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경쾌하게 외관을 꾸민 버스가 매해 여름이면 전국 곳곳을 누비며 직접 찾아가는 예술교육을 전한다. 농산어촌 이동형 문화예술교육 ‘움직이는 예술정거장’은 버스나 트럭, 선박 등을 체험공간으로 꾸며 도서 산간이나 농어촌 등 상대적으로 문화적 기반이 취약한 지역을 찾아가, 아동과 어르신을 대상으로 다양한 예술 활동을 즐기고 누리는 기회를 제공한다. 올해는 총 6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그 중 하나인 어반 아츠 프로젝트(Urban arts project)팀의 <좀비 버스터즈 미디어밴드>가 지난 6월 29일 전남 영광에 도착했다. 오전에는 홍농서초등학교 친구들이, 오후에는 초록디딤돌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유월 끝자락의 오후, 좀비 버스터즈의 비밀기지 안으로 초대된 16명의 아이들이 팔을 앞으로 뻗고 손목을 늘어뜨린 ‘좀비자세’를 취하며 한 사람씩 버스에 올랐다.
테마파크 안의 모험 속 주인공이 되어
훈련복을 착용한 예술가가 좀비 버스터즈 대원이 되어 사뭇 비장한 태도로 아이들을 맞는다. 검은 벽에 왕거미와 거미줄, 종이 해골 장식 등이 검은 벽에 걸려 있는 버스 내부는 뭔가 으스스한 분위기이지만 이를 느낄 사이도 없이 대원들은 긴박하고 단호한 어투로 위급한 현재 상황을 설명한다. “서울의 아이들이 좀비가 되어가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구해줄 수 있어. 너희들의 힘이 필요해. 도와줄 수 있겠니, 얘들아?” 아이들은 좀비를 퇴치하기 위한 버스터즈 훈련을 받을 것을 다짐하며 캡틴 대원의 지시를 기다린다.
먼저 깜깜한 버스 안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좀비잡기 게임으로 몸을 풀다가 술래에게 잡힌 친구들은 좀비 분장을 받는다. 우스꽝스럽게 변한 서로의 얼굴을 보며 깔깔 웃어대다 보면 어느새 모두 좀비로 위장하고 훈련받을 준비가 완료된다. 버스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무서운 좀비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영상이 보여 지며 서울의 심각한 상황에 대해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좀비가 되어버린 친구들을 위해 우리의 진심이 담긴 따듯한 가사를 만들고 함께 힘을 모아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좀비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친구들을 사람으로 되돌리자는 것. 미리 제작된 ‘페이크 뉴스’지만 현실과 가상을 살짝살짝 오가며 친구들은 상황 안으로 조금씩 몰입해 들어간다. 이제 좀비를 물리치기 위한 특별한 방법, 나만의 이야기로 직접 가사를 쓰고 함께 노래를 부르기 위한 음악 훈련이 시작된다.
“짧은 수업이지만 잊지 못할 경험이 되기를 바랐다. 먼 곳으로부터 온 버스의 낯설고 밀폐된 공간을 살리고, 재미를 줄 수 있는 좀비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신비로운 테마파크에 놀러온 듯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또한, 아이들에게 친숙한 스마트 기기나, 태블릿 PC를 활용하여 음악적인 활동까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일련의 과정을 만들게 되었다.”

– <좀비 버스터즈 미디어 밴드> 백지현 예술가

이 프로그램은 좀비를 물리치는 훈련과 미션을 통과해 ‘좀비 버스터즈’ 대원이 되어 친구들을 구한다는 임무를 부여함으로써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연스레 이끌어 낸다. 굳이 설명하지 않고 좀비라는 말만 들어도 행동이나 몸짓으로 바로 표현해낼 만큼 친숙한 소재를 통해 역할수행놀이(Role Playing Game)를 하듯, 아이들은 금세 모험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타인이 처한 상황을 내가 체험 가능한 상황으로 대체하여 느껴보는 ‘매직 이프(Magic if)’를 해보는 것이다. ‘만약에…이라면’과 같은 상황의 가정에서 시작되는 이 물음의 마술적인 효과는 창작을 이끌어내는 출발점이 되어 준다. 아이들에게 좀비가 쫓아오고 있다는 상황의 가정은 강한 서사 잠재력으로 작용해 극적 상황 속으로 몰입해 나가도록 돕는다.
마음 담은 노래와 힘을 모은 연주로 하나 된다면
본격적인 음악 활동이 시작되면 예술가와 함께 노래 만들기가 시작된다. 좋은 가사와 멋진 멜로디가 좀비 퇴치를 위한 백신이기 때문에 ‘버스터즈송’을 완성하기 위한 기본훈련 이 시작된다. 몸 풀기, 혀 풀기, 발성훈련을 거쳐 노래 만들기 시간이 되면 ‘꿈 자랑’ 시간을 통해 자신의 꿈을 벽면에 걸린 보드에 적어 함께 읽어 본 후, 참여자가 서로 생각을 보태어 가사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사는 따라 부르기 쉬운 간단한 랩으로 불러본다. 이어서 태블릿 PC의 음악제작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함께 연주하는 법도 배워본다. 미리 세팅된 기기를 앞에 두고 터치하며 순서대로 코드를 연주하는 법을 익힌다. 그리고 모둠과 역할을 나누어 노래와 연주를 함께 맞추며 연습해나간다. 자꾸만 흥얼거리게 되는 단순한 멜로디와 내가 직접 만든 가사로 랩을 하다 보면 목소리는 커지고 연주하는 손길은 분주해진다. 이제 각자의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함께 마음을 담아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위한 작은 연주회를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추억에 남을 수 있는 경험을 주고자 했다. 음악은 기억을 되살리는데 좋은 매개가 된다. 그래서 이 수업에서는 연주를 통해 하나가 되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는 래퍼가 되어 랩을 하고 누군가는 태블릿 PC로 연주를 하고, 기기를 다루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악기를 주어서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한 아이도 빠짐없이 함께 노래하고 연주할 수 있도록 했다.”

– <좀비 버스터즈 미디어 밴드> 전진규 예술가

감각을 일깨우고 확장시키는 과정
어반 아츠 프로젝트팀은 구성원 각자가 해왔던 영상, 뮤지컬, 인디밴드 영역에서의 예술활동 경험을 살려, 다양한 분야의 예술체험을 통해 아이들의 감각을 깨워 새로운 낯선 것에 대한 체험과 자극을 주는 데 주안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참여자 각자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예술적 감각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터뜨려 보고 표현해볼 수 있도록 고무하였다. 일상 속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느꼈을 때 얻는 감흥들이 오래도록 남아, 자극과 영감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경험은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생각에서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 모험과 도전, 수행의 과정들로 쌓여 협업을 통해 결국 하나가 되는 콘서트를 완성해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마침내 마음을 담은 노래와 연주가 좀비를 사라지게 하고 친구들을 구해준다.
“아이들이 단순 체험만이 아니라,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완성된 포맷을 완수해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랐다. 한 단계의 마침표를 찍어야 비로소 그 다음 단계에 대한 또 다른 욕구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수업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짧은 시간이지만 음악활동을 통해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좀비 버스터즈 미디어 밴드> 윤용훈 예술가

<좀비 버스터즈 미디어밴드>는 버스 안에서의 시간이 기본적으로 음악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과정이라는 것을 전제함으로써 아이들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고, 그 과정 속에 배워야 하는 음악활동을 안배해 더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음악 요소를 배우고 그것을 이용해 함께 즐길 수 있는 일련의 과정들이 만들어지면서 교육적 습득과 예술경험의 즐거움이 균형을 잡게 될 때 자신감과 성취감도 뒤따라오게 된다. 마침내 좀비는 사라지고 세상의 평화를 전해들은 아이들은 오늘의 수업 과정이 촬영된 영상을 보며 추억을 나눈다. 그리고 아이들은 예비 대원 자격이 되어 한 사람씩 좀비 버스터즈 배지를 가슴에 달고 버스에서 내린다. 잠깐 머물다 떠나는 버스 안에서의 짧은 경험이 앞으로 아이들의 삶에 즐거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해본다.

 홍은지
홍은지_공연예술 연출가
다양한 공연방식을 고민하고 고안 중인 공연예술 연출가. 얼라이브아츠 코모(alivearts como)에서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순간을 채집하고 그 흔적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팰름시스트>, <카페더로스트>, <벙어리시인> 등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