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쇠락한 탄광촌에서 자란 나영이는 첼로를 잡고서 음악치료사를 꿈꾸게 되었다” –
– 꿈을 연주하는 ‘2017 꿈의 오케스트라 합동 공연’… 희망의 하모니 현장을 가다 –
“학교가 끝나면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거나 집에서 TV를 보는 게 문화생활의 전부였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이 탄광 지역에서 악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으니 해보자고 추천해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죠. 첼로의 다양한 음역대가 좋았어요. 베이스의 웅장함부터 높은 음까지 표현되죠. 정선에서 병풍처럼 둘러선 산만 보며 연주하다 예술의전당 무대에 서니 꿈만 같아요.”

  • 10월 18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꿈의 오케스트라 합동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 ‘꿈의 오케스트라 강원권’의 공연 모습
‘꿈의 오케스트라 정선’ 소속 박나영 양(16세)은 18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기 전 양 볼이 상기된 채 인터뷰에 임했다. 예술의전당은 나이를 막론하고 공연하는 모든 이가 긴장하는 무대이다. 악기를 배운 지 이제 5년 된 나영이는 처음 악기를 잡을 때만 해도 5년 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할 줄은 몰랐다.
나영이는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이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지역 사회의 아동․청소년이 기존의 기량 향상 중심 음악교육에서 벗어나 음악적 감수성 함양 중심의 음악 활동을 통해 ‘상호학습’과 ‘협력’을 경험하게 하는 등 다면적 성장을 도모하는 문화예술교육사업이다. 나영이가 속한 ‘꿈의 오케스트라 정선’은 2013년 6월에 폐광 지역 고한·사북·갈래·증산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로 시작해 지금은 더 많은 관내 초‧중‧고생 50여 명이 단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제는 어엿한 선배 단원으로 후배 지도에도 나서고 있는 나영이는 처음 첼로를 잡고 낯선 악기와 처음 배우는 클래식에 싫증을 내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음악치료사를 꿈꿀 정도로 예술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음악을 꾸준히 하다 보니 음악으로 남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음악치료사라는 꿈을 가지기까지 꿈의 오케스트라 활동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하나의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서로를 배려하며 협연하다 보니 교우 관계도 더 좋아지고 예전보다 더 활기찬 성격을 얻게 되었죠. 제가 얻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음악치료사를 꿈꾸게 됐어요.”
주 2회, 왕복 6시간… 아이들을 위해 ‘예술밴’에 오르다
나영이를 지도해온 박종필 ‘꿈의 오케스트라 정선’ 음악감독(한세대 교수)은 5년 차 음악감독이다. 정선은 거주지인 서울에서 차로 달려 3시간 거리이다. 매주 참여해야 하는 음악감독직을 제의받았을 때 결정이 쉽지 않았을 터.
“원래 수도권에서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던 참이라 일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다만 거리가 멀어서 체력적으로 가능하겠나 싶었죠. 보통 점심 먹고 정선으로 출발해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수업하고 서울 오면 새벽에 도착합니다. 이런 일정을 일주일에 2번씩 하니 병도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오게 됩니다. 연습에 집중하는 아이들 눈을 보면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있을까 싶어요.”
박종필 교수는 강단이나 수도권 청소년 수업에서 얻지 못했던 감동과 소통을 ‘꿈의 오케스트라 정선’을 통해 얻고 있다고 말했다.
“더 많은 것들을 아이들과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습니다. 막상 중학교에 올라가면 이곳 아이들도 교육 문제로 악기를 손에서 놓기도 하지요. 때로는 자의가 아닌 다른 이유로 악단을 떠나기도 합니다. 어린 마음에 엉엉 울면서 계속하고 싶다고 하소연 합니다 그럴 때면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 너무 힘들어요. 더 많은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예술교육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꿈의 오케스트라 같은 예술교육은 더 확산될 필요가 있어요. 예술교육의 성과는 전국 꿈의 오케스트라 아이들의 눈빛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곳곳의 선율이 모여 꿈의 오케스트라로 하나 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추진하는 ‘꿈의 오케스트라’는 2010년 전국 8개 거점 기관으로 시작, 2017년 현재까지 전국에서 40개가 운영 중이다. 올해에는 450여 명의 교육 강사들이 2,400여 명의 단원들을 만나고 있다. 올해까지 8년간 단원으로 12,000여 명의 아동․청소년이, 교육 강사로 2,280여 명이 참여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40개 거점기관 대상으로 기관 간 교류 협력 프로그램, 연수 등을 운영하며 각 지역 운영 기관과 교육 강사의 역량 강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또한 합동 공연을 개최하여 연합오케스트라 등 지역 간 교류‧화합하고, 단원들이 다양한 지역의 친구들과 연주하며 성취감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10월 18일에 서울 서초구 더케이아트홀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꿈의 오케스트라 합동 공연’은 다섯 번째 합동 공연으로 전라권, 강원권 연합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전국 9개 지역 700여 명의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다채로운 연주를 펼쳤다.
오후 2시에 시작한 더케이아트홀 공연에서는 ‘꿈의 오케스트라 군포’가 <오 샹젤리제>,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하는 ‘세계음악여행’으로 무대의 막을 올렸다. 이후 군포의 꼬마 작곡가와 `꿈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주고받은 음악 편지를 모티브로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뮤직 레터(Music Letter)’를 선보였다. 펜팔로 곡에 대한 영감을 주고받으며 꼬마 작곡가 김윤아 양이 ‘첫 만남’을 주제로 작곡한 곡을 꿈의 오케스트라 최수빈 양과 교육 강사들이 함께 연주했다.
더케이아트홀 공연은 안동과 원주 오케스트라의 합동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두 오케스트라 단원 96명이 무대를 꽉 채웠다. 연주곡이었던 <아리랑 랩소디>는 아리랑의 구슬픈 감성에 경쾌한 선율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앙상블을 들려줬다. 서로 다른 지역이라 같이 연습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96명의 단원들은 곡만큼 완벽한 하모니를 연출했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조화를 궁리하고, 이끌어주는 상호학습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곳이다. 유독 중고등학생 단원이 많았던 부천 꿈의 오케스트라에서 막내 뻘인 곽현아 양(13세)은 “언니, 오빠들이 친절하게 가르쳐줘 많이 배우고 있고, 실력도 더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해가 기울자 한두 방울 비가 떨어졌다. 더케이아트홀에서의 공연이 마무리되고 저녁 7시 30분부터 예술의전당 세계음악분수광장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이 이어졌다.
예술의전당 공연 개막을 앞두고 꿈의 오케스트라 성북과 오산의 합동 플래시몹 연주가 펼쳐졌다. 오산, 성북의 머리글자를 합친 ‘오성(다섯 개의 별)’을 주제로 다섯 개의 지역공간에서 다섯 개의 꿈을 찾아 나서는 단원들의 도전과 모험을 표현한 플래시몹으로, 오산 오색시장, 성북구 일대를 지나 예술의전당에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플래시몹이 끝나고 예술의전당 로비는 공연을 앞둔 긴장한 단원들과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상기된 아이들은 연신 입을 놀리며 긴장을 떨치려 했지만 시간이 다가올수록 발을 동동 굴리거나 부모님을 붙잡고 하소연하면서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손가락에 붙인 일회용 밴드에서 그들이 땀으로 일궈낸 노력이 그날의 공연을 빛내 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 꼬마 작곡가 김윤아 양(왼쪽)과
    ‘꿈의 오케스트라 군포’ 단원 최수빈 양(오른쪽)
  • ‘꿈의 오케스트라 안동-원주’
    공연 모습(더케이아트홀)
  • ‘꿈의 오케스트라 성북-오산’의
    플래시몹(예술의전당 세계음악분수광장)
  • ‘꿈의 오케스트라 성동-구로’
    공연(예술의전당)
악기는 아이들부터 가정까지 모두 웃게 한다
서울 성동 오케스트라 단원을 자녀로 둔 한 학부모는 “이제 공부에 더 전념했으면 하는데 아이가 오케스트라 활동을 무척 좋아해서 올해도 참여하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전북 익산에서 올라온 학부모는 “맞벌이하느라 애에게 신경을 못 썼는데 이렇게 잘 해줘서 아이에게도, 오케스트라에도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꿈의 오케스트라 정선’의 학부모는 “직장을 쉬기 어려워 못 올 뻔 했는데 우리 아이가 속한 오케스트라가 합동 공연에 처음 참여하니 안 오면 후회될 것 같아 오늘 부랴부랴 다른 학부모들과 버스를 대절해 오게 됐다”고 말했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그렇게 하나하나의 꿈을 모으고 있었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정부 지원으로 무료로 운영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참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한창 놀고 싶은 나이에 일주일에 2번 연습에 참여하고 때때로 지역 공연에도 나서 친구들 노는 걸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공부할 시간을 뺏긴다는 어른들의 눈치도 있다. 그 모든 걸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이겨내고 있다. 등에 멘 악기 가방은 짐이 아니라 삶의 방향과 기쁨이 되고 있다.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성적으로 줄 세워지는 학교에서 경쟁이 아닌 협력과 화합의 기쁨, 배우면서 발전하고 가르치면서 배우는 즐거움.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꿈의 오케스트라를 통해 자신만의 참된 꿈을 그리고 있었다.
합동 공연을 시작으로 오는 11월 10일부터 11일까지 양일간 꿈의 오케스트라와 유사한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사업을 펼치는 국내 유관 기관 및 단체가 모이는 ‘지식공유포럼’이 열린다. 교육진흥원이 국내 공공 오케스트라 교육기관의 철학과 운영 현황을 민간과 공유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였다. 포럼에서는 공공 오케스트라의 교육 모델 및 성과 공유와 더불어 미국 링컨센터 예술교육가 개발연구과정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에릭 부스(Eric Booth)가 발제하기도 한다. 또한 2018년 1월 6일에는 ‘꿈의 오케스트라’ 강원권 연합오케스트라가 강릉올림픽파크에서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를 응원하는 합동 공연을 개최한다.
꿈의 오케스트라에 대한 참여와 문의는 홈페이지(http://orchestrakid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꿈의 오케스트라 익산’ 박성일 음악감독(전주시립교향악단 바이올리니스트) 인터뷰
전국 꿈의 오케스트라 1기로 맏형님 격인 박성일 음악감독을 18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박성일 꿈의 오케스트라 익산 음악감독
Q. 꿈의 오케스트라 익산을 맡은지는 얼마나 됐는지?
A. 2010년 지휘와 바이올린 파트 강사로 참여한 후 곧 음악감독을 맡았고 올해로 8년째다.
Q. 오랫동안 힘든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A. 꿈의 오케스트라를 맡기 전에 다른 청소년 오케스트라도 했었지만 꿈의 오케스트라는 달랐다. 익산에서는 악기 경험이 전혀 없는 아이들 중심으로 단원을 꾸렸다. 장단점이 있는데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참여하니 관심이 높은 편이었다. 아이들이 도중에 포기하게 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아이들과 소통하고 더 열심히 연습했다. 현재 단원이 70여 명인데 대기 인원도 많은 편이다. 7년 지속 활동을 해온 단원도 10% 이상을 차지한다.
Q. 오래 해온 만큼 보람도 많았겠다.
A. 악기를 전혀 모르던 아이들이 음악적으로 성장하여 어느덧 동생들을 이끄는 걸 보자면 그 어떤 것보다 큰 보람을 느낀다. 아이들이 자신의 음악 활동에 만족하고 즐겁게 참여하면 그 또한 내게 보람으로 돌아오더라.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임해준 덕분인지 7년 역사 동안 바이올린 전공자도 나오고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도 3명이나 배출하게 됐다.
Q. 강사들도 힘든 일이 많겠다.
A. 강사도 쉽지가 않다. 현재 11명의 강사가 참여하고 있는데 모두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 더 인내하면서 하는 것 같다. 강사들은 아이들의 성장에서 보람을 느끼지만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본인 스스로도 성장한다. 강사들은 이 부분에서 배우는 게 많다.
Q. 아이들이 보람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A. 아무래도 음악적인 발전을 스스로 느낄 때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첫 연주가 중요하다. 초기에는 혼자서 두어 달 연습만 하는데 처음으로 합주를 하면 오케스트라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전체의 하모니로 채워지는 걸 느끼면 오케스트라 활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
Q.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온 소감과 포부가 있다면?
A. 오케스트라는 가장 적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아이들의 큰 성장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꿈의 오케스트라 같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우리 악단도 아이들과 사회에 도움될 수 있도록 꾸준히 열심히 할 계획이다. 나중에는 지역 내에 잘 자립하여 익산 시립 청소년 오케스트라로 발전하는 것이 목표다. 또, 우리 오케스트라 졸업생이 오케스트라에 돌아와 선생님이 돼주면 좋겠다.

사진 없음
정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