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문화예술교육이 시작될 때였다. 소소한 개인의 삶 속에 자신만의 태도와 방식을 통해 문화적 자장을 형성하고 있음을 찾아보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우선 문화의집을 이용하는 분들의 가정을 방문하고 그분들을 통해 주변 분들까지 찾아뵈며 각각의 특성을 가진 추억이나 물건들을 수집했다.
아파트에 사시는 어느 할머니는 가장 애지중지하는 것으로 ‘떡시루’를 내놓았다. “이것이 우리 식구들 생일이랑 제삿날을 다 아는 진귀한 것이여.”라는 말씀과 함께 시루의 구입 배경을 말씀하신다. 70년대까지 무겁고 자칫 깨지기 쉬운 옹기 시루를 가지고 있었는데 양은 시루가 나오니 사고 싶으셨단다. 하지만 가계를 책임지는 남편은 돈을 내놓지 않고 그냥 쓰던 것 쓰라고 핀잔만 주더란다. 심상한 당시의 새댁은 ‘두고 봐라’ 하면서 인접 시골의 모심는 일로 일당을 모았단다. 며칠을 허리가 아프게 일했지만 막상 사려고 하니 돈이 부족해서 이왕 마음먹은 김에 저지르기로 하고 머리를 잘라 팔았단다. 그 돈으로 양은 시루를 떡 하니 사가지고 떡을 쪄서 동네에 돌리고 이리저리 빌려주기도 하면서 아껴왔던 것이라 하셨다. 그러니 일반주택에 살다가 이곳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도 차마 버리지 못했고 아직도 방앗간에 맡기지 않고 직접 떡을 하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분의 애지중지하는 시루가 전시장으로 초대될 수 있는 근거였다. 전시 작품의 캡션이 <우리 가족의 생일과 제삿날을 기억하는 시루>로 붙었을 때 그 공명은 여러 사람에게 전율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비슷하게 어느 할아버지는 첫딸을 얻은 해에 워낙 더워서 ‘구렁이 알’ 같은 돈을 꺼내 선풍기를 샀다고 한다. 딸애의 성장과 더불어 가족에게 쾌적함을 선물해준 선풍기는 35년이 지나 에어컨이 나오고 온갖 신제품이 나오더라도 버릴 수 없어 닦고 조이고 기름 치며 오늘까지 사용하신다고 내어놓았다.
  • 상인의 캐리커쳐가 그려진 대인예술시장
  • 《우리 집 살림살이 전》
삶의 풍정 안에서 우리는 작고 사소한 것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희로애락을 느끼고 저마다의 방식을 타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이 낡고 오래된 것이 취득하게 되는 생명력은 주인과의 교감 안에서 생성되고 발전하다 때론 말소되거나 소멸되는 운명을 가진다. 그런 사물이 전시장으로 초대되었을 때 상황은 급격하게 반전된다. 우선은 어찌 저런 평범한 것이 전시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일고, 그 이유를 찾게 되고, 마침내 취득한 정보를 통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한다. 동의는 다시 내게도, 내 집에도, 이런 물건들은 얼마든지 있는데 라면서 가족과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호명해 보기 시작한다.
문화예술교육은 그래왔다. 예술이라고 하면,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루지 못한다면 접근하기 어려운 것, 생활과는 다른 차원이 높은 것, 감식력이 없으면 말하기 힘든 것 등으로 실생활에서 넘어야 할 관문이 너무 높았다. 그런데 예술이 학교를 통해, 일상을 통해 서서히 접근해 오면서 우리는 예술의 갈래를 새롭게 해석하고 교집합을 해보고 스스로의 창조적 열정을 쏟아 보았다. 그러면서 ‘향유자’라는 말을 넘어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생비자(生費者, Prosumer)’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앞서 소개한 광주북구문화의집에서 이뤄진 전시는 단순하게 그 자체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물건에 깃든 얘기를 주고받는 시간이었고, 애지중지하는 물건에 깃든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할머니에서부터 손주까지 함께 찾아오면서 이뤄지는 소통과 공감의 마당은 매우 유용한 자리가 되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리이면서 시대의 간극을 초월하는 토대로서 작동하게 된 것이다.
대인예술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시장 상인들의 억척스러움은 익히 다 아는 것이지만 그분들 또한 문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해종일 좌판에 있어 시민의 밥상을 책임져야 하는 몫이지만, 한편으로는 좋아했던 노래도 그림도 글쓰기도 놓아야 하는 삶이었다. 그런 상인들의 삶을 관찰자의 태도를 넘어 생애사를 들어보고 기록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가게에 버려진 듯 버려지지 않는 칼을 보며 용도를 물으니 “그 칼이 내 남편과 아이들을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시켜준 칼”이라고 말할 때 칼은 생명을 품고 전시장으로 초대되었다. 《나이프 이즈 라이프(knife is Life)》라는 제목을 달고 장어집의 칼, 삼겹살집의 칼, 횟집의 칼, 채소전의 칼, 분식집의 칼, 과일가게의 칼이 각각 의미망을 담은 채 시장의 공감대와 자긍심을 형성했다. 그리고 전시장에 운집한 칼 중에 나의 칼을 찾아 상인들이 걸음 하였고, 손님과 이웃과 자제분들이 함께 칼의 노고를 격려했다. 그 칼을 사용하는 상인들의 분투도 함께.
《나이프 이즈 라이프(knife is Life)》
이런 경험은 문화기획을 하는 나 자신의 생각의 범주를 확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활동하는 영역 안에서 삶이 얼마나 문화적이고 창조적인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일상으로 들어간 문화예술교육은 예술보다 더 예술적인 삶에 천착하며 이 사이를 이어주고 소통하며 공감하는 마당까지 만들어내는 힘을 가졌다. 시장에서 닭을 다듬으시는 함평닭집의 어머니가 제일하고 싶은 예술활동이 그림이었고, 첫 작품이 바로 닭이었다는 사실에서 목이 멜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고필
전고필
문화기획자. 경기대학교 대학원에서 관광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광주북구문화의집 상임이사,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팀장,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 청년사업팀장 등을 역임했다. 2010년과 2014년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 총감독을 맡았고, 올해 다시 대인예술시장 총감독을 맡아 새롭게 힘껏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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