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꿈꾸지 않을 작정입니다

김해원

나는 밤마다 꿈을 꿉니다. 하지만, 오늘밤만은 절대로 꿈꾸지 않을 작정입니다. 뜨락, 대찔레 가지에 거미줄이 일렁이고, 달빛이 마알갛게 부서지지만 오늘밤만은 절대로 꿈꾸지 않을 작정입니다. 빌딩 모서리에 집을 짓고 사는 제비 떼들도 전신주에 앉아 마른 꿈을 꾼다지만, 그래서 마른 똥으로 사람들의 머리통을 갈긴다지만, 네모난 빌딩, 네모난 유리창, 네모난 방…… 네모 속에 갇혀 무기징역(無期懲役)을 선고받은 우리는 네모난 꿈밖에 꾸지 못합니다. 오늘밤만은 절대 꿈꾸지 않을 작정입니다. 질린 꿈을 거부할 권리는 내게 남은 유일한 자유(自由)니까요.

사람이 사는 일은 그 앞에 다가오는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난 누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에 차곡차곡 응답하는 일이 삶이 아닌가.
김해원 시인이 말하듯, 각자도생을 유일한 미덕으로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꿈’의 의미가 변질된 지 이미 오래다. 누군가를 돌보느라 맘 편히 잠 못 자는 이에게는 숙면이 꿈이고, 밀려드는 일에 지친 사람에게는 여행이나 휴식이 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꿈 따위 갖지 않겠다는 선언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생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만을 쓸모 있다고 말하고, 꿈을 향해 스펙을 쌓으며 달려왔지만 대출금만 남을 뿐인 세상에서, 대체 꼭 꿈이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걸까. 꿈이 성공이라면, ‘네모 속에 갇혀’ 안정된 삶에 안착하는 것이라면, 어쩌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그런 꿈을 꾸지 않을 자유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린이‧청소년에게 답을 재촉하듯 계속 묻는다. 넌 꿈이 뭐니?
나는 별로 꿈이랄 게 없었다. 어릴 때부터 꿈이 뭐냐는 어른들의 질문에 나만의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착한(?) 어린이였으므로 대답을 위해 생각해 둔 목록이 있기는 했다. 과학자, 선생님, 경찰, 판사, 소설가 등등 온갖 직종이 나의 꿈 목록을 거쳐 갔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서 알게 된 ‘현모양처’라는 말도 한두 번쯤 나의 꿈 목록에 등장했다가 버려졌다. 꿈이라고 했지만, 사실 어른들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얼마나 성공하고 싶은지 나의 욕망의 크기와 그 실현을 위한 계획 여부를 물었던 것이다. 청소년기를 지나서도 뭐가 되려고 그러고 사느냐는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사실 그 질문들은 뭔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재촉이었다.
넌 꿈이 뭐니?
그런데 나도 종종 같이 사는 어린이에게 묻는다. “뭔가 되고 싶은 게 있어? 꿈같은 거?” 어떤 날은 화가가 되겠다고 한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잘 집중하고, 즐거워한다. 게다가 본인이 그리는 그림에 아주 자신만만하니 나는 저 대답을 들을 때마다 ‘지금 그대가 화가’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한다. 메이크업, 장난감, 동물 등등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소재가 유튜브에는 무궁무진하다. 유튜브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이름으로 채널을 만들어서 편집도 안 한, 길고 긴 영상을 올리고 크리에이터들의 말투와 몸짓을 흉내 내는 재미에 빠졌다가 요즘은 또 뜸하다. 최근에 들었던 가장 신선한 대답은 ‘중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중학생이 되면 꼭 알바를 할 거고 그러면 엄마인 나에게 간섭받지 않을 자기만의 경제 세계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았다. 되고 싶은 것이 뭐냐는 질문에 어린이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즐거워하는지, 어떤 욕망이 있는지에 대해 말했다. 내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어떤 일을 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인권을 공부하고 인권적인 실천을 함에 있어 질문은 아주 중요하다. 좋은 질문은 인권 감수성을 넓히고 키우며, 그 감수성을 바탕으로 인권을 실천하는 힘을 만든다. 새로운 권리의 출현, 지금과 다른 사회에 대한 상상, 그리고 그것을 지금 여기에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의 싸움은 늘 좋은 질문과 그 답을 찾으려는 노력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떤 질문은 생각의 길을 가로막고 상상의 날개를 꺾는다.
“넌 꿈이 뭐니?” 이 질문은,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과 행복보다는 미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삶을 요구한다. 자기의 욕망과 바람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꿈은 설레고 사랑스럽지만,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 추구하라는 듯 방향이 정해진 꿈이라면 어떨까. 굳이 그런 것을 만들 이유나 동기 또는 자원이 없어서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삶을 좇지 않겠다고 한다면,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높은 목표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하면 야망이 없다는 핀잔 끝에 꿈은 크게 꾸는 것이라는 훈계를 듣고 말 것이다.
무모하거나 불량한 꿈은 안돼?
‘하늘 나는 등불 보는 게 나의 꿈’이라는 라푼젤은 플린 라이더의 도움을 받아 양어머니이자 마녀인 고델의 탑을 탈출한다. 라푼젤과 플린의 꿈은 서로 만날 수 없어 보였지만, 그들은 서로의 힘에 의존해서 꿈을 향해 앞에 닥친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어떤 꿈은 그 실현을 위해 함께 할 동료가 필요하고, 내가 머물던 안정적이지만 위험한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 무릇 꿈이란 이상(理想)과 반역(反逆)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별이분법과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다양한 소수자를 불순한 존재, 모난돌 취급하는 데다, 그들이 함께 모여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늘상 소란스러운 아우성으로 폄하되고,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사람을 몽상가라고 부르며 무모한 꿈이나 꾼다고 깎아내리기 일쑤다.
꿈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시간을 허투루 써버리는 쓸데없는 일 같은 것은 세상에 없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 때리는 시간, 타인과 관계를 맺고,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하는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갖는다는 이유로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거나 생존에 위협을 받는 세상이라면, 세상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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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보(허은)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애써 열심히 살지 않는 적당한 존재이고 싶다. 9살 어린이, 강아지와 함께 살며, 성별이분법을 비롯한 온갖 차별과 위계 폭력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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