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꽃놀이는 지나갔지만 봄비 아래 남산자락은 연둣빛으로 남은 봄이 차오르고 있었다. 넓디넓은 미군 캠프(?)를 지나 길 따라 들어가니 아기자기한 동네가 펼쳐졌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만한 작은 골목길에는 생활세계의 면면을 담고 있는 가게들과 주거지가 오밀조밀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속에 위치한 달꽃창작소는 전면 유리에 붙어 있는 네온 간판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의 갖가지 포스터들로 발길을 멈추게 했다. 많은 이들이 드나들며 많은 일을 일으켜 내고 있음을 짐작하는 사이, 달꽃창작소의 대외협력팀 직원이라는 개 두 마리가 격하게 반겼다.
최규성 대표, 홍연서 디자이너와 이웃마을 해방촌이 본관이라 해방 김씨인 김달군 팀장과 김꽃돌 사원
교육이 사람을 만든다
달꽃창작소는 후암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 문화예술교육 단체이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놀아보고자 주말 놀이 모임에서 시작해 점차 연구소와 학교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달꽃창작소에는 각종 자료집부터 진행 중인 청소년들의 작업물까지 펼쳐져 있어 어수선하면서도 생기가 느껴졌다. 2013년도 봄에 남산에서 벚꽃놀이하고 달을 보다가 여름을 맞이하며 후암동으로 거처를 옮겨 깃들게 되었다는 최규성 대표가 교육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 평생의 가치관을 좌우하는 것이 어려서 배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기주장을 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어디선가 이야기가 맴돌고 자기 생각의 근거가 뚜렷이 나오지 않는 상황들을 목격하면서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어요. 자기 근거를 찾지 못한 채 어릴 때 배운 것, 특히, 어른들과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대화가 이뤄지더라고요. 그것은 꽤 큰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교육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시간이 지나 2013년도에 용산구 후암동에 이사 오면서 활동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변화를 만드는 실험과 도전의 삽질(경험)
달꽃창작소가 처음부터 공간을 마련한 것은 아니었다. 동네에서 청소년들을 만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토요일마다 비어있는 건축사무소를 활용하여 모임을 가졌다. 부녀회장님을 통해 소개받은 청소년들과 같이 밥을 해 먹고 전시장에 가서 관람하기도 하며 토요일을 즐기는 사이,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해보고자 하는 동네 예술가들의 수업 문의가 이어졌다. 달꽃창작소는 점점 풍성한 토요학교가 되어갔다. 곁을 내어준 동네의 건축사무소, 교회, 성당, 절의 유휴공간을 이용해 왔지만, 안정적인 공간이 필요해져 2015년에 공간을 만들었다. 공간이 생기면서 달꽃창작소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공간을 마련하고 나니 프로그램의 변화가 찾아왔어요. 좀 더 체계를 갖춰보자는 욕구도 있었어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프로그램이 이루어질 수 있었고 아이들은 방과 후에 달꽃창작소에 들러 놀다 가곤 했어요. 그즈음 공간에 힘을 입어 지역과의 연계가 활발해지기 시작했어요. 주변 공방과의 협업으로 수업을 만들기도 하고, 특히 지역 학교와의 연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죠. 학교 측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방과 후 수업을 달꽃창작소에서 진행하기도 했죠. 변화를 만들어나가려면 활동을 개선해나가고 노하우를 집적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니까 연구소와 학교의 성격이 강해졌어요. 외부에서 보기에는 토요문화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으로만 공간 활동이 보일 수 있지만, 안에서는 많은 삽질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웃음) 실험과 도전을 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삽질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점차 수업 준비와 수업 후 정리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다섯 명까지 늘어났던 적이 있다. 공모사업을 양껏 운영하며 교육 콘텐츠 실험을 이루고자 했을 때였다. 지역 협력이 내용적으로 풍부해지고 단단해진 지금은 한정된 에너지를 밀도 있게 쓰고자 하는 목표를 다시금 세우며 최규성 대표와 홍연서 디자이너 두 명이 함께하고 있다.
달꽃창작소는 ‘비영리-청소년-문화예술-학교’이자 ‘연구소’라 소개하며 새로운 관점의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탐구해왔다. 최규성 대표는 자기 경험에서 자기 생각이 발생하고, 자기 관점이 생긴다고 말한다. 철학자 존 듀이의 교육철학을 탐색하며 흥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수업을 구성할 때 첫 단계는 흥미를 일으키기 위해 관찰하기에 몰입하도록 돕는다. 그는 흥미를 일으키는 것이 교육의 전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청소년 스스로 자기 주도 과정을 밟아 나가는 데 조력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달꽃창작소의 문화예술교육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과 발견된 가치는 무엇일까.
“경험! 그리고 관계와 상상! 입니다.
경험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청소년기를 지나온 청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다양한 어른들과의 관계를 가장 많이 기억하더군요. 프로그램이 아닌 거예요.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관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지역 안에서 신뢰와 관계가 쌓이면서 ‘지역’ ‘관계’라는 키워드가 생겼고요.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동네 아이들이 이곳에서 얻어가는 것은 관계가 가장 크다고 여겨 우리는 십 년, 이십 년 뒤에도 만날 거라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상이라는 부분까지 넘어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상상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사는 일상세계를 뛰어넘으려는 욕구이자 과정이라고 봐요.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것을 찾고 탐구해 나가려 하며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자기 신념과 철학으로 안 보이는 벽 너머로의 도전으로 가보는 것이 청소년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규성 대표가 강조한 ‘상상’은 달꽃창작소가 진행해 온 교육을 9가지의 영역으로 정리한 첫 번째 주제에 해당한다. ‘상상하는 표현! 표현하는 상상!’이라 말하는 교육기획자의 생각을 따라가 본다면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서 무언가를 만나는 일은 표현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므로 일종의 적극적 행동임을 알 수 있다. 표현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독특한 내면 활동을 통해 자신의 감수성을 보여주는 일이다. 동시에 내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것을 외부로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관점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표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표현하려면 어느 정도 상상이 필요하고, 표현하면 우리의 세계관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겉으로 보이는 것, 혼란스러운 현상 너머 이 세상에 무엇이 있다고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는지가 나타나니까.
한 사람을 위한 교육, 그리고 대화
아이들의 성장을 바란다면, 섬세한 프로그램 기획이 필요하다고 최규성 대표는 말한다. 처음부터 교감을 일으키지 않을지라도 서로의 감수성이 쌓이게 된다면 비로소 소통된다는 경험을 쌓아오고 있다. 그래서 어떤 교육적 도구보다도 대화를 중요시 생각한다. 대화를 통해 세밀하게 기획되는 교육활동이 청소년들과 만나는 여정은 어떠할까.
“청소년들과는 나와 한 아이, 이렇게 둘이 있을 때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야기하며 교육자가 판단하고 구성해나가는 것도 중요해요. 방송 교육이나 온라인 교육과 같이 교육자가 없는 교육에 대해 회의적이에요. 아이들이 어른들과 대화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어른들과의 대화의 부담감을 낮추기 위함이기도 해요.
얼마 전에는 패션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한 친구를 위해서 ‘셔츠 디자인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제3의 교육을 하는 입장에서는 소수의 욕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을 위한 교육, 불특정 다수를 향한 홍보는 경험이 쌓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어떤 지점을 깨닫고, 어떤 지점을 평가해야 하는지 모호해지니까요. 폭이 좁아도 밀도가 있는 프로그램을 하며 과정과 평가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져요. 아무리 좁혀도 대상이 한 명 일리도 없어요. 저희는 한 명하고 수업하기도 해요. (웃음)”
대화는 교수자와 학습자를 넘어 수업을 함께 만들어 갈 협력자와도 계속되었다. 한 번도 청소년 교육을 해보지 않은 건축사무소의 소장님과 함께할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을 기록해놓은 두꺼운 파일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함께 수업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을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협력의 절차가 보이는 기록물은 수업 경험이 없지만 아이들과 만남을 준비하는 이를 위한 안내서이자,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교육기획자의 애정으로 느껴졌다.
달꽃토요학교 3기 골판지 건축
지역 거점, 시간이 쌓은 신뢰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통해 달꽃창작소를 알게 돼요.”
몸소 경험한 아이들한테서 이야기를 들은 학교 선생님들이 달꽃창작소를 찾기 시작하는 일이 3년 전부터 점차 많아졌다고 한다. 새로운 교실 조성을 위해 벤치마킹을 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학교 교사도 있었고, 어느 학교에서는 대안학급을 만들어보려 하는데 예술 영역의 프로그램을 맡아주면 좋겠다고 제안하여 관계를 시작하기도 했다. 학교와의 협력관계를 통해 달꽃창작소도 변화의 가능성을 더 힘내서 그려보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덧 중학생이었던 아이가 군대를 제대하고 찾아오는 시기가 되었다. 달꽃창작소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다. 변화의 조짐들은 지역 거점이기에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지역 거점 활동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비전문적으로 보이고, 좁아 보이고, 달꽃의 가능성을 축소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달꽃창작소의 첫 글에는 지역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아요. 그런데, 살다보니 관계가 유실되지 않고 쌓이는 것을 저 스스로 경험하고 지역이라는 공간에서 시간을 쌓아나가며 신뢰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어느 학교에서는 자퇴를 하려 하거나 원만한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 문제로 저희와 상의를 해오셨고, 결국 자퇴를 숙려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달꽃에 등하교를 하도록 하는 파격적인 협력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달꽃창작소에 온 아이들이 5명이었는데, 그 아이들 모두 다행히 학교를 잘 졸업하거나 잘 다니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함께 성장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동안, 고등학생 정도 된 동네 아이들로부터 자기 스스로 자신의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과 괴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달꽃창작소의 역할은 그 길에서 아이들 스스로 찾아가도록 돕는 것이라 여기며 청소년 진로 교육 기획에 애정을 쏟고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진로를 너무나 찾고 싶어 해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을 거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싶어 해요. 적절하게 찾아나갈 수 있는 선택지를 알려주며, 또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는 폭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서 <사람 책>을 기획했어요. 문화예술교육 안에 섞여서 진행되기도 하고 다양한 어른을 만나는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하기도 해요.”
다른 교육을 생각해 나가는 리서치를 통해 만든 잡지인 [다른 교육]은 청소년들의 상상을 돋우며 다양한 선택지를 알려주고자 하는 마음과 계속 꿈꾸고 실험하며 교육자로서 교육기획자로서 경험해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올해로 일곱 살이 된 달꽃창작소에는 청년들이 모여든다. 청소년 때 만나 청년이 된 동네 아이들과 함께 할 ‘2030 괴물창작워크숍’ ‘괴물퍼레이드’를 준비하며 또 다른 공간을 꿈꾸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청소년과 청년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청소년과 청년들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느슨한 공간, 텅 빈 공간, 자기의식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바람은 달꽃창작소의 ‘성장 경험’이리라.
인터뷰를 마친 후, 나 또한 사람책을 만난 느낌이었다. 대화는 우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달꽃창작소에서 나눈 대화 속 웅성거림을 내 마음 한켠에 간직한다.
최규성
최규성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동 대학원 예술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꽃놀이하러 왔다 반해 남산자락에 자리를 잡고 달꽃창작소를 시작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달꽃창작소 대표이자 비영리 민간단체 용산사람들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2012년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유공 강원도지사 표창, 2014년 마을공동체활동 유공 서울시장 표창, 2018년 용산혁신교육지구 실무협의회 위원 활동으로 용산구청장 표창 등을 받았다.
사진 _ 박영균(영상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 _ 달꽃창작소
민경은
민경은
여러가지연구소 대표. 2010년 부천시 원미동에 여러가지연구소를 열고, 지금까지 대표이자 마담을 맡고 있다. 자기를 표현하며 삶의 경험을 확장해보는 교육, 개인의 표현이 소통되는 삶의 문화를 생산하며 사람 사이의 연대를 만들어가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무빙스쿨 ‘D.D.I.Y CAFÉ’, 원미동 수선 장인 안토니오 할아버지와 함께한 ‘땀땀공작소’, 텃밭 프로젝트 ‘밭&곁’, 여성들의 글쓰기 모임 ‘언니네 글밭’ 등 동네 주민들과의 소소한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