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교육 현장에서는 통상 교육 주체와 대상이 명확하게 구별되기 마련이다. 부모가 자식을, 선생님이 학생을,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풍경이 익숙하고 당연하다. 그런데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은 조금 다르다. 그곳에서는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수만 가지 해답이 가능하다. 고정된 방법이 아니라 변화와 발견을 추구한다. 때문에 주체가 대상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은 종종 그 한계를 드러낸다. 이는 많은 문화예술교육 강사들이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지난 2월 12일(월), 양평 현대종합연수원에서 열린 2018 상반기 아르떼 아카데미 문화예술교육 강사 연수 “가르침이 아닌 일깨움의 선상에서-사진교육의 새로운 프레임”을 찾았다. 연수명에서부터 ‘가르침’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를 진행한 임종진 달팽이 사진골방 대표(이하 임종진 대표)는 가르침 대신 교감과 믿음을 전제로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대화의 매개로 사진을 제안한다.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함께 일깨우는 교육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안에서 사진의 기능은 무엇일까.
다른 듯, 같은 고민
다소 경직된 모습으로 강의실 앞에 나선 임종진 대표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한겨레신문 사진기자 시절의 경험, NGO 활동가로 떠났던 캄보디아, 치유와 성찰을 위한 사진에 대한 추구. 좌중을 휘어잡는 화려한 언변은 아니었지만, 그 나긋한 목소리가 담백하고 진지했다.

“저는 무언가 권하는 입장으로 왔습니다. 연수생들을 가르치려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어요. ‘우리는 같은 곳을 보고 있다’, ‘내 고민을 나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고민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얘기하고 싶어요.”
– 임종진 대표
프로그램의 꽤 많은 분량이 연수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먼저, 현재의 사진교육을 돌아보기 위한 두 개의 질문이 연수생들에게 주어졌다. 자기 자신의 사진교육의 장점이 무엇인가. 기존 외부 사진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연수생들은 모두 진중하고 성의 있게 답변했으며 흥미롭게 경청했다. 보호관찰소에서 청소년들과 사진수업을 담당하고 있다는 배진경 연수생(예술강사, 2016~2017 부처간사업 주강사)은 사진을 통해 학생들과 즐겁게 어울리는데 자신 있지만, 한정된 시간 내 시각적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에 쫓겼다. 사진예술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민정 연수생(예술강사, 2017~2018 사진분야 예술강사)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사진교육을 추구하지만 대상자에 따라 그 의미만을 쫓기가 어렵다면서, 재미와 의미 사이의 밸런스를 찾고자 했다.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곽예나 연수생(예비교사, 2017 문화도담 참여자)은 미적 완성도를 쫓는 수업에는 자신 있지만, 결과 중심의 수업에 회의를 느꼈다.
연수생들은 자신의 교육관과 목표의식에 대해 분명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교육 방법에 대한 고민과 탐구심을 놓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과 그간 품어왔던 의문을 꺼내 보이는 동시에, 다른 연수생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재차 확인해 나갔다.
“여기에서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접점을 발견했어요. 무엇을 찍을까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는데, 사진에 어떤 의미를 담을지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사진으로 대상자들에게 진정성 있게 접근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에 대한 문제의식이 동일한 것 같아요.”
– 전상혁 연수생(2017~2018 영화분야 장애대상 예술강사)
“사진에 대한 나의 시선과 다른 사람의 시선이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전경주 연수생(2017~2018 사진분야 예술강사 예술강사)

임종진 대표는 연수생들의 다양한 사연과 문제의식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 생각해봐야 할 의미들을 건져 올렸다. 우리가 쫓아야 할 ‘재미’란 무엇일까. 사진교육에 있어서 ‘호기심’은 왜 중요할까. 사진은 기술을 넘어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찍히는 대상에 대한 사진의 ‘폭력성’은 어떻게 상쇄할 수 있을까.
성찰을 위한 사진, 서사를 발견하는 예술강사
대중들에게 가장 친근한 예술 창작 도구를 고르라면, 단연코 사진이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 저장한다.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어플로 색감과 구도를 간단하게 조정한 후, SNS에 올린다. 사진을 본 친구들은 ‘좋아요’를 누르고, 한마디씩 댓글을 단다. 기술이 만들어낸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한 과정이다. ‘창작-유통-감상’에 이르는 예술 행위 전반의 과정이 작은 휴대폰 하나로도 가능해진 셈이다.
“모든 예술의 도구 중에서 사진만큼 즉각적이고 결과 중심적으로 진화한 매체가 없을 겁니다. 그런 접근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사진이 인간의 본성을 확인하는 좋은 도구라는 사실을 얘기하고 싶어요. 사진은 가장 현실적이고, 현재적인 미디어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기 호흡을 더 잘 담을 수 있어요. 창백해진 세상 안에서 따뜻한 인간의 본성을 확인하거나 채우는 도구로 사진을 사용하길 바라는 거죠. 그저 권하는 겁니다.”
– 임종진 대표

모든 연수생들은 사전에 자신의 사진 20장씩을 준비해왔다. 모두 ‘나’를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의 사진들’이었다. 연수생들은 사진을 시간 순서대로 책상 앞에 펼친 후, 그중 3장을 골라, 모둠별로 대화했다. 어머니가 십리 길을 업고 가 찍어주신 흑백의 백일사진, 가장 힘들고 어려웠을 때 가족과 함께 떠났던 여행사진, 언제나 단발이었던 셀카 사진, 첫사랑의 느낌을 간직한 졸업사진 등. 연수생들은 사진을 통해 그곳, 그때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소환했고, 감흥은 이야기가 되어 흘렀다. 임종진 대표는 연수생들에게 사진 안에 증명되어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기록되어 있는 역사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연수생들의 사진을 면면이 살피며 숨어있는 의미를 찾아냈다. 좋아했던 선생님을 향해 기울어져 있는 아이의 몸을 통해 조금이라도 선생님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 했던 간절함을 발견했고, 50년 전, 자신의 어머니와 사진 찍었던 장소를 50년 후, 그대로 찾아가 찍은 사진에서 중년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중년의 딸이 가진 애틋함을 읽었다. 모두 진심으로 마주하고, 주의 깊게 질문했다. 자세히 관찰하고, 정성스럽게 읽어냈다.
내가 어떤 사진을 찍든, 어떤 모습으로 찍히든, 사진은 순간의 박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담는다. 이미지는 결국 ‘서사’를 향해간다. 그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관찰하고 읽어내고 질문하는 일, 임종진 대표가 제안하는 예술 강사의 역할이다.
“한국 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이미지 중심으로 가고 있죠. 사진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이미지만 소비하는 경향이 있고요. ‘자기’를 찾아간다는 것은 곧 서사로 직결됩니다. 사진이 중심에 있지만 결국 자기 살피기, 자기 서사 발견하기에 대한 메시지예요. 그래서 사진뿐 아니라 쓰기나 읽기 등의 방법도 함께 권합니다. 영화, 음악, 미술 작품과 연동할 수도 있죠. 타인의 표현을 유도하고 살피는 사람이라면 궁극적 서사를 위해 질문하고 발견하기를 계속해야 합니다.”
– 임종진 대표
과정이 의미를 만든다
프로그램이 막바지로 향하자, 임종진 대표가 연수생들에게 한 장의 사진을 제시했다. 유진 스미스 (W. Eugene Smith, 미국, 1918∼1978)의 사진 작품이었다. 유진 스미스는 70년대, 화학 공장에서 배출되는 메틸 수은에 중독되어 주민 대부분이 질병, 기형아 출산, 신경 장애를 일으키며 죽어갔던 비극의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해 작품집 『미나마따(Minamata)』를 발표했다. 그중 연수생들이 함께 본 사진은 <목욕하는 도모꼬>였다. 임종진 대표는 일본인도, 아시아인도, 심지어 여성도 아니었던 작가가 어떻게 이 장면을 찍을 수 있었을까, 질문했다. 연수생들은 내가 작가라면 이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상상했다. 눈앞의 사진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있는 ‘과정’에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한 장의 사진 안에서 우리가 진정 발견해야 하는 것은 찍혀있는 대상이 아니다. 대상에 다가가기 위한 소통의 과정이며 대상과 하나가 되는 심리적 동화의 과정이다.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때때로 불편함을 느낀다. 피사체가 된 나는 시선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카메라 너머의 사진가에게 나는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 사진가가 보려 하고 드러내려 하는 관점 앞에, 무력하게 서 있을 뿐이다. 사진교육에 있어서 예술 강사들은 사진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한계를 인지해야 한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욱 치열하게 질문해야 하는 이유다.
임종진 대표가 마지막으로 선보인 이미지는 껍질을 반만 깐 사과를 매일 한 컷씩 3개월 동안 꾸준히 찍은 사진이었다. 사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볼품없이 쪼그라들었고, 카메라의 시선은 그 소멸의 과정을 함께 했다. 똑같은 사과를 길거리에서 봤다면, 아마도 그저 쓰레기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빛을 잃고, 형태를 잃어가는 사과의 변화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그것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는 기술 중심의 시대, 빠르게 진화하는 물질문명에 둘러싸여 있어요. 첨단의 기술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반면 우리는 그 안에서 많은 것을 잃어가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계속되는 것 같아요. 사진기술은 대단히 빠르게 발전하고, 발명되고 있지만, 그것은 의미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디지털카메라로 많은 걸 별생각 없이 찍을 수도 있지만, 깊이 고민하고 느끼고,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한 장의 사진을 찍을 수도 있죠. 사진은 세상을 깊고 오래, 꾸준하고 정밀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인간다운 감정을 발견할 수 있어요.”
– 임종진 대표
임종진 대표는 “잃어버린 동지”를 찾은 듯, 놀랍고 반가운 마음으로 연수생들을 만났다. 그에게 사진은 “사랑”이다.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관계를 살피며, 인간과 세상에 천천히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다. 프로그램 내내 연수생들은 사진 안에서 이야기를 발굴했고, 감정을 교환했으며 의미를 발견했다. 프로그램을 마친 후, 그들은 저마다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무엇도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은 같은 고민을 확인했고 따뜻한 시간을 공유했다. 그 과정이 의미로 피어나길 바란다. 문득, 그들이 만들어갈 서사가 궁금해진다.
“연수생들이 현장에 돌아갔을 때, 대상자들의 좋은 친구로 자기를 재정립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내가 잘하고 있었구나, 확인하며 더 좋은 수업을 위한 고민을 즐기셨으면 합니다. 어디에서나 즐거운 마음으로 지치지 않길 바랍니다.”
– 임종진 대표
<2018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참여수기 공모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교육연수센터는 최근 3년간 연수 참여자를 대상으로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참여수기’ 공모전을 개최합니다.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를 통해 경험한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긍정적인 경험과 변화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응모자격: 최근 3년간(‘16~’18년도) 연수 참여자
* 공모기간: 2018년 2월 19일(월) ~ 3월 16일(금)
* 문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육연수센터 (02-6209-5966, academy@arte.or.kr)
[관련링크] 2018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참여수기 공모전 안내

박유미
박유미_미술작가
설치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매체에 관심이 많은 미술작가. 2013년 개인전 《what a wonderful world》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어린이 예술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여전히 예술로 말하고 예술을 가르치는 작가 겸 강사로 목하 활동 중이다.
gomako198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