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시간 좀 내봐. 내가 글 발표를 하는데 구경 올래?”
“뭐? 네가 글을 썼다고? 설마…”
의심 반 축하 반 심정으로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치유적 글쓰기 발표회’라는 조그마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조금은 어설펐지만 중년의 여성 십여 명이 파티복을 입고 자신이 쓴 글을 발표하니 멋져 보였고 부러웠다.
“언니도 글쓰기 모임에 들어올래?”
그렇게 시작된 내 인생의 2막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마음이 치유된다는 강사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호기심으로 참여했다.
“정말 될까?”
책을 읽고 내 안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아픔과 불만들이 슬그머니 기어 나왔다. 이렇게 많은 상처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줄 몰랐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인생 2막이란 꿈을 꾸어보는 설렘 가득한 열정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누가 내 이야기에 관심 있겠어
‘마고의 이야기 공작소’(이하 ‘마고방’)는 생명 창조의 신 ‘마고’처럼 글로 새로움을 창조하고 싶은 문학을 좋아하는 중장년 여성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자아를 찾기 위해 활동하는 동아리다. 2016년 동아리 모임이 시작되어 『딸꾹질』이란 문집을 발간하고 발표회를 가졌던 그 날 구경 갔던 그곳이 나에게는 인생을 전환할 수 있었던 행운 열차였다.
2017년 봄부터 회원을 모집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익산여성의전화 소모임 마고방에는 중년 주부들의 꿈이 움틀거린다. 매주 화요일 아침에 만나 글을 읽고 발표를 하며 꿈을 심고 있다. 자유롭게 토론도 하고 써온 글을 서로 합평도 해주며 마음을 나누는 자리를 갖고 있다. 소설이나 시인들의 글을 낭송도 해보고 열정을 태우는 설레는 시간이기도 하다. 장마리 소설가의 가르침으로 ‘자기 치유적 글쓰기’를 통해 내 삶의 이야기를 짧은 소설로 써보는 작업을 했다. 자신의 삶에서 뾰족한 생채기를 짧은 소설로 써보고 함께 읽는 과정에서 위안이 되고 뾰족한 송곳은 점점 무디어졌다. 글로 만들어진 자신의 삶은 <불이 켜지고 꺼질 때> <까막눈> <수영이와 커피> <할머니와 칼국수> <오타반점> 등의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이 글들은 『지금 여기!』(2017), 『마고의 이야기 공작소』(2018) 문집으로 출간되었다.
매년 익산여성의전화 회원의 날에는 자신들이 쓴 글을 낭송하는 자리를 가졌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2018년에는 북콘서트를 시도해 보았다. “우리가 어떻게 북 콘서트를 해? 우리가 어떻게.” 김제동 같은 유명인만 하는 거라는 생각에 손사래를 쳤지만 넘치는 열정을 누가 말릴까. 천지창조의 신 마고처럼 신화를 만들자는 마고방 주인들이 아닌가. 드디어 해냈다. 그해 11월 익산여성의전화 회원의 날, 백여 명 남짓의 관객 앞에서 각자 읽은 책의 줄거리를 발표하고 관객에게 의견을 묻고 조율하고 서로가 주인공인 화자가 되어 대답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관객이 호응하고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누가 내 이야기에 관심 있겠어” 했던 내 경험이 보통의 중년 여성이 함께 겪은 아픔임을 알게 했던 순간이 되었다. 숨소리조차 설렘으로 가득한 객석의 모든 분이 진정으로 함께 했던 순간들은 가슴 떨리게 행복했던 우리들의 인생샷으로 남을 것이다.
마고가 일으킨 변화
2018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프로그램인 ‘문학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 인터뷰 심사를 위해 서울에 가던 날의 설렘과 기대감은 육십을 바라보는 나를 사춘기 소녀로 만들었다. 심사에 통과됐다는 전화를 받고 온몸의 세포들이 춤을 추었다. 2018년 상반기 정지용문학관을 탐방하면서 시인의 숨결을 느끼며 글을 써보고 시 낭송을 하며 다시 한번 중년의 꿈을 키워 보았다. 하반기 ‘책마을해리’에서 보낸 1박 2일의 북스테이는 우리를 한 식구로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책마을해리에서의 밤을 잊지 못할 것이다. 가정에서 힘들었던 마음들을 허심탄회하게 쏟아내고 공감하고 위로했던 그 밤이 있어 마고방 식구들이 더욱 끈끈해졌다. 그저 동아리 모임이 아닌 꿈을 함께 그려나갈 가족애를 싹트게 했다. 그날 이후 마고방 회원이 아니라 마고방 식구라고 부른다.
“‘당신과 나 사이의 착각이 우리의 운명이다.’라는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의 글처럼 어느 정도의 착각이 우리 삶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착각하고 보면 개개인이 예뻐 보인다.”
– 박상희(2018 문학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 참여 소감)
2019년에는 ‘자연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로 숲 연구원 이여송 선생님과 함께 숲살이 체험을 했다. 방장산에서의 1박 2일은 자연의 위대함을 배우고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느끼며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 일상이 되었던 등산길에 작은 행동들이 자연에 얼마나 아픔을 주는지 새삼 느꼈고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숲, 나무, 들풀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오감으로 느끼며 나뭇잎 하나에도 은밀한 그들만의 생명력을 갖고 있음에 놀랐다. 숲살이 덕에 작은 민들레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나의 변화된 모습에 배시시 웃음이 난다. 숲살이를 하면서 작은 잎사귀부터 세심하게 관찰하며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의미로 우리는 나뭇잎을 세밀하게 그려보았다. 잎맥 하나하나의 조화로움에 반해서 생태 세밀화 그림도 배우는 중이다.
여름이 끝날 때부터 사진과 함께 ‘품격 있는 고난으로 한 달 살아보기(품고살기)’ 시간을 가졌다. 중부대학교 현혜연 교수의 지도로 사진 찍는 법, 사진과 마음 통하기, 사진 속의 일상들을 몸에 익히며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 결과물로 『마고의 이야기 공작소』 사진 책을 멋지게 출간했다. 각자 사진에 글도 첨부해서 올렸고 자신들의 글을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해 입력해놓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한 가지 사물을 시선을 다르게 놓고 찍었을 때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같은 고정된 위치에서 고정된 시선으로만 본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품고살기>를 통해 유연해진 나를 만날 수 있었다.”
– 봉귀숙(2019 품격 있는 고난으로 한 달 살아보기 참여 소감)
문학이 주는 용기와 자신감
인생 2막이 더 멋지다는 것을 우린 알아가고 있다. 열정과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더 기대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가족을 위해 열심을 다했다면 앞으로는 나를 위한 삶이다. 자신만이 나의 삶을 책임지고 가꿀 수 있지 않은가. 내가 희생해야만 가족이 행복할 거라는 편견은 버릴 것이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는 것을 늦게나마 마고방을 만나고 알았다.
“파킨슨병을 앓고 난 후 남편 없이 1박 2일 나들이 간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말을 잊어버렸다고 자주 말했는데, 나의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잊어버린 말을 찾을 수 있었다.”
– 최강순(2018 문학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 참여 소감)
‘문학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는 “책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성숙하게”하는 계기를 주었다. 책을 통해 나에게 집중했던 경험은 늘 주변인으로 돌봄에 익숙했던 자신의 모습에서 내가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내 이야기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마트를 운영하는 한 모임원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에 나오는 것을 가족에게 편하게 말할 수 없었는데, 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런 변화들은 어떤 일을 만들었을까? 이 모임원은 작년부터 마고방 모임에서 『강신주의 감정수업』 읽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밤 11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지만 그 시간이 더없이 좋다고 한다.
마고방 식구들의 목표는 문학과 함께 내가 행복하고, 우리의 글을 읽고 누군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누군가는 힘을 얻고 우리처럼 인생 2막을 도전했으면 하는 기대도 한다.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일, 그래서 내 삶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일, 이게 바로 문학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마고의 이야기 공작소’는 이런 변화를 일으켰다.
중년과 노년 사이

애매모호한 간격
네가 내게로 아니 내가 너에게로 앞뒤서거니 한다
발꿈치 살짝 들어 중년으로 몸을 기대고 하늘을 본다
이런들 저런들 어쩔꺼고마는 오뉴월 하루 빛도
강아지 엉덩이가 씰룩쌜룩 12번은 움직여야 할 시간들인데
그저 공짜로 노년으로 가기는 싫지
그렇지?
감성은 어디론가 이삿짐을 꾸렸고
생숭한 시간들은 노란 빨강 초록의 물결 속에서 안간힘을 쓰면서 버틴다

– 이승례(2018 문학과 함께 한 달 살아보기 참여자)
사진제공 _ 마고의 이야기 공작소
송용희
송용희
익산여성의전화 소모임 ‘마고의 이야기 공작소’ 팀장. 1994년부터 익산 시민안전실천연합회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해 10년 전부터는 익산자율방재단 단원으로 일하고 있다. 익산소방서 시민감찰단 활동을 하고 있으며, 노인병원 마음나누기, 어르신 미용봉사 활동을 십여 년 간 꾸준히 하고 있다. 2018년, 2019년에 신중년을 위한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참여했다.
iswh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