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바뀌는 시기이다
2018년 브뢰겔(Pieter Bruegel the Elder)의 그림을 보기 위해 유럽 몇 나라를 돌아다닌 적 있다. 스위스 작은 도시 빈터투어를 방문한 것은 브뢰겔의 눈 내리는 풍경이 있는 그림 한 점 때문이었다. 마을의 광장을 지날 때 무언가 꽝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어른과 젊은이와 아이가 함께 어우러져 작은 나무공을 향해 커다란 쇠공을 던지고 있었다. 구슬치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 편으로 나뉘어 13점을 먼저 낸 팀이 이기는 놀이다. 점수를 계산하는 방식은 컬링과 비슷했다. 이것은 ‘페탕크(petanque)’라 불리는 프랑스의 오래된 놀이로 유럽 전역에 퍼져있다. 풀밭이든 모래밭이든 자갈밭이든 어디서나 노는 것이 가능하다. 세계선수권대회가 있어 스포츠로도 자리 잡았다. 작은 공을 기준으로 상대 팀보다 더 가까이 우리 공이 몇 개 있느냐에 따라 점수가 매겨진다.(그래서 작은 공을 향해서 큰 쇠공을 던졌던 것이다.) 상대방의 공을 쳐 내어도 된다. 먼저 13점을 내어서 이기는 것이 가장 큰 재미이지만 이 놀이의 매력은 기준이 바뀌는 것이다. 컬링은 바닥에 고정된 표적이 기준인 반면, 페탕크는 작은 공이 움직이며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지면 순식간에 점수가 바뀌게 된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했던 순간을 함께 이겨내고 있다. 페탕크와 연결해 본다면 지금은 기준이 바뀌는 시점이다. 순식간에 바뀌는 기준에 웃음을 잃지 않고 차근차근 점수를 계산하며 다음 판을 준비하는 힘을, 놀면서 키우면 좋겠다.
코로나가 모두를 힘들게 하지만 아이들은 잘 지낸다
어른들은 걱정이다. 아이들이 핸드폰만 붙잡고 있어서 걱정이다. 맞벌이하는 부모는 아이들이 모니터 등교 시간에 맞춰 못 일어날까 봐 걱정이다. 집에서 혼자 지내다 보면 친구를 못 사귈까 봐 걱정이다. 문자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직접 만나서 말할 때 그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할까 걱정이다. 좁은 집안에서 꼬물거리는 시간이 많아지니 몸에 근육이 붙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이 읽을 책의 목록을 정리해서 손편지로 보내고, 할 거리 놀 거리를 유튜브를 통하여 제안하고, 새로운 시간에 맞춘 배움의 방식을 연구하면서 참 바쁘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잘 지낸다. 어린이집 다니는 유니는 비오는 날 우산 쓴 사람을 문어처럼 그린다. 유치원 다니는 규니는 온 집안의 놀잇감을 다 꺼내 놓고 놀다가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지자 글씨를 연습한다. 초등학교 3학년 민경이는 집안에 있는 플라스틱과 종이를 합쳐서 몸에 붙이는 코로나 퇴치 변신 로봇을 만들었다. 콜라와 멘토스로 용암을 만드는 지형이는 4학년이다. 집안을 온통 뒤집어 놓고 엄마의 가슴을 치게 하지만 아이들은 잘 놀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보내온 꾸러미로 놀면서 숙제를 한다. 아이들은 자기 앞에 펼쳐진 새로운 환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이들이 자연에서 놀면 어른들도 즐겁다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에서는 11과 3/4세가 되기 전에 해야 할 50가지를 소개한다. 이 캠페인은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연을 만날 것을 제안하고 있다. 11과 3/4세라고 했지만 81과 3/4세도 역시나 재미있을 것이라 설명한다. 나무를 오르고 동산에서 구르고 바람을 만나고 동물 발자국을 찾으며 아이들이 자연을 맘껏 만나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바람이 담겨있다. 미디어 캠페인에서 시작된 이 활동은 지금 책으로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다. 5와 3/4세가 되기 전에 해야 할 50가지도 함께 참고하면 좋다.
자연에서 노는 것은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바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어야 하고 물을 만나기 위해서는 물이 있는 곳까지 가야 한다. 아이들의 생활터 근처에 이런 곳이 있다면 좋겠으나 도시 생활자들은 시간을 내어 특별한 곳으로 움직여야 한다. 자연에서 놀기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함께 노는 과정에서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고무신이 발행하고 있는 [놀궁리]에서 ‘풀 놀이’를 읽은 어린이가 할아버지 댁에 가서 민들레 대궁을 끊어 피리를 불자 할아버지는 버드나무 가지로 버들피리를 만들어 아이에게 주었다. 민들레피리 덕분에 할아버지도 6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자기 속의 어린이를 만났다고 좋아하신다. 생각이 날 둥 말 둥 했는데 어느 순간 몸이 그것을 기억해 내고 뚝딱 버들피리를 만들어 내었다. 이후에 할아버지는 어렸을 적 놀았던 놀이와 만들었던 놀잇감을 틈나는 대로 만들어 아이와 함께 놀고 있다. [놀궁리]가 만들어낸 의외의 결과였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어른들의 수고가 필요하다
고무신학교 놀이보따리 [놀궁리]는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고 심심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준 영감으로 시작했다. 일주일째 집안에 갇혀 블록 놀이도 하고 마법사 흉내도 내고 그러다가 엄마가 시키지도 않은 한글 공부를 했던 7살 규니가 [놀궁리]의 실질적인 발행인이다. 심심함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를 규니가 먼저 보여 주었고 나는 규니를 따라 한 것뿐이다. [놀궁리]를 보고 더 재미있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다시 놀 궁리를 풍성하게 해 주고 있다.
[놀궁리]는 아이들을 만나는 어른들을 위해서 만들었다. [놀궁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할 지점은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에게 그것을 전하는 사람은 어른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방과후 교실에서 학원에서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놀궁리]를 다양하게 써먹고 있다고 한다. 친절한 설명과 읽기 편한 편집을 요구하지만 많은 글자로 놀이를 설명하고 도움받는 그림은 아주 간략하게 그린다. 의도된 불친절 놀이안내서이다. 비대면 비접촉 시기 정보의 전달은 대부분 영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에 더욱 글자와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 글자를 읽고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다시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와 보여줌으로 놀이와 만들기를 해결하게 하고 있다. 그 사이에 전달자가 상상력과 어린 시절 직접 놀았던 기억을 첨가하고 전혀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놀궁리]는 여는 이야기, 놀이, 놀잇감 만들기, 구지원 작가의 동문서답, 브뢰겔의 <아이들의 놀이> 그림에서 놀이 찾기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순간순간 만난 자연의 신호를 해석하는 것으로 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전에 보이지 않았던 반딧불이가 보이고, 들리지 않았던 딱따구리 소리도 들리고, 스쳐 지나갔던 부모님의 농사일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놀이의 구성은 집안에서 시작하여 계절별로 공간별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방안에서 시작하여 마당이나 아파트 공터를 지나 골목으로, 놀이터로, 그 영역을 점차 넓혀 나가고 있다. 둘레에서 시기에 맞춰 쉽게 발견되는 꽃과 풀과 흙과 나무가 놀잇감이 된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고, 들로 산으로 개울로 마음껏 뛰어다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만들기와 질문하기는 활동에 참여하는 이가 좀 더 자기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만들고 생각하기는 누구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혼자서 끙끙거리며 해낼 때 그 성취감이 더 크다. 마지막 장 브뢰겔의 <아이들의 놀이> 그림을 한 조각씩 떼어 보는 것은 ‘다르게 보기’ ‘자세히 보기’ ‘깊이 보기’를 시도한 것이다. 빈 미술사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그림에는 250여 명의 아이가 등장하고 83개의 놀이가 들어 있다고 한다. 이 그림 읽기의 목표는 빈 미술사박물관의 학예사가 찾아내지 못한 놀이를 딱 한 개만 더 찾아내는 것이다. 규니를 따라 배우려 그저 심심해서 했던 것이 어느새 일이 되었다.
노는 사람이 놀이의 주인공이다
‘놀이가 아이’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놀이’를 살린다. 아이들이 놀 때 비로소 놀이가 살아난다. 놀이가 아이를 살린다는 것은 놀이의 규칙과 방법을 배우며 몸과 마음을 움직여 살아나게 한다는 뜻이다. 반면 아이가 놀이를 살린다는 것은 아이의 움직임 자체가 놀이가 되는 것을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현장에서 놀이는 만능열쇠가 되어있다. 놀이를 강조하다 보니 놀이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 노는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고 대리석 바닥에 그려 놓은 놀이판, 아이들의 키와 손 길이에 맞지 않는 놀잇감, 놀이기구가 주인공인 놀이터 등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노는 곳에 가장 많이 해 놓은 말은 ‘마세요’이다. ‘마세요’가 ‘괜찮아’로 바뀔 때 아이들의 놀이는 비로소 살아난다고 믿는다. ‘거꾸로 올라가도 괜찮아’ ‘돌아앉아서 타도 괜찮아’ ‘놀지 않아도 괜찮아’ ‘땅을 파도 괜찮아’ ‘풀 뜯어 먹어도 괜찮아’ ‘더러워져도 괜찮아’
아이들이 마음껏 자연에서 달릴 수 있게 어른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한다. 온 지구촌에 퍼져있는 코로나19를 지혜롭게 해결하여 빈터투어 마을 광장에 다시 온 세대가 모여서 페탕크 하는 날을 지구인의 마음으로 기다린다.

고무신
고무신
아이들과 노는 것을 일로 하고 있는 놀이노동자이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논다. 특별히 무엇을 하고 노는 것 보다 현장 상황에 따라 그저 논다. 유아 문화예술교육과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 몇 가지 잔재주를 보태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과 정책』(2019)에 글을 실었고, 『자연에서 노는 아이』가 곧 출간될 예정이다.
fungomus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