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웃도어 매출이 크게 오를 정도로 등산과 캠핑이 인기를 얻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실내 활동과 모임을 자제하면서 인적이 드문 자연으로 향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등산과 캠핑 이외에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다른 활동은 없을까?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서점, 미술관, 박물관 등 문화예술 공간을 소개해본다.
전원 속에서 즐기는 책방 스테이
경기도 양평 용문산으로 가는 길목, 자가용 없이는 가기 어려운 전원주택 단지 속에 한 서점이 있다. 누가 이곳까지 책을 사러 올까 싶지만, 예약제로 운영하는 책방은 8월까지 이용 예약이 이어져 있을 정도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하다. 바로 ‘산책하는고래’다.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처럼 이곳에서는 너른 자연에 둘러싸여 맘껏 사색에 빠질 수 있다.
그림책 출판사 ‘고래이야기’를 운영하던 부부는 2011년 양평에 내려와 전원주택을 짓고 살다가 2017년 1층을 비우고 동네책방을 열었다. 고래이야기의 그림책은 주로 아이들이 읽는 아기자기하고 발랄한 동화가 아닌, 성평등·장애·인권·환경 등 사회적인 문제와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방지기 부부는 기존의 학교 교육에서는 배울 수 없는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주고자 출판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신념에서도 알 수 있듯 책방 1층에는 대안적인 삶을 고민하는 책들로 가득하다. 다양한 책들이 쌓여 있는 1층을 지나, 작은방 창문을 나가면 바람을 맞으며 독서할 수 있는 툇마루 공간이 나온다. 오직 한 팀만이 책방에 머물며 하룻밤을 보내는 책방 스테이(book stay)도 가능하다. 이 작은 공간에서는 오롯이 책과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몸과 맘을 비우고 머리를 채우는 진정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사진출처] 산책하는고래
문턱 낮은 자연 속 미술관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바로 자연 풍광과 문화유산, 예술작품이 한데 어우러진 곳으로, 경북 영천시에 위치한 ‘별별미술마을’이다. 이곳은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마을미술프로젝트를 통해 조성되어, 현재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한적한 마을의 골목을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아기자기한 예술작품도 감상할 수 있어, 힐링 여행지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마을 곳곳에는 50여 개의 공공예술작품과 벽화가 다섯 개의 길을 중심으로 설치되어 있다. 걷는길, 바람길, 스무골길, 귀호마을길, 도화원길 등 오행적 순환의 원리에 따라 마을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아 제작된 예술작품을 구경하다 보면, 말 그대로 지붕이 없는 거대한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별별미술마을의 하이라이트는 폐교를 리모델링한 ‘시안미술관’이다. 환경과 재생이라는 태생적인 키워드를 살린 친환경 미술관으로, 예술적 영감으로 재탄생된 학교 건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기존 교실은 옛 마룻바닥을 그대로 살린 모던한 전시실로, 운동장은 현대 조각품이 전시된 잔디공원으로, 화장실 건물은 소규모 워크숍이 열리는 스튜디오로 변신했다. 또 시안미술관에서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풍부한 예술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8월에 열릴 <리사이클 크리에이터(Recycle Creator)–아는 것의 새로운 발견>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주변의 낡은 것을 예술로 발전시켜 ‘재생’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체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소통을 위한 단절’을 향하여
지난달, 하늘과 마주 닿는 곳에서 특별한 명상회가 열렸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원주에 위치한 ‘뮤지엄 산(Museum SAN)’은 심리적 방역을 위해 자연 속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마크 디 수베로(Mark di Suvero), 앤서니 카로(Anthony Caro), 루이스 네벨슨(Louise Nevelson) 등 20세기 유명 현대 조각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야외 정원에서 사람들은 명상을 통해 단절된 일상 속 지친 마음을 회복하고 활력을 얻어갔다.
산(SAN)이란 이름은 ‘Space Art Nature’의 약자에서 따온 것으로, 사계절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품에서 문화와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전원형 뮤지엄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뮤지엄의 슬로건인 ‘소통을 위한 단절’은 최근 우리가 처한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 뮤지엄 산은 잊고 지낸 삶의 여유는 물론, 자연과 예술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취하기 위한 최적의 공간을 제공해준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가 설계한 이 공간은 미술관 건물 주위를 감싼 정원들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자작나무 오솔길을 지나 바람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뮤지엄 산에 도착해 있다. 알렉산더 리버만(Alexander Liberman)이 파이프형 금속을 잘라서 만든 설치품 ‘아치웨이(Archway)’ 밑을 지나갈 때는 다른 차원의 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독특한 건축물만큼 유익한 전시들도 진행되고 있다. 종이 전문 박물관인 페이퍼갤러리에서는 종이와 인간의 역사를, 청조 갤러리에서는 20세기 한국 회화와 판화, 드로잉 작품들을 대거 관람할 수 있다.
쉼을 뜻하는 한자 ‘휴’(休)는 나무에 기댄 사람에서 비롯됐다. 인간에게 본디 휴식이란 자연 속에서 누리는 여유와 사색을 말하는 것이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거리두기에 지쳤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자연 속에서 사색에 잠겨보는 것은 어떨까.
프로젝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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