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녀는 재치 있고 명랑했으며 유쾌했다. 낭랑한 목소리와 막힘없는 말재간도 그녀의 쾌활함을 더했다. 인터뷰가 시작되기도 전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부러 엄살을 피우는 모습은 천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의 공력은 단단했다. 무심하게 치고 빠지는 농담 속에도 그녀의 예리함이 엿보였다. 진지한 고민도 웃음으로 툭 털어내는 모습이 느슨한 듯, 견고했고, 얼렁뚱땅 인 듯, 능수능란했다. 완연한 늦가을, 성모자애복지관에서 만난 허인열 예술강사의 첫인상은 깊고 날카로웠다.
예측불허 마이 웨이
허인열 예술강사는 성모자애복지관에서 미술수업을 하고 있다. 그녀의 학생들은 자폐성 장애나 지적 장애를 가진 성인들로, 모두 성모자애복지관에서 직업 훈련을 받고 있다. 성인들이라지만 여전히 앳돼 보인다. 낯선 얼굴들이 보이니, 굳이 코앞까지 달려와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산뜻하다. 그 해맑은 환대에 괜스레 쑥스러워졌다. 때 아닌 불청객의 등장으로 산만해진 분위기를 허인열 예술강사가 특유의 명쾌함으로 다잡는다. 샐샐 웃으며 눈길을 휘어잡는 그녀의 모습이 척 보기에도 만만치가 않다.
‘나는 소심한 사람’이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허인열 예술강사는 당차고 대담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원예학을 공부했지만, 전공과 무관한 은행에서 일했다. 은행 업무는 어설프고 낯설었지만 다니다 보니 익숙해졌고, 다닐 만하니 능숙해졌다. 그렇게 만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이렇게 늙어가다가는 은행에서 내 인생을 마감하겠구나.’하는 회의에, 그녀는 돌연 은행을 그만두었다. 한 번 사는 인생, 재미있게는 살아야겠다며 새로이 들어선 길은 뜬금없이 섬유디자인이었다. 다시금 편입해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고, 대학원 과정도 밟았다. 작품 활동을 하며 간간이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그러던 중, 교수님의 추천으로 예술강사 일을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오늘까지 왔다. 일일이 나열하고 보니 숨이 찰 만큼 종횡무진 동분서주 했다. 오로지 재미있는 일을 쫓아 먼 길을 구불구불 걸어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 예술강사 활동이 갖는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예술강사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해왔는데, 이 일이 제일 재미있는 것 같거든요.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기쁨도 있고요.”
허인열 예술강사의 수업 철학은 오로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 재미를 향한 그녀의 일편단심이 참으로 굳건하다. 아무리 좋은 수업도 재미가 없으면 학생들에게 가 닿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 자신도 최대한 신나게 수업하려 노력한다. 선생님부터 수업을 즐겨야 학생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더 재미있게 건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수업에는 틈틈이 웃음 코드가 숨어있었다. 우리가 참관한 날, 학생들은 낙엽을 점점이 찢고 잇고 채워 저마다의 가을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낙엽을 이용한 모자이크 수업인 셈이다. 그런데 본격적인 개인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허인열 예술강사가 낙엽을 입으로 불어 누가 누가 더 멀리 보내나 시합을 하잔다. 훅, 후, 후우, 휘유우, 마구잡이로 불어제치는 입바람에 바싹 마른 낙엽들은 맥없이 흩어졌고, 학생들의 마음도 나붓나붓 신이 났다. 작업을 하는 학생들을 한 명씩 돌아보며 툭 하고 던지는 농담도 자연스러웠다. 쉬는 시간에는 춤을 추고 싶다며 졸라대는 학생을 위해 신청곡도 틀어주었다. 참 웃음이 헤픈 교실이었다. 그러나 허인열 예술강사에게 그 웃음의 의미는 중하다.
실패와 배움의 연속
학생들의 웃음은 곧 반응이다. 소통의 이유인 동시에 증거이다. 비장애인에 비해 사회성이 부족한 학생들이 많다 보니, 서로 의사 전달이 원활하지 않을 때가 있다. 선생님이 자칫 답답한 마음에 학생들을 다그치고 강요하면, 표현이 서툰 그들에게 상처가 된다. 때문에 허인열 예술강사는 마음을 내려놓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은 이렇게 다가가야 하나, 다음에는 어떻게 말해야 하나, 매시간 고민하고 주저하면서도, 부딪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여전히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지금도 실패를 통해서 배워가고 있는 중이에요. 학생들마다 성향이 다 다르기도 하고, 때마다 컨디션도 달라지거든요. 어느 날은 분위기가 좋았다가도 또 어느 날은 돌연 본체만체 하기도 하죠. 그래도 친구들에게 다가갈 때는 그냥 들이대요. 이 방법이 아니다 싶으면 또 다른 방법으로 다가가면 되니까요. 실패하고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하면서 배워가는 거죠. 매일 그런 시간을 반복하고 있어요.”
사람마다 상황 따라 치고 빠지기를 거듭한 끝에, 허인열 예술강사도 이제는 밀당의 고수가 다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실패가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1년을 정성으로 가르쳐도 시간이 지나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상처도 받았었다. 목이 터져라 수업을 하는데도 학생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는 실망을 넘어 슬프기까지 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서슴없이 다가가다 보니, 이제는 그마저도 재미있다는 허인열 예술강사. 그래서 살포시 번지는 학생들의 웃음이 그녀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귀하다.
허인열 예술강사는 학생들을 주로 친구들이라 지칭한다. 격의 없이 그들을 대하는 마음이 말에도 인이 박인 모양이다. 하지만 동시에, 매의 눈으로 학생들을 관찰하며 파악하기도 한다. 사실 허인열 예술강사는 친구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과 분류를 믿지 않는다. 장애 등급도 개의치 않는다. 그마저도 그들에 대한 편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직 자신이 직접 마주하고 겪은 친구들의 모습만을 직시한다. 그들의 성향과 능력을 정교하게 탐색하고, 수업의 내용과 성취 도달 수준을 조절한다. 그녀는 수업을 통해 최대한 많은 매체들을 다루어보려고 노력한다. 선생님 입장에서야 그림만 그리면 편하기 그지없겠지만 비장애인에 비해 경험의 폭이 좁은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재료를 만나고 느끼고 탐색할 수 있는 수업을 중시한다. 또한 매 시간, 작품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발표의 시간도 갖는다. 우리가 참관하였을 때에도 수업의 마무리는 여지없이 작품 발표였는데, 사실 “이것은 무엇이다” 정도의 짧은 소개가 전부였다. 학생들은 이마저도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작품을 발표하고 나면 한 명 한 명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고, 모두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이 친구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걸 좋아해요. 관심도 받고 싶어 하고요. 사실 친구들이 소극적인 면이 있어요. 누군가가 해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도 하지만, 못하면 누가 한번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주니까 혼자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경우가 있죠.”
허인열 예술강사는 학생들이 한 번이라도 더 자기를 표현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들은 관심과 격려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 우리 모두의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작은 변화도 충분히 고맙다
매일 실패하고 또 새로이 배워야 하는 일이 고되지는 않을까. 기약 없는 대답을 속절없이 기다리는 일이 힘겹지는 않을까. 허인열 예술강사는 친구들의 장애가 자신을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며 딱 잘라 말한다. 그 단호함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기가 더 힘들 것이라 예상했었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부끄러운 편견이 까발려진 것 같아 뼈아팠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욕심이 없다. 대단한 변화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학생들에게 큰 의미로 남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선생님의 욕심과 기대가 학생들에게는 강요와 편견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학생들의 변화에서 자신의 보람을 찾다 보면, 성과를 위해 친구들을 다그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실망하고 스스로 좌절할 수도 있다. 허인열 예술강사는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고 그저 기다리고 지켜본다.
“나 자신도 잘 변하지 않는데, 이 친구들에게 큰 변화를 기대하는 건 모순이죠. 그저 친구들이 처음보다는 미술시간을 기다려주고, 좋아해줘요. 이 정도의 작은 변화로도 충분히 고마워요.”
그녀는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선생님이다. 그들이 기뻐하면 그녀도 기쁘고, 그들이 뿌듯해하면 그녀도 따라 흐뭇하다. 친구들과 작은 즐거움을 지금, 여기에서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허인열 예술강사는 학생들의 작품을 모티프로 새로운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그동안 학생들이 보여준 재미있는 표현과 따뜻한 색감을 타피스트리로 한 올 한 올 엮어보려 한다. 말하자면 친구들을 향한 허인열의 오마주(homage)라고나 할까. 분명 그들을 닮아 쿨하고 발랄할 것이 틀림없다. 유쾌, 통쾌, 상쾌한 허인열과 친구들. 오늘도 재미있게 가르치고, 재미있게 실패하고, 함께 배우는 중이다.
허인열
대학 졸업 후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생활을 과감히 접고 다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상명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섬유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 강의를 했다. 내가 배우고 가지고 있는 것을 다음 세대를 위하여 나누는 것은 특권이라 생각하며, 더 많은 현장에서 가르치고자 2012년부터 예술강사 활동을 시작했다. 행복은 물질의 많고 적음보다는 가치관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하며 문화예술교육으로 만나는 모든 이들이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긍정하는 힘을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영상 _ 윤영욱 (미디어 아티스트)
박유미
설치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매체에 관심이 많은 미술작가. 2013년 개인전 《what a wonderful world》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어린이 예술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여전히 예술로 말하고 예술을 가르치는 작가 겸 강사로 목하 활동 중이다. Gomako1983@hanmail.net
반가운 얼굴이네요. ^^ 항상 어려운 곳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습. 닮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 같아요. ^^
연수원의 룸메이트 선생님^^이렇게 뵈니 반가워요…
우연히 웹서치하다 보게되었는데
인열이와 저는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사느라 연락이 끊어졌는데
혹시 연락처좀 알수 없을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