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양산마을에 ‘미디어 기록단’이 떴다. 양산동은 농촌의 정서가 남아 있는 자연마을도 아니며 그렇다고 유서가 깊은 도심 중심지의 마을도 아니다. 광주 행정구역의 주변부에 있는, 무심코 지나칠 때는 아무런 특징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도시 마을이다. 왜 하필 그곳에 마을 미디어기록단을 꾸렸을까? 미디어 기록단의 활동이 궁극적으로 마을공동체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을까? 너무나도 평범할 것 같은 이 도시 마을에 어떤 기록할 거리가 있을까? 거기에도 그 동네만의 특별하고 별스런 이야기가 있을까?
마을 기록단 활동을 기획한 양산문화사랑방 기획자 김혜일 대표(문화공동체 아우름)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여느 마을미디어 사업과 비슷하다. 이 마을에 특별한 기록 거리가 있어서 마을 미디어 기록단을 꾸린 것은 아니다. 주목적은 양산마을에 있는 기존 마을 커뮤니티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양산마을 사람들과 빈번하게 만나 이야기하기 위해 마련한 ‘게릴라 다방 다담’(이하 ‘다담’)이라는 사업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다담은 양산호수공원에 위치한 파고라(pergola, 마당에 덩굴을 올려 그늘을 만든 정자) 앉아 지나가는 양산마을 주민 아무나 불러 같이 차를 마시는 일종의 ‘이야기 번개’다.
‘터 무늬’를 찾아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공간은 주름지고 접혀있는 공간이다. 지리학은 주름지고 접혀있는 공간을 펴는 것이 아니라, 주름지고 접힌 공간의 의미를 찾아내고 복원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 『일상의 지리학』 (박승규, 2009) 중
이처럼 마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주름지고 접혀있는 공간으로 변한다. 이 주름의 꼴이 다 같을 순 없다. 멀리에서 본다면 다 비슷한 마을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무늬와 결은 모두 다르다. 이러한 마을의 무늬와 결을 찾아내고 기록하는 것은 마을의 시간성과 장소적 특성을 찾는 탐사 과정이다. 또한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터’의 ‘무늬’를 찾는 것이다. ‘집이나 건물을 지었거나 지을 자리’를 의미하는 ‘터무니’라는 우리말이 있다. 이는 활동이나 일이 이루어지는 밑바탕을 의미한다. 양산마을 미디어 기록단의 활동은 이처럼 양산마을 ‘터’의 ‘무늬’를 찾아 나서는 과정이다.
이곳저곳을 누비며, 미디어 참견단
요즘 유행하는 <전지적 참견시점>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소홀했던 주변 일들에 관심을 두고일일이 직접 참견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보자는 것을 의미하는 제목이다. 이 제목처럼 각종 마을 일에 참견하는 것이 ‘양산마을 미디어 기록단’이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은 새의 눈(bird eye)으로 조망한다고 보이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와 노트를 들고 개의 눈(dog’s eye)이 되어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며 ‘미디어로 참견(?)’해야만 잘 보일 수 있다. 미디어 기록단은 마을 사람들과 걸어온 시간, 마을에 있는 보잘것없는 작은 것들, 마을 사람들의 살아온 내력, 마을살이에 필요한 것들, 양산마을만의 특별한 것들, 마을에서 꼭 지켜야 할 에티켓, 현재 중요한 마을의 이슈, 기타 쓸모없는 마을 일상 소소사 등 이것저것 관여하고 참견한다.

  • 40년 기술자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긴 맥가이버 사장님의 작업실

  •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을 감당 못 해 멈춰버린 시간들
자세히 봐야 삶이 보인다
얼핏 보면 양산마을은 다른 도시 마을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큰 특징이 없어 보인다. 이처럼 마을 공동체의 고유성이 상대적으로 덜한 도시 마을에서 진행하는 대부분의 마을미디어 사업은 비슷하다. 그 콘텐츠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는 제한된 미디어 플랫폼, 뻔한 소재, 지속가능성의 문제, 마을 커뮤니티와의 연계성 등의 한계 때문이다. 특히 콘텐츠의 문제에 있어 미디어의 소재거리를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곤 한다. 양산마을 미디어 기록단의 활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타의 마을 미디어 사업과는 다른 면이 있다. 주로 마을 미디어의 콘텐츠가 마을의 유래, 특산물, 마을 출신 유명 인물 소개 등 주로 마을 홍보 기능에 초점을 맞춘 반면 양산마을 미디어 기록단은 특별해 보이지 않는 소소한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이를 담아내는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 형식을 시도한다. 사회적 이슈나 무거운 이야기보다는 시시해 보일 수도 있는 마을 일들을 주제로 한다. 마을의 구석구석을 기록한다든지 마을살이를 재미있게 즐기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특별해 보이지 않는 마을의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마을을 멀리서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가까이 다가서서 물끄러미 쳐다봐야 한다. 다가서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는 아주 미시적인 것들을 찾아 나섬으로써 비로소 마을의 개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만 양산마을 사람들의 삶이 보이고 마을의 ‘터 무늬’가 보인다. 이렇게 미시적인 시선을 갖게 해주는 것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역할이다. 마을 미디어 교육이자 문화예술교육으로서 양산마을 미디어 기록단의 사례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오래된 마을을 삶으로 지켜본 터줏대감

  • 세월에 늘어져 버린 카세트테이프. 때론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가는 것도…
미디어로 마을사람들의 개성을 찾는 방법
양산마을 미디어 기록단의 교육과정은 이렇다. 우선 미디어와 친해지기 과정이다. 미디어 스킨십의 과정을 우선적으로 배운다. 즉 미디어를 다루는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다. 아카이빙 노하우, 기록의 다양한 방식, 인터뷰 기술 등 기록으로서 미디어를 익힌다. 다음은 미디어의 속성에 대한 이해다. 미디어로 전달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어떤 미디어가 효과적일 것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이다. ‘메시지로서 미디어’를 이해한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이 있다. 미디어는 수단에 불과할 수 있지만 어떤 미디어인지, 미디어 전달방식에 따라 전하는 내용, 받아들여지는 메시지는 달라진다는 의미다. ‘미디어 자체가 곧 메시지’라는 의미다. 미디어 플랫폼 방식을 결정한다. 라디오 방송인지, 오프라인 마을 방송인지, 1인 유튜버 방송인지 아니면 마을신문, 소식지인지 따라 그 의미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성격이 달라진다. 이렇게 미디어를 다루는 능력이 쌓이면 이제 핵심이 되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마을사람들의 개성을 파악하고 숨은 생활 노하우를 발견하는 것이 핵심이다.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그들의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특히 양산마을 미디어 기록단은 주요 활동무대를 동네 사람만 아는 스무 남짓한 점포가 있는 아주 작은 동네 시장으로 정했다. 또한 동네의 사소한 이슈도 다룬다. 일종의 캠페인이다. 쓰레기 문제, 동네 사용설명서, 동네 숨은 명소 소개, 동네 산책길 찾기 등 사소한 동네의 이슈거리나 소개 거리를 패러디 방식을 활용하여 제작한다. 광고(CF)로 만들 것인지 라디오 방송으로 할 것인지, 종이신문으로 할 것인지 결정한다.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 한참 이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양산마을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에 관한 재미있는 홍보영상이다. 반려견 똥 치우기, 고난이도의 쓰레기 보물찾기, 파고라에서 고주망태 금지, 산책길 막기 금지, 과도한 애정행각 꼴불견 등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 꼭지를 정하여 역할을 나눈다. 소품을 만들고 재연 배우가 되어 촬영한다.

  • 한때 영화를 누리던 곳, 여전히 나 여기 있소! 라고
    말하는 ‘그곳’ 에 사람들이 있다

  • 삼삼오오 모여 정치를 논하고 마을을 논하고
    관계를 논하던 사랑방 ‘바버샾’

  •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산 세월이 행복한
    보약꽃(사장님 애칭) 님의 멋진 인생

  •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지키는 힘, 그것을 진짜
    ‘보수’라고 부른다면 좋겠다
터 무늬를 이루는 사람, 장소, 이야기
이제 양산마을 미디어 기록단이 찾아낸 양산마을의 터 무늬를 사람, 장소, 콘텐츠별로 살펴보자. 40년 봉사의 달인 ‘양산미용원’ 원장님, 시계 수리 전문기술자 ‘백양당’ 사장님, 엄마손 김치의 명인 ‘다연반찬’ 사장님, 사진 찍는 한의사 ‘영생당한약방’ 원장님,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일이 일상사인 ‘백년한우’ 사장님, 오지랖 동력 동네예술가 ‘옥진여사’, 중국 이주민 20년 양꼬치 ‘향란언니’ 등. 미디어 기록단이 양산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주로 양산시장 골목의 ‘오래 가게’(노포) 사장님들이다. 그들은 오랜 이웃으로 ‘지켜온 것에 대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었다. 마을에서의 노포는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주민들에게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안전망을 구축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노포 주인장의 생활기술 노하우가 있고 장사를 통해 형성된 단골 커뮤니티가 있다. 나아가서는 외부와 마을을 연결하고 마을의 생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 등 오래된 비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다.
양산마을 미디어 기록단에서는 비록 비지정 문화재이지만 동네의 이력을 가름해볼 수 있는 역사자원, 자연부락 마을커뮤니티, 환경생태자원을 탐사한다. 효부들을 배출한 정씨 가문 기념사당 ‘절효사’, 양산주민들의 자연 사랑방 ‘양산호수공원’, 돈독한 관계들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자연부락들(양지, 내촌, 상촌), 만만한 등산길 한새봉, 90년 전통의 지산축구대회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양산마을 미디어 기록단의 활발한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몇 년 전 마을에 둥지를 튼 동네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문화공동체 아우름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우름에서 진행하는 마을 문화예술교육은 ‘이야기’를 문화예술교육의 핵심 주제로 삼고 있으며 주로 ‘이야기하기’ 방식을 적용한다. 아우름에서 기획한 ‘이야기성’이 강조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다양한 마을 문화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을 계기로 마을사람들이 사랑방에 모이고 이야기가 흐르는 ‘이야기공동체’가 형성 되고 있다.
‘이야기’는 공동체의 핵심 요체다. 이야기만 있으면 서로의 정서와 생각을 교류할 수 있다. 양산마을 미디어 기록단의 사례는 단지 문화예술교육이 교육 방법으로써 스토리텔링 기법을 기능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넘어 이야기가 갖는 공동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자기가 살고 있는 장소의 정체감 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양산마을 미디어 기록단의 활동은 ‘마을 문화예술교육’의 알짜를 보여주는 사례다.
사진 제공 _ 문화공동체 아우름
정민룡
정민룡
광주 북구문화의집 관장. 문화예술교육과 시민문화활동을 매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활문화를 디자인 하는 일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생각하는 손’ 등 공방 프로그램, 노작 중심의 예술교육인 <바퀴달린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a3a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