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라는 최근 버려지거나 인근에서 구할 수 있는 파이프, 플라스틱 통 등의 재료들로 악기를 만들고, 연주를 더한 퍼포먼스 팀으로 많이 알려진 듯하다. 지난해 여러 도시를 돌며 순회공연(?)을 할 정도였고, 악기의 음색이나 퍼포먼스가 잘 다듬어진 기성의 것이 아니라 뜬금없고 날 것 같으면서도 흥겨워서 한 번 본 사람들은 쉽게 매료된다.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미있지만 이 퍼포먼스로만 훌라를 이야기하기에는 모자란다. 그들을 잉태시킨 대구의 근대 골목과 북성로 공구 골목 인근, ‘모루’라는 공간에서 훌라를 만났다.
  • 기술예술융합소 모루
  • 업사이클링 밴드 훌라(HOOLA) 공연
터무늬 있는 이야기들
대구에서도 북성로 인근은 수제화 가게와 콜라텍이 많아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는, 오래되고 낡아서 편안한 느낌이 나는 지역이다. 옛 성곽을 헐고서 생겨난 길에는 주물, 함석 등 공장화 이전의 손기술을 간직한 공구 거리가 있기도 하다. 몇 년 사이 공구 골목으로 많이 알려진 이곳은 최근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어 나날이 풍경이 바뀌고 있다. 훌라는 재개발로 인해 철거가 진행 중인 지역을 어슬렁거리면서 성곽으로 쓰였던 돌을 구조하는 다소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팀이다.
“며칠 전 북성로 철거현장에서 발견된 대구읍성의 ‘성돌’. 그냥 두면 건물의 잔해와 함께 흩어질 것 같아, 구루마에 실어 구조해 왔다.”
– 훌라 SNS에 올린 성돌 구조 후기 중
이 일화만 보더라도 훌라를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근거지이기도 한 북성로를 떼어내기란 어렵다. 북성로는 그들의 놀이터이자 일터이자 오늘날 훌라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관계와 경험 축적이 이루어진 곳이다. 훌라의 안진나 대표는 훌라를 만들기 전부터 사단법인 시간과공간연구소에서 북성로 옛 지도를 찾고 새롭게 그리는 활동부터, 공구골목에서 수십 년 넘게 터를 잡아 온 기술자에 대한 아카이빙 작업을 하며 그들과 관계 맺기를 해왔다.
누군가에게는 도시재생의 사례로, 누군가에게는 관광콘텐츠로 기억될 북성로에서 이루어져 온 문화적 실험의 기저에는 현재 남아 있는 골목이나 사람을 통해서 도시의 역사에 접속하고, 도시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는 세심한 태도가 있다. 돈이 되면 싹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것에 익숙한 세계에서 터의 무늬를 탐색하고자 하는 노력은 조사, 기록, 인터뷰, 전시, 책, 건축 등 다양한 활동과 프로젝트로 확대되면서 또 그런 태도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니까 앞 이야기를 잘 모르면 뜬금없이 튀어나온 것 같은 훌라는 사실 북성로에서의 문화적 실험이 엮어낸 관계망 속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빠르고 거센 시장의 관점에서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훌라의 이야기들은 터무늬를 찾고 만들어가는 이야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 2019 사회혁신가성장아카데미 [변방의 전술가들]

  • 북성로 오픈팩토리 ‘화성’
모여서, 놀다가, 만들다
“모여서 놀다가 만들었다”는 훌라의 소개는 이러한 과정을 함축할 뿐만 아니라 어떤 관점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잘 드러난다. 구체적인 계기는 북성로에서 진행되었던 문화마을 사업이 이들을 엮어주었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안진나 대표는 행정과 주민도 만났지만 이해관계나 관점의 차이가 뚜렷해서 어떤 이질감을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가들과 함께 걷고 전시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영상, 음악, 사진 등으로 도시를 탐색하고 함께 놀 수 있는 비슷한 존재들을 만나고 연결되기도 했다.
주민 협업 공모전 등을 통해 기술 장인들과 청년/예술가 등이 협업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현재의 훌라 팀과 공연콘텐츠가 만들어졌다. 기술 장인의 도움으로 파이프, 쇠 등으로 악기를 제작하는 ‘아나케스트라’가 진행되었고, 완성된 악기를 함께 연주해보게 되고, 구제 옷가게에서 의상을 사고 뮤직비디오를 찍게 되면서 팀의 형식이 갖추어졌다. 팀 이름이 훌라가 된 것도 심심풀이 훌라(카드게임)를 자주 치던 당시에 뮤직비디오를 편집한 멤버가 영상에다 무심코 ‘훌라’라고 새겼기 때문이란다.
팀의 탄생 과정 자체가 놀이스럽다. 공연팀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거 해보면 재밌겠다는 식으로 하나하나 더해지는 과정에서 불쑥 정체 모를 무언가가 만들어졌다. 그런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 속에서 스파크를 일으킨 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던 서로 다른 재능이나 기술뿐 아니라 누구는 대학가요제 출신, 누구는 성악, 누구는 교회반주 10년 이상 경력 등 아직은 뚜렷한 쓸모를 찾지 못한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도 있었다.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고, 기술을 접목해 악기를 만들 뿐 아니라 주류 음계 넘어서 보겠다는 다소 엉뚱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만나서, 놀다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이 더 간결하고 잘 어울린다. 주물 장인과의 협업으로 만들어 북성로 명물이 되고 있는 ‘공구빵’과 청년 사장님도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콘텐츠이자 관계망이다.
  • 북성로 오픈팩토리 ‘토성’
  • 북성로 오픈팩토리 ‘금성’
기술과 예술, 공들여서 놀기
지역을 걷다가 재료를 발견하고, 재료로 악기를 만들면서 인근 장인의 도움을 얻고, 만들어진 악기로 연습도 하고, 핫한 감성으로 사진도 찍고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공연뿐 아니라 훌라의 SNS계정에 올라온 사진이나 뮤직비디오 등을 보면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하나는 모인 사람들이 참 다재다능하다는 점이다. 사진, 영상, 기획, 디자인 등 함께 하는 사람들의 전문분야가 있으면서도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지역에 대한 탐사와 아카이빙, 프로젝트, 공연 등을 함께 진행한다.
또 하나는 참 공들여서 논다는 점이다. 뮤직비디오 등이 살짝 레트로에 B급 감성이 물씬 나는데, 보다 보면 흡입될 정도로 고퀄이다. 영상이나 사진뿐 아니라 아카이빙 결과물의 구성이나 디자인 등에서도 공들인 흔적이 뚜렷하다. 보통 이런 결과는 엄청 큰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로써만 접근해서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이 엉뚱한 팀은 엄청 공들여서 노는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들에게 각자가 잘하는 것을 포함해 지역 장인의 기술, 예술가들의 재능은 모두 공들여 노는 도구가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장인의 기술도 예술도 꼭 자본의 세계에서 교환가치로 상정되지 않더라도 심취와 성취를 만들어내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훌라가 기술과 예술을 놀이의 도구로 삼아 공들여서 노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다. 보기에 따라 분명 일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멤버들이 밤을 새워 어떤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이유가 이런 놀이에서 나오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도시를 놀이와 사유의 공간으로 – 도시야생보호구역
문제는 어떻게 노냐는 것이다. 모든 놀이에는 규칙이나 형식이 존재한다. 훌라에게 놀이의 형식은 아마도 탐사와 수집이라는 형식을 띤다. 훌라를 수식하는 “도시야생보호구역”은 바로 이 놀이의 중요한 세계관이다. 도시 자체가 관찰, 기록, 수집되는 텍스트이자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야생성을 간직한 시공간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 거래 가능한 상품에서 벗어나 도시를 인류학적 비밀로 가득한 생태계로 상정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도시는 아직 해석되지 않은 이야기로 가득한 탐사지대가 된다. 모든 탐험에서 중요하듯이 관찰, 기록, 수집은 이들의 중요한 과업이다. 그리고 수집한 것들을 엮어 전시라든지 공연이라든지 도시에 없었던 무언가를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이 과정 전체가 놀이가 된다.
1차적으로는 대구와 북성로가 ‘훌라’라는 엉뚱발랄한 단체가 탄생하게 된 시공간적 배경이자 관계 맺고 놀거리를 길어 올리는 놀이터이자 보호하고 싶은 도시야생구역이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유럽의 도시를 돌면서 폐허가 된 탄광이나 건축물 등 도시의 야생성을 탐사하기도 하고, 해외의 도시에서 야생성을 지키려는 시도들과도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훌라에게는 아직 수집할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도시가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순식간에 헐리는 것이 제일 속상하다. 도시야생보호구역에 대한 끊임없는 침탈이 이루어지는 세계 속에서도 도시를 걷고, 버려지는 것들을 찾아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이 ‘탐사’라는 형식의 놀이가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놀이는 놀이의 형식과 규칙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종결을 선언하지 않는 한 계속되니까. 놀이가 지속되는 동안 도시야생보호구역은 그래도 맑음이지 않을까.
사진 제공 _ 훌라
박진명
박진명
생각하는 바다 대표. 예술가와 지역운동가 사이쯤의 문화기획자. 자원의 순환과 상호성장을 지역문화가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커가는 아이와 함께 사부작 사부작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생애주기형 문화기획을 시도 중이다.
motwj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