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다양한 경험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해서 강하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서로 다른 시선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철학과 메시지를 온전히 담아내는 예술가의 역할 또한 중요합니다.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Émile Zola)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사회의 부정, 즉 사회의 모든 규칙과 요구 바깥에 존재하는 개인의 확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고, 질문하고, 비판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소개합니다.
하루아침에 뒤바뀐 600개의 광고판
2015년 제21차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UNFCCC COP21)가 열리기 이틀 전, 프랑스 파리 거리의 광고판 600여 개가 교체되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소동은 예술가 단체 브랜달리즘(Brandalism)의 작품입니다. 총회 기간 중 환경운동가들은 기후 변화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협상타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일 예정이었으나 프랑스 정부는 테러를 우려하여 대규모 집회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대한 반발을 표현하기 위해 브랜달리즘은 COP21을 후원하는 대기업들의 옥외 광고에 기후변화 문제를 경고하는 내용을 교묘하게 삽입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나 도로에 설치된 옥외 광고판에 전시를 한 셈입니다. COP21의 대표적 후원 기업인 폭스바겐 광고에는 ‘들켜서 미안해’라는 문구가 삽입되었고, 에어프랑스 광고에는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조용히 시키는 승무원 옆에 ‘기후변화에 대응 하냐고? 물론 아니지. 우리는 항공사니까.’ ‘COP21을 후원해 우리가 기후변화에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하고 있어.’라는 문구로 에어프랑스의 이중성을 풍자하였습니다. 총 19개국 80여 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이 대규모 프로젝트에는 풍자적인 거리 예술로 유명한 뱅크시(Banksy)도 함께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2년 영국 런던에서 설립된 브랜달리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대 기업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시각적 이이미지로 기능하는 광고에 반대하는 ‘안티 광고 운동’(Anti-advertising movement)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20세기 게릴라 예술의 전통을 따라서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옥외 광고판에 부착하면서 소비지상주의,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난민 문제 등 전 세계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600여 개의 광고판을 뒤바꾼 브랜달리즘의 소동, 유쾌하지 않나요?
전쟁에 반대하는 296개의 벽을 연결하면
터키어로 ‘전쟁에 반대하는 거리’라는 의미가 담긴 소칵 사바쉬 카르스(Sokak Savaşa Karşı)는 전쟁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한 편의 영상을 만듭니다. 이 영상은 여러 장의 신문지에 그린 그림을 오려서 벽에 붙이고, 사진을 찍어 만든 스톱모션 영상입니다. 무겁고 강렬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만들어낸 영상은 오히려 간단하고 명확한 방식으로 전쟁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합니다. 영상 속에는 전쟁에 참전한 두 명의 병사가 총을 들고 서로를 향해 달려가 마침내 총을 버리고 서로를 껴안습니다. 소칵 사바쉬 카르스는 이 영상을 완성하기 위해 터키의 4개 도시에서 총 2,930킬로미터의 거리를 뛰어다니며 296개의 벽에 신문지를 부착합니다. 즉 이 영상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촬영된 사진을 연결한 결과입니다. 결국 전쟁이란 것은 우리 삶의 현장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며, 우리 모두 전쟁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닐까요?
국경과 국경이 만나는 곳
1985년 룩셈부르크 솅겐에서 독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5개국은 국경을 개방하고 정보를 공유하기로 하는 국제조약인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을 맺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유럽 국가들이 이 조약에 가입하여 검문검색이나 여권검사 등을 폐지하고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되는 등 유럽에서의 이동은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이주민 문제나 지역주권에 대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사진작가 알란 녹스(Alan Knox)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유럽통합과 지역주권에 대한 불편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 ‘솅글랜드(Shengland)’는 솅겐 지역의 구글 스트리트뷰 사진을 인쇄한 입간판을 만들어서 영국과 스코틀랜드 국경지역에 설치합니다. 멀리서 보면 간판과 도로 위 풍경이 겹쳐져 마치 하나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는 서로 다른 장소의 부조화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아직까지도 정치적 논쟁이 끊이질 않는 솅겐과 영국-스코틀랜드의 국경지역이 만나면서 새로운 시공간으로 탄생합니다. ‘솅글랜드’는 유럽 전역에서 회자되고 있는 국경과 난민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질문의 여지를 남깁니다.
김다빈
김다빈 _ 상상놀이터
beyondlisa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