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는 당연한 일이지만 고흐의 그림들이 다수 소장돼 있다.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현대 문화예술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인 고흐 자신의 초상화도 여러 점이다. 1885년 브라반트 시기 말엽부터 세상을 떠난 1890년까지 약 5년간 집중적으로 그린 삼십 점의 자화상들에서 고흐는 거의 일관되게 측면에서 비치는 자기 자신의 거울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는 때로 팔레트를 든 모습을 그렸고, 때로는 배경에 일본 판화를 그려 넣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화상은 텅 빈 배경 앞에서 뚫어질 듯이 어딘가를 응시하는 굳은 표정의 고흐 자신만 표상하고 있다. 그럼 그 그림들은 화가 고흐의 자기연민이나 자기애(narcissism)를 보여주는 것일까? 결코,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 생전에 극도로 고독했고 참으로 가난했던 고흐는 빈곤한 형편에 그림 모델을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 얼굴을 그리고 또 그렸다. 비용을 지불할 필요도 없고, 굳이 비위를 맞추거나 창작에 제약을 받지 않아도 되는 가장 용이한 모델로서 말이다. 다른 한편, 쉽지 않은 삶과 그보다 더 쉽지 않았던 자기 자신의 내면 문제를 넘어 회화 실험을 지속하면서 고흐는 거울 앞에 섰고, 캔버스 위에 자신의 얼굴을 반복해서 노출시켰다. 특히 1889년의 자화상, 즉 바로 그 전 해 12월 그 유명한 고갱과의 언쟁 이후 잘린 귀를 붕대로 감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은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고흐에게 자기 자신을 그리는 일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조용하지만, 힘 있게 웅변한다. 말하자면 현실의 척박함과 몰인정, 심리 상태의 불안정성과 고통에 착잡히 묶인 상태에서도 거의 일평생을 회화에 헌신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운명을 응시하는 고흐 자신의 반영인 것이다.

 

그런데 애초 서구 문화사 및 회화사에서 자화상의 출발은 위에 쓴 고흐의 내러티브와는 좀 다르다. 요컨대 고흐의 자화상은 개인의 내면과 사적 예술 실천을 강조한 근대의 미적 산출물 중 하나이고 미술사가와 미술비평가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의미를 해석해왔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한 서구 회화의 전통에서 자화상은 신화의 세계와 깊이 결부돼 있었고, 자기애를 주제화하는 신화적 이미지로 쓰였던 것이다.

 

로마제국시대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15권으로 집대성한 그리스 • 로마 신화인 『변신이야기』 중 나르키소스 신화가 우리에게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강의 신 케피소스와 님프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났고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로부터 “자기 자신을 모르는 한 영원한 삶을 살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나르키소스는 아름다운 용모로 뭇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젊은 청년이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의 사랑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운명적으로 나르키소스가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숲 속에서 사냥하던 중 그는 물을 마시려고 연못 위로 고개를 숙였고, 거기서 수면에 반사된 자신의 이미지와 처음 마주쳤으며, 곧바로 자신이 보고 있는 그 젊고 아름다운 거울 상(像)을 타자로서 사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이미지는 만질 수도 없고, 소유하는 일은 더더구나 불가능한 대상이다. 때문에 나르키소스는 결국 그 물가에서 애끓는 자신과의 사랑에 목말라 죽고 그 자리에 대신 수선화가 피어난다. 『변신이야기』 3권은 이 같은 비극적 서사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나르키소스는 자신이 사모하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들을 사모했다. 뜻하지 않게 그는 자신을 열망하게 된 것이다. 나르키소스는 찬미했고, 자신이 찬미하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 오! 분별없고 어리석은 청년이여, 왜 사라지는 이미지를 헛되이 붙잡으려 하는가?”

 

오비디우스의 신화가 널리 알려진 이후 수 세기 동안 서구의 미술가들은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를 ‘자기애’라는 화제(畵題)로 삼아 그리고 또 그렸다. 예컨대 1531년경 지롤라모 모체토가 그린 『연못가의 나르키소스』, 1606년경 안토니오 템페스타가 『변신이야기』의 삽화로 제작한 동명의 판화, 1903년 존 워터하우스가 나르키소스를 사랑했던 에코의 신화와 결합해 그린 『에코와 나르키소스』등등이 있다. 하지만 여기 예를 든 작품들은 관련 이야기를 충실하게 묘사하고는 있을지언정 나르키소스 신화와 회화의 관계에 대한 숙고 또는 해석은 없다. 다시 말해 그 신화 속에서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반영 또는 거울이미지를 사랑하는 비극적 열망이 단순히 이야기의 슬픈 정조를 넘어, 가시성의 세계를 완벽하게 포착하고 재현하고자 하는 화가들의 근원 충동을 가리킨다는 점을 놓친 것이다. 또 그림이 실재가 아니라 이미지인 한 이미 항상 재현의 완벽함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화가들이 품게 되는 불행한 자의식을 나르키소스의 운명과 결부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와는 달리 르네상스시대 회화이론의 거장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회화의 창시자는 나르키소스였다. (…) 회화라는 것은 물의 표면을 예술을 통해 껴안으려는 행위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라는 주장을 통해 그 신화의 의미를 화가의 창작행위로 옮겨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서두에 얘기한 고흐의 자화상이 화가 자신의 성찰과 더불어 회화 실험의 산물로서 자리매김하는 시초의 이론적 배경이다.

 

글 |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수, 미술평론가 강수미

시각예술, 미술세계에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본다!홍익대 회화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학과에서 박사학위(발터 벤야민 사유에서 유물론적 미학 연구)를 받았다. 2005년 《번역에 저항한다》 전시기획으로 올해의 예술상(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7년 제 3회 석남젊은이론가상 (석남미술이론상운영위원회)을 수상했다. 지난 해 출간한 《아이스테시스》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철학 분야로 선정되기도 했다. 통찰력 있는 강의로 명쾌한 이해를 끌어내는 미술평론가 강수미는 깊이 있는 문화예술 이야기, 미술 세계를 통해 인간의 삶과 문화예술의 기원에 대한 전문가적 해석을 들려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