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노래’라는 예술은 대부분의 사람이 보편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문화 중의 하나이며,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표현방식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청소할 때도 과제를 하면서도, 심지어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아이들은 끊임없이 알 수 없는 가락을 흥얼거리곤 한다.
이처럼 아이들의 생활에 노래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 실려 있는 노래는 수업 시간에만 부르는 게 되어 버렸고, TV나 유튜브를 통해 아이들 삶 속에 파고든 대중가요가 그 빈자리를 채운 지 오래다. 이러한 현상은 아이들이 동요를 외면하고 있어서라기보다는 동요의 주된 창작자인 어른들이 아이들을 진정한 문화적 주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노래’라는 예술 매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학교 문화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예술 활동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학교 내 다양한 예술과 문화가 아이들 삶 속에서 올바르게 뿌리내리기 위한 방법을 몇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아이들의 말과 글, 노래의 ‘날개’를 달다
학교에 처음 발령을 받아 새내기 교사로 아이들 속에서 좌충우돌하던 시절, 강원도 어느 산골마을에 사는 아이가 쓴 시에 곡을 붙여 만든 백창우 선생님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 말과 글을 노래로 담아낸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딱지 따먹기>라는 노래를 듣자마자 한동안 커다란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단지 서너 줄의 짧은 글 속에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담아낸 아이의 진솔한 글이 놀라웠고, 그 절실한 마음을 놓치지 않고 노래 선율에 따뜻하게 담아낸 작곡자의 시선이 무척 신선했다.
그 이후, 무엇인가에 이끌려 아이들 글이나 그들과 주고받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을 끙끙 앓다시피 하며 처음 만든 노래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의 흥분과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이들이 그토록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도 처음 보았고, 한동안 그 노래 하나가 우리 반의 중요한 화제로 떠오른 것도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노래를 부를 때 더욱 큰 감흥을 느낀다. 교과서 속의 노래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도 그것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 글로 노래를 만든다는 건,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 속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던 아이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돌려주는 작업이다. 뮤지컬, 연극, 미술, 영화와 같은 다른 예술 장르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삶의 목소리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일부터 시작해야만 아이들의 떠나버린 마음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틀려도 괜찮아, 할 수 있어
우리 학교 노래 동아리 아이들은 두 달에 한 번, 등굣길 버스킹 공연으로 이른 아침부터 바쁘다. 여전히 싸늘한 날씨로 인해 언 손을 풀어보려 피아노 건반을 쉴 새 없이 두드리기도 하고, 며칠 전 익힌 자신의 2부 파트를 잊지 않으려고 바쁘게 입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색다른 문화적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작년부터 실시한 등굣길 버스킹 공연에 아이들이 이토록 크게 호응할 줄은 몰랐다. 이젠 내가 노래 선곡을 하거나 연습을 시키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공연할 노래를 정하고 따로 모여 연습도 열심히 한다. 그건 공연을 관람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앙현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자신에게 주어진 아침의 여유를 즐긴다.
아이들이 보여준 이러한 폭발적인 자발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 학예회와 같은 행사 위주의 공연에서 벗어나 자신이 호흡하는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펼쳐지는 문화행사가 무척 신선했을 것이다. 즉흥 공연에 가까운 형태니 화려한 무대연출도 없고 공연 수준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든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처럼 예술은 일상이다. 학교 문화예술교육이 아이들 속에서 더욱 깊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그럴싸한 행사 위주의 공연 대신, 일상적이지만 지속 가능한 공연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선생님, 하다가 틀리면 어떡하죠?”
“다시 하면 되지! 네가 마음에 들 때까지 수백 번이고 다시 녹음해 줄 수 있어.”
아이들 목소리를 녹음할 때면 어김없이 연출되는 장면이다.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고, 다음 기회가 있다는 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아이들의 자신감을 높인다. 학생들의 예술 표현능력과 문화적 감수성을 신장시키고, 노래 관련 예술 활동의 성과를 학교 구성원들과 폭넓게 공유하기 위해 학급 음반과 디지털 학급앨범을 매년 제작하고 있다. 작년엔 1학년 아이들 116명이 참여하는 학년 음반을 제작했는데, 단지 한 소절 녹음하는데도 떨리는 마음에 며칠 동안 잠을 설친 아이도 있었다. 기성 가수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그건 주어지는 문화를 향유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학교 구성원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자신들의 문화를 생산하고 나누려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서로 다른 음이 모여 노래가 되듯
지금까지 아이들과 다양한 예술활동을 실천하면서 느낀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오케스트라나 합창부와 같이 소수 재능 있는 아이들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도되는 예술 활동에서 소외된 경향이 있으며,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교과 수업 때도 마찬가지이다. 분명 학교 예술교육의 지향점이 예술가를 기르는 데 있지 않고, 생활 속에서 예술을 즐김으로써 예술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를 지니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지식과 기능을 강조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런 학교 예술교육의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지역에서 의미 있게 시작한 공연이 ‘노래로 그리는 교실’이다. 일부 재능 있는 아이들만의 무대가 아닌 학급 전체가 참여하고, 학교 이야기를 창작곡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기존의 학생 공연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처음엔 1개 학급, 37명으로 시작한 공연이 16회를 거듭하면서 20개 학급 300여 명이 공연자로 참여하는 큰 공연으로 성장하였다.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학급 구성원 모두가 공연의 창작자인 동시에 기획자라는 점에 있다. 공동체의 문제를 자신의 언어로 ‘예술’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활동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일이야말로 아이들을 예술교육의 능동적인 주체로 세우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서로 다른 음이 모여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가 되듯,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아이들이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다리며 조력하는 일은 지금의 우리 교육이 따뜻한 감성을 되찾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아이들의 삶에 기반한 다양한 예술 활동이 일상적인 학교생활 속에서 펼쳐지는 기회를 마련하고, 예술 관련 교사 연수를 확대하거나 지역 예술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전문성을 확보하는 한편, 공동체의 문화가 생동감 있게 표출되고 수용되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20년간 학급 아이들과 노래를 나누는 일을 실천하며 교사로서 큰 성장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예술을 통해 아이들과 만나는 애틋함이 더욱 자주 있길 바란다.
사진 _ 필자 제공
이호재
이호재
부산 명진초등학교 교사. 부산노래교육연구회 회장, 부산시교육청 입학초기적응교재 개발위원, 시도 교육청 및 교육연수원 문화예술교육 직무연수 강사로 활동하며 ‘노래로 그리는 교실’ 공연을 개최하는 등 학교 문화예술교육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노래로 그리는 행복한 교실』이 있다.
nihoja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