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던 학교 교육의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서서히 다가오던 4차 산업 시대의 초연결성이라는 특성이 학교 현장에 다급하게 도입되었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가 접촉에서 접속으로 바뀌었고, 오감을 동원하여 교류하던 교실은 시각과 청각만 열어놓으면 되는 프레임이 대신하고 있다. 이제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이어야 할까. 몸들이 한데 모여 함께 겪으며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 가는 소중한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의 학교 교육에 있어서 문화예술교육이 담당해야 할 역할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문화예술교육은 ‘교사가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겪은 것을 함께 겪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교사의 예술적 경험이 교실로 이어져 실행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세월초등학교 남궁 역 선생님을 만났다.
교실에 들어서면 선생님이 칠판에 그린 파스텔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계속 새롭게 바꿔 그리시는데 어떤 계기로, 어떤 목적으로 하게 되었나?
5년 전에 발도르프 교육을 하는 선생님을 만난 게 계기가 됐다. 그분으로부터 습식수채화를 비롯해 발도르프에서 하는 여러 가지 예술활동을 배우던 중 칠판그림에 확 이끌렸다.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 앞을 바라볼 때 내 뒤에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녹색 칠판 대신 알록달록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좋겠다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시작하게 됐다.
칠판그림으로 인해 아이들이 선생님을 다르게 보게 되었을 것 같다.
교실에 교사가 직접 그린 그림을 걸어 놓으면 그림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림을 멋지게 그릴 줄 아는 선생님이라는 아이들의 평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림으로 인해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얘기가 더 많아지고, 더 생생해진다는 점이다. 처음엔 좀 어설펐던 그림 실력이 점점 더 나아지는 과정을 보면서 선생님도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은연중에 하게 되는 것 같다.
교직생활 33년 차로서 어떤 교육을 지향하시는지 선생님의 교육 철학이 궁금하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생각, 수업에 대한 생각이 처음에 비해서 많이 달라졌다. 임용 초기엔 배정된 학년의 교과서를 1쪽부터 끝까지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자 글쓰기 연수, 독서 모임, 열린 교육 등을 쫓아다니느라 바빴다. 그렇게 열심히 해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계속 생겨서 공허함이 점점 커졌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그동안 수업 내용과 전달 방식에 집중했을 뿐 정작 아이들 하나하나에 주목하지 못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학교, 교실, 수업 어디에나 아이들이 있고, 그들을 늘 바라봐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교육 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생각과 계획대로 이끄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을 믿어주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아이들의 기운에 의해 얼마든지 활동 내용이 재구성되는 유연한 교실을 만들어 가는 것이 소신이다.
10년 넘게 문화예술교육에 주력해오고 계시다. 문화예술교육이 선생님의 교육 철학을 실현하는데 좋은 방법이라고 여기시게 된 근거나 계기가 있나?
세월초등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2007년에 경기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교사-전문가 협력사업에 참여하면서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의 수업을 경험했다. 연극놀이터 해마루의 정지은 선생님과 1년에 걸쳐서 연극 협력수업을 했는데, 매 수업 후 평가를 할 때 그분은 계획된 프로그램과의 비교 평가가 아니라 계속 아이들에 대한 질문만 하셨다. 아이 하나하나의 어떤 행동, 어떤 요소를 보았는지,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 계속 질문을 던지셨다. 그 질문들을 통해 내가 그전까지 알고 있던 아이와 다른 아이를 만나는 듯한, 전혀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 후 협력사업 참여 교사를 위해 경기문화재단에서 제공하는 3박 4일 연수를 받으면서 나 스스로 학생 입장이 되어 몸을 써보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그전까지 남 앞에서 몸을 움직이고 나를 드러내는 게 불편했는데, 막상 겪고 보니 어떤 희열 같은 게 느껴졌다. 신나게 노는 과정에서 내가 드러나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연극놀이 방식에 큰 매력을 느꼈다. 내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나 자신을 포함해 한 사람, 한 사람을 독립적인 존재로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문화예술교육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현재의 나를 편하게 드러내고, 미래의 나로 만들어 갈 수 있게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예술교육은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셨다. 예술교육이 지니는 다른 교과교육과의 차별성, 고유성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학교는 관리 시스템부터 시작해서 학년이라는 체계가 있고 또 그 안에 교과서라는 것으로 체계화되어있다. 때문에 교과중심의 교육은 분절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이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통으로 논다. 그런 아이들이 짜여진 시간표대로 따로따로 배우는 게 잘 안 맞고 너무 불편할 거라고 생각됐다. 4년째 2학년을 맡으면서 ‘나무 이야기’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사계절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마을 산책을 다닌다. 열심히 돌아다니며 놀다가 교실로 돌아와서 이야기도 나누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마을에 나가 놀면서 국어, 미술, 생태, 사회적 관계 등의 학습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은 일상적 활동을 통해 삶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통합적으로 익힐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
‘나무 이야기’ 프로젝트가 통합교육 사례로서만 아니라 일상적 삶과 연계된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도 흥미롭게 보인다. 마을이라는 공동체와 선생님이 지향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관계가 있나?
아이들의 삶과 무관한 교육은 죽어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은 학교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삶이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장소다. 학교 교육이 분절된 교과교육을 넘어 통합적인 방식으로 삶과 연결된 학습을 실행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마을이다. 도시와는 다르게 아직 이곳 학교 주변은 모든 곳이 놀이터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개울, 논밭, 산뿐 아니라 마을회관, 동네 골목길 같은 데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사람과 만나고 그 이야기들을 수업에 가져온다, 억지스러운 과정을 통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러운 습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월초등학교가 속해 있는 공간, 사람, 환경, 상황을 교실로, 교사로, 교재로 활용하고 있다.
예술강사가 주체가 됐을 때와 교사가 주체가 됐을 때의 문화예술교육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전문적인 경험을 가진 분이 수업을 이끌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아이들과 무엇을 진행하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단지 시간 부족의 한계가 아니라 아이들 하나하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의 한계를 말한다. 담임교사는 1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산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밀착된 관계를 맺게 된다. 아이들에 대해 보고 듣고 이해하고, 성장의 과정에 함께하는 긴 호흡을 나누는 존재다. 그것이 토대가 된 교육을 진행한다면 교사가 주도하는 문화예술교육의 장점이 분명히 두드러질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전문적인 지도가 필요한 고학년의 경우는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저학년의 경우는 담임교사가 아이들과 긴밀하게 만나고 그들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예술활동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예술활동 내에서 전문 예술인과 교사의 역할이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다. 그것을 확실히 인식한 상태에서의 협업이 가능하다면 좋겠다.
언제부터인가 선생님이 예술가의 태도로 수업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아이들 행동의 이면을 보려 하고 그다음 단계를 궁금해하며 상상하고. 자신의 예술수업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어떻게 생기게 되었나?
사람은 잘 안 변하지만 무언가에 감동받고 감화됐을 때 생각이 바뀐다고 한다. 교사는 수업에서 감동을 받아야 하고, 그때 비로소 변하는 것 같다. 앞서 얘기했듯 나는 2007년도 연극수업에서 감동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주목하게끔 하고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끔 하는 예술활동의 매력은 끊임없이 내게 감동을 준다. 미처 상상도 못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한 존재를 새롭게 만나게 되는 감동을 하게 된다. 동시에 섣부른 판단과 편견, 오해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뚜렷한 내적 동기도 생긴다.
기존의 관행에 매이지 않고 자기 판단에 확신을 갖고 실행하는 태도를 갖추면 교사가 주도하는 문화예술교육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
교사 연수가 중요하다. 내가 연극 연수를 통해서 나를 새롭게 발견했듯이 수업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연수보다 교사가 자신을 온전히 마주 볼 수 있는 연수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또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의 지지와 자극도 매우 중요하다. 세월초등학교의 동료들이 나를 많이 발전시켰다. 정말 멋지다, 잘했다, 그거 좋다, 격려하면서 거기에 또 다른 아이디어를 던져주는 동료 교사의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된다. 그런 경험이 하나둘 쌓이면서 자신의 판단을 믿을 수 있게 된다.
예술교육은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의욕을 가지고 시도했다가도 효과가 없다고 조급해한다거나 프로그램이 잘 못 됐다고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미 10년 넘게 지속하다 보니 보이는 변화가 있다면?
우선 아이들이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자신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기가 하는 것에 대해서 모두가 관심 있게 바라봐 주고 지지해주는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6년의 시간이 그런 효과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12년 동안 쭉 이어져 오고 있는 학교 축제 때 꽤 많은 졸업생이 온다는 점을 들고 싶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졸업생들이 스스로 찾아온다는 것은 여기에서의 6년 생활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6년 동안 그냥 학교를 다닌 것이 아니라 여기서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효과 못지않게 학교도 달라졌다. 양평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다 알 정도로 세월초등학교에 뚜렷한 정체성이 생겼다. 마을과의 적극적 연계 속에서 교사가 이끄는 문화예술교육을 중심으로 아이들 개인이 존중되는 학교. 새로운 선생님이 오셔도 이런 맥락에서 고민하고 연구하신다. 이것도 12년 역사의 큰 효과일 것이다.
다음 단계의 진학을 위해 자기 삶에서 없는 시간처럼 지나쳐버리는 현실에서 아이들이 자신들의 6년간의 삶이 그대로 살아있다고 느끼는 점은 되새겨볼 만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삶과 연계된 종합적인 활동을 마을주민, 선후배, 선생님들과 더불어 살면서 익히게 된다는 것이 세월초등학교 문화예술교육의 힘이라고 느껴진다. 문화예술교육을 열심히 잘하고 싶어 하는 교사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문화예술교육은 사람을 만남으로써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지니는 의미는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데 있다. 내가 꼭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수업을 하고 있거나, 다른 사람이 해줘도 별로 다르지 않을 말을 하는 교사는 교실에서 사람을 제대로 만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태도로 가르칠 것인지 이전에, 교사 스스로 자기 자신을 깊이 있게 돌아보면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성이 무엇인지 깨닫는 게 필요하다. 자아의 발견과 성찰을 다루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라는데 견해에 동의한다면 그 교육을 이끄는 교사들이야말로 반드시 노력해 봐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적극적인 예술활동의 체험은 그런 깨달음에 접근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한 아이들은 인간적 존중과 애정을 바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경험을 거치면서 어느 시점에서 누구와 함께,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를 항상 자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만일 문화예술교육은 예술가들이 하는 것이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아무도 대신 할 수 없이, 오로지 내가 꼭 해야만 하는 교육은 과연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해볼 것을 권한다.
남궁역
남궁역

양평에 있는 세월초등학교에서 12년째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2007년 연극놀이 전문가와 함께하는 협력수업을 통해 ‘사람을 발견하는 예술수업’을 경험하면서 교사로서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2008년부터 열한 번째 세월마을학교 축제 ‘달님과 손뼉치기’ 기획에 참여했으며, 학교 교사, 예술분야 전문가와 함께 문화예술교육에 기반한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영상_박영균 영상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_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정원철
정원철
웹진 [아르떼365] 편집위원. 홍익대학교와 독일 카셀종합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문화연대 시각문화분과에 소속되어 시각문화교육 대안교과서 연구에 참여한 이후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쏟는 작가로 살고 있다. 1993년부터 양평에 살고 있으며, 동네 세월초등학교 선생님들과 13년째 여러가지 방식으로 문화예술교육 대화를 이어오고 있다.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에서 미술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wachj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