으로 예쁜 카페와 상점이 많고, 광장에 주말마다 작은 시장이 들어서며, 동네 사람들이 자기의 물건을 내다 파는 벼룩시장도 열리는 곳이다. 코로나 시기에도 키이츠는 지역 상생의 공간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레 자전거나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 내에서 쇼핑, 먹거리 등을 해결하고 있고, 덕분에 키이츠 안에서 열리는 문화예술교육 행사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네벤안’(nebenan.de)은 동네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올라오고, 그 해결책도 동네에서 찾는다. 잘 쓰지 않는 공구나 텐트 같은 용품을 공유하거나 자기가 쓰지 않는 시간 동안 자전거나 자동차를 빌려주기도 한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남을 주선하기도 하고, 아이의 연령대가 같은 가족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연결되어 놀이터에서 만나 놀기도 한다. 네벤안은 특히 코로나 시기에 지역 공동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바로 노약자를 위해 시장을 봐주거나 병원에 데려다주기, 긴 시간 집을 비웠을 때 식물에 대신 물주기 등 필요한 사항을 올리면, 서로 연락해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다. 동네 중심의 실질적 생활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네벤안에서는 동네 예술가들의 공연이나 이벤트, 미술·연극 수업 등을 홍보하고 동네 중심의 발코니 콘서트를 기획하거나 작은 요리 워크숍을 기획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등 3~5인 중심의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조직하는 것을 돕고 있다. 공공도서관이 문을 닫자 자기 집의 책장을 공유하고, 함께 읽은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문학의 밤’과 같은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이 활동들은 네벤안에서 발행하는 매거진을 통하여 소개 된다. 네벤안은 코로나로 인해 자신의 작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된 예술가들을 위해서 동네 중심의 ‘판’을 마련해 주는 데에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직접 대면이 어려운 시기에 온라인이 최고의 대안이라도 되는 양, 홍수처럼 온라인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사람과의 만남에 더욱 소중한 가치를 느끼게 되면서, 문화와 예술이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깊어져 간다. ‘랜선’을 통해 ‘방구석’에서 오붓하게 즐기는 온라인 중심의 문화예술이 한 축을 차지한다면, 사람과의 직접 만남을 통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감정과 표정, 숨결의 공유가 그만큼이나 귀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른 어느 해보다 날씨가 더욱 좋았던 베를린의 2020년 봄, 여름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동네의 작은 소식에 눈과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예전과 같은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이 동네에서 나는 어떻게 스며들 것인가.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화두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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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서
베를린에 기반을 둔 한-독 리서치 네트워크 ‘소나기랩’의 일원이다. 한국에서는 발도르프학교의 연극교사 및 연출가로 활동하였다. 한국과 독일을 잇는 다양한 문화예술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다.
timeyesspac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