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국 100여 명의 인원이 함께한 ‘평창 아트 드림캠프(PyeongChang Arts Dream Camp)’가 지난 2월 17일,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에서 그 막을 올렸다. 아트 드림캠프는 문화예술 교류를 통해 내년에 열릴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열정과 화합의 올림픽 정신을 확장하기 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이다. 2016년에는 국내 예술가들이 베트남,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말라위를 직접 방문해 예술교육을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각 나라의 학생들이 직접 한국을 찾아 호흡을 맞췄다. 뜨거운 여름 나라에서 멀고 먼 하늘길을 날아 찾아온 겨울 고장 평창. ‘눈, 꽃 피우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평창 아트 드림캠프에 모인 친구들은 어떤 가능성들을 펼쳐 보였을까.
낯섦과 다름의 공존
평창 아트 드림캠프(이하 아트 드림캠프), 그 6박 7일간의 여정을 알리는 개막식을 위해 한데 모인 참여자들의 얼굴에 긴장과 설렘이 떠올랐다. 각국에서 먼 길을 날아온 해외 참여자들을 위한 환영 인사는 평창 진부중학교 학생들이 준비한 공연으로 대신했다. 해외 참여자들도 차례로 나와 자국 언어로 인사하고 자신을 소개 했다. 특히 말라위 참여자들은 특유의 흥이 담뿍 녹아든 노래와 퍼포먼스로 인사를 대신해 환호를 받았다. 참여자들의 인사말 속에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다. 한국에 온 것이 너무 행복하고 꿈만 같다는 참여자도 있었고,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길 바라는 참여자도 있었다. 특히, 평창에 와 처음 본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국에 오는 길’을 주제로 펼쳐진 음식 플레이팅 대결에서는 그들의 흥분과 설렘을 더욱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하얀 눈이 쌓인 아름다운 평창과 5개 나라가 하나가 되는 모습”(베트남), “미지의 세계로 온 낯선 이방인의 모습”(인도네시아), “차갑지만 하늘 위에서 구름풍선을 타고 있는 듯 따뜻한 눈”(콜롬비아)과 “비행기와 태양, 설산 아래 들뜬 얼굴”(말라위)을 하얀 접시 위에 담아냈다. 캠프의 주된 프로그램은 예술 워크숍이었지만 짬짬이 한국 문화와 겨울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됐다. 참여자들은 이런 활동들을 통해 보다 즐겁게 소통했고, 적극적으로 한국을 느꼈다. 특히 궁중떡볶이와 비빔밥을 손수 만들어 나눠먹는 한식체험의 모습은 무척 인상 깊었다. 참여자들은 낯선 식재료 앞에서 냄새를 맡기도 하고, 서툰 젓가락질을 연습하기도 했다. 거대한 함지에 50인분의 비빔밥을 비비기 시작할 때는 너도나도 주걱을 잡겠다고 나섰다.
캠프 내내 참여자들의 옆에는 리에종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아트 드림캠프의 리에종들은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은 참여자들을 위한 통역은 물론 캠프 전반의 운영을 뒷받침했다. 때론 친구처럼, 때론 형, 누나, 언니, 동생처럼, 참여자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 덕분에 참여자들은 서로 웃고 떠들며 점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곳곳에서 같이 셀카(셀프카메라)를 찍고 서로의 말을 배우는 모습이 발견됐다. 캠프가 진행되는 6박 7일 동안 참여자들은 모두 익숙한 시간과 장소, 관계와 분위기에서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것들과 끊임없이 마주했다. 낯섦과 다름의 충돌과 공존, 그리고 그 안에서 싹트는 소통의 장은 아트 드림캠프에서 발견한 가장 큰 가능성이었다.
(위)평창 아트 드림캠프 개막식, 음식 플레이팅 대결, (아래)눈썰매장 체험
생애 첫 눈의 기억
뜨거운 여름 나라에서 온 참여자들에게 눈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평창의 시린 겨울바람도, 피어오르는 하얀 입김도, 오들오들 떨리는 몸의 감각도, 그들은 난생 처음 느꼈다. 동계올림픽 종목 중 하나인 스키 점프대를 구경하고, 온통 눈밭인 스키장에서 눈썰매도 탔다. 눈썰매를 끌고 다져진 눈 위를 오르는 참여자들의 첫걸음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출발과 동시에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온 친구들의 만면에는 눈처럼 하얀 웃음이 피어났다. 여기저기에서 돌고래 소리가 자동으로 터져 나왔다. 밑에서 지켜보는 인솔 강사들과 리에종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가 생애 첫 기억을 마음에 새기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만들었다.
눈을 보고 느끼고 즐긴 참여자들은 팀별 예술교육 워크숍을 통해 그 감흥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 말라위 팀의 음악 워크숍 현장은 자유, 그 자체였다. 말라위 팀의 끼는 그야말로 통제 불능, 예측 불가했다. 워크숍의 진행은 눈에 대한 감상을 먼저 이야기하고 이를 멜로디로, 리듬으로, 몸으로 표현하는 식이었는데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즉흥 공연이 연달아 이어졌다. 한 참여자가 “모래와 달리 눈을 밟으면 발자국이 남는다. 어디든 눈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자신의 감상을 밝히며 퍼커션 하나에 의지해 이를 표현했다. 이어 피아노 선율이 입혀졌고, 코러스까지 얹어졌다. 리드미컬한 표현이 터져 나오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 함께 박수를 치고 흥을 돋우며, 춤을 췄다. 보고도 믿기 힘든 즉흥 공연 앞에서 우리는 모두 순수한 관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콜롬비아 팀의 예술교육 워크숍은 몸의 대화로 진행됐다. 눈의 경험을 함께 나눈 후, 예술강사들과 콜롬비아 참여자들이 원을 그리며 둘러섰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하얀 움직임을 표현하면 이를 다 같이 배웠다. 한 바퀴 돌아, 조용하고 평화롭고 하얗고 차가운 움직임들이 모이니 춤이 되었다. 박자와 대열에 변주를 주며 섬세하게 다듬어나가는 작업에도 신중했다. 인도네시아 팀의 워크숍은 차분하고 조용했다. 참여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눈에 대한 느낌과 인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한국과 겨울, 그리고 눈과의 기억을 담아 인도네시아 전통 염색기법인 바틱(batik)으로 작품을 제작한 후, 수레 조형물에 설치하여 그 표현을 보다 확장할 계획이었다. 워크숍을 진행한 신보슬 큐레이터는 참여자들이 바틱을 그들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고 소개했다. 아트 드림캠프에서의 새로운 경험이 뿌리 깊은 삶의 예술과 만나 어떠한 시너지를 일으킬지, 무척이나 기대됐다.
베트남 팀의 예술교육 워크숍은 개막식에서 환영공연을 펼친 진부 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진행됐다. 화합을 위해 참여자들은 손에 손을 잡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우리’의 덩어리를 몸소 느꼈다. 공연에서 함께 부를 노래의 가사는 ‘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담아 참여자들이 직접 썼다. “눈이 내리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하얀 눈처럼 하얀 웃음이 드리워. 잡은 손을 더 꼭 잡았네~” 베트남 참여자들에게 어떤 생각으로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지 묻자, 노래 가사처럼 눈 내리는 풍경을 직접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며 수줍게 웃었다. 눈과의 첫 만남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풀어내는 참여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눈에 대한 생애 첫 기억은 언제, 어디서였을까. 한참이나 더듬어보지만 희미해져버린 기억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가물가물해져버린 눈과의 첫 만남, 그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팀별 예술교육 워크숍 (위 왼쪽부터 말라위, 콜롬비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함께, 눈, 꽃 피우다
2016년 각국에서 이루어진 아트 드림캠프와 이번 평창 아트 드림캠프와의 가장 큰 차별성은 통합 프로그램에 있다. 베트남 팀은 한국 학생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했고, 콜롬비아 ‘몸의학교’와 5개국의 학생들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작업을 계획했다. 낯선 환경에서 언어도 문화도 다른 친구들과 짧은 시간동안 공동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낯섦과 다름이 만나고 부대끼며 호흡을 맞춰나가는 과정은 아트 드림캠프의 중요한 지향점이었다.
공동 사진 작업은 다양한 통합 프로그램 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끌었다. 전체가 참여하는 공통 작업인 동시에 유일한 개인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 함께하는 친구들의 모습, 머무는 공간을 촬영하고 이를 토대로 이야기를 나눈 후, 이를 각자의 추억이 담긴 사진첩으로 제작할 계획이었다. 아트 드림캠프의 이유정 예술감독은 공통 사진 작업을 ‘나와 너, 우리, 세계에 대한 기억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작업은 외부 대상을 향한 작업이 아니라 자신과의 대화를 위한 작업입니다. 내가 이곳에 왜 왔는가,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나가는 거죠. 참여자들은 자신이 평생 속해 있던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내 의지로, 내 몸으로 직접 한국에 왔잖아요. 그들이 여기에서 ‘나는 세계인이구나.’ 느끼고, 세계인으로서의 보편적인 감성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담을 수 있는 세계가 좀 더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 이유정 평창 아트 드림캠프 예술감독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대성당』에는 자신만의 좁은 공간에 갇혀 타인과 온전히 만나지 못하는 ‘나’가 등장한다. ‘나’는 부인의 손님으로 찾아온 ‘맹인’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만 대화는 계속해서 겉돌기만 한다. 이 때, 맹인이 TV에 나오고 있던 대성당을 함께 그리자고 나에게 제안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했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들을 타고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대성당』 중
아트 드림캠프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손을 마주잡고, 눈을 감고, 하나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생애 첫 기억, 눈과 겨울에 대한 첫 경험, 다른 나라 친구들과의 첫 만남을 공유하며 마음을 열었다. 타인과 소통했고 세계를 만났다. 약 7일간의 짧은 여정은 이제 끝이 났지만 그 끝에서 그들은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이거 정말 대단하군요.”
박유미
박유미
설치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매체에 관심이 많은 미술작가. 2013년 개인전 《what a wonderful world》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어린이 예술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여전히 예술로 말하고 예술을 가르치는 작가 겸 강사로 목하 활동 중이다.
Gomako198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