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
해마다 이맘때면 ‘명절 증후군’이 화제가 된다. 명절 한 달쯤 전부터는 왠지 계속 신경이 쓰인다. 고향엔 언제 갔다 언제 올지, 어느 집에 먼저 찾아갈지, 아이들은 어떻게 할지 등등.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에 나가는 여행객 수가 역대 최대라는데 여전히 귀성길 교통 체증은 엄청나고 기차표를 구하기도 어렵다. 인터넷에는 ‘명절 잔소리 가격표’가 등장하고 가사 노동이 힘드냐, 막히는 길 운전이 힘드냐로 옥신각신. 이쯤 되면 ‘누구를 위한 명절인가?’라는 심오한 주제의 ‘명절 무용론’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그 또한 사석에서의 얘기일 뿐, 작년에 그랬듯 내년에도 비슷한 풍경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이 일을 매년 비슷하게 반복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하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부터 버릇처럼 쭉 하던 일. 즉,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는 사상·관습·행동 따위의 양식’(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을 우리는 ‘전통(傳統)’이라 부른다.
관습과 전통
2019년 1학기부터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우리가락으로 만나는 세상>이라는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이 강의뿐 아니라 다른 특강에서도 서두에 ‘전통음악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 질문에 대한 양측의 비율과 입장은 처음에 대체로 팽팽하다. 한쪽은 사회가 변할수록 우리 고유의 것을 잃지 않도록 잘 보존해야 한다고 한다. 세계화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중시하면서도 우리 음악만이 가진 특수성은 매우 가치 있는 모양이다. 다른 쪽은 보다 많은 사람이 전통음악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전통음악은 (지금처럼) 소수의 사람만 즐기면 안 되고,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쪽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전통은 전통대로 보존하는 동시에 현대적으로 변형하려는 시도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면, 공평함을 좋아하는 우리는 여기에 대타협(?)을 하게 되는 것이 보통의 수순이다. 자 그럼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전통음악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변화시키면 되는데,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변화시키면 될까? 무엇은 변해도 되고 무엇은 변하면 안 될까? 전통이 그저 ‘하던 일’에 불과하다면 왜 우리는 이것을 고민하고 있을까? 이쯤 되면 처음의 질문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보존 측이나 변형 측 모두 전통에는 ‘그저 하던 일’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 가치가 무엇일까? 그것은 정말 있는 걸까? 보존이냐 변형이냐를 묻기 전에 전통은 무엇인지를 물었어야 한다. 전통이 관습과 다르다면 과연 전통은 무엇일까?
형식과 본질
‘명절 증후군’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 부치기’ 아닐까. 모든 번거로운 일의 대명사처럼 사용되는 데다 자주 문제가 되어서인지, 최근에는 차례상 차림을 간소하게 하는 것이 본래 전통이라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퇴계 이황 가문의 종가에서도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하고, 성균관 석전대제 보존회 관계자는 제사상에 전을 올리는 것은 유교 예법이 아니라며 차례상은 물론이고 제사상에도 ‘제발’ 전을 올리지 말라고 한다.(“제발 차례상에 전 올리지 마세요, 조상님은 안 드신다니까요.” 2018. 9. 21. 동아일보)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조상을 생각하고 뿌리를 되돌아보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전을 올리는 것은 내 마음이니 제발 올리지 말라고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형식에 의해 본질이 흐려지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듬뿍 담긴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형식과 본질.’ 전통에는 이것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우리는 눈에 안 보이는 본질을 이어가기 위해 적절한 형식을 만들어 이를 드러내 왔다. 조선 왕조의 제사에 쓰이는 《종묘제례악》은 오늘날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보태평>과 <정대업>은 본래 세종 때 문무백관이 모이는 회례연(會禮宴)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세종은 우리 음악사에서 ‘아악의 정비’라는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당시 조선 왕실 음악에는 아악과 당악, 향악이 있었는데, 향악은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 당악은 당과 송에서 들어온 음악, 아악은 고려 예종 때 송에서 들어온 음악을 가리킨다. 아악은 국가 행사나 제사에 중요하게 사용됨에도 그 이론이나 악기가 미비하여 피폐해져 있었다. 이에 세종은 박연으로 하여금 아악을 정비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종묘제례의 음악이 중국 음악인 아악 위주로 구성된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향악으로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조상들이 살아 계실 때는 향악을 듣고 돌아가셔서는 아악을 들으니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다만 <정대업>과 <보태평>을 만들어 궁중음악으로 사용하게 했다. 세조에 이르러서 <정대업>과 <보태평>은 개작을 거쳐 비로소 종묘제례에 사용된다. 세종과 세조는 전통을 망가뜨린 장본인일까? 우리는 잘못 전승된 역사를 바로잡고 고려 시대 아악을 복원하여 종묘제례에 사용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종묘제례의 의미를 담아내기 위한 방편으로써 그 음악의 형식을 고심한 과정들이 켜켜이 쌓여 바로 종묘제례악의 전통이 만들어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형식을 전통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생긴다. 겉으로 드러난 작은 차이에 매몰되어 이게 맞네, 저게 틀리네 하다 보면 본질은 어느새 저만큼 멀어져 있다. 차례상을 거하게 차리는 것, 혹은 간소하게 차리는 것. 그중 어느 것도 본래의 전통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 본질을 기억하기 위한 각자의 방법일 뿐이다. 전통은 형식 자체가 아니라 형식 안에 숨어 있는 본질적 가치를 포함하는 것이고 이 가치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할 때 전통은 계속해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즉, 전통은 우리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로 세대를 관통하며 존재하는 것이고 전통음악은 이 가치를 소리로 표현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면과 공감
그럼 이제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물음에 어느 정도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전통음악 내면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오늘에 맞는 적절한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전통의 보존과 변형을 동시에 하는 일일 수 있다. 음악학자이자 작곡가인 고(故) 백대웅 선생은 이를 ‘전통음악의 이면과 공감’이라는 말로 설명한 바 있다. 이면을 꿰뚫어 보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예술가의 할 일이다.
경희대학교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전통음악에 대해 강의를 하고 그 장르의 핵심 가치를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해 보도록 했다. 이 학생들의 대부분은 예술 전공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은 매우 놀라웠다. 어떤 학생은 <시나위>의 구성 음이 이미 일정한 역할(캐릭터)을 가지고 감정을 표현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각 음에 색깔을 대입한 후 색깔의 이름과 운율을 맞춘 시를 창작하여 발표했다. 다른 학생은 <산조>가 연주자마다 개성을 더해 하나의 ‘유파’로 발전할 수 있음에 착안하여, 막걸리에 맛이 다른 다양한 젤리를 섞어 각자 하나의 ‘막걸리 유파’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 <영산회상>이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모음곡’의 역사를 품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각 곡의 특성에 대입되는 크고 작은 천 조각들을 하나로 이어 붙여 아름다운 조각보를 만들어 보여준 학생도 있다.
전통은 하나의 모양으로 경직된 그 무엇이 아니다. 전통음악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함께 찬찬히 들여다보고, 거기에 가치 있는 무엇이 있다면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양하게 풀어내 보는 것. 이것이 전통을 시대와 함께 유연하게 흐르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강과 강물
이번 추석에도 교통 체증을 뚫고 부모님이 계신 남원에 갈 계획이다. 남원에는 ‘요천’이라는 하천이 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여기에서 멱을 감다가 지갑을 주워 친구들과 돈을 나눠 가진 이야기를 아직도 가끔 하신다. 강물은 계속해서 흘러가지만 강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반대로, 강물이 계속해서 흘러가기 때문에 강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전통의 본질과 형식이, 이면과 공감이 강과 강물처럼 그렇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 주길 바란다.
김준영
김준영
‘현대를 살아가는 전통악기 연주자는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 있다. 현재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악장으로 재직하면서 창작자들의 모임 ‘터미널’의 동인으로 다양한 예술 장르의 상호작용을 모색하는 한편, ‘거인 아트랩’의 예술감독으로 거문고를 중심으로 한 공연의 제작에도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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