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예술가들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움직임이 점점 늘고 있다. 예전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면서 활동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것에 주로 집중했다면 이제는 활동범위를 좀 더 넓혀 사회적으로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들의 아이디어를 담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 한해서만 다룰 때도 있지만 여러 장르의 전공자들이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협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은 참여하는 대상들의 창의성이나 감성을 자극하여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모습의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개인의 삶과 사회의 질을 높이는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력 프로그램으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하는 ‘꼬마작곡가(Very Young Composers)’는 선정된 지역기관에서 초등학교 3~6학년을 대상으로 15주 동안 진행된다. 그동안 아이들은 생애 첫 자작곡을 완성하고 극장에서 전문 연주자들이 연주해주는 발표회도 연다. 악기 편성도 6~7개 정도로 작은 규모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특별한 점은 음악을 배운 적 없는 아이도 교육과정 속에 있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경험하면서 강사의 음악적 개입 없이 아이의 순수한 생각만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곡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작곡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작품완성의 성취감도 함께 느낄 수 있다.
  •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프로그램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프로그램
  • 최종발표회
    최종발표회
나를 비춰보는 거울 같은 만남
3년 전, 처음으로 ‘꼬마작곡가’ 강사가 되었을 때, 나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작곡하는 데 필요한 특별한 테크닉이나 긴 연습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곡을 완성해낼 수 있을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뿐만 아니라 강사인 나 자신도 여러 가지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비록 15주 동안의 짧은 과정이지만, 꼬마 작곡가들이 겪게 되는 어떤 현상들은 기존 예술가들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많은 작곡가들 혹은 예술가들이 창작을 할 때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진통을 겪는다.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더 좋은 선율, 리듬 등을 만들기 위해 무척 고심한다. 심한 경우에는 고민을 너무 많이 하다가 창작도 진행되지 않고 완성하기 전에 지쳐버리는 슬픈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를 지켜보면서, 나 역시 곡을 쓸 때 힘들어했던 이유가 이 곡을 듣게 될 누군가가 하게 될 엄격한 평가를 두려워하여 부담감을 느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곡을 너무 못썼다며 자책하는 아이에게 해주었던 여러 가지 위로와 조언들을 나 자신에게 해주면서, 그 뒤로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강사들은 함께 모여서 전체 수업 계획을 상세히 의논한다. 뉴욕 필하모닉에서 제시한 기본 매뉴얼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부족하거나 필요한 과정들을 구상하여 추가한다. 새로운 것을 끈기 있게 생각하여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서는 주변에서 편하게 또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연상되는 소리나 낱말들을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고 곡으로 연결시킨다. 이 때 창의성을 발현하고 감성이 자극받는 것은 비단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강사들도 수업을 진행하면서 함께 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상상해보는 작업들을 통해서 자극을 받고 자신의 작업에서는 어떻게 적용시켜서 시도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작업과정 공유하기, 또 다른 창작 에너지의 발견
곡을 다듬거나 연주자들이 보기 편하도록 악보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아이들과 곡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곡을 쓰면서 힘든 점, 표현하고 싶은 아이디어 등을 듣고 강사로서 조언을 해준다. 나의 창작활동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께 레슨 받는 것 이외에는 –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나는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동료나 가족들에게 작품과 작업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공감하는 것 또한 창작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에너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로는 음악작업을 할 때 구상하는 아이디어나 힘든 점들이 생기면 주변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고 의견을 들어보면서 내 생각의 시야를 좀 더 넓히게 되었다. 사실 많은 예술가들은 이미 자신의 작품, 작업과정이나 고충에 대해 SNS나 인터넷 카페 등에 글을 올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고 반응에 힘을 얻으면서 활동하고 있다.
마지막 15주차에는 꼬마작곡가들이 곡을 완성하고 최종발표회를 연다. 초대되어 온 손님들은 작곡가가 직접 설명해주는 곡 해설을 듣고 그동안 작업했던 악보와 함께 연주를 볼 수 있다. 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 친구는 평소에 어떤 상상을 하고 있는지, 말이 아닌 음악의 형태로 작곡가가 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듣는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회에서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는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청중들에게 보내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일정기간 동안 여러 예술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그 분야를 체험해보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다. 단순히 ‘교육’의 차원을 넘어서 예술가와 프로그램을 듣는 예비 예술가들이 만나서 함께 창의적인 예술작품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자극을 주면서 개인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이 또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더 많은 예술가와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발전과 선순환을 기대해본다.
강예진
강예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작곡과 예술사와 전문사 과정을 졸업하고 다수의 뮤지컬과 연극, 영화에서 작곡 및 편곡자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예술중학교와 부산예술고등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한 바 있다.
jn77and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