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 이후 지난 10년간 우리는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유형의 교육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문화예술교육에 종사하는 강사도 늘어났고, 방과 후 학교는 물론, 지역의 다양한 문화시설, 교육시설 등을 활용한 연계프로그램도 많아졌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양적으로 늘어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질적 성장이나 예술교육 종사자들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2016년 부처 간 협력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경기지역 20개 지역아동센터에서 21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문화예술 NGO 예술과 시민사회’(이하 예술과 시민사회)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의 질적 성장을 위한 노력을 살펴보았다.
예술과 시민사회 ‘2016 부처 간 협력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지역아동센터 현장
기능교육을 넘어 미술을 매개로 한 통합교육으로
예술과 시민사회는 2010년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설립했다.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기존의 학교교육이 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단체의 설립목표였는데, 무엇보다도 기능교육 위주의 학교예술교육, 나아가서는 입시교육의 문제를 넘어서 학습자 스스로 ‘미의식’을 발현시킬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했다. 또한 그동안의 문화예술교육이 기능교육에 머물러 있었던 것에 대해 대학교육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보았다. 강사들 자신이 대학에서 교육받은 장르 중심적‧기능적 교육을 사회에 나와서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미술수업이 기능교육에만 치중하게 되면 타 교과목의 지식과 정보와 분리된 채 고립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예술과 시민사회는 미술을 매개로 하는 통합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했다.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반이 되는 철학이 필요했다. 미국의 STEAM 교육(Science[과학], Technology[기술], Engineering[공학], Art[예술], Mathematics[수학]를 통합한 융합 인재 교육) 과정이나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Reggio-Emilia, 이탈리아 북부 레지오 로마냐 지역 에밀리아 시립 유치원에서 시작되어 양질의 교육과 탁아를 성공적으로 조화시킨 종일제 교육 프로그램), 독일의 발도르프 학교(Waldorf school, 루돌프 슈타이너 교육사상에 기초하여 초‧중‧고교 구분 없이 함께 배우고 익히는 대안학교), 스웨덴의 비트라스쿨(Vittra school, ‘교실, 책상, 의자가 없는 학교에서 적게 가르칠수록 많이 배운다’는 교육철학으로 학생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시키는 혁신학교) 등의 대안교육을 참조했다고 한다. 연구진은 서구의 대안교육을 보면서 각 문화별로 얼마나 다른 교육철학을 적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예술가의 사회적 실천으로부터
예술과 시민사회 오상길 대표는 미술계에서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고, 한때 한원미술관 관장이자 전시기획자로도 활동했으며, 2000년대 중반까지 『비평가들이여 내 칼을 받아라』,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시리즈를 출판하면서 한국미술 비평계에 뜨거운 쟁점을 만들어 냈던 장본인이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가로지르면서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이 대립각을 세우던 시기에 오상길 대표는 한국적 현실을 반영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에 관하여 고민했고, 매체확장적인 소그룹 운동과 북악청년아카데미와 같은 청년대학생들이 함께하는 전문예술가들의 아카데미 운영에도 관여했다. 필자도 대학 시절 그들이 발간한 비평서를 통해서 공부했다. 그는 미술계에 꽤나 영향력 있는 작가이자 비평가였다. 그런 그가 미술을 넘어서 문화예술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매우 낯설어서 어떤 계기와 고민이 있었는지 질문했다.
“그 당시 내 활동은 예술뿐 아니라, 예술가로서 사회적 실천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교육은 지금 현재만이 아니라, 다가오는 세대를 보고 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서양의 근대적 교육철학이 낳은 분과적 분절주의를 넘어서는 ‘통합적인 세계관’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미술을 매개로 하는 융합교육은 교과목을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실험의 첫 단계가 될 것이며, 특히, 초등학교의 교과목들을 통합적 프로그램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런 수업을 개발하려면, 미술가들로만 이루어진 연구진으로는 불가능하고 타 교과목의 선생님들과 공동연구가 필수적이다. 사실, 오랜 시간 연구를 통해서 프로그램을 구상하기는 하지만,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즉흥적으로 ‘미의식’을 발휘하는 것을 통해서 그동안 내가 습득해왔던 현대미술이 매우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급적이면 참여하는 어린이나 학생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 오상길 (대표)

  • 뚝딱뚝딱 비행기 만들기
  • 신나는 퍼레이드
수업의 주도권을 아이들에게
그렇다면 예술과 시민사회가 말하는 타 교과목을 융합한 통합교육이란 무엇일까? 교과목을 통합하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교육프로그램을 구성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했다. 그의 말대로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의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서 학교의 교육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정작 교육의 방법이나 내용, 커리큘럼 등은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술과 시민사회가 만난 일선의 교사들 중에는 교과목을 융합하는 수업이나 특히, 미술과 같은 활동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을 낯설어하는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설정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는 교사가 교육의 내용을 주도하고 아이들은 수업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구조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예술과 시민사회는 제일 먼저, 학습의 주도권을 강사에게서 학생에게로 옮기도록 했다. 수업에서 강사는 아이들의 학습 과정을 지켜보는 관찰자 역할만 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고, 수업의 주도권은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강사는 수업의 목표와 방법론을 세우고 프로그램대로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수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진행자인 것이다.
이들이 기획한 교과 통합 수업의 예는 다양한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손가락으로 물감을 찍어서 종이를 두드리며 하는 <음악과 미술 통합 수업>이나 문학과 연극 그리고 미술을 활용하는 어린왕자와 함께 떠나는 <별이 빛나는 밤에>, 비행기와 로켓을 제작해서 야외에서 퍼레이드를 벌이거나 아이들이 온 몸을 던져서 사계절의 나무를 그리는 대형 벽화제작, 나만의 드림하우스 만들기 등이 있다. 디자인과 건축, 구조역학이 통합된 드림하우스 만들기 같은 수업은 아이들이 함께 협력해야만 하는 공동수업이다.
  • 2016년 교사 교육
  • 학습용 교안
더 많은 아이들에게 더 나은 예술교육을
예술과 시민사회의 교육프로그램은 어떻게 개발되고 일반에 공유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술과 시민사회는 더 많은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교육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애쓰는 사회적기업이다. 지역-계층 간 교육의 편차를 해소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인 만큼, 그들이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은 이미 여러 차례 출판을 통해서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한다. 다만, 프로그램의 운영에 있어서 참여하는 학생들이 매번 달라지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조직적인 관리가 요구된다. 그들은 모든 수업을 계획된 과정대로 진행하고 모든 진행 과정을 동영상으로 기록해서 이후에 수업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그리고 ‘조슈아나무 교육연구소’를 부설하여 강사 교육 및 교육콘텐츠 개발, 학습용 교재 및 교구재 개발을 진행하고, 강사 커뮤니티 카페를 통해서 강사들 상호간에 교육정보를 공유하고 수업이 나선형 식으로 성숙해 갈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있었다.
“올해 지역아동센터 사업에 총17명이 참여하고 있다. 각각의 프로그램이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사들의 연구과정과 자기 스스로 성장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참여 강사들이 연간 13회차 정도의 교육을 받는다. 이러한 과정을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지만, 더 좋은 프로그램을 더 많은 아이들과 나누려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전상민 (연구원)

예술과 시민사회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장점은 시행과정과 교보재 등의 사용 매뉴얼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학습자 중심 예술교육 플랫폼은 교육이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워 매우 이상적으로 보였다. 이는 마치 자크 랑시에르가 『무지한 스승』에서 말한 ‘숲길을 스스로 가도록 하는 스승’에 가까웠다. 하지만 강사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아름다움(예술)은 오로지 그것을 발견하고 느끼는 사람의 몫’으로 열어 놓은 이 숲길은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사와 학습자는 고민할 필요 없이 교구재, 조립설명서, 제작 동영상이나 학습보조 PPT 같은 것들을 통해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기만 하면 늘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예술과 시민사회에서 4년째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정승채 강사는 “개입을 최소화하지만, 아이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해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아동센터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아이들의 에너지도 다르다. 과정상의 문제점과 경험을 공유하고 수업방식을 보완해야 더 나은 수업을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의 가능성을 열고 감성적인 변화를 이끄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학습자에게 ‘숲길’을 지시하면서도 ‘곁길’을 허용하기 위해 매뉴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사의 비전과 노력이라는 뜻일 것이다.
사진제공 _ 문화예술 NGO 예술과 시민사회
백기영
백기영
1969년 강원도 평창 봉평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학사)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미디어 예술(석사)을 전공하였다. 안드레아스 쾌프닉 교수의 마이스터슐러(2002)를 거쳐 귀국 후, 영상미디어 작가로 광주비엔날레(2004, 2008),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05), 공주자연미술비엔날레(2004) 등에 참여하였다. 2006년 광주 의재창작스튜디오 디렉터를 거쳐, 2007년 안산 원곡동에서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를 설립하여 디렉터를 역임했다. 2009년 경기창작센터를 새로 개관하여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2012), 문예지원팀 수석학예사(2014), 북부사무소장(2015) 등의 직책으로 경기문화재단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11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kpei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