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곳을 찾아가거나 여행을 떠날 때 준비해야 할 필수품 중 하나가 지도이다. 떠나기 전 지도를 보며 지형지물을 익히고, 길을 확인하며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호기심이나 기대감을 갖기도 한다. 이제는 구글어스로 세계 어디든 직접 가지 않아도 거리의 풍경까지 확인할 수 있다. 보이는 그대로의 지형지물이나 풍경 중에서도 지도에 어떤 것을 어떻게 표기하고 드러내냐에 따라 만든이의 취향이나 생각을 공유하는 창구이자, 발견에 대한 기록이 되기도 한다.
문화예술지도에는 일정 지역에 있는 다양한 문화, 예술 콘텐츠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다. 미술관, 공연장, 책방, 역사 유적, 문화 공간 등이 집약되어있는 지도는 많은 정보나 계획 없이 지도 한 장으로도 풍성한 예술여행을 선물한다.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지도 만들기’를 통해 사는 곳을 돌아보며 지역을 읽고, 공동체를 확인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지역의 문화적 특색과 예술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각양각색의 문화예술지도를 소개한다.
동네 문화공간 어디까지 가봤니?
내가 사는 지역이나 동네에는 문화나 예술 관련한 곳이 얼마나 있을까? 나의 일상 가까이에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개인의 삶을 문화적으로 연결하는 주요한 환경 중 하나이다. <양천, 문화예술지도>에 따르면 양천구에는 120개(2018년 기준)의 문화·예술 단체, 공간이 동네의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다양한 식물과 책을 만날 수 있는 동네 책방 ‘꽃 피는 책’, 청년들의 일, 교육, 놀이를 고민하는 청년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공간 ‘무중력지대 양천’, 인형만들기, 바리스타, 손바느질 등 다양한 손작업을 해볼 수 있는 체험 카페 공작소 ‘바느질하는 바리스타’. 지도를 제작한 플러스마이너스1도씨는 온·오프라인으로 조사를 진행하며 저마다의 모습과 색깔을 가진 이웃을 발견하고 궁금했던 13개 팀은 직접 만나 공간을 구경하고 인터뷰했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는 양천구의 문화예술자원을 조사하면서 목공, 가족, 도예, 금속 등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공간들을 발견했다. 이후 함께 목소리를 나눌 오픈테이블 ‘느슨한 네트워크, 양천’을 열고, 서로의 작업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공방을 연결하며 동네를 들여다보는 프로젝트 ‘소풍’을 기획했다. 지도를 공유한 블로그에는 ‘누구나 지역, 동네 가까운 곳에서 문화를 향유하고, 필요한 곳에 접속’할 수 있도록 120개 공간·단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동네서점’ 사이트에서는 전국의 동네서점과 도서관, 문화공간 총1,085개의 정보가 담겨있는 <동네서점지도>를 볼 수 있다. 전국 동네서점과 함께 만들어 가는 지도로 위치정보뿐만 아니라 취향이나 관심사에 따라 찾아가 볼 수 있도록 공간의 특징이나 테마 등 서점의 흥미로운 이야기도 함께 볼 수 있다. 동네서점지도는 개인의 취향과 이웃을 발견하고 만나는 로컬 컬처(Local Culture)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가까운 동네서점이나 문화공간을 중심으로 나와 비슷한 관심과 취향을 가진 지인이나 동네 사람들과 공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동네서점’과 웹진 [인문360°]은 ‘같이 걸을까 인문지도’ 프로젝트를 통해 12개 지역 인문지도를 제작했다. 춘천 책방마실, 구미 삼일문고, 청주 앨리스의 별별책방 등 각 책방지기들이 각자의 인문공간 소개와 함께 공간이 있는 지역의 문화와 역사적 배경, 아지트 같은 커뮤니티 공간이나 현지인 맛집까지 글과 사진 그리고 직접 그린 지도를 볼 수 있다. 지역민이자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책방지기들의 소개와 정보가 담긴 인문지도로 책방에서 출발하는 인문여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구인문지도(왼쪽)와 지도와 함께 소개된 인문공간 ‘더폴락’
지도그림_류은지 / [출처] [인문360°]
지역의 색깔과 매력으로 한 걸음 더
세운상가는 1967년부터 1972년까지 차례로 건립된 총 길이 약 1킬로미터(km) 달하는 상가이자 고급 아파트 건물로 가전제품, 컴퓨터, 전자부품 등으로 특화된 상가이다. 90년대 이후 인터넷과 디지털 모바일 기술 등의 발달로 유통구조가 변화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여전히 세운상가와 그 주변에는 각종 개발품 제작, 전문 수리업종,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운맵>은 세운-청계천-을지로 일대에 소재한 업체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지도다. 기술력을 갖춘 공장과 각종 재료, 부속 등 판매업체 2천여 개와 함께 지역에 특화된 기술용어, 다양한 제작사례와 노하우를 제공한다.
‘인공위성에 필요한 단 하나의 나사도 깎아주는 곳’이라 할 만큼 수많은 부품과 재료들의 보고인 세운상가지만 초심자에게는 처음 보는 수학문제처럼 낯설고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세운맵에는 초심자를 위한 ‘탐색도우미’가 있어 필요한 서비스, 세운상가 지역 경험 정도를 체크하면 지도이용 방법, 검색어 추천, 기술중개 연결까지 다양한 팁을 제공해준다. 자신이 상상하고 디자인한 무언가를 구현하고 싶거나, 추억이 담긴 고장난 라디오가 있다면 지금 세운맵에 접속해보자. 세운상가의 다양한 색깔과 매력을 좀 더 느끼고 싶다면 세운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 등 전반적인 공간과 풍경을 둘러보는 ‘한발두발세운투어’로 길을 익혀보는 것도 방법이다.
부산 자갈치시장 건너편에는 ‘깡깡이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깡깡이’는 수리조선소에서 배 표면에 녹이 슬어 벗겨진 페인트나 붙어 있는 조개껍데기를 망치로 두드려 벗겨낼 때 ‘깡깡’ 소리가 난다하여 생겨난 말이다. 현재도 십여 곳의 수리조선소와 260여 개의 공업사, 선박부품업체가 있어 조선산업의 발전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마을 곳곳에서 근대역사유적과 조선산업 시설과 함께 크고 작은 골목과 낡은 벽, 공원 등에서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공공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예술마을’이기도 하다.
깡깡이예술마을에서는 2017년 ‘깡깡이예술마을 소리지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전광표 작가는 마을 수리조선소, 공장 등 작업현장부터 식당, 경로당 등 생활공간에서 나는 소리까지 마을 곳곳에서 소리를 채집했다. 작가와 지역 청소년·청년이 함께 소리를 채집하고 디자인하기 위해 소리디자인 워크숍 ‘소리는 울리는거’를 열었다. 워크숍에서 자신만의 마이크를 만들고 선박, 배관 등 각자 원하는 곳의 소리를 채집했다. 평범한 듯보이는 골목과 상점, 녹슬고 오래된 물건과 늘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던 소리에 집중하고 발견한 소리를 채집해 디자인하고 종이 형태의 사운드카드에 담았다. 소리지도는 채집한 소리를 맵핑하고 스크린 속 특정 위치의 사운드카드를 터치하면 해당 장소의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소리와 밀접한 마을의 정체성을 보다 긍정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만든 소리지도 <대평동의 소리 – 이것은 소음이 아니다>는 깡깡이마을박물관에서 들을 수 있다.
지도의 기본 기능은 길 찾기일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고 목적지로 가려면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지도를 보며 확인하는 것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라 할지라도 출발할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코로나19로 멈춤의 시간을 경험하며, 많은 이들이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어떻게 갈지 다시 길을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류의 미래를 개인이 고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 자신의 좌표와 갈 길을 잃지 않을 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함께 가는 길이 바로 우리 모두의 길이 될 수 있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만 입력하면 교통량까지 반영하여 가장 빠른 길을 실시간으로 안내받을 수 있는 최첨단의 시대지만, 우리 집 근처 풍경, 내가 마주치는 사람들, 나의 취향과 일상이 담긴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보며 나의 좌표를 확인해보면 어떨까.
주소진 _ 상상놀이터
주소진 _ 프로젝트 궁리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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