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마치고 기차역을 향해 한참을 걸어오는 길에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는 자동차가 없으면 이동하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마음먹은 대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쉽게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성인에게조차 그렇다면 어린이, 청소년들에게는 어떨까. 낯설고 새로운, 흥미롭고 즐거운 경험에 손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인터뷰 도중 예술과 교육은 결국 하나가 아니겠냐는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교육연극을 통해 학교제도 안팎에서 아이들과 만나온 정창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교사로 재직하며 오랜 기간 교육연극 활동을 해오셨다. 예술교육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교육과 연극을 따로 분리해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집안에 교사가 많아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되라는 소리를 늘 듣고 자라면서 ‘나는 절대로 교사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대학입시를 앞두고 집안 사정이 안 좋아졌고 시험에서 교대에만 합격하는 바람에 ‘십 년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교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청소년기에는 매우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였는데, 어느 순간 이를 깨닫고 외향적인 인간이 되어보자 싶어 일종의 성격개조 프로젝트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연극을 시작한 것이 대학 극회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때까지는 연극이 어떤 의미가 있다기보다 그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인간이 되어가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2002년, 전국교사연극모임에서 주최한 교육연극 연수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동선부터 대사 토씨 하나까지 짜인 대로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연극만 접하다가 즉흥과 놀이로 접근을 하는 새로운 연극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후 교육연극을 시작했고 아이들과 교실에서 연극을 만드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그러면 수업시간에만 할 게 아니라 우리도 극단을 만들어 함께 연구도 하고 공연도 만들자 해서 대학 극회에서 활동하던 분들과 2008년 교사극단 ‘딴짓’을 시작하게 되었다.
충북 교사극단 ‘딴짓’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극단 활동이 교육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문화예술 소외지역의 아이들은 부모님이 열성적이지 않으면 연극 한 편 보러 가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들어 찾아가 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연습해서 지역 학교에 찾아가 공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초등학생뿐 아니라 온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학교 교실을 비롯해 급식실, 다목적실, 체육관, 면사무소 등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했다. 극장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보려고 교실 창문을 검정비닐로 막아놓고 음향 조명 장비를 설치해보기도 했고, 자체 제작한 조명 디머기 스위치를 올리자마자 건물 전체에 전원이 나가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불러주는 곳이 늘어나서 돈이 모이면 장비를 사서 조금씩 업그레이드하면서 연극을 만들어왔다. 주로 옛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작하여 행간에 숨은 이야기를 끄집어내거나 같이 놀아보며 연극으로 만든다. 첫 작품 <여우누이> 역시 옛이야기를 페미니즘 시각에서 출발해 새롭게 꾸며서 공연화 하였고, 관객 반응이 좋아 다듬어서 재공연을 올린 후 순회공연을 다니게 되었다. 한번은 공연사례비를 좀 많이 받게 되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전국에서 보러 와주신 교사 극단이나 지역 모임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저녁을 대접했다. 잔치처럼 식사가 끝난 후 나중에 정산을 해보니 밥값으로 공연료를 다 썼던 일도 있었다. 어쩌면 이 연극이 아이들 평생 단 한 편 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따지지 않고 다니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교실에서 복닥복닥 연극 만들고 학습발표회를 올려보기도 하고 작은 연극제 같은 것을 해보기도 했다.
음성 오선초등학교에서 예술꽃 씨앗학교 4기 담당교사로 활동하셨다.
2016, 2017년에 예술꽃 씨앗학교를 담당했다. 오선초의 운영 분야가 음악과 합창이었고, 예술강사님이 주도적으로 합창수업을 진행하면서 음악적 도움을 주시고, 그 바탕으로 음악극을 만들어가는 수업을 진행했다. 학기 초에 아이들과 함께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지 묻는 것으로 출발해 장면 만들기를 해보면서 음악극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것을 학습발표회 무대에 올렸고 이어 전체적인 흐름을 만들어 성과공유회에서 공연으로 발표했다. 학습발표회에 오셨던 부모님들은 우리 애들이 저럴 리가 없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셨던 반면, 성과공유회에 왔던 다른 학교 학생들은 저게 바로 내 얘기라며 박수 쳐가며 폭발적인 호응을 보내주었다. 확실한 온도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 재미있었다.
예술꽃 씨앗학교 사업은 어떤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지.
문화예술 소외지역 아이들에게는 사실상 학교 교육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학원에 다니기도 하지만 다양한 경험의 측면에서 보자면 학교에서 제공하는 경험들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기존에 학교에서 해주던 문화예술 경험은 공연이나 전시에 데려가거나 기능교육 위주의 음악 미술 교육을 하는 것에 그쳤던 반면, 예술꽃 씨앗학교는 정규교육과정 안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서 예술에 깊이 빠져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아이들의 삶을 바꾸어 가는 게 목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적 미적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자랐을 때 삶 전체가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사막 같은 느낌일지 떠올려보면 예술꽃 씨앗학교라는 시스템이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대했던 방향이나 성과들이 학교 현장 상황에 부딪히는 일도 있을 것 같다.
학교 상황마다 다르지만, 운영은 자율적으로 열려있다. 어떤 학교들은 기존에 해왔던 것처럼 동아리나 방과후 형태로 운영하기도 하고, 드물지만 이상적으로 진행되는 학교의 경우에는 아예 교과 속에 녹여내서 예술교육이 심도 있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교사와 예술강사 사이에 끊임없이 수업에 대한 협의가 오가야 하는데, 대부분은 예술강사가 주로 예술교육을 맡고 교사는 학생 관리 차원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교사는 수업만 고민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고, 예술강사 역시 한 학교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사실상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단번에 해결하기 어려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이다.
예술꽃 씨앗학교는 학교 대상의 다른 사업들, 예컨대 혁신학교 사업과는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
혁신학교와 예술꽃 씨앗학교만 두고 본다면, 예술꽃 씨앗학교는 문화예술교육에 특화된 반면 혁신학교는 수업 혁신부터 민주적인 학교문화 전반에 대한 혁신을 다룬다. 혁신학교는 시스템의 문제라면 씨앗학교는 콘텐츠의 문제라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혁신학교라는 시스템 안에 예술꽃 씨앗학교의 콘텐츠가 들어오면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겠다. 단지 교육청에서 지정하는 혁신학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운영과 교육 과정 운영에서 민주적인 문화를 위해 자율성을 가지며 끊임없이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문화를 가진 학교들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제가 지향하는 부분 역시 예술이 중심이 되는 혁신학교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문화예술교육이 교육계 전면에 나서게 되었고 학교문화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해서 개인적으로 교사로서 조금씩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기존의 학교 제도 안에서 예술교육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의미인가.
단지 기능적 구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고착되어 온 학교문화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간 구조부터 그렇지 않나. 학교 표준화 설계도를 보더라도 1960년대에 만들어진 것을 아직도 그대로 사용한다. 그 구조가 교도소와 유사하고 학교문화는 군대문화와 흡사하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에 익숙한 문화가 반복되고 여전히 유효한 상태에서 그런 문화에 익숙한 분들이 결정권자가 되고, 아무런 변화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된 문화가 자리 잡아 버렸다.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기존의 체계를 유지하고 계승하는 데에만 골몰한다면 아무리 예산을 퍼붓고 구조나 시스템만을 바꾼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혁신학교처럼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전제가 되고 자신들만의 교육 철학이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예술꽃 씨앗학교 같은 콘텐츠적 접근이 확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화 소외지역에서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읍면 단위 등 소위 문화 소외지역의 경우에도 문화예술 체험의 기회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 안팎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대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등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들이 적잖이 진행되고 있다. 관심 있는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을 본다거나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다니신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문제다. 수많은 기회가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손가정이거나 다문화 가정, 맞벌이 가정 등 여러 이유로 보호자가 데려다줄 수 없는 경우에는 어쩔 방법이 없다. 그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해주는 것이 전부이고, 그래서 소외지역에서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작은 지역 단위에서는 학교가 지역의 예술센터가 되어 예술로 돌보고 예술로 놀아주고 배우게 해주는 생활 구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화예술의 격차가 벌어지고 그것이 결국 아이들의 삶의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교사들은 늘어나는 수많은 업무에 시달리게 되겠지만. 예술이 여유 있는 사람들만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재로서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하고, 언제나 아이들이 손만 뻗으면 예술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는 것 아닐까. 나 역시 삶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을 풀어가면서 예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느껴보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에서 통합교육과정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예술이 교육으로 들어올 때 조심스러운 부분은, 예술이 도구로 사용되거나 하나의 팁이 되거나 기능교육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학교 예술교육이 어땠는지 고민하며 돌이켜보니, 분명 예술교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학교문화는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예술을 하면 생각이 깊어지고 즐거워지고 아름다운 문화가 생겨나야 할 텐데,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이들은 힘들어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예술을 기능과 이론으로 접근하는 교육방식, 예컨대 음악을 배웠다고 하면 ‘피아노 쳐봐라’ ‘그것도 못 하냐’는 방식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통합예술교육, 즉 교육 자체를 예술적으로 풀어가면서 놀이처럼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게 되었다. 연극이 하나의 과정으로 교육의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통합예술교육으로 가려면 주제중심 프로젝트 수업이 되어야 하고, 교과에서 배우는 내용과 제재 하나하나보다는 높은 차원의 목표, 즉 교육과정의 언어로 ‘성취기준’을 달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주제를 가르치기 위해 교사들의 자율성을 보장한 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이 ‘2015 개정 교육과정’인데 그래서 이런 변화가 반갑다. 수업 시간과 방법에 구애받지 않고 제시 목표와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교사들이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서 다양한 통합예술교육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징후로 보인다.
변화하는 학교교육 안에서 예술교육을 위해 요구되는 지점이 있다면.
예전의 학교는 과거의 지식을 전달받기 위해 공부하는 곳이었다면 지금은 스스로 배우는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교사의 역할도 예전엔 잘 가르치는 게 중요했다면 지금은 배움을 도와주는 협력자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 재밌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배움이 일어나도록 하려면 놀이성이나 즉흥성, 자발성을 끌어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고 그런 장치로서 너무나 훌륭한 게 예술이다. 많은 교사들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방법론부터 물어보시고 당장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요청하신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은 안하신다. 학교는 왜 바뀌어야하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은 뭘까, 나는 왜 교사가 되었을까 이런 질문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학교의 교육과정은 연구부장 한분이 계획을 세우고 교감‧교장의 결재를 받아 이루어진다. 모든 학교의 사업들이 담당자 한 사람이 계획서를 작성하고 나머지는 따라가는 구조이다. 출발점에서 다 같이 모여 무엇을 어떻게 할지 협의하고 공론화하는 문화가 학교에 자리 잡지 않으면 향후 문화예술교육이 개선되어 어떤 형태로 투입되든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결국 양질의 예술교육이 이루어지려면 모든 교사들이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누어야하지 않을까. 교육에 대한 철학, 가치, 신념 등을 함께 공유하고 계속 발전시켜 나갈 때, 그 안에서 비로소 방법론이나 팁 같은 것들도 효과를 발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예술교육 분야에 활동하고 계신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드린다.
학교를 믿지 못하는 학부모, 직업인으로서만 존재하는 교사, 생계의 방편으로 학교에 오시는 예술강사, 이런 벽들이 쌓여 결국 학교에 대한 불신이 넘쳐나게 된 것은 아닐까.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마음 둘 곳이 없다. 삶에 있어 조력자나 품어줄 사람이 없고 친구들과 놀이로 풀어낼 시간조차 없다. 그래서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는 교사와 예술강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예술의 가치와 중요성, 아이들의 삶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에 공감하실 것이다.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하는 분들이 최소한 상처받지 않고 실망이나 좌절하지 말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가면서 적어도 ‘우리는 아이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온갖 불신과 혐오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예술로 그것들을 마주하고 풀어내고 녹여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기능적 협업이 아니라 서로 어깨동무하고 함께 재밌게 가보자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정창환
정창환

2002년 음성 오선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학교 교육 현장에 첫발을 디뎠다. 2016~2017년 오선초등학교 예술꽃 씨앗학교‧새싹학교 담당 교사를 맡았다. 지금은 음성 소이초등학교에 문화예술교육 초빙으로 재직 중이다. 교육연극 연수를 계기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충북 교사극단 ‘딴짓’ 창립멤버이다. 교사가 천직이라는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최근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와 문화예술교육의 급부상으로 인해 학교가 조금씩 재미있어지고 있다.
홍은지
홍은지
다양한 공연방식을 고민하고 고안 중인 공연예술 연출가. 얼라이브아츠 코모(alivearts como)에서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순간을 채집하고 그 흔적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팰름시스트> <카페더로스트> <벙어리시인> 등을 연출했다.
eufy654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