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 피로감을 넘어 위협감마저 느끼는 경험을 일상적으로 겪는다. 그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사회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 스마트폰이 생활 지형을 서서히 바꾸어 온 지 십 년 가까이 되었다. 이제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고도화된 지능정보기술을 기반으로 디지털화, 인공지능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설명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지 체감하기 어렵다. 그 연장선에서 문화예술교육 역시 이러한 변화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해야 할지, 어떤 시도가 의미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질문을 안고 예술, 테크놀로지, 교육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여운승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올해 3월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예술과학융합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연구소에서는 주로 어떤 분야를 다루나?
짐작대로 예술 창작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어떤 역할을 해왔고, 할 수 있을지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곳이다. 특히 음악과 시각예술에 기술이 개입되었을 때 어떤 새로운 변화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다. 대체로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는데, 하나는 특허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전시나 공연을 통해 실제 기술이 어떻게 예술분야에 적용되어 작품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 검증하는 차원의 연구이다. 시작하는 단계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함께 ‘새로운 기술시대에 예술교육을 어떻게 제안할 것인가’, 그리고 ‘새로운 기술요소는 교육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주제로 여러 가지 교육프로그램을 고안하며 계획 중이다.
뮤지션,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기술기반 예술에 접근하게 된 경로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듣는 것뿐 아니라 기타 연주에도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밴드 활동을 했는데, 대학에 진학해 공학을 전공하면서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음악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전업 음악인이 되어 보고자 시도해보기도 했고, 공학적 기술과 지식을 음악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무작정 음향기기 업체를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외국에 유사한 공부를 할 수 있는 학교를 발견하고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뮤지션들과 협업하면서 한동안 기술 지원을 하는 테크니션 역할을 했다. 그 후 작곡가인 지도교수의 작품을 분석하여 시각화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주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 어느 순간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여전히 고민스러운 부분이지만 ‘나를 무엇으로 규정하고 작업에 임할 것인가’라는 자기발견의 과정과 맞닿아있다.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어떤 점을 발견하기를 기대하나?
음악 시각화, 사운드 디자인, 멀티미디어 제작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전 예술작업에서 사람의 손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섬세하고 미묘한 차이나 예술적인 이상 등을 기술적인 도구를 활용해서 구현해볼 수 있다. 예술 창작 과정 안에 기술과 예술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예술은 매체를 필요로 하고, 매체를 다루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며, 매체를 사이에 두고 예술과 기술은 분리될 수 없다. 예술과 기술을 이분해서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에는 물감이나 종이 자체가 놀라운 기술이었던 때도 있었다. 2000년 전에는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고, 200년 전에는 사진으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았으며, 150년 전에는 영화가 그랬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어느 시점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지 기술로 받아들이던 것들이 점진적으로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면 우리는 그것을 예술이라고 말한다. 시차를 두고 따라오는 것일 뿐 모든 기술들이 궁극적으로는 예술 표현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전과 비교해서 그 진행속도가 너무 빨라졌고, 실체가 모호하고 혼재되어 있는 상황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기술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오랜 기간 동안 연구와 창작과정을 통해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관계 변화를 지켜보았을 텐데, 기술발전이 가져온 시대적 변화의 양상은 어떠한가?
첫 번째는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면서 전에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던 일을 지금은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픽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쉽게 사진을 조작할 수 있다거나, 프린터가 보급되어 누구나 인쇄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통신이나 네트워크가 발달되면서 만들어진 성과가 쉽게 공유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든 것을 나와 주위 사람들만 즐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씩 컴퓨터로 대체되어 가는 것, 이 지점이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기술혁명 시대에 예술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 궁금하다. 예술의 정의나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져올 문화예술 전반의 영향력에 대한 견해도 부탁한다.
사람이 예술 창작의 주체이고 오로지 소수의 예술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창작과정을 컴퓨터가 해내는 시대가 왔다. 작곡가로서 컴퓨터를 도구로 생각하고 소리 녹음이나 편집 등을 하는 데에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지만, 만약 컴퓨터가 작곡까지 해버린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작곡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내가 하는 일은 데이터만 넣어주는 작업만 하고 있다면, 나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내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예술의 정의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예술’의 사전적 정의는 ‘휴먼 크리에이티비티(human creativity)’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인간이 빠져버리면, 인간이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면, 예술을 이제 어떻게 정의해야 되는 것인가. 이런 혼란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진이나 영화 등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유사한 논란들이 반복되었다. 사진이 등장하면서 화가 고유의 영역이 침범 받는다고 생각한 당시의 기록들이 많이 있다. 이와 유사하게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예술의 영역에서 비슷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아티스트로서 나는 컴퓨터를 파괴할 것인지, 무시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있다. 결국 더 이상 창의성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 아닌 시대에 우리는 예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며, 예술이 새롭게 정의된다면 예술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될까. 이런 의문들이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고민되는 지점이다.

그러한 변화들이 수용자, 감상자의 문화예술적 경험도 현저하게 바꾸어놓을 것 같다. 예전과 달리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예술적 논쟁 지점들이 발생할 듯하다.
예를 들면 일본의 사이버 가수 ‘하츠네 미쿠: 프로젝트 디바’의 경우처럼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의 결과물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부 사례들이 있다. 컴퓨터와 인간이 동등한 수준에서 경쟁하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아주 높은 레벨에서 대중적으로 팬덤(fandom)을 가지고 있는 작곡가는 그 자체가 문화이자 브랜드이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백화점, 카페, 마트, 엘리베이터 등에서 나오는 배경음악 같은 경우에는 문제가 좀 다르다. 쉽게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배경음악을 제공하는 서비스 업체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그런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게 한다. 그런 영역에서는 저작권에 걸리지 않는 음악을 하루에도 수 만곡씩 써낼 수 있는 컴퓨터를 당해낼 수 없다. 마찬가지로 게임 배경음악도 실시간으로 상황에 맞게 음악을 변화시켜주는 것까지 가능하기에 컴퓨터와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 예들은 그림의 영역에서는 흔히 보는 일러스트, 포스터 배경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부분의 창작물은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것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만약 컴퓨터가 만든 음악에 열광하게 된다면, 작곡의 주체는 컴퓨터가 될지, 컴퓨터의 알고리즘을 만든 프로그래머가 될지. 10년 뒤에 아카데미 작곡가상을 컴퓨터 과학자가 받게 된다면, 예술가와 기술자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들은 꽤 가까운 미래에 발생할 수 있다. 정말 사람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나오면 30, 40년 뒤에는 컴퓨터와 사람 사이에 저작권을 두고 법정다툼이 생길 수도 있는 문제이다.
예술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할 것이라는 예측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을 전망해본다면?
초등학교 때 덧셈 뺄셈 등 계산 훈련을 열심히 했는데, 대학에서는 허무하게도 공학용 계산기를 사용했다. 이처럼 어느 단계 이상에 이르면 생각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단순 작업은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다. 기본적인 습득 과정을 바탕으로 개념을 이해하고 높은 단계에서 사고해나가는 프레임을 예술에도 적용해볼 수 있겠다. 궁극적으로 예술가로서 무언가를 해보려 한다면 초기 단계에서 그림을 그려보고 손으로 만들어보고 곡을 써보기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일정 단계 이상으로 올라가면 다음에는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내 작품을 만들어가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재는 ‘예술에 컴퓨터가 일체 개입되면 안 된다’ ‘도구로서만 사용되어야지 창작에 개입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단계에 있는 듯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창작의 상당 부분을 컴퓨터가 도움을 주는 도구로 사용되고 사람은 더 높은 차원에서 예술작품을 만드는 프레임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을까를 교육하는 것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최근에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코딩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는 듯하다. 문화예술교육 종사자는 무엇을 준비하고 대처해야 할까?
아무리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이 유용하다 해도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경험하고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 예술가로서 기술기반 예술 창작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포기해버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에서는 그런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문화예술 교육자라면 적극적으로 기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최근 컴퓨터공학 교육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컴퓨터 교육을 위한 서비스, 플랫폼, 애플리케이션 등 잘 만들어진 도구들이 무료로 제공되고 있는 데 비해 상대적으로 그런 도구를 예술 창작에 적용해보는 시도는 많지 않다. 당장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쉽게 배울 수 있는 도구를 예술 창작에 적극적으로 적용해보는 일인 것 같다. 한편, 코딩교육에 목적이나 동기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예술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림이 그려지고 움직이는 게 보이면 훨씬 더 반응이 좋고 잘 따라 하니까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예술과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성장 가능성이 많은 어린 학생들에게 가급적 빨리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기술기반 예술작업은 논리적‧구조적 사고방식, 이를테면 알고리즘적 사고를 이용해서 문제해결과 원하는 것을 성취해가는 과정적 접근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예술에 대한 방향이나 접근 방식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이런 부분도 적극적으로 끌어와 학습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일까?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컴퓨터적 사고(computational thinking), 알고리즘적 사고, 논리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컴퓨터를 이용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예술, 테크놀로지, 교육의 경계에서 어떤 접점을 발견했는지 말씀 부탁드린다.
딥러닝(deep learning) 같은 기계학습 기술을 활용해서 음악 정보를 분석하는 등 현업에서 음악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어릴 적부터 음악을 매우 좋아하던 사람들이다. 아무리 컴퓨터 공학을 잘한다 해도 기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런 일을 지속해나가기 힘들다. 그렇게 본다면 기본적으로 예술적 체험을 강조하는 문화예술교육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예술을 좋아하는 마음이 갖추어진 후 재능을 깨닫고 기술을 습득하고 나서야 더 깊은 단계까지 들어설 수 있게 된다. 결론을 맺자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더 높은 차원의 예술 창작의 패러다임을 연구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갈 길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예술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전통적인 예술교육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첨단의 상황에 놓여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참고하고, 인간을 위협하는 기술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예술가로서 인간이 자리매김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볼 기회라고 생각한다.
여운승

여운승

베이시스트,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컴퓨터 음악 연구자이다. 전기공학 학사/석사를 시작으로 미디어아트 석사, 컴퓨터음악 박사학위 취득 후 카이스트에서 교수로 재직하였고, 2014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부/융합 콘텐츠학과 소속 교수로 이화여자대학교 예술과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시청각 예술, 음악 인터페이스, 모바일 미디어, 오디오 신호처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과 소리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으며, 50여 편의 국내외 논문과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의 다양한 공연 및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2017년 하반기, 2018년 상반기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현대예술 다시보기 : 테크놀로지의 활용>에 참여했다.
사진_이재범(pov스튜디오)
 홍은지
홍은지
다양한 공연방식을 고민하고 고안 중인 공연예술 연출가. 얼라이브아츠 코모(alivearts como)에서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순간을 채집하고 그 흔적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팰름시스트>, <카페더로스트>, <벙어리시인> 등을 연출했다.
eufy654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