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혼란스럽고 민감한 중고등학교 시기에 강렬한 예술적 충격은 평생을 간다. 그 중에서도 좋은 예술가와 함께 직접 예술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되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르떼365가 찾은 이번 현장은 청소년들의 인생을 관통할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지닌 기대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홍대 공연장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는 현역 아티스트와 음악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이 만나 자작곡으로 음원을 발매한다고 했다. 게다가 이들은 지난 4월부터 동고동락하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워밍업: 음악을 위해 모이다
지난 10월 14일(토) 오후. 경기 군포시에 있는 인생나자 사회적협동조합의 공간에 통합예술단체 다락의 권소정 대표, 서혜윤 예술가, 임지희 예술가가 모였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청소년X예술가 프로그램 <싱어송라이터밴드 마지못해민트초코와 함께하는 앨범발매 프로젝트> 수업을 위해서였다. 본 프로젝트는 홍대 라이브 공연장과 방송에서 왕성히 활동 중인 인디밴드 ‘마지못해민트초코’ 그리고 청소년들이 함께 하는 수업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직접 음악 소재를 찾고, 자신만의 곡을 만들어보는 싱어송라이터밴드 앨범 발매 과정 프로그램으로, 올해 4월부터 11월까지 약 8개월간 진행되고 있다.
마지못해민트초코 멤버 서혜윤 예술가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수업 분위기는 의도적인 결과였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참여한 학생들 속에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격려와 칭찬을 통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만 했어요. 청소년은 주변의 평가에 민감해서 보여 지는 모습에 치중하기 쉬워요. 정작 자기 마음속에 있는 성적, 진로, 사랑 같은 고민의 민낯을 숨기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노래를 만들려면 그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줘야만 해요. 그러려면 예술가와 학생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 이상으로 친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고, 먼저 탁자에 빙 둘러앉아 도란도란 각자의 근황 얘기를 했다. 예술가와 학생들의 대화라기보다는 절친한 친구 사이와 같은 친근함이 느껴지는 대화였다. 그렇게 시작된 일상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연결됐다. 이어 지난 주, 스튜디오에서 처음으로 녹음을 진행한 학생들의 자작곡을 다 함께 경청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진행됐다. 탁자 가운데 놓인 스피커에서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고, 일순간에 수다스럽던 분위기가 진지해 졌다. 어떤 학생은 손바닥을 오므려 귀 뒤에 대어 소리를 모으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눈을 감고 감미로운 R&B 선율에 귀를 기울이며 프로그램에 집중했다.

품평회: 음악을 듣고 말하다
R&B 풍의 음악이 잔잔하게 깔리고 중저음의 남학생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목소리는 가냘프지만 힘이 느껴졌다. ‘가지마’라는 구절이 거듭 반복됐다. 도저히 중학생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떠나려는 연인을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학생들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노래의 주인공이자 작곡, 작사자인 심성보 학생은 쑥스러워하는 기색 없이 음악에 집중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숨죽여 음악을 경청했다. 드디어 마지막 음이 끝나고 커다란 함성과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곡이 끝나기 무섭게 서혜윤 예술가와 임지희 예술가 그리고 학생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쏟아냈다. 수학 시간에서처럼 ‘틀렸어’, ‘맞았어’, ‘정답이야’ 같은 피드백은 없었다. 중간에 왜 이런 가사가 들어갔는지, 어떤 감정으로 곡을 녹여냈는지, 이 구절에는 왜 다른 악기를 썼는지 등의 질의응답 형식으로 자유로운 대화가 오갔다. 예술가들과 학생들의 의견이 한 데 모여 좀 더 슬픈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애잔함을 격렬함으로 재해석해 악기를 더해 재구성했으면 좋겠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곡의 주인공인 심성보 학생도 모두의 의견에 동의하며 품평회를 마무리했다.
서혜윤 예술가는 지난 첫 번째 녹음에서 참여자 모두가 예상을 뛰어넘는 열정을 발휘해 주었다고 했다. “음악은 진정성이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앨범의 알맹이는 학생들의 몫입니다. 저를 포함한 예술가들은 그 음악이 더 근사해지도록 다듬는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죠. 대부분의 학생들이 실용음악을 전공과는 거리가 멀고 곡을 만들거나 부르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요. 하지만 녹음실에서 자기 노래를 부르고 이렇게 곡이 구성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즐거움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이후 점점 노래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점이 제게는 보람입니다.”
이번에는 발랄한 분위기의 곡이 울려 퍼졌다. 섬세하면서도 통통 튀는 목소리가 밝은 멜로디와 함께 어우러졌다. 한 학생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입을 가리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가수 같아!’하는 탄성이 들려왔다. 곡이 무르익을 즈음 여성 보컬에 화답하듯, 남성 보컬이 등장해 ‘반전의 묘미’를 선사했다. 마치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걸그룹, 보이그룹의 듀엣곡을 연상케 했다. 학생들은 저마다 곡이 끝난 뒤 낯간지러우면서도 사랑을 속삭이는 듀엣곡에 대해 ‘케미’*가 최고였다고 극찬했다. 서혜윤 예술가는 ‘가사와 곡의 분위기가 지나칠 정도로 완벽하다’라며 자신의 곡이 탄생한 것처럼 기뻐했다.
*케미: 케미스트리(Chemistry)의 줄임말로, 미디어 속 남녀 주인공이 현실에서도 잘 어울리는 것을 상징하는 신조어다.

마무리: 음악을 느끼다
다음으로 권오준 학생의 자작곡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의 경험담을 녹여냈다고 소개한 권오준 학생의 곡에서는 묵직한 저음들 사이로 현재 자신의 상황을 반영한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괴로웠어 순간들이 차별당했었던 두려웠어 공간들이 혼자가 되어버렸었던 그 날 마냥 힘들기만 했었던 항상 피하고만 싶었던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후회만 남은 나의 삶 일어서 난 시작할래 오늘의 난 변해갈래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잘 견뎌낼거야 꼭 버텨낼거야 잘할 거야 난 그리웠던 추억들이 마음속에 어두운 괴로웠어 그 말들이 말하면 절대 못 할 거란 그 말 마냥 힘들기만 했었던 항상 피하고만 싶었던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후회만 남은 나의 삶 일어서 난 시작할래 오늘의 난 변해갈래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잘 견뎌낼거야 꼭 버텨낼거야 일어서 난 다시 시작할래 오늘의 난 변해갈래 젖혀가는 일상 속에서 잘 나아갈거야 꼭 이뤄낼거야 잘할 거야 난 할 수 있어 난

-권오준 학생의 자작곡 中

가식 없이 묵묵히 자신의 상황을 적어 나간 권오준 학생의 자기 고백에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곡이 끝났을 때 힘이 들어간 박수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어른들은 요즘 시대에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혼돈과 방황을 반복하는 청소년들을 그저 엄살떠는 ‘중2병’**으로만 치부한다. 권오준 학생의 진솔한 가사와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음성은 또래 친구들에게 더 나아가 이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심심한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중2병: 중학교 2학년 나이 또래의 청소년들이 사춘기 자아 형성 과정에서 겪는 혼란이나 불만과 같은 심리적 상태, 또는 그로 말미암은 반항과 일탈 행위를 일컫는다. ‘남과 다르다’ 또는 ‘남보다 우월하다’ 등의 착각에 빠져 허세를 부리는 사람을 비꼬는 말로도 쓰인다.
이번 프로그램의 최종 결과물은 음원을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발매하는 것인데 그 점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서혜윤 예술가는 말한다.
“또래들이 인터넷을 통해 근사하게 만들어진 자신의 노래를 듣게 된다면 짜릿하지 않을까요? 자작곡을 직접 불러 앨범을 낸다는 것은 프로 가수들에게도 흔한 일은 아니거든요. 그 과정을 직접 경험해 보고 평생 결과를 볼 수 있게 됩니다. 힘든 과정을 잘 버텨내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게 하는 가장 큰 힘이 거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X예술가 단체 곡
우리가 처음 만난 날에 긴장도 했어 설레기도 해 문을 열기 전에 숨을 한 번 내쉬고(후~) 떨리는 맘을 감추고 싶어(센 척도 하지) 낯설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점점 더 기대돼서 빨라지는 두 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한자리에 모여 좋은 감정만 나눠요 모두 좋은 추억만 가져가면 좋겠어 끝이라 하지만 당장 지금 헤어져도 슬퍼하지 말아요 웃으며 떠나요

*11월 중 녹음 예정으로, 일부 가사 내용이 수정될 수 있음.

수업 말미에는 서혜윤 예술가가 작곡한 단체 곡을 함께 들으면서 학생들마다 한 구절씩 직접 작사를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혜윤 예술가의 단체곡 연주 후 한 학생들은 꿈다락 수업이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어 ‘아쉬운 헤어짐’이 떠오른다고 했고, 다른 학생은 ‘따뜻한 이별’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학생들과 예술가들의 의견을 조합한 단체 곡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힘든 일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라는 메시지로 결론지어졌다. 이 메시지는 지난 7개월 동안 음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동고동락하며 행복했던 시간을 반추하는 것이기도 했다.
다음은 현장에 함께한 두 학생들의 인터뷰 내용이다.
심성보 / 궁내중학교 2학년
Q.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청소년수련원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셨다.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의 수업에도 쭉 참여할 생각이다.
Q. 꿈다락 수업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
A. 내가 직접 음악을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내가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고 녹음까지 진행한다. ‘내 음악’이 음원으로 발매가 되고, 공연도 할 수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직접 참여해 나만의 창작물을 만들 수 있는 점이 수업에 계속해서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다.
Q. 꿈다락 수업을 듣기 전과 후의 자신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나?
A. 예전에는 조금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꿈다락 수업에서 음악을 배우고 난 후 감성적으로 변한 것 같다. 긍정적인 변화이다. 가족이나 친구들도 전보다 말도 많아지고 밝아졌다고 한다. 혼자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는 것보다 다 같이 음악에 대해서 몰두하고 만들어내는 매력이 큰 것 같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A. 예고에 진학하고 싶다. 부모님께서는 안정적인 직업을 추천하시지만, 그러기엔 음악이 정말 좋다. 음악 중에서도 R&B 장르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가수는 김조한, 크러쉬 그리고 딘이다. 그중 김조한을 가장 좋아한다. 그들을 롤 모델로 삼고, 음악을 향해 전진해나갈 것이다. 꿈다락 수업을 들으면서 함께 했던 많은 친구들이 중간에 낙오되기도 했지만, 위태롭거나 힘든 상황이 닥쳐와도 끝까지 해내서 성과를 이루고 싶다.
김유진 / 금정중학교 2학년
Q.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접하게 된 계기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만난 것도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였지만 작곡하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당시에도 서혜윤 예술가님이 잘 이끌어주셨다. 그때의 프로그램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올해도 수업에 참여하게 됐다. 서혜윤 예술가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학생들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고, 망설이지 않고 바로 신청을 했다.
Q. 꿈다락 수업을 듣고 난 후의 변화가 있었는지?
피아노가 더 좋아졌다. 피아노 학원을 7년 동안 다니고 있는데, 앞으로의 진로도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다. 서혜윤 예술가님이 도움을 정말 많이 주신다. 이것저것 고민이 많을 때 친구처럼 대화하기도 하고 프로그램에서도 많은 걸 얻어간다. 특히, 피아노를 치면서 작곡을 해나가는 과정이 제일 재미있다. 주로 클래식 곡을 치는 걸 좋아하는데 작곡하는 데 도움을 많이 준다. 고등학교에서도 피아노를 계속 치고 싶다. 부모님께서는 반대하고 계시지만 나름대로 피아노 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프로그램을 통해 실력을 키워서 부모님께 증명해 보이겠다.
청소년들은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청소년x예술가 프로그램>을 동력삼아 예술가라는 멘토와 화합하며 새로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것이다. 음악을 향해 달려 나가는 굳은 심지의 청소년들이 향후 위대한 뮤지션이 되고, 또 그 긍정의 기운을 예비 예술가들에게도 전파하길 기대한다.
2017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청소년X예술가 프로그램
청소년들이 예술가 및 예술단체와 문화예술을 매개로 활동하며 관심분야를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지원하는 사업이다.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서 운영단체가 각자의 창작활동에 기반하여 청소년들과 협업하고 작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링크]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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