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는 친절한 책은 아니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책 읽기를 어렵게 만든다. 이 책을 끝까지 읽는 건 성공했지만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면 주저하게 된다.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말하고 있는 건지, 저자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고 설명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이 책에 관해 독자로서 자의적 해석을 거친 뒤 이야기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필자(전현구)는 본래 예술을 창작하는 사람이었지만, 예술을 교육하고 기획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이 책이 주었던 위로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유희하는 인간’ 혹은 ‘놀이하는 인간’으로 해석되는 “호모 루덴스”는 요한 하위징아가 바라보는 문화와 인류의 역사에 대한 시선이다. 인류가 삶을 영위하는 과정과 문화에는 놀이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이 책의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특정시간과 공간·규칙의 ‘놀이의 요소’
호모 루덴스 / 요한 하위징아 / 연암서가 / 2010 / 448쪽 / 13,000원
“문화는 놀이의 형태로 발생했고, 문화는 아주 태초부터 놀이되었다. 생활의 필수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들, 가령 사냥도 원시사회에서는 놀이형태를 취했다. 사회생활에는 생물학적 형태를 벗어나는 놀이 형태가 스며들어가 있었고, 이것이 사회의 가치를 높였다. 사회는 놀이하기를 통하여 생활과 세상을 해석했다.” (본문 107쪽)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사실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논지를 증명하는 과정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 부분은 흥미로운 내용이었고, 필자(전현구)에게 앎의 즐거움을 선물해주었지만 예술교육자로서 강의를 기획하는 일 자체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그중, 요한 하우징아가 정의하는 ‘놀이의 요소’는 수업을 설계하는 기준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수업을 놀이로 인식하는 것이 핵심
요한 하우징아의 놀이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를 지닌다. 첫째, 특정 시간과 특정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둘째, 자유롭게 만들어진 규칙을 따르지만 그 규칙의 적용은 엄격해야 한다. 셋째, 놀이 자체에 목적성이 있어야 하며 일상적이지 않은 긴장감, 즐거움, 의식을 수반하여야 한다.
본래 예술교육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예술가로서의 ‘나’는 자유롭고, 개성적이고, 불규칙적인 요소에 집중하게 된다. 이는 창작자로서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예술교육자’ 혹은 ‘기획자’로 마주하는 학교의 현실과 교육대상으로서의 아이들은 예술 창작이라는 분명한 목적성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예술을 처음 접하거나 뚜렷한 목적성을 갖지 못한 아이들에게 예술을 즐겁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요한 하우징아의 놀이의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아이들에게 적용하면 예술을 ‘배움’이 아니라 ‘놀이’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 안에서 예술이라는 새로운 긴장감을 통해 창작의 목적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놀이장’으로서의 학교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니어처로 사진을 촬영하거나 LED 랜턴으로 라이트 페인팅을 하는 등 다양한 수업도구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아이들이 수업을 놀이로 받아들이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학교와 예술 사이에서 기준 세우기
어떤 면에서 예술 수업을 기획하는 것은 예술 작품을 만들지 않고 생각만 하는 것과 같다. 특정 구상을 예술 작품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들에 봉착하게 되는 것처럼 학교라는 현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면 완벽했던 계획들도 부족한 점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예술교육자로서 분명한 자신만의 기준을 가진다면 현실에서 부딪치게 되는 문제점들을 풀어나갈 수 있다. 요한 하우징아의 『호모 루덴스』는 필자에게 이러한 기준을 제공해준 책이다. 예술교육 기획자로서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호모 루덴스』를 통해 얻은 필자만의 기준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예술교육자에게 있어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은 커다란 짐과 같다. 예술가로서의 이상과 학교라는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쪽을 완전히 배제하고 교육에 임한다고 해도 결국 선택한 짐에 다른 짐의 무게까지 더해진 꼴이 된다. 예술에 분명한 평가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예술교육에도 명료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술가 또는 예술교육자 주관적 기준에 대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기준이 누군가에게는 자유로운 삶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사실 예술교육자에겐 굉장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원대한 포부를 안고 예술교육에 참여하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 무릎을 꿇고 뜻을 접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예술교육을 기획하는 것은 기준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동안 학교라는 현실과 예술이라는 이상 사이에서 즐겁게 놀 수 있도록 기준을 만들어 놓은 다음, 놀이의 장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예술교육을 기획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요한 하우징아의 『호모 루덴스』가, 그리고 필자의 경험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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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로리홀』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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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구_시네버스 교육프로그래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강사이자 영상 교육 포럼 시네버스(cinebus) 교육프로그래머. 영상예술교육 및 통합 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서울문화재단,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