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교육의 움직임이 시작되었을 때, 티칭 아티스트들은 학교와 공동체를 대상으로 주어진 자원과 공간 안에서 활동해야 했다. 티칭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능력을 다양한 환경에 적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일을 진행해왔다. 음악가나 시각 예술가, 작가, 무용가인 이들은 대체로 이상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일해야 했다. 학교의 경우 참가자, 예술가, 교사 모두 저마다 다른 기대치를 가지고 있고, 다른 교육 자원들과 뒤섞여 어수선한 반면, 센터나 공동체 공간은 너무 일시적이거나 급조된 듯한 느낌을 준다.
최근 여러 미술관, 지역 회관, 도서관이 창작 활동을 위한 공간, 그중에서도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 공간을 따로 지정해두고 있다. 이를테면 호주에 새로 생기는 많은 도서관은 ‘창작 공간’(메이커 스페이스)을 두고 있다. 주요 미술관들 역시 가족을 위한 창의적 활동 공간을 보유하고 있고, 대체로 이런 공간을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와 연계하고 있다. 약 20년 전부터, 전적으로 예술교육을 위해 특수하게 디자인된 공간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디아크(The Ark)’, 멜버른의 ‘아트플레이(ArtPlay)’, 싱가포르의 ‘플레이움(Playeum)’은 티칭 아티스트들이 이끄는 범세대적 창의 활동을 위해 고안된 대표적인 공간들이다. 모두 광범위한 창의 활동을 담기 위해 유연하면서도 역동적인 디자인으로 설계됐다. 기본적으로 이런 공간의 목적은 티칭 아티스트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지만, 더욱 성공적인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공간 자체가 그러한 활동이 지닌 특성을 반영하고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디아크는 유럽 최초로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건립된 어린이문화센터로, 1990년 더블린이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된 이후 추진한 도시 재생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어졌다. 디아크는 어린이를 위한 공연장, 레지던시 예술가를 위한 워크숍 공간, 어린이들이 만든, 혹은 어린이들과 함께, 어린이를 위해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플레이움은 싱가포르의 엄격하게 통제된 영유아 활동 커리큘럼에 대한 반대급부로 지어졌다. 갤러리 밀집 지역에 위치한 이 공간은 예술가를 선정하여 어린이와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렉티브 전시, 워크숍 등을 기획하고 있다. 멜버른 중심에 위치한 아트플레이는 과거 기차를 수리하던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공간으로 시 위원회가 추진하는 어린이·가족 활동 프로그램을 수용하고 있는데, 오늘날 호주 전역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 디아크(The Ark)

  • 플레이움(Playeum)

  • 아트플레이(ArtPlay)

최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런 국제적인 흐름에 발맞춰 기존의 건물을 지역 공동체의 창의성과 연결성 증대를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 시킨 사례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포럼은 ‘부천아트벙커B39’(이하 ‘B39’)(관련기사: 창조적 파트너십으로 진화하는 공간 만들기)라는 공간에서 열렸다.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이 건물은 이제 전시장과 다양한 공동체의 활동 공간으로 탈바꿈했고 곳곳에서 창의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대체로 이런 건물들이 그렇듯이, B39 역시 효율적인 산업 디자인 스타일과 건물 본연의 느낌 가운데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은 듯했다. 이와 같은 재건축 사례들의 공통점은 건물이 본래 지닌 사연과 이야기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사용자들을 위해 신선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B39는 지역을 활성화하고 창의적인 교류를 촉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한, 아주 멋진 공간이었다. 포럼에 참가한 이들 역시 여러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를 공유했는데, 전국에 있는 유사한 형태의 건물을 이처럼 여러 세대가 모이고,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창의적인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둘째 날에는 전라북도 전주시를 방문했다. 영국 ‘어셈블(Assemble)’의 창립 멤버인 프란 에쥘리(Fran Edgerley)와 함께 두 프로젝트를 답사할 수 있었다. ‘문화파출소 덕진’과 ‘팔복예술공장’ 모두 기존의 공간을 공동체 모임과 창의성을 위한 공간으로 재생하려는 시도였다. 문화파출소 덕진은 ‘더불어 함께’, ‘이따금 혼자’ ‘소란한 방’ 등 흥미롭고 사려 깊은 이름이 지어진 작은 방들이 모인 곳으로, 독특하게도 예술 활동과 예술 치유, 가정적인 분위기가 뒤섞인 공간이었다. 팔복예술공장은 여러 면에서 전혀 달랐다. 대형 건물과 거대한 공간으로 구성된 이곳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었다. 두 공간은 서로 굉장히 달랐지만, 창의적이고 범 세대적인 참여를 촉구한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팔복예술공장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는 지역의 문화예술기관 대표, 지자체 공무원, 예술가들이 참가해 또 다른 세 개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포럼에서 소개된 사례와 우리가 직접 방문했던 공간을 비롯하여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관통하는 공통 요소가 있다는 것이 명확해 보였다. 어떤 공통 요소들일까? 기본적으로 새롭게 추진되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진 공간을 제공하여 창의적인 활동을 지원한다.
  • 팔복예술공장
  • 문화파출소 덕진
그 안에서 일어나게 될 활동을 투영하는 공간
수동적인 관객을 대상으로 ‘설파하고 교육’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의자를 모두 일렬로 배치하고 선생님이 맨 앞에 서는 형태의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참여자 누구나 선생님이 될 수도, 학생이 될 수도 있는 열린 교육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 다른 형태의 공간이 필요하다. 선생님과 학생을 구분 짓는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간을 민주적으로 점유할 수 있는 열린, 유연한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티칭 아티스트는 선생님과 학생의 역할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공간에서 특히 더 높은 성과를 낸다. 참여자가 직접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은 개인과 집단이 창의력을 이용해 자신감을 얻는 데 필수적이다.
다양한 영역으로부터의 접근을 가능케 하는 공간
여러 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열린 공간은 창의적인 놀이를 배우는 데에 꼭 필요하다. 특히 창조적 위험(creative risk)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귀하고 아껴 써야 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교육에 힘을 부여하는 공간
티칭 아티스트들은 너무 오랫동안 부차적인 공간에서 임시변통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티칭 아티스트, 혹은 사회참여형 예술가는 자신의 소임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게 고안된 공간에서 큰 이점을 얻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의 성과에도 영향을 미치고 참가자들이 도출하는 결과물의 위상도 더욱 강화된다. 부여하게 된다. 다른 강사들이 참고할 만한 모범 사례를 제시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할 수 있는 공간
사람들은 창의적인 활동을 하면서 새롭고 굳건한 관계를 만들 기회를 얻는다. 함께 하는 창의 활동은 신뢰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공유하게 해준다. 더 나아가 이런 공간은 티칭 아티스트와 그 동료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활동을 공유할 기회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교육 방식을 개선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지역의 역량도 강화하게 된다.
예술의 스토리텔링과 공간이 지닌 역사를 결합한 공간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오래된 건물을 활용하는 경우, 다시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생겨나고, 그 공간을 통해 개인의 경험, 문화적 경험을 새로이 공유하게 된다.
대중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유연하게 디자인된 공간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학습 자원과 재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유연성이 내재된 공간에서는 다양하면서도 개인에게 특화된 학습과 공유가 가능해진다. 지속해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경우, 모든 연령대의 참여자가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공간의 디자인에 관여함으로써 공간의 공동 디자이너가 된다. 이는 참가자들의 참여도를 높이고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 자체로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간
이러한 공간은 창조적인 활동 역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 옛것 그대로의 낡은 자재를 유지하고 있는 공간은 티칭 아티스트와 참가자들이 비슷하게 낡은, 재활용된 재료를 활용하기에 적절한 환경을 제공한다.
창의적인 꿈을 꿀 수 있는 공간
‘창의적인 꿈을 꾸기에 좋은 공간’이라는 단순한 아이디어 역시 중요하다. 다양한 문화와 사회적 기대치를 창조적인 방식으로 교차시키는 창의적인 프로그램들은 참가자들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좀 더 실험적일 수 있게 해준다.
장난스러움과 재미가 있는 공간
공간의 재료와 자원, 이름 등을 재미있게 정하면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예술가와 참가자의 교류 역시 더욱더 즐겁고 재밌게 된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리더십을 일깨우는 공간
공간을 이끌고 기획하는 것 역시 다양한 형태의 창의성과 학습 방식에 따라야 하고, 창조적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공간은 장기적으로는 서로 화합하고, 생산적이고, 참여 의식이 높은 시민을 양성해낸다. 공간을 이끌어나가는 리더십은 간과하기 쉬운 요소인데, 공간 내 모든 영역에서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스태프들로 팀을 구성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러한 공간은 통합, 지속가능성,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담고 있으며,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함께 창조적인 활동을 하면 공동체원의 주인의식과 참여의식, 시민의식이 높아진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다. 요리 레시피를 공유하는 행위는 곧 문화의 공유를 상징하고, 거대한 그림을 같이 그리는 활동은 신뢰와 다양성의 존중을 반영한다.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이런 공간들이 더 많아질 필요가 있을까? 물론 좋은 예술교육은 이런 공간 없이도 생존해왔다. 그러나 이렇게 구체적인 목적으로 새로이 만들어진 공간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열린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을 창조적인 활동에 참여하게 하고, 티칭 아티스트들로 하여금 새로운 접근법과 아이디어를 개발하도록 독려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공간은 우리의 미래, 즉 함께 창조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를 대변한다. 한국의 재생 공간들도 활성화되기를 기원하며, 2020년 열리는 제5회 국제티칭아티스트 컨퍼런스(ITAC5)에 참가하러 한국에 다시 가게 된다면 공간들을 다시 방문하여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고 싶다.
[관련링크(사진출처)]
디아크 홈페이지 https://ark.ie
플레이움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Playeum
아트플레이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ArtPlayKids
부천아트벙커B39 https://b39.space
문화파출소 덕진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artpolice379
팔복예술공장 http://www.palbokart.kr
사이먼 스페인(Simon Spain)
사이먼 스페인(Simon Spain)
시각 예술가이자 사회참여 예술가로 30년 이상 세계 곳곳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전수해왔다. 호주 멜버른의 아트플레이(ArtPlay)와 시그널(Signal)의 창립 멤버이자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이다. 현재 올댓위아(all that we are)의 공동대표이며 호주예술위원회의 2017년 공동체 및 문화발전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 테이트 인터내셔널(Tate International)의 멤버이고 현재 테이트에서 사회참여 예술가들의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멜버른 RMIT의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참여형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를 하는 예술가들의 사례를 연구 중이다. 그밖에도 호주예술위원회의 예술 리더십 멘토로 활동하고 있고, 호주 타즈매니아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simon@allthatweare.org.au
www.allthatweare.org.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