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건국 150주년을 맞이한 젊은 국가 캐나다. 이민으로 시작된 역사가 있는 만큼 캐나다 정부는 일찍이 다문화주의를 선언하며 문화적 개방성과 포용성을 확대해 왔다. 이는 캐나다의 교육 과정에도 반영되어, 캐나다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중요한 가치로 배우며 성장한다. 150여 개 국가에서 온 이민자와 난민 및 원주민이 어우러져 영어와 불어를 동등한 국가 공용어로 사용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캐나다의 비결은 바로 그러한 교육에서 나온다. 한편, 캐나다는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할리우드를 선두로 한 미국의 거대한 대중문화에 노출돼 자국의 고유 문화를 지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계속되는 가운데, 캐나다 고유 문화를 소개하고자 하는 취지로 영화예술 교육단체 ‘릴 캐나다(REEL CANADA)’가 2005년에 출범하게 되었다. 학생 및 이민자 관객, 지역 공동체가 각자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학교 및 공동체에서 영화제를 만들어 가는 릴 캐나다의 영화예술 교육의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자.
비영리 캐나다 영화교육단체의 등장
캐나다 넘어 이민자까지 범위 확대
릴 캐나다는 샤론 코더(Sharon Corder)와 잭 블룸(Jack Blum)이 교육 자문단과 캐나다 영화 및 TV 업계 회원들과 함께 설립한 비영리 단체다. 6개의 토론토 지역 고등학교에서 시범으로 캐나다 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첫걸음을 내딛었다. 현재는 캐나다 전국의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이민자 대상의 언어 교육 학교까지 대상 범위를 확대했다. 또한, 지난 2014년부터는 캐나다 국립 영화의 날(National Canadian Film Day)을 선포하고 매년 4월 중 하루 동안 전국의 모든 지역 커뮤니티에서 자국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릴 캐나다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로 진행이 되는데, 이는 프로그램 취지에 공감하는 많은 기관 및 법인이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텔레필름 캐나다(Telefilm Canada)를 비롯한 캐나다 정부 기관에서부터 캐나다 최대 영화 복합상영관 시네플렉스(Cineplex)와 같은 기업은 자국민에게 자국 영화를 지속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릴 캐나다의 뒤에서 자원 지급을 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지원 사업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한다는 점이다. 이는 캐나다의 문화예술 교육단체의 지원 사업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특징이다. 캐나다 정부와 기업은 문화예술교육 관련 프로그램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여, 일 년 단위로, 혹은 일회성으로 진행되는 지원 사업이 아닌 몇 년간의 지속적인 지원 사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전국 고등학생들의 주체적 참여
‘우리 학교의 우리 영화(Our Films in Our Schools)’ 프로그램

  • ‘우리 학교의 우리 영화’ 프로그램 입장시 영화표를 보여주는 학생들
  • 우리 학교의 우리 영화 프로그램 중 관객과의 대화 시간

지난 2005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릴 캐나다의 창립 프로그램 ‘우리 학교의 우리 영화(Our Films in Our Schools)’는 캐나다 전국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영화제를 직접 개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상영할 영화를 선정한 뒤 영화제 포스터를 학교 곳곳에 붙인다. 영화제 당일에는 레드 카펫을 깔고 학교에 게스트로 초청된 상영작의 감독 혹은 배우와 함께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나누며 학생 본인들이 자신들이 개최한 영화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주된 목적이다.
영화제를 개최하고자 하는 학교 교사가 릴 캐나다에 프로그램을 요청하면, 릴 캐나다는 다양한 영화 목록이 담겨 있는 영화 안내서를 학교에 제공한다. 이 영화 안내서에는 교육적 가치와 연령에 따른 이해도를 고려하여 선정한 다양한 영화 목록이 담겨 있는데, 주제 및 장르, 제작 언어 등으로 구분되어 있어 학생들이 쉽게 영화를 선정할 수 있다. 주제의 경우 따돌림, 차별, 환경, 원주민, 성 소수자, 정치, 사회적 갈등, 강인한 여성상 등으로 구분되어 있고, 장르의 경우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인물 전기, 고전, 코미디, 가족 드라마, 음악 및 예술, 스포츠, 역사, 문학 등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이 중에 불어로 제작된 영화도 별도로 제시되어 있다. 중요한 건 모든 영화가 캐나다 자국 영화라는 점이다. 이 영화 선정 과정에서 학생들이 인구 3,000만 명에 불과한 캐나다가 이렇게 다양한 영화를 제작해 왔다는 사실과, 캐나다인의 정체성이 바로 이 다양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다.
릴 캐나다는 교사와의 충분한 상의를 통해 학교 시설과 학생들의 수요에 맞춘 영화제 규모 선정에도 도움을 준다. 큰 규모 행사의 경우 전교생이 함께 모여 오전과 오후에 각각 영화 한 편씩을 관람함으로써 실제 영화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한 학급 내에서만 개최하여 교사와 학생들이 더욱 집중된 분위기로 본인들만의 특색을 살리는 작은 규모의 행사도 있다. 규모 선정 과정에 더해서 릴 캐나다는 해당 규모에 적합한 수업 계획서 및 관련 활동(상영작 포스터 제작 활동, 퀴즈 등)을 제시하여 교사의 실질적 프로그램 운영에도 도움을 준다.
모든 준비가 끝난 영화제 당일에는 익숙했던 체육관, 강당, 그리고 교실이 영화관으로 바뀐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영화표를 배부하고, 학생들은 레드 카펫을 지나 영화관으로 입장한다. 상영이 끝나면 모두 함께 박수를 치고 영화제 게스트가 무대에 나와 학생 관객에게 인사를 한다. 게스트로는 주로 감독이나 배우가 초청된다. 개인 사정으로 게스트가 학교에 방문하지 못할 시, 스크린에 화상 통화로 연결이 되어 학생 관객과 이야기를 나눈다. 관객들은 진지하게 영화에 대한 질문을 게스트에게 던지고, 게스트는 대답을 하거나 역으로 질문을 던지며 토론을 이끌어낸다.
영화제 준비와 개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영화예술의 내적 향유뿐만 아니라 영화의 유통 및 마케팅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이 활동은 학생들에게 관련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향후에도 계속해서 자국 영화를 소비하는 적극적인 관객으로 성장할 잠재성까지 심어 주게 된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자국 영화, 나아가 캐나다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의일 것이다. 우리가 선정한 ‘우리 나라’ 영화를 우리 학교에서 다 함께 관람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 이것이 ‘우리 학교의 우리 영화’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문화 소개 및 정체성 고취
‘웰컴 투 캐나다(Welcome to Canada)’ 프로그램

  • 웰컴 투 캐나다(Welcome to Canada)의 영어 학습자 관객

웰컴 투 캐나다(Welcome to Canada) 프로그램은 ‘우리 학교의 우리 영화’ 프로그램에서 대상 범위를 확장해 이민자와 난민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잠재 캐나다인에게 캐나다 영화를 접하게 함으로써, 언어 습득과 동시에 영화 안에 담긴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0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현재 토론토 시를 중심으로 한 영어 학습자에게 대상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토론토 국제영화제 사무국 소유의 영화관인 TIFF 벨 라이트박스(TIFF Bell Lightbox)에서 열린다.
토론토 지구 교육청(Toronto District School Board)에 등록된 이민자 대상 영어 교육 학교인 링크(LINK·Language Instruction for Newcomers to Canada)에 소속된 학습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관으로 초청되어 영화 감상 후, 상영작 감독 및 배우와 영화 감상에 대한 소감을 나눈다. ‘우리 학교의 우리 영화’ 프로그램의 진행과 비슷한 방식으로 릴 캐나다는 링크의 영어 교사에게 영어 교육에 적합한 영화 목록이 담긴 영화 안내서와 함께 영어 교육 과정과 연계한 수업 계획서를 제공하여 학습자의 학습을 지원한다. 프로그램의 가장 큰 목적은 향후 새롭게 캐나다인으로 유입될 학습자에게 자국 영화 관람을 통해 캐나다의 방대한 지리적, 문화적 다양성을 소개하고 캐나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데 있다.
지역민·국외 캐나다인·국제 관객 모두의 장
캐나다 국립 영화의 날(National Canadian Film Day)

  • 캐나다 국립 영화의 날(National Canadian Film Day) 포스터
  • (왼쪽부터) BC주 빅토리아시의 호텔, 온타리오주 오타와시의 자동차 극장, 알버타주의 캘거리시의 박물관에서의 영화제 이벤트 장면

지난 2014년부터 시작된 하루 동안의 영화제 이벤트로, 특히 올해는 캐나다 건국 기념 150주년과 겹쳐 캐나다 전국 각지뿐만 아니라 캐나다 국외에서도 성대하게 열렸다. 지난 4월 19일에 열린 이 이벤트는 캐나다 국내외 1,844개에 달하는 상영관을 통해 캐나다 각지의 지역민, 국외에 있는 캐나다인, 그리고 캐나다에 관심이 있는 모든 국제 관객에게 캐나다 영화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였다. 캐나다 각지의 지역 도서관, 학교, 의료 시설, 호텔, 자동차 극장, 박물관, 방송국 등에서 지역 커뮤니티의 특색과 주민들의 관심을 고려한 캐나다 영화를 선정하였고 이와 관련된 부대 행사를 개최했다.
한 사례로, 캐나다 원주민(First Nation/Indigenous)과 접할 기회가 적은 도심 지역의 한 도서관에서는 원주민 소년의 실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상영한 후에, 원주민 음악가가 무대에 나와 원주민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관객과 원주민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진행했다. 영화와 음악 예술을 매개로 하여, 관객에게는 원주민의 삶에 대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원주민 예술가들에게는 자신들의 힘겨웠던 삶을 관객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예술을 통한 치유 효과가 발생했던 사례이다. 그 밖에도 다문화 지역을 고려하여 372개의 불어로 만들어진 영화 관련 행사가 개최되었으며, 공용어가 서툰 중국 이민자 관객을 위해 중국어 자막을 입힌 캐나다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이 이벤트는 캐나다 문화의 다양성을 자축하고 캐나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캐나다가 앞으로도 다문화 관용에 힘쓸 것을 전 세계에 알린 성공적인 영화제로 평가되었다.
캐나다 영화예술 교육의 가치추구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다’
올해 13주년을 맞이한 릴 캐나다의 ‘우리 학교의 우리 영화’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전국 각지의 고등학교에서 2,000회 이상 상영되었으며, 약 90만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릴 캐나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디지털 환경의 적극적인 반영과 다른 학교와의 협업을 추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작년부터 시범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원주민과 관련한 캐나다 영화를 관람한 후에, 온라인 학습 공간을 통해 다른 지역 학교와 8주에 걸쳐 원주민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이는 미래의 캐나다 세대가 원주민 역사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고 나아가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교육 활동의 일환이기도 하다. 디지털 강국인 한국에서도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학교 간 협업 프로그램으로, 현지화를 고려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꾸준히 제작하고 있는 인권영화 시리즈나 올해 개봉한 한센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연구 소재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문화와 사용 언어,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관객석에 앉는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같은 느낌을 공유한다. 영화가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같지만 다르고, 또 다르지만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재확인한다. 이것이 영화예술 교육단체 ‘릴 캐나다’, 더 나아가 캐나다의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하는 가치이다.

신일
신일_영화 연출가
일본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일본과 한국에서 방송, 광고, 뮤직비디오, 출판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영상 콘텐츠 제작을 즐겁게 해왔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영화분야 예술강사 활동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 영화를 만들며 문화예술교육에 눈을 떴다. 일본, 한국, 미국에서 각각 독립영화를 제작한 바 있으며 현재는 토론토 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캐나다에서 새로운 영화제작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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