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보늬 예술강사를 만나기 위해 ‘문화파출소 강북’을 찾았다. 이곳은 수유6치안센터를 리모델링한 제1호 문화파출소로, 이 지역의 치안기능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의 문화예술 활동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련된 일종의 문화예술 사랑방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 문화보안관으로 상주하고 있는 이보늬 강사는 인터뷰 당일에도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연극수업을 마치고 바람처럼 달려왔다.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지난 11년간의 예술강사 활동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에게는 언제나 ‘사람’이 중심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어 그것을 드러냄으로써 자존감을 되찾고,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 사람 사이의 틈을 발견해 그 틈을 넓혀 더 넓은 곳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예술교육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말하는 그는 ‘문화는 사람이 만든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 주었다.
문화파출소 강북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하다.
지역의 치안센터들이 통폐합되면서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나눔부엌, 다락방, 사랑방 등 친근한 이름의 작은 공간들이 있다. 누구든 이곳에 와서 쉬고, 이웃과 만나고, 재능을 나누고, 또 치안과 관련된 치유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생활밀착형 통합공간이다. 이곳에서 나의 주된 업무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를 지역민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자 역할인데, 앞으로는 이 지역 예술가들과 운영 방향을 함께 논의 할 수 있는 정기적인 모임도 고려하고 있다. 6월 10일 개소식을 하고, 이번 주에는 프로그램을 개강했는데 호응이 좋은 편이다. 프로그램뿐 아니라 지나가던 주민들이 호기심에 들르시기도 하고,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고 싶어 놀러 왔다가 평소에 궁금한 것들을 묻기도 한다. “내가 친구를 한 대 때렸는데 이게 폭행인가요, 아닌가요?” 같은 것들. 그럼 치안센터장님이 대답을 해주신다. 문턱 없이 누구나 쉽게 드나드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예술교육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다. 학교를 다니며 연극을 하고 싶어서 극단 활동을 시작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천안에 있는 교도소 재소자들과 함께 연극을 하게 되었다. 그곳은 만 24세 이하의 청소년들만 있는 곳이었는데, 준비하는 연극 공연에 여자배우로 참여하게 되었다. 극단과 연계해 교육연극을 만들면서 1년에 한 번씩 3년을 가게 되었다. 청소년 재소자들이 연극을 통해 꿈을 키워가고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교육연극단체에 들어가 보조강사부터 시작했다. 그 후 교육연극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을 더 갖게 되었고 공부해 나가다보니 예술강사로 입문하게 되었다.
다양한 연령대와 환경에 있는 수혜자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이야기해 달라.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놀이 형식으로, 고학년은 토론연극 수업을 주로 한다. 또래 관계에서 갈등이 많은 아이들에게는 서로 역할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서 거리감을 좁혀갈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준다. 청소년들과는 공연 제작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서 함께 공연을 만들어간다. 성인들은 대체로 교육연극에 관심이 많은데,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나누면서 토론연극이나 가정드라마 등을 주로 한다. 다문화 청소년들의 경우, 통합예술로 접근한다. 애니메이션, 무용 등 타 분야 선생님들과 함께 대상자들이 이 프로그램 안에서 자기 이야기를 내놓고 자신을 표현하면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통합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회화, 연극, 미디어 등을 연결해서 지역민들과 함께 공동체예술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지금 벽화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집에 살고 계신 분을 인터뷰해서 다큐멘터리 영상물로 제작해보는 것이다. 벽화작업이 끝나면 그곳에서 버스킹 공연도 할 예정이다. 이런 과정을 나 혼자 할 수는 없다. 다른 강사에게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동의해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한정된 예산을 쪼개고 나누는 것을 감수해야 하지만 이런 과정이 훨씬 흥미롭다.
문화예술교육을 준비하면서 기획 방향이나 예상했던 상황들이 막상 현장에서는 다른 상황에 부딪치는 일도 있을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나 힘든 경험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참여자들의 요구를 어디까지 들어주어야 할지, 그 상한선은 어디로 잡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아이들을 만나왔다. 주로 혁신학교 수업을 맡고 있어서 학교로부터 받는 압박보다는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일반학교 수업을 하는 경우에는 또 다른 고민들이 생긴다. 한 반에 주어진 시간 40분이 끝나면 다음 반이 들어오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경우 참여자들과 워밍업을 통해 서서히 관계를 맺으며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은 생략될 수밖에 없다. 기계처럼 아이들을 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원래 하려고 했던 게 이게 맞는지, 왜 이걸 하려고 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또 학교에서 수업결과로 공연을 하길 원하는 경우가 있다. 연극 공연을 하는 것만이 주목적은 아닌데 반드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특히 5분짜리 공연을 요청해오면 당황스럽다. 5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대사 한 줄씩 돌아가면서 하면 끝난다. 그나마 아이들이 만족한다면 다행이지만 부모님이 오셔서 ‘너 왜 대사 한 줄밖에 없었냐’고 물어 아이가 상처받은 적도 있었다. 그럴 땐 누굴 위한 공연인가 싶다. 이런 지점들이 힘들고 고민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일반학교에 갔을 때 당황하고 고민했던 점들을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생각하면서 공부가 되었다. 늘 처음 시도에는 고민이 따른다. 예전에 혁신학교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예술강사로 오신 무용 선생님과 서로 묻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해볼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간 적이 있다. 방학기간에 만나 협업수업을 준비하고 학교에 제안을 했더니 처음에는 힘들겠다는 답변을 주셨다. 하지만 한번 수업을 보시고는 제안을 받아들이셨고 단계를 거치면서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예술강사 수업은 폐강되었는데도 학교 예산을 들여 수업을 열어주었다. 그 때 만난 1학년 아이들이 6학년이 될 때까지 함께 해오다가 졸업도 같이 한 경험이 있다.
문화예술교육을 하다보면 수요자 혹은 참여자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자 스스로 주체가 되는 문화예술교육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참여자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게 만들어가는 과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네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하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존의 방식대로 먼저 제안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면서 조금씩 풀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유와 방임, 통제와 방치 사이에 적절한 선을 찾아 상황에 따라 병행하되, 일방적으로 기능을 전달하거나 베풀기보다는 스스로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술교육을 통한 교육적 효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 마무리할 때가 되면 또래 관계 형성도 좋아지고 자신감이 생겨서 자기표현을 하는데 적극적이 된 아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한 학교에서 제 수업을 보신 담당 선생님께서 처음에는 ‘저게 연극수업이야, 노는 거야?’라고 생각하셨단다. 그런데 어느새 아이들이 공연을 올리고 있는 모습에 놀라워 하셨다. 교과 담당 선생님들은 예술교육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는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거나 자료를 보여드리면서 더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제안한다. 수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주고받는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부분들을 바꾸어주신다. 예술강사는 수업 자체도 중요하지만, 선생님들과 관계 형성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년, 문화예술교육 매개자 해외탐방조사에 참가해서 미국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문화예술 통합분야에 대한 과정에 참여하여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는데, 가장 인상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좀 더 전문적으로 접근하고 싶어 하는 경우, 선생님들은 연계된 단체에 아이를 보내주어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끔 연결해주는 충분한 네트워크가 확보되어 있었다. 우리도 현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여 프로그램을 확장해나갈 수 있는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나고 있는 이주센터 청소년들은 한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인 친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곳에서 친구와 이웃을 만들어가는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교육 참여자들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은 타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것. 연수를 통해 얻게 된 값진 경험이다.
예술강사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경험이 있다면?
파평초등학교에 예술강사 수업을 갔었는데, 한 반에 학생 6명 정도로 인원이 많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5, 6학년 수업을 같이 진행하길 원하시기에, 연극 수업과 교과목 수업을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 드렸다. 먼저 통합수업안과 교과 관련 연구안을 준비해 함께 수업계획을 짜나갔다. 통합수업과 교과수업을 번갈아 진행한 뒤, 쉬는 시간에 함께 평가하고 토론하기를 반복하며 다음 수업을 준비해나갔고, 그렇게 일 년을 계속했다. 나중에 선생님께서 교사연수 교육연극 과정보다 함께 만들고 실행하면서 배우고 느낀 점이 더 많았다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그때의 수업과정 일부분을 활용해 놀이수업을 병행하신다며 연극적인 부분에서 궁금한 점을 의논하신다. 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적극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동료들이나 앞으로 예술강사가 되고자 하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기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워크숍을 찾아다니고 시도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통합과정이 필요하다면 함께 할 수 있는 협력자를 찾아 같이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경험치도 쌓이고 성장해나갈 수 있다. 주어진 조건이나 역할에 한정 짓지 않고 확장해나가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해결되는 지점들이 생긴다. 물론 시간도 없고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투자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짬을 내어 서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특별한 뭔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수다를 떠는 시간도 중요하다. 수다를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서로 나누면서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어디에 목적을 두고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대상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막상 아이들이 재밌어하지 않고 원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땐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먼저 경험하게 해주면 주체성이 살아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이 단계별로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고 그다음에 내가 원하는 것과 결합시키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다음번엔 아이들이 먼저 무엇인가를 원하게 된다. 그러면서 시야도 넓어지고 성취감도 생긴다. 마지막으로 참여자도 즐거워야겠지만 스스로가 행복했으면 한다. 이따금 회의감이 들 때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떨 때 행복한지 한 번씩은 뒤돌아보고 점검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관계’란?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한다. 관계가 잘 형성되면 자유로워지지만 그렇지 못하면 어딘가에 매이고 전전긍긍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걱정하게 된다. 관계가 잘 형성되면 나를 막던 테두리가 사라지면서 앞으로 더 나아갈 수도 있고 안전한 보호막도 생긴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마음을 내려놔야 할 것 같다. 너무 많은 기대를 갖거나, 내가 준 것을 되돌려 받으려 하지 말고. 때로는 내가 완벽하지 않음에 감사할 때가 있다. 내가 잘 못하고 모르기 때문에 관심도 가지게 되고 배울 기회도 생기는 것 아닐까. 완벽하지 않더라도 느슨한 틈이 있어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다. 이곳 문화파출소도 그런 곳이 되었으면 한다. 서로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는, 작지만 큰 공동체의 연결고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보늬
이보늬

2002년부터 배우, 연출로 연극, 뮤지컬, 방송활동을 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천안 충의교도소 교육연극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문화예술교육에 몸담게 되었다. (사)연극놀이터 해마루(2005~2014년), 기린배움터 대안학교(2006년), 광주시립도서관(2008년), 남북어린이어깨동무 ‘공감의 방’(2012년), 안산이주아동청소년센터(2015~2016년), 양평 세월초등학교(2012~2016년) 등 다양한 현장에서 어린이·청소년, 교사, 일반인 등 폭넓은 참여자들과 문화예술교육으로 만나왔다. 장르·분야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전문가들과 네트워킹하며 통합문화예술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현재 문화파출소 강북 문화보안관으로 지역주민들과 문화예술교육으로 만나는 시도도 함께하고 있다.
영상 _ 강장원(미술작가)

홍은지
홍은지
다양한 공연방식을 고민하고 고안 중인 공연예술 연출가. 얼라이브아츠 코모(alivearts co_mo, collecors of moments)에서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순간을 채집하고 그 흔적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벙어리시인> <카페더로스트> <야만적 낭만> 등을 연출했다.
eufy65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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