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이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서 진행하는 시각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사진, 회화,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직접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는 특징을 가지며, 8세부터 13세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14~15주에 걸쳐 운영된다. 교육진흥원은 독일 리틀아트에서 진행한 동명의 프로젝트를 2013년 국내에 도입, 문화예술교육 단체‧기관 및 시각예술가들과 협업하여 연간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15주의 프로그램이 종료되면 참여한 어린이가 직접 큐레이팅하는 지역전시회를 가진 뒤, 참여 예술가와 함께 프로그램의 성과를 조망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다.
추리를 위한 질문: ‘무엇’은 무엇일까
매력적인 제목이다.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라니. 한 번쯤 마음속에서 되묻게 된다.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어린이의 존재와 그들의 신념에 대해서 말이다. 교육진흥원은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Woran glaubst du?)’라는 독일 리틀아트의 질문을, “어린이의 세계를 믿는다”라는 철학으로 재해석하고 시각예술가들과 의미 있는 시도를 지속해오고 있다. 어른과는 다른 어린이들의 고유한 영역과 세계를 존중하면서, 그렇다면 어린이들이 믿는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를 역추적하는 질문이다.
지난 2018년 12월 12일부터 17일까지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는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 기간 중에는 참여 작가 3명의 프로그램 과정 및 결과와 관련한 발제가 포함된 ‘시각예술교육 콘퍼런스 – 발견하다’도 함께 열렸다. 노혜리 작가는 사업참여에 앞서 열린 사전미팅에서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들었고, “어린이는 작은 사람이죠”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김애란의 단편 소설 『가리는 손』에 비슷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문득 같은 내용이 떠올랐다는 첨언도 덧붙인다.
소설의 해당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자면, 어린이집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 어린이에게 “쪼끄만 게 웬 한숨이냐”라고 나무랐더니 “어린이는 원래 힘든 법이에요”라는 응수가 돌아왔다는 에피소드이다. 작가는 여기서 ‘여섯 살 어른’인 자신의 조카를 떠올렸다고도 한다. 그래, 여기서 다시 출발해보자. 어린이가 어른과 똑같이 개성과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특유의 밝음과 순수함과 마찬가지로 어둠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주체로 상정해보자는 말이다.
‘작은 어른’을 위한 시도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는 공교육과 사교육의 중간지대이자 ‘공적 서비스’의 영역에서 기존의 교육체계가 가진 한계에서 벗어나 어린이의 다양성과 가치를 존중하는 프로그램을 시각예술로 시도해보고, 새로운 교육 방향을 설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프로그램은 두드러진 몇 가지의 특장점을 보인다. 일단은 미술을 매개로 어린이들의 창의성 계발에 목적을 두고 있는 프로그램의 특성이 그러하고, 공립기관에서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여 결과 및 자료집 정리까지 포괄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현직 예술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 매우 매력적이다. 해당 연령대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기울일만하다.
그래서 다시 도돌이표로 돌아와,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이다. 이 질문은 결국은 어린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희망 사항을 수립하여 반영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프로그램에 예술가로 참여했던 사진작가 유영진은 사진 수업을 진행하면서, 참여 어린이들이 ‘예측하고 재단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과, 한 명 한 명이 개별적으로 독립된 존재라는 점에서 새삼 놀랐다고 한다. 여행 사진을 찍는 작가는 평소에도 집 앞 골목길과 동네를 유영하며 플로베르(귀스타브 플로베르: 프랑스 작가. 꿈 많고 무언가를 천착하기를 좋아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관조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편집자주)의 시각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모인 사진들로 작업을 발전시킨 경험이 있는 작가는 같은 경험을 어린이들에게 대입하려고 시도했으나, 어린이들에게 해당 주제는 때로 전혀 흥미를 유발하지 못했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이야기한 것과 같은 어린이로부터의 피드백이 전시에도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전시에서는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예술가들이 어린이에게 들었던 코멘트들을 시각적인 말풍선으로 배치한 섹션이 있다. 황당하고 엉뚱하며 때로 폭소를 터트리게 하는 내용들도 있는데, 이를테면 “이렇게 하는 거 선생님 취향이잖아요” 등의 내용이 그렇다. 여기에서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어린이가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는 포인트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영진 작가의 경우는 참여 어린이 6학년 가은이와 주원이가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의 열렬한 팬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유영진 작가가 골목길과 동네를 찍은 것은 거리의 흔적들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찍는 행위로 인해 여행의 경험을 소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도 ‘가장 좋아하는 것’을 찍게 하는 것은 어떨까? 아쉽게도, 아이들은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를 직접 찍을 수 없다. 대신, 그들에게는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진을 수집한 게 수백 장이나 있다. 작가는 그들에게 웹에서 사진을 수집하고, 앨범 혹은 굿즈의 형태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도록 제안하였다.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가 결과보다는 어린이들이 예술에 접근하는 태도와 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창의성을 형성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을 때, 매우 슬기로운 접근방식이 아닐 수 없다.
남겨진 몇 가지 제언들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프로그램에는 오류와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다.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는 앞으로의 지속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콘퍼런스에서 작가들이 입을 모아 지적한 사항들이 실질적으로 시정에 반영할만하다고 생각되어 여기에 몇 가지 첨언해 본다.
첫 번째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을 모집하는 데 있어 현재의 형식적인 방식을 뛰어넘자는 것이다. 작가들은 몇 달 동안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 일부 어린이들이 비자발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당황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어린이의 경우는 “엄마가 가라고 해서 왔다”는 식의 표현을 했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 일반적인 입시 위주의 사교육과 비교했을 때 어린이들의 참여 동기가 크게 차별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대부분 프로그램에 입문할 때는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보다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본격적인 프로그램의 시행에 앞서 오픈 클래스의 비중을 높여 아이들의 흥미와 자발적 참여도를 더 높게 반영하는 것은 충분히 현실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한편, 시각예술에 관심이 있는 참여자 선정을 통해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문제를 넘어, 시각예술이 어린이에게 또 하나의 소통의 언어로서 다가가고 시각예술에 대한 자기 취향을 발견해볼 수 있는 최소한의 장으로 자리 잡기 위한 고민도 계속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영상과 사운드 등 새로운 장르에 대한 영역 확장이다. 현대미술에서 영화와는 별도로 영상미학과 영상문화가 시작된 지점은 그리 멀지 않다. 현장 예술가들 사이에서 영상이 실제 작업으로 창작된 역사는 20년 안팎으로 바라본다. 아직까지 기성세대에게는 ‘새로운’ 장르라는 표현이 유효하다. 그러나 ‘유튜브 세대’인 어린이들 눈높이로 바라본다면, 태어나기 전부터 영상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영상과 사운드는 공기처럼 자유로운 표현 매체이다. 현재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 프로그램은 사진과 회화, 설치미술 장르의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에 영상 예술가가 어린이들에게 영상 언어의 발화와 창조에 관한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구성된 꼭지가 추가된다면 프로그램이 한 층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단, 디지털 매체가 새로운 툴로서 활용되고 기능하기 이전에 해당 매체의 요소와 고유한 특성, 표현방식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에서 굳건하게 지켜내고 있는 프로그램의 철학 또한 충분히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2018 꿈다락토요문화학교 어린이는무엇을믿는가 영상
[영상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8llwt9NRCSY&feature=youtu.be
2018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 전시회 및 콘퍼런스
올해 6년째를 맞는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는 ‘어린이의 세계를 믿는다’라는 철학으로 어린이의 세계관을 인정하고 지지해줌으로써 예술을 통해 개인을 넘어 미래의 가치를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시각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지난 12월 12일(수)~17일(월)까지 6일간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그간의 사업 성과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통합결과전시회를 개최하였으며, 13일(목)에는 ‘시각예술교육 콘퍼런스 – 발견하다’를 열어 시각예술교육에 대한 담론 형성과 함께, 교육 현장에서 발견하고 고민해야 하는 지점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시각예술교육 콘퍼런스-발견하다’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의 류현미 교수는 “우리는 어린이를 단지 있는 그대로의 어린이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현재를 흡수하고 빨아들이는 능력이 뛰어나다.”라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에서 염두에 둬야 할 지점을 강조했다. 또한 “모든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몰입에 동반되는 정서적 경험이다. 이것이 축적되어 자기만의 관심과 취향, 삶의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창의성의 개념이 보편적인 것으로 확장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창의성의 순간은 특수하다. 예술교육은 이러한 창의성의 보편성(generality)과 개별성(singularity)을 담보한다.”며 어린이 대상 시각예술교육에서 추구해야 하는 핵심적인 요소들을 짚었다.
조숙현
조숙현
연세대학교 영상커뮤니케이션 석사를 졸업했다. <한국 커뮤니티아트의 예술성과 공공성>으로 졸업 논문을 썼다. 미술전문지 「퍼블릭아트」에서 에디터로 활동했고, 2018 강원국제비엔날레 큐레이터로 일했다.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2015)와 <서울 인디 예술 공간>(2016) 등이 있다. 현재 네이버 공연전시판에 전시소개글 “two way art” 연재 중이며, 현대미술 전문 출판사 아트북프레스 대표이다.
newpublicar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