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를 고려하지 않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예술교육의 중심에 수요자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르떼 365]는 단지 ‘고객’의 소리를 듣고 반영하기 위함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의 질적 성장을 이끌기 위한 질문 중 하나로 ‘수요자’를 짚어보고자 한다. 수요자를 중심에 둔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전문가 좌담뿐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한 청소년과 청년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도 마련했다. 수요자의 입장에서 ‘삶과 연계된 학습’ ‘배움의 주체화’를 지향하는 문화예술교육은 무엇인지 돌아보자.
[기획 포커스]수요자 중심 | ① 전문가 좌담 ② 청소년 좌담 ③ 청년 좌담
[전문가 좌담 개요]
• 일 시 : 2018년 8월 20일 (월) 15시
• 장 소 : 용산역 ITX 1회의실(용산역 3층)
• 참석자 : 고영직(문학평론가/좌장), 김결(문화예술 놀다 대표), 이유진(문화기획달 활동가)
고영직 : 이 좌담에서 미리 전제해야 할 부분이 하나 있는데, 수요자는 결코 ‘수혜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책 현장에서 ‘수혜자’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그 말에는 정책 대상자를 이른바 ‘빚쟁이’로 간주하려는 정책 공급자의 시각이 깔려 있다. 이탈리아 자율주의 이론가인 마우리치오 라짜라토(Lazzarato)는 ‘빚을 진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데비토르(Homo debitor)라는 말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정책 수혜자는 빚쟁이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나쁜 언어로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 오늘 논의할 ‘수요자 중심’이란 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고 있는 두 분과 함께 지금의 프로그램 기획이나 수업 진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 결 : 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만난 대상은 연령대와 상황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데, 만나면 만날수록 우리 자신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은 도시에서 놀이터를 하고 있다. 누구는 우리 보고 고액 놀이 사업자라고도 하더라.(웃음) 요즘 놀이터가 유행인데, 우리는 꽤 오랫동안 놀이터에 대해 고민했고 그 형태를 갖춘 것은 올해로 4년째이다. ‘이것이 예술교육인가’에 대해 우리 안에서 계속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동안 교육을 기획하면서 ‘만나는 사람’에 대한 고민이 깊어야 한다는 저의 의지가 확고했다. 그런데 그 한계가 너무 분명하다. 노동자를 만나든, 동네 사람을 만나든, 아이들을 만나든, 노력은 하지만 고민의 깊이는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못지않게 ‘갖춰진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이 내외부적으로 존재해서 우리를 힘들게 했다. 그 틀은 커리큘럼으로 존재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과정 중심 교육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틀을 뭉개고 애써서 갖추려고 하지 않으니,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우리 자신이 더 잘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교육의 형태로 가져가야 할지, 무엇을 더 기억에 남게 해줄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완벽한 조력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재료를 가진 사람들’ ‘재료를 던지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하려면 놀이터에서 하는 것이 좋겠더라. 스스로 놀 수 있게, 스스로 힘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우리가 어떤 재료를 던지느냐에 따라서 서로가 너무 즐거워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을 마지막으로 교육 관련 지원사업을 하지 않게 되었다. ‘e-나라도움’도 한몫했지만, 커리큘럼에 대해서 조금 벗어나서 더 연구하고, 더 날것으로 만나보는 기획이 필요했다.
고영직 : 중요한 문제의식을 던져주셨다. 뭔가 가르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컸을 것 같다. 가르치지 않고 참여자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배움의 관점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깊게 고민하다 보니 커리큘럼이나 e-나라도움 시스템 같은 것이 너무 불편한 틀이 되었던 듯하다. 오랫동안 활동한 단체로서 고민이 깊어진 것 같다. 문화기획달은 농촌 지역 여성을 중심으로 활동하시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이유진 : 왜 여성 중심으로 하냐고 물으시는데, 처음이나 지금이나 남자들에게 같이 하자고 해도 남자들이 안 온다.(웃음) 서울에서도 문화예술 소비자나 향유자 대부분이 여성인 것처럼, 지역에도 역시 여성들이 많다. 사실 이 좌담에 초청받고 망설였는데, 우리는 수요자 중심이 아닌 기획자나 창작자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짜고 아이디어를 구한다. 우리가 관심 있고 배우고 싶은 것을 제시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식이다. 처음에 [지글스]라는 잡지를 만들면서 글쓰기로 출발해서 작은 모임들을 가졌었다. ‘지글스’는 ‘지리산에서 글 쓰는 여자들’의 줄임말인데, 여성들의 서사가 기록으로 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잡지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성차별이나 성폭력 경험에 대해 나누게 되었고, 글쓴이들이 우리 마을에도 페미니즘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우리 단체가 여성주의적인 정체성까지 갖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수요자 중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참여자들이 단체의 정체성까지 완전히 바꾸어준 것이다.
우리 마을은 특수한 농촌이다. 귀농인이 전체 인구의 25%를 넘고, 50개 넘는 동아리가 있다. 웬만한 백화점 문화센터보다 배울 게 훨씬 많은 동네다. 그런데 대부분 요가, 명상, 공동체, 생태 등 기존에 우리가 흔히 아는, 느린 삶에 어울리는 프로그램 위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여성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공동체가 자주 모이다보면 여자들은 거기서도 가사노동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계속 수행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젠더 관점이 부재한 문화가 과연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글 쓰는 분들, 프로그램 참여하는 분들과 계속 나누면서 페미니즘 성격을 띤 연극, 미술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 연말에 가장 배우고 싶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대해 설문 조사했는데, 미술이 1등이었다. 3년째 미술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도 늘 대기자가 있을 정도로 수요가 많다. 일상에서 자기를 가꿀 수 있는, 일상과 맞닿아 있는 프로그램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업을 하면 출판물이나 전시와 연계하고 있고, 참여자들이 나중에 기획자나 강사가 될 수 있게 발굴을 많이 했다. 여성들에게 농촌에 없는 일자리를 제공해주니까 거기서 뿌듯함을 느끼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고영직 : 사심 있게 기획했지만, 그것이 참여자의 욕구와 맞았던 것 같다. 지역에서 여성지를 중심으로 활동을 강화하고 심화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역을 잘 읽어내려고 하고 계신 것 같다. 그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잘 된 기획, 망했던 기획도 있었을 것 같다.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들려주시면 좋겠다.

고영직, 김결, 이유진
진정한 배움이 되는 씨앗
김 결 : 저희가 한 프로젝트는 대부분 망했다고 생각한다.(웃음) 성공한 것과 망한 것의 기준은 무엇일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들은 우리와의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과 심층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터뷰를 해보면 아이들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기획 의도)을 정말 잘 알고 있다. 아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듣는데, 그것으로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 있을까? 우리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고, 발아는 여러 조건이 맞아야 되지 않나. 안 될 수도 있고, 지금 안 된다고 우리가 좌절할 것도 아니다. 되게 지치는 일인데도 계속 뿌리고 있다.
이유진 : 저도 잘된 것, 망한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저희 사업은 거의 다 잘되었다. 하는 것마다 우수사례로 뽑히는 편이다. (웃음) 정말 죽기 살기로 일하면서 눈에 보이는 성과도 많이 얻었다. 그런데 망했다기보다 포기했던 것이 아동청소년 프로그램이다. 처음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할 때 마을에서 문화예술 혜택을 덜 받는 집단, 주로 여성과 아동청소년을 만나자고 생각했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2년 했었는데, 주말에 아이들을 돌봐주니까 부모들이 정말 좋아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주말에도 일해야 하니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시골은 한 학년에 10명 내외인데, 지원사업 최소인원 20명을 꼭 채워야 하는 것도 어려웠다. 2년 동안 평가도, 아이들 반응도 나쁘지 않았지만, 여성에 집중하는 단체 고유의 색깔을 가져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모든 주민을 다 아우르는 교육을 하는 것은 우리 역량에 맞지도 않고 다른 단체가 잘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최근에 청소년 대상 단체가 생겨서 저희는 그 단체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결합하고 있다.
고영직 : 미국 에버그린 주립대학 도널드 핀켈(Donald L. Finkel) 교수가 비슷한 고민을 했다. 교사의 가르침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배움, 러닝(learning)에 초점을 둘까 고민하다가 ‘침묵으로 가르치기’라는 말을 한다. 선생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다가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나온 말이다. 진정으로 배움이 되는 ‘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공급자 중심, 기획자나 강사의 일방적인 티칭(teaching)의 관점에서 바라본 프레임이 너무 강하게 작용했다. 특히 지원사업은 꽉 짜여 있다 보니 단체가 활동하는 데 제약이 많다. 그런 와중에도 참여자와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궁금하다.
김 결 : ‘놀다’는 내년에 10년이 된다. 2004년 겨울 중학생들과 영화를 만들어보겠냐는 제안에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래서 영화 만드는 프로그램을 많이 했었다. 영화나 사진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소통’ ‘협업’ 등 미디어 교육 관점에 대한 이야기-바라보기, 나, 너, 우리, 자존감 회복 등이다. 그런데 2~3년 해보니 아이들과 공동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아이들에게 공동으로 만들 영화 아이템을 가져오라고 하면서 제가 검열을 하고 있더라. 대사, 예산 등을 다 정리하고 나면 딱 ‘내 영화’였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주강사를 하면 그 강사의 영화가 나온다. 아이들에게 정말 몹쓸 짓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3,4년 전에 교육의 형태를 바꾸고 ‘여름영화’를 기획했다. ‘여름’이란 ‘열매 맺다’의 뜻이 있다. 아이들이 스케치북을 펼치고 만들고 싶은 영화를 그림으로 그리면, 한 사람당 한 편씩 그대로 영화로 만들 수 있도록 한다.
수요자 중심 교육을 하기에 참여자 20명은 너무 많다. 그래서 여름영화는 딱 여섯 명이다. 7살부터 13살까지 참여했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다. 영화가 대부분 기-승, 또는 기-결로 끝나지만, 아이들이 굳이 여기 와서 기-승-전-결을 배워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배우는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 간에 협업은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실현할 수 있게 돕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를 굉장히 믿는다.

또 다른 나, 가능성을 탐색하기
고영직 : 수요자 중심 문화예술교육을 강조해야만 하는 이유는 우리가 만나는 대상이 연령이나 계층이 서로 다를지라도 ‘한 사람’이고, 문화예술교육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사람과의 ‘연결’이기 때문일 것 같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할 때 가장 부족한 부분, 가장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유진 : 우리 프로그램 참여자 대부분이 30~50대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이다. 이분들과 만나려면 이분들의 남편이나 아이들의 스케줄에 맞춰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아직도 외출통제를 당하는 기혼 여성들이 많다. 여성들은 자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제약이 많고, 농촌은 더 심하다. 그분들이 자립심을 갖고 자기 욕망을 발견하는 것이 저희 교육의 목표이다. 이분들이 내가 지금 살아 있고, 무엇을 원하고, 인간으로 인정받고 지지받는 경험을 하고, 저희 안에서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좋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서로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작년에 문화체육관광부 ‘양성평등 문화상’을 받으면서 상금도 받았다. 그중에 100만 원 정도를 바느질 동아리에 드리고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달거리대 제작을 부탁드렸다. 자기가 창작한 것으로 돈을 번 경험이 처음이었던 분들이 많았다. 내가 물건을, 창작품을 만들고, 그것이 돈이 되고, 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해서 쓰이는 경험을 단체와 주민들이 주고받았던 것이 저희도 기뻤고, 그분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많이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여성의 사회참여를 계속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아도 가까이 사는 여성들의 삶에 서로 기여할 수 있다는 큰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고영직 :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성들에게 우리 사회가 규정한 특정한 시간이 아니라 다른 시간, 욕망대로 살아가는 시간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다른 것을 탐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수요자 중심, 수요자 맞춤이 강조되어야 하는 의미는 자본주의적인 시간이 아니라 다른 시간, 다른 나, 다른 사회와 같은 가능성을 생각하고 탐색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역과 만나야 할 대상을 섬세하게 읽으면서 활동하고 계시는데, 참여자들에게 배움이 되는 순간, 배움이 되는 사건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다. 경험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수요자들의 변화가 느껴지는지 궁금하다.
김 결 : 참여자를 변화의 대상으로 보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지원사업 인터뷰 심사 때도 항상 물어보는 것이 ‘변화가 있나’ 하는 것이다. ‘참여자들이 말이 많아졌다’고 답하면 이상하게 바라봤다. 그때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시간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교육은 장비가 필수적이니까 참여자들에게 장비에 대해 잘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초반에 장비 교육을 마치고 나서, 관계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동네도 돌아다니고 했는데, 마지막 날에 ‘그런데 카메라는 뭘 사야 하나’ 물어보더라. 충격이었다.(웃음) 그래서 이후에는 카메라 사용법을 2분 안에 끝내는 것으로 정했다. 그리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변화하는 것을 찍었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찍고, 다시 돌아오면서 찍고…. 변화의 순간은 찰나다. 거의 마지막 시간이 되었을 때 한 친구가 이야기했다. “제가 며칠 동안 사진을 찍어보니 세상은 다 변하는 것 같아요. 페인트도 벗겨지고, 하늘도 변하고, 선생님 수염도 자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린 그때 목표했던 것을 다 했다고, 끝났다고 생각했다. 변화의 지점을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그 안에서는 싸우기도 하고 화도 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좋았던 순간 몇 개의 지점들이 교집합으로 묶여 기억이 나는 것이다.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 짧은 순간들을 위해서 설계하고 교육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듯이 했었던 것 같다. 변화는 끄트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으로 계속 존재하는 것 같다. 변화라기보다는 같이 성장하는 명쾌한 단어들, 시간들이 촘촘히 생기는 것이다.
고영직 :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 14살 이후에는 더 그렇다. 듣고 싶은 것만 듣다 보면 꼰대가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변하기도 한다. 지원사업에서 자꾸 그런 부분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신 것 같다. 이유진 선생님도 ‘찰나의 순간’을 확인하는 시간들이 있으셨을 것 같다.
각성의 순간, 지지받는 경험
이유진 : 저는 참여자 스스로 어떻게 각성했나 하는 질문으로 이해했고, 그러한 ‘각성’의 순간을 굉장히 많이 목격했던 것 같다. 2016년 페미니즘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불편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2~3년이 지난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남편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함께 고민한다. 그게 가장 큰 변화라면 변화다. 여성들 스스로 자기 검열도 덜하게 되고, 평화라는 이름으로 갈등을 감추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이었나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도시에서처럼 집회나 거리 캠페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창작과정과 결부하다 보니 좀 더 촉촉하게 접근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우선 여성들이 ‘지지받는 경험’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모임에서 서로 잘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지역 자체가 성장이나 배움에 대한 욕구가 많은, 좋은 토양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귀하게 주어진 자유 시간에 참여하는 만큼, 만나면 모든 것을 쏟아붓고 가신다. 사업에 대해서도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시는 참여자들이 많다. 그래서 적극적인 에너지를 받는 편이다. 일상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한 에피소드도 많이 이야기해주신다. 그럴 때 저희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극이 되는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이 꼭 어떤 결과물만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관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사건이 될 수도 있겠다 싶고, 좁은 마을 안에서 가깝게 살다 보니 그 영향력이 더 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정을 보고 있다.
고영직 : 지지받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씀은 오늘 전체 주제와도 딱 부합되는 이야기였다. 그것을 개념화하자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기획자, 주강사, 수강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석하는 공동체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식의 교육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자 중심의 교육에서 가로막는 적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수요자 중심의 문화예술교육을 가로막는 적들은 누구이고,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이야기해주시면 좋겠다.
김 결 : 커리큘럼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프로그램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우리의 태도이고, 격려하고 지지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문화예술교육이 4차 산업혁명, 놀이, 융합, 통섭 등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너무 유행을 쫓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문화예술교육은 단순하게 털어내고 덜어내야 하는데, 자꾸 살을 붙이는 것 같았다. 대상자와 만나는 강사들이 부담을 털어내야 진짜 알맹이들이 보인다. 그런데 정책이 자꾸 더하고 트렌드를 쫓아간다. 서로 격려하고 일상에 틈을 만들어내고 틈 안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자라게 하는, 이 정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정책이나 지원사업은 한 단계 두 단계가 아니라 저 멀리 올라가 있다. 어려운 변수들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움직이게 하다 보니 성장이 아닌 난해한 조건들을 던지는 것 같다. 누굴 만나야 할지 고민할 겨를 없이 자꾸 어렵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고영직 : 우리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어떤 인간을 양성하고자 하는가를 질문해야 하는데, 지금은 정책이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데 욕심이 있는 것 같다.
이유진 : 우리가 만나는 사람 중 대부분이 이주민이다 보니 지원사업 인터뷰에서 항상 받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원주민은요?” 원주민은 70∼80대 어르신들이 대부분인데, 우리는 어르신들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다. 최근에 늘어나고 있는 청년 사업에서는 ‘순수한’ 청년이라는 상(像)이 있는 것 같다. 그 상에 맞는 사람을 지원하겠다는 식으로 수요자를 대상화시켜서 편견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문화예술 정책이나 사업을 만드는 사람들이 국민 개개인의 욕망에 관심이 없어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화예술교육이 마치 복지 시스템의 빈 곳을 대신하는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진정한 창작자-향유자를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또 하나는 정책이나 사업을 만드는 테이블에 청년들, 여성들, 사회적 약자들이 참여하고 결정권을 가져야 다양한 논의들이 오갈 수 있고 그 사람들의 욕망에 맞는 사업들이 발굴될 거라고 생각한다. 수요자의 요구가 정책에 직접 반영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다.
고영직 :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에서 개별성이 간과되었고, 항상 정량적인 평가가 중시되어 왔다. 우리에게는 성장이 아닌 성숙이 필요한데, 프로그램의 질적인 성숙을 어떻게 이뤄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수요자 맞춤형 문화예술교육은 참여자들의 개별성에 주목하는 교육이 이루어질 때 실현 가능할 것이다. 개별 참여자의 다양한 욕망과 결을 읽어내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닌가 싶다. 각 지역에 계신 예술가, 예술단체들에 즐거운 분투가 많아지길 바란다. 오늘은 교육의 본질, 교육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던 것 같다. 가르침이 아닌 배움에 있고, 개별 참여자들의 변화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를 좀 더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얼굴이 있는’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고영직_문학평론가
고영직_문학평론가

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경희대 실천교육센터 운영위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자치와 상상력』『노년 예술 수업』(공저),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공저) 등을 펴냈다.
김결
김결_문화예술 놀다 대표

미디어 교육을 통해 예술교육을 시작했다. 여행프로젝트 ‘길이 나에게 묻다’, 예술프로젝트 ‘잔디버스’ ‘남자학교’ ‘롤링카메라’ 등을 기획했다. 2017년 순천 창작예술촌 총괄 디렉터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경기도 성남에서 도심 속 모험 놀이터 ‘더놀다’를 4년째 운영 하고 있다.
이유진
이유진_문화기획달 활동가

전북 남원 산내면에 있는 여성주의 문화단체 ‘문화기획달’ 활동가이다. 문화기획달은 주로 문화예술교육과 페미니즘 활동을 하면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지역 여성들의 독립잡지 [지글스]를 발간했고, 지역 여성들과 글쓰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 활동, 전시, 공연 등을 진행했다.
사진_장영주(디블리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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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_ 프로젝트 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