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공간 이아에 가려면 꼼짝없이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들을 통과해야 한다. 제주목관아와 관덕정을 중심으로 한 행정기관이 자리 잡아 오랫동안 제주의 중심지였던 그 공간은 이제 낡은 도시, 원도심으로 불린다. 그 곳에는 제주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성당과 교회, 극장이 있고 제주의 중심 상권이었던 동문시장과 한짓골이 자리 잡고 있다. 이름마저 중앙로인 거리를 따라가면 제주의 근대를 지탱해 온 오래된 가게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굽이굽이 역사의 흔적을 묻히고서야 우리는 ‘예술공간 이아’에 도달할 수 있다.
예술공간 이아를 이야기하자면 장소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아’는 조선시대 제주목사를 보좌하던 행정관청의 이름이다.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인 목사가 거주하는 목관아를 상아(上衙)라 부른 데 비해 ‘두 번째 가는 관아’(이아, 貳衙)라 해 낮춰 부른 명칭이다. 지역의 현실을 잘 알지 못하는 목사를 거들어 지역의 덕망 있는 양반이 지역현실에 맞는 정치를 펴는 지방자치기관의 역할을 했던 곳으로, 현재 예술공간 이아의 자리가 바로 그 터다. 1910년 자혜원이 설치된 후에는 제주도립병원, 제주대학병원으로 이름이 변경되면서 제주의료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병원이 2009년 신제주로 이전해 가면서 원도심의 쇠락을 가속화시켰고, 비어있는 건물을 활용해 도시재생을 하려는 노력 끝에 2017년 예술공간 이아가 탄생했다.

  • 제주의 그물기술을 예술로
  • 예술공간 이아
사라지지 않는 가치 ‘모두를 위한’
예술공간 이아의 문화예술교육은 몇 가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생애주기형 교육이다. 사실, 생애주기형 교육이란 말은 이제 너무 흔해서 적용하지 않는 것이 어색할 지경이다. 그러나 보편이 된다고 해서 그 가치가 희석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예술공간 이아에서도 생애주기형 교육은 아동·청소년과 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가 함께 누리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원칙으로 개관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방향이다.
어디서나 교육프로그램은 아이들과 청소년에 포커스가 맞춰지기 마련이다. 예술공간 이아에서도 <만들멍 놀멍, 나의 한라산>을 비롯해 <드로잉으로 놀젠>까지 아동·청소년 프로그램이 많이 배치되었다. 한편으로 청년들의 사회적 관계를 매개하기 위한 소셜다이닝 프로그램 <낭푼이아 : 함께 하는 식탁>을 비롯해 <착한 이미지, 나쁜 이미지, 이상한 이미지> 등 강좌형 프로그램과 <동백꽃 향낭 만들기> 등 체험형 프로그램에 이르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활동들이 이어졌다. 노인들이 자신의 삶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살펴보고 돌아보는 프로그램들도 만들어졌다. 그림과 바느질, 글쓰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내 인생, 이야기 한 귀퉁이>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불로초등학교_어르신놀이터 ‘아! 경했구나!’>로 이어졌다.
전통사회의 지혜가 담긴 업사이클링
둘째, 업사이클링의 가치다. 문화예술교육이 기능교육을 넘어 삶의 문제, 사회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어느 곳이든 환경 문제가 대두되지 않는 지역이 없지만, 제주의 경우에는 한층 심각하다. 원래 섬은 결핍을 그 본질로 한다. 제한된 자원을 얼마나 슬기롭게 운영해 지속가능한 삶을 만들어내느냐가 전통사회가 스스로를 유지하는 기본이었다. 제주도민은 신구간, 돗통시, 수눌음, 궨당 등의 독특한 문화적 형식으로 척박한 삶의 터전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그야말로 급격하게 밀어닥친 도시화의 물결과 개발, 제주를 말 그대로 소비해버리는 방식의 과도한 관광행태는 제주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훼손시키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생태적 인식을 바로잡고 개발사업과 관광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인식이 제주인 사이에서 싹트고 있음은 다행스런 일이다.
예술공간 이아의 교육프로그램 일부는 재활용과 업사이클링을 담고 있다. 바다에 버려지는 어구들을 활용하여 생활예술작품을 만드는 <바다에서 봉가온 보물>과 쓸모를 다한 사물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 악기를 제작하는 <업사이클링 음악단>은 환경문제의 심각함을 일깨우는 동시에 감각의 확장을 꾀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2018년 진행예정인 <제로 웨이스트 패션> 역시 이 연장선상에서 자원낭비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깡통 버스커스>를 통해서는 직접 만든 악기로 연주까지 진행하도록 준비되었다.

  • 동백꽃 향낭 만들기
  • 업사이클링 음악단
생활기술에서 발견한 예술교육
셋째, 제작문화의 활성화다. 전통문화는 스스로 물건을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유란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서 쓰는 능력’이란 말에 크게 동의한다. 어느 새 물건은 마트와 온라인쇼핑몰에서 화폐를 지불하고 구입하는 상품과 동일시되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필요한 물건의 대부분을 스스로 만들어 쓰던 시절은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다. <제주의 그물기술을 예술로>는 그물을 비롯해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직조의 전통을 활용하여 다양한 생활소품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제작문화에 대한 관심은 공간 개관 이전부터 지속되었는데, 써클위빙과 스타돔 등 직조기술을 활용한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에게 제작문화에 대한 관심을 북돋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직조기술은 그물을 짜는 기술과 방법이 동일하다. 제주에는 해녀들이 작업할 때 사용하는 망사리, 아기의 요람으로 사용하는 구덕 등 제주 전통의 제작기술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전통을 되살려 억새 등 자연물을 이용해 빗자루와 같은 소품들을 만드는 과정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18년도에는 코딩교육을 활용해 어린이들이 직접 짠 프로그램으로 드론을 날려보는 경험도 했다. 완결된 제품만을 접하던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조작해 드론을 띄우며 환희에 빠졌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이토록 짜릿하다.
잃어버린 몸의 감각을 찾아서
넷째는 몸의 감각이다. 문명의 진화는 사람들의 몸을 퇴화시켰다. 우리는 이제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걸 어색해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다양하게 활용되었던 감각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채로 무뎌지고 있다. 몸을 또 다른 주제로 두었던 것은 이런 까닭이었다. 아이와 학부모가 함께 몸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익히는 <행복푸리-몸짓학교>를 시작으로 중년 여성들의 애환을 춤으로 풀어내는 <줌마렐라-춤이아>로 이어졌다. 입주작가가 주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몸, 움직임 워크숍> 역시 퍼포먼스를 위한 몸의 감각 깨우기에 집중했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유지되어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몸짓 프로그램 <직장인 ‘興(흥)’신소>가 진행되었다. 무용을 베이스로 하되, 예술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감각을 탐색하는 것을 통해 몸의 가능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시간들이었다.
콜롬비아 ‘몸의 학교’ 창립자인 알바로 레스트레포(관련기사: 몸의 철학으로 도달한 미래의 시간) 는 “내 몸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본능이고 권리이다. 몸은 감각의 원천이자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몸은 그것 자체로 아름답다.”(중앙일보 정현진 기자, “춤으로 50년 내전 상처 치유한 ‘몸의 학교’ 설립자 레스트레포”, 2017.5.24.)고 이야기한다. 콜롬비아에서는 전쟁이 몸의 감각을 앗아갔다면, 우리는 안락한 삶이 몸의 감각을 앗아갔다. 내 몸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스스로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것을 통해 자존감을 확보하는 길이다.

  • 바다에서 봉가온 보물
  • 행복푸리-몸짓학교
도민의 추억과 예술을 품은 공간
예술공간 이아의 공간은 층별로 기능이 부여되어 있다. 지하 1층의 경우 약 80평 규모의 전시장 2개와 연습공간이 들어섰다. 전시장의 절반가량은 기존의 벽면을 보수하거나 덧붙이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어 낯설고도 새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예술공간 이아의 전체 층이 천장의 설비구조를 그대로 노출시킨 것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공간을 걷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지상에서 지하로 들어가는 성큰 구조(지상관통형)는 작은 공연의 무대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4개의 창의교육실과 카페, 자료실 등이 들어선 3층은 교육과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하도록 설계되었다. 야외 테라스가 넓게 배치되어 있어 각종 마켓 등의 행사에 활용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4층은 레지던시 작가들의 창작공간 9실, 아트랩 3실, 영상과 사진 편집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영상편집실 등이 들어섰다. 공간을 방문한 시민들은 예전 병원시절과 현재를 비교하며 회상에 잠기기 일쑤다.
제주에서 가장 큰 병원이었던 만큼 도민들은 저마다 병원과 관련한 추억을 지니고 있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기쁨과 설렘, 사랑하는 누군가 아팠을 때 느꼈던 고통과 슬픔, 무사히 치료를 마쳤을 때의 안도감까지 다양한 경험과 감정의 결이 공간에 남아있다. 누군가는 사람이 죽어나간 무서운 공간이라 하고, 다른 누군가는 사람을 살리는 곳이었다며 그 말을 나지막이 나무라기도 하는 곳. 예술공간 이아는 문화예술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으로 그 시간을 품으려 한다. 이곳은 조선시대 500년 동안 도민들의 민원을 들어주며 생활의 불편을 해결해주던 행정의 공간이었고, 이후 100여 년은 몸이 아프면 찾던 의료시설이었다. 이제 예술공간 이아는 문화예술을 통해 마음을 어루만지고 일상을 즐겁게 만드는 공간으로서 도민과 소통해 나가는 것을 자신의 역할이자 비전으로 삼고 있다.
[관련링크]
예술공간 이아 www.artspaceiaa.kr
사진제공 _ 예술공간 이아
안태호
안태호
협동조합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사단법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활동가를 시작으로 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며,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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