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민들레학교 보호자님께 드립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모두가 결코 잊지 못할 2020년 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사이 개나리와 목련이 피고 지더니, 벚꽃도 벌써 끝자락을 보입니다. 오디세이민들레학교(이하 ‘오디세이’)가 있는 정독도서관의 봄은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한데 오디세이 학생들은 물론 보호자님들과 함께 이 봄을 누리지 못해 무척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아직 코로나 상황이 종료되지 않아, 당분간은 직접 대면 활동이 아닌 비대면 활동으로 우리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초유의 상황과 직면하게 되면서 저희의 고민은 더 깊어졌습니다.
한 해 배움 농사를 지을 땅도 고르고 씨앗도 챙기고 마음도 다잡는 3월의 ‘전환여행’도 생략되고, 얼굴을 마주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신뢰와 존경과 배움이 쌓이는 수업도 어려울 것이고, 무엇보다 함께 커다란 성취를 맛볼 수 있는 프로젝트 활동을 못 하게 될까 조급함도 들었습니다. 교사들은 이 고민을 안고 많은 대화와 공부를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공간민들레 교육의 목표
첫 번째 질문은 “오디세이 교육에서 우리가 꼭 이뤄야 할 것 그래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였습니다. 당연히 여행이나 프로젝트가 우리의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얼굴 마주 보는 시간 그 자체가 우리의 목표일 리 없습니다. 우리가 해내야 하는 것은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사람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배울지 경험하도록 돕기’였습니다. 그 경험은 진학의 발판이 되거나 삶의 힘이 될 거고요. 이어지는 질문은 “그렇다면 우리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사실 ‘비대면 교육활동’은 우리가 원해서 채택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채택 당한 것입니다. 코로나라는 인류 초유의 상황 속에서도 삶이 이어지는 것처럼 배움도 이어져야 하다 보니 이 방법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미래가 강제로 와버린 것’, 이것은 비단 교육영역에만 국한되지는 않아, 사회 각 분야의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비약적인 혁신을 하게 될 거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인간은 시련과 어려움을 통해 성장해왔으니까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또렷한 답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함께 최선을 다해 답을 찾아가려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답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그것만이 우리를 주체적으로 만들고 성장하게 하는 ‘진짜 배움의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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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기를 배우는 여정
이렇게 말씀드리다 보니 우리가 해왔던 교육활동을 새삼스레 돌아보게 됩니다. 여러 활동 중에서도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프로젝트 활동’입니다. 공간민들레는 다른 교육기관과 달리 1년제입니다.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사람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배울지를 경험하는 시간’이 1년뿐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 경험하기’라는 표현이 아주 중요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를 ‘맛보거나 체험하기’가 아닙니다. ‘알거나 완수하기’도 아닙니다. 꾸준히 무엇인가를 해내면서 시나브로 자신의 생각과 신체가 달라지는 ‘경험’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1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소중한 결과일 것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를 1년 동안 꾸준히 경험하기 위해 시도하게 된 것이 프로젝트 활동입니다.
해마다 3월 말이 되면, 교사와 아이들은 저마다 흥미나 관심사,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이를 심화시키거나 흥미로운 활동을 함께 할 멤버를 찾습니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멤버들은 마무리 때까지 함께 도전하고 실패하고 해결하기를 반복합니다. 1년이 끝날 무렵이면 이제 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 해만 더 해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나름 체득한 배움의 원리를 정리합니다. 누구나 ‘스스로 맘이 우러날 때,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을 때,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뭐든 시도할 때 그리고 다양한 분야와 도구와 입장을 넘나들며 솔루션을 찾을 때’ 배움은 일어납니다. 프로젝트 활동은 다른 어떤 활동보다 ‘배움의 원리’를 가장 종합적으로 잘 녹여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즈니스 현장에서 프로젝트가 개인의 목표 달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것에 비해 교육 현장은 과정을 중요시합니다. 비슷한 관심사와 흥미를 가지고 모였다고는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성취를 이뤄내는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함께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이 활동에서도 일어납니다. 오히려 순탄하지 않아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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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네 프로젝트 : 세상을 배우고 연결하는 묘미
올해로 교사생활 15년 차에 접어드는 김유라 선생님(민들레에서는 ‘유라’로 불립니다.)의 프로젝트 활동은 해마다 다른 모습이었지만 저를 감동하게 한다는 점에선 한결같았습니다. 유라는 할 줄 아는 게 많습니다. 바느질과 뜨개질 그리고 요리와 꽃꽂이 솜씨를 보면 그야말로 ‘금손’ 유라입니다. 심지어 해금 연주에 도전하는 등 음악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매체로 세상을 알고 참견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실은 이런 유라여서 프로젝트 활동을 잘하는 건가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물론 다양한 문화예술적 소양이 프로젝트 활동을 풍성하고 흥미롭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유라네 프로젝트 활동이 감동적이기까지 한 것은 누구 한 명도 놓치지 않는 그의 태도와 자질 덕분입니다.
유라는 영역과 주제를 넘나들며 다양한 프로젝트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중 ‘당신에게 드리는 소박한 밥상’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요리라고는 라면을 끓여본 게 전부인 남자아이 둘, 그래도 “계란프라이는 내가 잘하지” 하는 여자아이 셋에 유라까지 모두 6명의 멤버가 모였습니다. 요리엔 젬병이지만 요리와 먹방이 대세였던 때라 관심은 컸던 모양입니다. 민들레가 있는 동네의 공유 부엌을 빌려 먼저 칼질부터 시작했습니다. 잘하지 못해도 서로 힘을 모으면 꽤 맛있는 요리를 해낼 수 있는 특급 레시피를 가져다 요리도 해 먹습니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면서도 밥과 국, 몇 가지 반찬을 만들게 된 멤버들은 누군가를 초대해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부모님을 초대하자, 첫사랑을 데려오자, 중학교 때 선생님께 대접하자… 여러 이야기가 오가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쓰시는 분들께 소박한 밥상을 차려드리기’로 마음을 모읍니다.
첫 밥상의 초대손님은 ‘세월호 어머니들’이었습니다. 아마도 4월에 차리는 밥상이라 그분들을 떠올린 듯합니다. 아이들은 먼저 광화문과 안산을 찾았습니다. 밥상을 차리기 전에 세월호를 제대로 알고 기억하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안산에서 어머니들이 서울에서 온 아이들을 얼마나 정성스레 반겨주셨을지 모두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요리해서 밥상을 차리는 활동이지만 ‘세월호’로 불리는 역사적 사건을 배우기도 하고 직접 당사자들을 만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살기를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요리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것이 프로젝트 활동의 또 다른 묘미기도 합니다.
세월호 어머님들을 만나고 온 아이들은 ‘소박한 밥상’의 메뉴를 삼계탕으로 정합니다. 아마도 고생하시는 그분들께 따뜻한 보양식을 대접하고 싶었겠지요. 아이들의 뜻을 전하고, 식사 인원수를 확인했더니 무려 마흔 명이 넘었습니다. 아이들의 성의에 감동하신 분들이 너도나도 초대에 응한 결과였습니다. 기쁜 결과였지만 아이들에겐 큰 난관이었습니다. 삼계탕 40인분을 안산까지 운반해서 가는 일도, 그곳에서 직접 요리를 하는 것도 무리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멤버들은 긴 회의를 거쳐, 메뉴를 비빔밥으로 바꿉니다. 비빔밥은 식어도 웬만큼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완성된 것을 포장해 들고 가기에 다른 메뉴보다 수월하니까요. 그때부터 안산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과천의 공유 부엌을 섭외하고, 요리를 도와줄 전문가도 물색해놓고, 나물과 밥 등을 가져갈 수 있는 차량도 구하고…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 요일에도 요리 연습을 위해 늦은 밤까지 모여 씻고 자르고 볶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40인분이 넘는 비빔밥을 만들어 세월호 어머니들과 함께 소박한 밥상을 차려 먹었습니다.
아이들은 지금도 가끔 당시의 그 ‘소박한 밥상’을 떠올리며 말합니다. 자신들이 차린 보잘 것 없는 밥상을 어머니 한 분 한 분이 너무나 기뻐하며 받아주셨던 거, 그렇게 자기도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걸음에 동참한 기분이 들었던 거, 큰 어려움도 혼자선 어렵지만 함께 풀면 해결책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아이들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힘을 모아 큰 산을 넘어본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이 경험이 씨앗이 되어 아이들은 삶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시련을 넘어갈 힘을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소박한 밥상’ 프로젝트는 세월호 어머니에 이어, 위안부 할머니를 지키는 활동을 하는 ‘나비’라는 대학생 모임 회원을 초대하는 등 여러 차례 밥상을 차렸습니다. 한 해가 다 갈 무렵에는 무채도 정갈하고 찌개 간도 딱 맞아, 마음만 자란 게 아니라 요리 솜씨도 부쩍 자랐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일 년간의 활동기록은 나중에 작은 소책자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교사인 유라는 무척 바쁩니다. 아이들에겐 자신들과 같은 멤버 중 한 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일이 되어가도록 뒤에서 많은 일을 합니다. 미리 요리를 도와줄 분과 입을 맞춰놓기도 하고, 어디 가면 부엌을 빌릴 수 있는지 조사해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능력과 마음을 챙겨서 각자 제 몫을 해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배치하곤 합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누군가는 요리로 또 누군가는 사진 기록으로 또 누군가는 회의록 정리로 제 역할을 해내며 혼자서는 못해낼 큰 경험을 해냅니다. 마무리를 할 때쯤이면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를 넘어서는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다’는 말을 너도나도 합니다. 그러면 유라를 포함한 민들레 교사들은 ‘스스로 배우고, 서로 배우고, 하면서 배우고, 넘나들며 배우는’ 배움의 원리가 프로젝트 활동에서 여실히 작동해왔음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배움의 길동무가 되어
프로젝트 활동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어려움과 만납니다. 우여곡절도 겪고 친구들과 갈등도 일어나고 잠시 멈칫거리기도 하지만, 그런 조건 속에서 목표를 이루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의논합니다. 자기 관리는 어떻게 가능한지 갈등과 협업을 통해 배우고, 실패를 통해서도 배웁니다. 그래서 교육에서의 프로젝트는 ‘하면서 배우는 그 모든 것’이 학습 목표에 해당합니다. 프로젝트 활동을 경험한 학생들은 너나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야 해서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그래서 더 잘 배울 수 있었다”고 소회를 말합니다.
물론 과정 중심이라 해서 애초 설정한 목표에 이르는 일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프로젝트의 장점은 아이들 스스로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활동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무기력한 아이들’은 무기력하게 태어난 게 아니라 무기력을 학습하게 된 것이라는 진단도 있습니다. 프로젝트 활동은 조금의 흥미라도 생긴 그 무언가를 붙들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냄으로써 나름의 성취를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도 큰 힘을 발휘합니다.
물론 과정 중심이라 해서 애초 설정한 목표에 이르는 일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프로젝트의 장점은 아이들 스스로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활동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무기력한 아이들’은 무기력하게 태어난 게 아니라 무기력을 학습하게 된 것이라는 진단도 있습니다. 프로젝트 활동은 조금의 흥미라도 생긴 그 무언가를 붙들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냄으로써 나름의 성취를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도 큰 힘을 발휘합니다.
다른 교육활동도 그렇지만 올해는 많은 점에서 예년과는 다릅니다. 특히 온라인 교육이라는 초유의 방식은 프로젝트 활동 또한 지금까지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길 요구합니다. 새롭게 마주한 디지털 세상에서는 어쩌면 교사들이 아이들보다 실력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교사와 학생이 더불어 배우는 ‘배움의 길동무’이길 바랐고, 올해는 어쩌면 디지털 원주민인 아이들에게 배우며 가야 하니 어느 해보다 자연스레 ‘배움의 길동무’가 될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비대면 교육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저희도 잘 모릅니다. 대면 교육이든 비대면 교육이든 길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씩씩하게 잘 가겠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여기가, 대한민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의 맨 앞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온라인으로 만나지만, 더불어 배움의 길을 가는 동료로,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커뮤니티 멤버로 관계를 맺고 서로의 성장을 돕는 과정을 제대로 해내고 싶습니다. 부디 보호자님들도 마음으로나마 이 걸음에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분의 건강과 평화로운 일상이 하루빨리 돌아오길 기도하며 이만 줄입니다.
2020년 4월
공간민들레 대표 김경옥 드림
사진 _ 필자 제공
김경옥
김경옥
공간민들레 대표. 대안학교인 ‘교육공간 민들레’와 서울시교육청이 함께하는 1년제 전환기교육 오디세이민들레학교를 꾸리고 있다.
홈페이지 www.mindle.org/xe/space_min 페이스북 www.facebook.com/flyingmindle
이메일 gillhan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