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뿔이 달린 하얀 말의 모습을 하고 있는 환상의 동물 유니콘. 유니콘의 뿔에는 사악한 힘을 막고 어떠한 질병도 고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유니콘의 뿔을 손에 넣으려는 사냥꾼이 끊이지 않지만, 영리하고 경계심 많은 유니콘은 웬만한 방법으로는 절대 잡히지 않는다. 그런 유니콘이 유일하게 경계심을 푸는 존재가 있는데, 바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소녀다. 유니콘의 사랑을 받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마음껏 예술을 즐기는 공간, 영국의 ‘유니콘 극장’을 소개한다.

유니콘 극장 전경과 유니콘 모형

영국의 아동청소년연극 분야는 21세기에 들어와 새롭게 발돋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작에 바로 유니콘 극단이 있었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단인 유니콘 극단은 1947년 캐릴 제너(Caryl Jenner)에 의해 설립된 ‘모바일 극단(Mobile Theatre)’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순회공연과 성인들을 위한 공연을 병행했으나 점차 어린이들만을 위한 공연에 주력하면서 ‘유니콘 극단’으로 이름도 바꿨다.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지난 1997년, 유니콘 극단의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토니 그래함(Tony Graham)은 아동 청소년극 전용 극장인 ‘유니콘 극장’ 건립을 추진한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5년여의 준비기간 끝에 유니콘 극장이 문을 연다. 다양한 공연과 워크숍, 행사를 통해 어린이뿐만 아니라 청소년들과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문이 열린 것이다.
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
유니콘 극장은 지역 사회와 연계할 수 있는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공연과 관련한 아동청소년들의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교육팀’이 있다. 해당 팀이 진행하는 관객 참여 프로그램으로는 관련 공연에 대한 숙련된 교육자가 학교에 가서 진행하는 워크숍인 ‘학교 내 워크숍(In-school workshops)’과 공연 후에 진행되는 ‘포스트 쇼 인사이트(Post-show insight)’가 있다. 공연에 대한 정보와 공연 제작팀 인터뷰, 극장 방문 전과 후에 활용할 수 있는 수업 계획안이 담겨진 ‘리소스 팩(Resource packs)’은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교사가 공연을 관람한 후 드라마 요소를 학교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사 전문가 교육과정(CPD: Continuing Professional Development)’과 ‘단기 교사 워크숍’도 운영하고 있어 지역 내 학교의 예술 교육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여름 방학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특별한 워크숍들도 준비되어 있다. 짧게는 4일에서 길게는 몇 주 동안 드라마, 댄스, 인형극 워크숍에 참여하는 워크숍들이다. 수강료를 내야 하지만 아이들이 방학 동안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에는 아쉬움 없는 액수다. 이외, 모래나 종이, 클레이, 인형을 이용한 여름 방학 특별 활동과 무료 클래스들도 열린다.
모든 프로그램들은 폭넓은 연령대의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로 구성되어 있다. 워크숍은 주로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고등학생들이, 특별 활동은 비교적 어린 아이들이 참여한다. 여름동안 진행되는 특별 활동 중 하나인 <인형 수프(Puppet Soup)>는 한국 나이로 8세 이상부터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생후 6~18개월의 유아도 참여할 수 있는 <베이비 쇼(Baby Show)>라는 활동도 있다.

여름 방학 댄스 워크숍과 특별 활동
유니콘 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들도 다양한 연령대의 아동청소년 관객들이 골라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유니콘 극장의 연간 공연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각각의 공연마다 기재되어 있는 XS, S, M, L, XL 라는 표시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옷 사이즈를 구분해 놓은 듯 한눈에 들어오는 이 표시는 공연 관람 적정 연령대를 기재한 것이다. 이는 2~6세의 유아에서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고학년, 그리고 청소년기를 지남에 따라 각기 다른 발달 양상을 보이는 아동청소년들을 위한 맞춤 공연들이다.
유아나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공연으로는 모래와 빛, 음악 등을 이용한 감각적이고 체험적인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고학년으로 가면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나 영문학 최초의 서사시를 극화한 <베오울프> 등 고전을 다루기도 한다. 8명의 뮤지션들이 음악을 통해 청소년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와일드 라이프 FM> 역시 청소년들을 위한 작품이다.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공연이 10시 30분, 11시, 1시 30분 등 낮 시간대에도 공연을 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베이비 쇼>와 <시소> 공연 장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배움 놀이터, 유니콘 극장
유니콘 극장은 모든 연령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즐겁게 예술을 접하며 배울 수 있는 ‘터’라는 점에서 배움 놀이터다. 이러한 장소를 만들기 위해 극장 건물 건축에서부터 공을 들였다. 장장 5년여에 걸친 준비 기간 동안 건축가들과 예술가, 교육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극장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았다. 이 과정에는 극장과 가까운 초등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어린이 자문단도 함께 참여했다. 극장 건축 준비팀의 가장 큰 목적은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면서도 어린이와 청소년, 어른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데에 있다. 아이들이 자라서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유니콘 극장은 다양한 필요에 따라 자유로운 변형이 가능한 6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2개의 극장과 2개의 스튜디오, 컨퍼런스 룸이 있고, 브로콜리 홀은 공연의 내용과 형태에 따라 공연장을 자유롭게 변형시킬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300석을 보유한 대극장인 웬스튼 극장은 원형무대와 반원 모양의 객석으로 되어 있지만 프로시니엄 스타일*로도 변형이 가능하다. 100석 규모의 클로어 스튜디오 극장은 사방 12미터의 정사각형 공간으로 객석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
스튜디오는 교육 활동이나 소규모 리허설, 세미나, 전시 등이 가능한 공간이다. 브로콜리 홀은 휴게 공간이자 만남의 장소로, 건물의 다른 공간들을 연결해주는 중심 공간이기도 하다. 각각의 공간들은 다양한 연령층으로 이루어진 유니콘 극장의 아동청소년 관객들의 필요를 유연하게 채워준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 시기를 지나 어른이 될 때까지 언제든지 극장을 방문할 수 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예술을 배우고, 예술과 친구가 된다.
*프로시니엄 스타일: 사진틀처럼 프로시니엄 아치로 무대 전면의 입구를 구획하고 그 안쪽으로 전개된 무대형식을 말한다. ‘액자무대’ ‘사진틀무대’라고도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극장에서 채택하고 있는 형식으로 17세기에 처음으로 출현했다. 이 무대의 출현은 무대장치에 획기적 진보를 가져오게 했지만, 관객과 무대 사이의 친근감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wikipedia)

웬스튼 극장과 박스 오피스

지금까지 양질의 공연과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자라나는 아이들의 즐거운 예술 배움 놀이터가 되고 있는 영국의 유니콘 극장에 대해 살펴보았다. 1년 내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관람할 수 있는 공연과 프로그램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극장이라니. 신비의 동물 유니콘 만큼이나 환상적인 곳이 아닌가. 특별히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공연들이 이뤄진다는 점이 인상 깊다. 자고 일어나면 쑤욱 커있는 게 아이들 아니던가. 유니콘 극장은 이처럼 금세 자라는 어린이들을 늘 반겨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극장에서의 좋은 추억을 간직한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금 극장을 찾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유니콘 극장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공간으로 튼실히 서있길 바란다. 예술을 경험한 아이들의 마음 안에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동심을 지켜주는 신비한 유니콘의 뿔이 자라길!
참고자료
국립극단, 『아동청소년에게 문화를, 미래를, 돌려주자!』, 국립극단, 2012

김연수
김연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연극 리뷰 및 문화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어린이청소년극과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이 많다.
dustn01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