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청소년들의 학부모들은 자녀의 게임 시간으로 걱정이 많다.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모바일게임 이용이 늘면서 남학생들의 주요 문제 거리였던 것이 여학생들도 예외사항이 아니라고들 한다. ‘언제 어디서나’라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개념이 가능한 모바일 문화가 삶의 윤택함과 더불어 게임중독을 더욱 부채질했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게임중독이 비단 어제오늘 일만도 아니며, 청소년만의 문제도 아닌 건 틀림없다. 이러한 게임 중독의 원인과 해결책을 다양하게 내어놓고 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개선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그것의 원인은 다른 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게임 산업 관계자에 따르면 게임은 기본적으로 ‘중독’을 목표로 개발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산업화된 게임에서 어느 정도의 중독은 필연적인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인터넷 또는 모바일 게임에 관한 연구에서는 게임의 정의와 기원을 ‘놀이’ 개념과 연관하여 분석하고 있다. 『한국 게임의 역사』(윤형섭, 북코리아, 2012)에서는 요한 호이징아(Johan Huizinga)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인용하며 유희적 인간으로서 ‘놀이’의 불확실한 결과와 비생산적 활동 등을 언급한다. 이러한 자발적인 행위로서 놀이를 현대사회의 게임과 연장하여 이해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포켓몬고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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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2sj2iQyBTQs
소통과 만남을 주선하는 게임
올해 여름에 게임과 놀이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몇 가지 사건(?) 중 두 가지를 좀 더 자세히 거론해보고자 한다. 그 중 첫 번째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게임, ‘포켓몬고(Pokémon GO)’이다. 게임 이용자들을 컴퓨터 앞이 아닌 야외 공간으로 이동시켰다는 이 게임은 올해 7월 5일에 호주와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미국, 독일, 영국 등에서 출시된 위치기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모바일 게임이다. 증강현실은 현실세계에 가상세계를 합쳐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혼합현실(Mixed Reality, MR)이라고도 한다. 1990년대 개발되어 새로울 것도 없는 이 기술은 심지어 게임으로도 여러 번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이 활개를 친 이유는 게임이 가진 방식이자 내용인 콘텐츠일 것이다. 온라인 게임은 온라인에서만 만나서 가상공간에서 함께 게임을 진행하는데 ‘포켓몬고’는 게임 이용자가 실제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서 함께 게임을 할 수도 있으며, 채집한 포켓몬을 교환할 수도 있다. 이 게임은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혼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상공간에서만 펼쳐지던 게임을 실제공간으로 옮겨놓았으며, 또한 사람들을 만나서 소통하게 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게 하며 새로운 지각체험을 제공하는 ‘포켓몬고’는 만남과 소통의 차원에서 게임을 놀이의 형식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게임메이커가 되어 놀이하며 소통하기
디지털 게임과 현대 미디어아트와의 상호 연관성을 주목하는 《뉴 게임플레이》 전시가 지난 7월부터 내년 2월까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게임의 맥락에서 본 미디어아트’와 ‘게임과 사회’ 등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백남준이 일방향 소통의 대안으로 제시하였던 비디오아트의 개념을 확장하여 놀이와 소통이 가능한 미디어로서 예술과 게임을 조망하고 있다. 초기 첨단매체 환경에서 가장 주목하였던 개념은 상호작용성이었다. 상호작용적이라는 것은 사람과 기술, 사람의 자유로운 소통을 의미하는데, 이것의 가장 최적의 매체는 당연히 게임이다. 《뉴 게임플레이》 전에서는 이러한 상호작용적 게임에서 진정한 소통이 발생되고 있는지를 문제제기 하듯이 예술과 기술, 그리고 놀이와 소통의 개념을 중심으로 다양한 미디어아트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만으로도 다양한 흥미를 제공하지만,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이 전시와 함께 마련된 청소년 대상 교육프로그램 <게임메이커>이다. 이 프로그램은 6개의 전시 섹션 중 ‘게임과 사회’를 중점적으로 관람한 후 게임의 규칙과 과정을 새로이 재구성하여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 등이 반영된 게임 형식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감상한 학생들은 사회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하여 토론한다. 이것의 연장활동으로 그 사회적 문제들을 게임의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구체적인 게임의 규칙과 방법 등을 고민하여 다양한 형식의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퍼포먼스 놀이부터 보드게임, 디지털 게임의 소프트웨어 구성 등 다양한 형식으로 게임을 구성한 학생들은 이전의 수동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참여하여 그 규칙을 따르는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형식으로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변형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뉴 게임플레이》 전시 교육프로그램 <게임메이커>
[사진제공] 백남준아트센터
첨단 기술 환경 속 청소년들의 놀이와 미적 교육
처음의 문제제기를 상기해보자. 아이돌스타가 CF에 등장할 정도로 산업화된 게임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 이르기까지 그것에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게임 중독은 자발적 주체로서 게임 이용자가 아닌 노예적 차원의 수동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 가능하다. 그러나 놀이는 다르다. 많은 현대 철학자들이 놀이로서 ‘유희’ 개념을 주목하는 데에는 그것이 지니는 자율성에 기인한다.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8세기 독일의 극작가이자 철학자)는 그의 저서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에서 “인간은 유희하는 경우에만 완전하다”라고 하며, 유희를 중심으로 하는 미적 교육을 통해서야 인간의 자율적 상태가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게임 중독에 대하여 많은 원인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궁극적인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산업화된 게임은 인간의 자율성을 저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러에게서 답을 찾아보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유희’ 상태가 가능하게 하는 미적 교육을 통해 현대 첨단 기술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자율적 상태로 존재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최창희
최창희
영은미술관, 예술경영지원센터를 거쳐, 현재 문화예술공동체를 위한 감성정책연구소를 운영하며 예술을 통한 함께 살기에 대한 정책연구 등을 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공미술사업 평가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미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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