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는 현실입니다. 공해 유발자와 대기업의 대변인이 아니라 환경 파괴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하게 될 수십억 보통 사람들을 위해 힘써줄 지도자에게 힘을 모아줍시다. 우리 모두 대자연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맙시다.”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다섯 번의 도전 끝에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수상소감의 대부분을 기후 변화 문제를 알리는 데 썼다. 마크 러팔로와 호아킨 피닉스도 대표적인 환경운동가이며, 2019년 10월부터 기후 위기 대응 촉구 시위를 주도해온 82세의 제인 폰다는 매주 경찰에게 연행되는 퍼포먼스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다. 유명세를 이용한 셀러브리티들의 다양한 시도에도 기후 위기는 여전히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국적과 나이를 떠나, 자신의 삶이 환경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이 그렇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나와 지구를 가깝게 잇는 이야기다.
인식하고 행동하는 연극
호주의 작가 데이빗 피니건(David Finnigan)은 지난 10년간 기후 위기와 지구 과학을 소재로 한 공연을 만들어왔다. 2014년에 발표된 그의 대표작 <Kill Climate Deniers>(기후변화 부정자들 없애기)는 호주 의회를 장악한 환경 테러리스트 단체가 기후 위기를 막지 않으면 인질 1,700명을 처형하겠다고 위협하는 내용의 블랙코미디다. 작품은 인질극과 총기 난사라는 다소 극단적인 방식으로 시드니와 런던의 관객들을 만났다. 2019년 미국에서는 작가 베스 울(Bess Wohl)의 <Continuity>(연속)가 공연됐다. 연극의 인물들은 뉴멕시코 사막에 빙하가 등장했다는 설정의 영화를 찍는 중이다. 기후 위기를 소재로 한 영화를 촬영 중이지만, 이들은 종종 점심 메뉴를 고민하거나 촬영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데이빗 피니건과 베스 울은 작품을 통해 기후 위기를 인식하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다수의 방관자가 환경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이들보다 더 나쁘다고 주장한다. 자신들 역시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 역시 고백한다. 허구의 인물은 보편의 감정을 끌어내고, 이야기는 곧 현실이 된다.
분명하게 존재하는 현실을 담아내는 작품들이 무대를 넘어 사회운동적 행위로서의 예술로 연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CCTA(Climate Change Theatre Action, 기후변화연극행동)다. ‘우리의 지구, 우리의 미래, 우리의 책임’(Our Planet. Our Future. Our Responsibility)이라는 슬로건 아래 2015년에 시작된 CCTA는 극장과 기후 위기의 연결을 고민하고, 5분 내외의 짧은 글을 통해 세계와의 통합을 시도한다. 이들의 결과물은 전통적인 극장에서 공연되는 희곡부터 팟캐스트와 영상, 거리 행진과 시 낭독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표현 방식이 다양하다. 격년으로 진행되는 CCTA의 캠페인은 현재 25개국 50명의 작가가 참여해 한 달가량 100개의 행사를 등록했다. 캠페인은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전역으로 뻗어 나갔고, 2019년에는 중국의 난징과 싱가포르에서도 열렸다. 다섯 개의 개별 작품을 하나로 묶은 리투아니아의 <Nothing is Forever>(영원한 것은 없다)는 벨라루스, 벨기에, 독일, 폴란드의 초청을 받아 투어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구예술인으로서 실천가능한 방식
그러나 기후 위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보수주의자들의 손쉬운 타깃이 된다. 데이빗 피니건의 <Kill Climate Deniers>는 “농담이라 해도 어떤 정신 나간 정부가 동족을 죽이라고 말하는 프로젝트에 기금을 지원하냐”는 우파 논객의 지적에 공연을 중단해야만 했다. 2014년 뉴욕에서 공연된 뮤지컬 <The Great Immensity>(대성공)는 파리기후변화협약 방해 음모를 알게 된 인물의 이야기로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개인과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쓸데없는 일”이나 “세금 낭비” 같은 단어와 함께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일이라는 개인의 오만과 개발도상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된 인식이 아닌 ‘지구인’으로서의 자각과 꾸준한 실천이다. 런던은 2008년부터 ‘그린 시어터 가이드’를 마련해 극장의 탄소배출량을 분석하고 무대 요소들의 에너지 절감과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방식을 고민해오고 있다.
해외의 다양한 시도와 달리 국내 예술계는 아직 기후 위기 문제에 소극적이다. 환경 문제를 다룬 대부분의 작품은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 연극에 가깝다. <마루의 파란 하늘> <100살 모기 소송 사건> <꿀벌이 된 아이> 등 2006년부터 시작한 극단 날으는자동차의 뮤지컬이 대표적이며, 이 외에는 공연을 관람한 후 토론으로 이어지는 <기후야 돌아와>가 있다. 2018년에는 제주도를 기반으로 관광과 기후 변화, 연극을 결합한 이머시브 형태의 공연 <블록BUS타>가 화제를 모았다. <블록BUS타>는 해수면 문제로 물질이 어려워진 해녀나 잘못된 쓰레기 배출로 오염된 귤을 먹고 죽은 처녀 귀신 등 제주의 특수성을 담아낸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기후 위기 문제를 지적한다.

인권 감수성과 연결된 기후 위기 감각
인류가 지구라는 하나의 행성에서 살아가는 이상 기후 위기에 있어 국적은 무의미하다. 기후 위기를 소재로 한 해외의 콘텐츠들은 지역과 세대, 계급과 성별의 불평등을 타파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확대된다. 피해는 가장 취약한 곳에서부터 시작되고, 기후 위기로부터 시작된 난민 문제는 실시간으로 세계가 경험하는 이슈인 까닭이다.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문제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고, 기후 위기에 대한 예민한 감각은 평등과 박애 같은 인권 감수성으로 이어진다. 지금부터라도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나은 오늘과 내일을 위해서.
장경진
장경진
공연칼럼니스트. 엔터테인먼트 웹매거진 [매거진t]와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10년 동안 콘텐츠 프로듀서와 공연 담당 기자로 일했다. 현재 프리랜서 공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무형의 생각을 무대라는 유형의 것으로 표현해내는 공연예술과 관객을 잇고 있다. 2019년 6월부터 공연예술 작품 속 여성의 삶과 선택에 주목하는 공연예술 월간지 [여덟 갈피]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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