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위치한 거원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매주 금요일 점심시간이 끝나면 분주해진다. 5, 6교시는 교실을 이동하여 예술가에게 자신이 선택한 예술수업을 듣는 ‘오늘은 예술학교(Arts Day)’(이하 아트데이) 날이기 때문이다. 아트데이는 매주 하루를 지정해 미술, 음악 등 예술교과와 자유학기 예술활동 시간을 연계하여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반 사항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 시범적으로 서울, 경기, 경남지역 35개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다.
표정이 있는 수업
1학년 4반 교실에서 만난 만화B반 아이들 14명은 책상 배열과 상관없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었다.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 보기 위해 책상을 돌려 앉은 아이, 책상 세 개를 줄지어 붙여 단짝친구들과 모여 앉은 아이 등 제각각 자유롭다. 만화B반 수업을 맡은 박소연 강사는 오늘 수업 주제인 ‘표정 그리기’를 설명하며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화날 때, 슬플 때, 즐거울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
“그럼 표정을 지어보고 눈과 눈썹, 입이 어떤 모양으로 변하는지 서로의 얼굴을 보세요.”
대답이 없던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서로의 얼굴을 관찰한다. “눈썹이 올라가요!” “입이 벌어져요!” 아이들은 저마다 관찰한 친구의 표정을 읽기 시작했다. 연이어 아이들의 종이 위에 각양각색의 슬픈 표정, 화난 표정이 탄생한다. 발표를 시키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은 새로운 표정을 그릴 때마다 자신이 그린 표정을 보며 감상평을 내어놓는다. “비웃는 것 같아요.” “안쓰러워하는 것 같아요.” 이어 강사는 화난 표정을 짓게 된 경위를 물었다. 스토리가 필요한 상황. 큰 기대 없이 아이들의 대답을 기다리던 그 순간, 아이들의 일상과 만나게 되었다. “친구가 잘못 했는데 대신 혼나서요.” “친구한테 배신당해서요.” “지나가다가 축구공에 맞아서 화가 난 거예요.” 코만 그려져 있는 얼굴 모양의 원 안에 표정을 그리는 만화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매일 만나지만, 자세히 본적 없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눈을 맞추고, 자신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5교시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은 없었다. 박소연 강사는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작업을 봐주었다. 마지막 작업은 오늘 아침 등교하면서 지었던 자신의 표정을 넣어 캐릭터 종이 인형을 만드는 것. ‘캐릭터’란 말이 나오자 아이들은 자신의 캐릭터가 아직 없다며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범위를 조금 넓혀 동물이나 다른 캐릭터도 좋다는 말에 다시 잠잠해졌다. 아이들의 입체 종이 인형 도안에는 개구리, 고양이 등 동물부터 머리 앞뒤, 위까지 모두 해골을 그려 넣은 해골 인형까지 다양한 캐릭터가 그려졌다. 집중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트데이 사업은 ‘학생중심’으로 학생의 수요, 관심사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 거원중학교는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몇 가지 예술수업을 선정하고 아이들에게 참가하고 싶은 수업을 3지망까지 받아 최대한 본인이 원하는 예술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좋아하는 웹툰이 나오는 날은 꼭 챙겨본다는 만화B반 유리와 이준이에게 아트데이에 참여한 소감을 물었다.
“<외모지상주의>, <복학왕>, <스피릿 핑거스> 같은 웹툰을 좋아해요. 만화를 좋아하지만 잘 그리지는 못해요. 그런데 전문가 선생님께 직접 배우니까 좀 더 쉽게 그려지는 것 같아요. 친구들도 저도 모두 학교에서 공부 이외에 이렇게 내가 원하는 걸 하니까 이 시간이 기다려져요. 시험도 안 보니까 좋고요.(웃음) 공부할 것도 많고 학원도 다녀야 해서 힘든데 스트레스도 좀 풀리는 것 같아요. 이번 학기만 하면 끝나서 아쉽지만 그래도 없었던 수업이 생긴 거라 한 학기만으로도 만족해요.”
– 박유리 학생
“주로 액션 장르 웹툰을 즐겨 봐요. 좋아하는 작품은 박용제 작가의 <갓 오브 하이스쿨>인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웹툰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따라 그려보고 싶었는데 그리기 너무 어렵고 잘 못 그려서 만화반을 신청했어요. 오늘 ‘표정 그리기’ 수업도 평소에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쉽게 설명해주셔서 재미있었어요. 웹툰 작가가 꿈은 아니지만, 만화는 취미로 계속하고 싶어요. 만화수업도 듣고 있으니 앞으로 틈틈이 그릴 생각이에요.”
– 윤이준 학생
현실보다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수업 내내 모여 앉은 아이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분이 있었다. 바로 만화B반을 맡은 박혜정 교사이다. 박소연 강사와 함께 아이들의 소소한 질문에 대답해 주기도 하고, 작업을 봐주기도 하며 격려해주었다. 거원중학교는 뮤지컬, 연극, 웹툰, 난타, 노래, 디자인 등 총 7개 예술수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각각 담당교사 1명을 매칭하고 전문 강사와 협의하여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박혜정 교사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동아리 활동이 있지만, 운영이나 내용면에서 다른 점이 많다며 비교해 설명해주셨다.
“기존 학교 동아리 활동은 전 학년이 참여하지만 1년에 8회, 많아도 10회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회차에 비해 기간이 너무 길어 연속성을 갖기 어렵죠. 아트데이는 주 1회 수업으로 연속성이 있고 집중되는 면이 있어요. 동아리 활동은 예산문제로 재료비 등 필요한 비용을 아이들이 부담해야 하니까 아이들 입장에서 동아리 선택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아요. 아트데이는 1학년만 참여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제약 없이 선택할 수 있고, 평소 교과과정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예술적인 부분들을 다루는 것도 좋은 점이에요. 아이들에게 아트데이는 자유롭고 편안한 수업이죠. 그래서 자리에 앉는 것도 자유롭게 앉게 하고, 모여앉아 이야기 나누더라도 수업 때처럼 크게 제재하지 않는 편입니다.”
– 박혜정 교사
거원중학교는 2013년부터 자유학기제 시범운영 학교로 지정되어 교과수업 이외에도 우쿨렐레, 바이올린 등의 악기수업과 교사가 직접 진행하는 토론수업 등을 운영해왔다. 올해는 아트데이를 통해 전문 강사가 수업하는 연극, 뮤지컬, 만화 등 더욱 다양한 장르의 예술교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공간, 기자재 등 학교 여건과 아이들의 선호도를 고려해 프로그램을 선정했는데, 만화반의 경우 신청자가 많아 2개 반으로 늘어났다. 거원중학교 아트데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어수정 교사는 아트데이 운영단체와 사전 협의와 워크숍을 진행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예술수업 운영과 학교 일정 공유 등 다양한 논의를 할 수 있었다.
“매년 학교 축제인 <거원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아트데이와 연계해 개최할 계획입니다. 크든 작든 잘했든 못했든, 아이들의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 의미 있는 거죠. 저희 학교에 대한 아트데이 지원이 내년에 계속 될지 알 수 없어 아쉽긴 합니다. 우리 학교는 자유학기제 4년 차로 아이들이 진로교육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있고, 이미 교육과정에 녹여져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진로교육에서는 공연이나 연극 관련 종사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연출가가 되려면 어느 학교를 가야 하는지 등 현실적인 것을 보게 되는데, 아트데이에는 아이들이 직접 연극을 배우고 표현해볼 수 있어요. ‘진로’라는 현실적인 것보다 예술 자체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같습니다.”
– 어수정 교사
아이들에게 양분이 되는 예술교육
수업이 끝난 박소연 강사에게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다. 짧은 답변이었지만 예술교육, 아트데이의 역할과 중요성이 여기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술교육은 창작하는 과정입니다. 아트데이 수업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이 만화를, 예술을 어려워하지 않고 쉽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1학년이라 조금 깊이 들어가면 어려워하는 부분도 있어 수업안을 계속 수정하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선 하나를 그으면서도 물어볼 때가 있어요. 함께 수업하면서 아이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 박소연 강사
자유학기제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꿈과 끼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새로운 제도이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나 기업에 취업하는 것 외에도 세상에는 많은 꿈이 있음을 알게 해주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화B반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는 만화작가가 아닌 다른 장래희망을 가진 이들도 여럿 있었다. 아트데이를 이끄는 교사와 강사의 바람처럼 꿈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모르는 분야나 새로운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감을 가진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주는 예술교육의 역할 중 하나이리라. 오늘의 아트데이가 아이들에게 그러한 양분이 되기를 희망한다.
2016 자유학기제 연계 ‘오늘은 예술학교(Arts Day)’ 시범운영
기존의 예술교과(음악, 미술) 또는 자유학기 활동시간을 연계하여 매주 하루를 ‘아트데이’로 지정, 운영하는 예술활동 지원사업이다. 올해 시범적으로 서울, 경기, 경남 지역 35개 중학교를 선정하여 연극, 뮤지컬, 공예, 사진 등 230개의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집중 운영하고 있다. 학교별 맞춤형 예술 활동 프로그램을 설계, 장르별 예술가 지원, 각 분야 저명 예술가로 구성된 문화예술 명예교사 특별프로그램 및 국립 예술단체 연계 프로그램, 아트데이 참여 학교들의 성과를 공유하는 문화예술축제 등을 지원해 학생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예술체험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해는 학교와 예술단체간 매칭 및 협업을 통해 1개 학교별 7개 이내 프로그램(프로그램별 최대 3시수씩 17주차)을 지원하며, 올해 진행되는 시범운영 결과에 따라 지원 학교를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사진 _ 마루스튜디오
주소진 _ 상상놀이터
주소진 _ 상상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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