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문화예술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국제적인 담론의 장을 형성했던 ‘서울 어젠다: 예술교육 발전목표’가 채택된 지 10주년이 되었고,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으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본격화된 지도 15년이 지났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을 받았던 어린이·청소년들은 자라서 청년이 되었고 사회인으로서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료가 되기도 했다. 문화예술교육은 이들에게 어떤 기억과 영향을 주었을까?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갈 시대에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문화예술교육과 함께 성장한 청년에게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역할, 방향에 관하여 들어본다.
 
① 김도연 청년협동조합 뒷북 조합원
  
② 최진성 안무가·댄서
  
③ 김선혁 협동조합 문화예술단 꾸마달 이사장
  
④ 김나예 예술교육 생명나무 예술가 교사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관념이나 느끼는 것들을 안무로 만들어 춤으로 보여주는 안무가이자 댄서이다. 평상시에는 주로 타인에게 나의 관념 혹은 감정 등을 어떻게 하면 춤으로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고민하며 창작하고, 그 창작물들을 SNS와 공연 등을 통하여 알리는 개인 PR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춤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이나 전문적으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러 댄스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그 외의 활동으로는 대중적으로 케이팝(K-POP) 문화가 활발해지면서 TV 음악 프로그램이나 팬 미팅 공연 등 아티스트들의 무대가 더 풍성해지고 볼거리가 많아질 수 있게끔 백업 댄서로 참여하거나 여러 아티스트의 안무 창작을 도와주고 있다.
처음 문화예술교육을 받았던 때를 기억하나? 언제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 궁금하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14년이었다. 어릴 때부터 죽마고우처럼 같이 지내온 초등학교 친구들과 흩어지고 어느덧 중학교에 들어와 적응할 무렵 ‘무용’이라는 과목이 새로이 생겼다. 우리나라 전통무용인 한국무용을 토대로 동작의 이름, 유래, 역사 등 이론적인 면모를 배우고, 이를 적용한 조별 활동을 통해 동작이나 대형 및 구성을 다 같이 만들어보면서 협동심과 창의성까지 배울 수 있었다. 대부분 실기 수업으로 진행하여 체육 과목 다음으로 많이 움직이고 즐거운 수업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낯간지럽고 이게 뭔가 싶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다소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무용 수업 시간 때마다 적지 않은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을 대하는 매 순간이 열정적이고 진심으로 가득 찬 무용 예술강사 우선영 선생님 덕분에 점차 어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시고 정해져 있는 답이 아닌 새로운 답을 찾아내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일깨워주셨다.
무용 수업이 청소년기의 자신에게 영향을 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선영 선생님을 만나면서 참 많이 달라졌다. 당시 우상이나 롤모델 같은 개념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을 바라보는 시선과 존경심이 다르게 느껴지면서 심지어는 선생님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목요일 한 번만 있던 무용 수업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른 수업에서는 발표도 대답도 부끄럽고 부담되어 잘하지 못했지만, 무용 수업에서는 리더와 조장을 맡아 팀원들을 이끌고 먼저 나서서 알려주기까지 했다. 점점 무용 수업이 더 즐겁고 재밌어서 열심히 하다 보니 과목 성적까지 우수했다. 수업 시간 때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나의 모습이 평소의 성격과 일상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점차 적극적이며 활발한 성격으로 바뀌면서 친구들도 많아지고 교내에서는 반장까지 맡게 되었다. 말 그대로 180도 다른 사람이 되기까지 문화예술교육의 영향이 컸다. 그러면서 진지하게 내 적성과 재능을 고려하며 진로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게 들어서 우선영 선생님께 찾아가 진지하게 무용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무용부(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무용부 단장까지 맡게 되었다. 방과 후에는 공연과 대회를 준비했는데, 선생님이 못해도 괜찮으니 우리끼리 만들어보고 직접 무대를 준비해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정말 옆에서 작은 도움만을 주시고 온전히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끔 믿고 맡겨주셨다.
방과 후에 공연을 만들고 무대 준비까지, 단장으로서 책임과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안무를 창작하고 무대 구성과 퍼포먼스를 만들어 나가는 대회 준비를 통해 정말 많은 것들을 느꼈다. 아무래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준비하는 만큼 연습 일정을 맞추는 사소한 것부터 퍼포먼스적인 합이 안 맞는 중대한 것들까지 준비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고비들이 있었다. 대회 준비가 처음이기도 했지만, 특히 단장이라는 직책에서 오는 부담감과 잘 해내야 하는 강박감까지 생겨 많이 힘들었다. 그럴 때면 옆에서 부축해주는 친구들과 형들 그리고 다독여주는 선생님 덕분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 같이 열심히 했기 때문인지 처음 나간 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이라는 좋은 성과를 얻었다. 그 순간 느낀 성취감과 무대 위에서 느껴지는 아드레날린 가득한 희열은 나를 좀 더 무용에 매료되게 만들었다. 더욱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 수차례 공연과 경연에서 매번 성장하는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문화예술교육이 외면으로 보이는 무용만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내면에 다른 잠재능력(자신감, 창의력) 등을 발현시키는 것에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 통진중학교 무용동아리
  • 댄스 스튜디오 강의
한국무용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실용무용을 전공하고 안무가이자 댄서로 활동하고 있다. 실용무용에 어떤 매력을 느꼈거나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계속해서 즐거움을 느끼고 열심히 하다 보니 배움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더 많은 것을 공부해 나아가던 도중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한국무용 외에 다른 무용은 무엇이 있는지, 예술은 과연 무엇인지 공부하던 중 졸업한 무용부 선배들을 만나게 되었고, 좋은 기회로 선배들과 함께 공연할 수 있게 되었다. 공연 시간 20분 중 15분은 한국무용 그리고 남은 5분은 이벤트 형식으로 마이클 잭슨의 <데인저러스(Dangerous)>와 <빌리진(Billie jean)>에 맞춰 춤을 추게 되었다. 원작 춤과 다른 춤을 몇 가지 응용한 선배의 안무를 배우고 춤을 춰 보았는데 마치 다른 나라에 여행 온 듯한 설렘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당시 공연에서 메인 무대였던 한국무용도 즐겁고 반응이 좋았지만, 대중성 때문인지 실용무용의 반응도 굉장히 좋았다. 무대 위에서 받는 박수갈채와 환호 소리가 또다시 내 마음을 움직였고 그 이후로 다른 매력이 있는 실용무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실용무용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자유롭게 잘 표현할 수 있고 안무를 창작할 수 있는 음악의 범위가 넓고 다양한 것이다. 그래서 실용무용 안무에 관심이 생겼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는 확신이 들어 고3 중반에 남들보다 조금 늦은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직접 만든 안무로 여러 대학교의 실기 시험을 치렀는데, 전부 합격했다.
중학교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한 무용이 이제 꿈이자 직업이 되었다. 앞으로 활동하면서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성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적인 문제들에 맞닥뜨렸다. 취미로만 즐기던 무용을 전공하며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니 나의 얕은 지식과 부족한 경험이 드러나면서 내가 춤에 재능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상의 대부분이 반복되는 무용연습으로 채워지다 보니 춤에 대한 흥미까지 잃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은 2순위로 삼고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경제적인 면도 많이 걱정되고 내가 이것을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가득할 때 문득 우선영 선생님이 자주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걱정 없던 학창시절의 나는 꿈에 대한 포부가 컸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았기에 오롯이 그것만 생각하며 열심히 했다. 처한 상황과 심정은 그때와 비슷했고, 이미 나는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고 처음부터 용감한 사람이 어딨나, 그저 그 순간의 몇 초 용기 낸 사람이 용감한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용감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모든 도전과 모험을 꺼리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고민과 선택지에서 나의 경험과 신념을 토대로 정체성을 다져가고 있다. 앞으로도 나의 소중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지금까지 느낀 것들을 잊지 않고 성장해 나가고 싶다.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문화예술교육의 역할은 무엇이고, 무엇을 지향해야 한다고 보는가?
중학생 때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었다. 접하기 어려웠고 낯설었다. 그러나 좋은 기회로 문화예술교육을 받으면서 자각하지 못했던 나의 재능을 발견했고, 진로와 직업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다.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것을 기능이나 기술적으로 알려주기보다는 예술이라는 포괄적인 면을 통해 사람 그 자체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것 혹은 사고력 등을 발견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무용이라서 무용 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용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예술을 보고 삶을 보고 세상을 보는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지도를 그릴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하며 본질적인 것은 직접 찾을 수 있게 한다. 예술강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씨앗을 던져주고 그 씨앗을 어떻게 꽃 피울지, 어떤 꽃으로 피울 것인지에 대한 도움을 주셨다. 자신의 정의와 가치를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일깨워 과연 내가 사회에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든지 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나에게 문화예술교육은 ‘최진성’이라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방향을 알려주고 찾아가게끔 해주는 이정표 같은 존재이다.
최진성
최진성

경기도 김포 통진중학교 재학 시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을 통해 처음 무용을 접했다. 학생들이 만든 무용동아리 ‘통진 남무단’에서 활동하며 경기도청소년종합예술제 우수상(교육감상) 수상, 김포시 다정다감대회 초청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세종대학교 미래교육원에서 실용무용을 전공하고 경기도 교육청 꿈의학교 콩나물 뮤지컬 <자화상> <안드로메다 48번지>에 안무로 참여했다. 현재 실용무용 안무 창작, 강의와 방송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인터뷰 글 & 프로그램 사진 _ 최진성 cjstkek8@naver.com
인터뷰 사진 _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정리 _ 프로젝트 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