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figure)과 배경(ground), 시각예술에서 전경과 배경을 역전시킨 그림을 ‘반전도형’이라 한다. 전경과 배경을 역전시키면 동일한 부분이 전경이 되기도 하고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같은 대상이라도 보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2015 꿈의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을 매개로 만난 1천여 명이 넘는 단원들은 어느 땐 연주자가 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은 관객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인 연주자(전경)이자 구경꾼인 관객(배경)의 역할을 맡으며 그에 따라 연주자의 음악적 지각과 감상자의 음악적 지각이 연계됨으로서 서로가 한층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는 어디를 가나 바람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추워진 대기로 인해 예상했던 것 보다 혹독한 바람이 알펜시아를 가득 매웠다. 그래서일까? 주 행사장인 컨벤션 센터로 들어설 때 느꼈던 따듯한 온기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분주히 로비를 오가던 아이들과 스태프들의 열기도 한몫했으리라.
10월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간 전국 32개 거점기관 중에서 1,200여 명이 참여한 이번 페스티벌은 전국을 크게 중부(강원 포함)지역, 전라도 지역, 경상도 지역으로 나누어 한 지역 당 4~5거점을 한 팀으로 묶었다. 각 팀별 연주는 거점별 연주 15분, 지역별 합주 15분으로 러닝타임은 1시간 30분 정도다. 합주 외에 ‘영화보go’ ‘공부하go’ ‘춤추go’와 극놀이를 통하여 음색을 알아가는 짧은 공연인 ‘나무와 바람’ 등 다양한 체험이 진행되었다.
합주는 중앙무대 정면으로 연주하는 아이들을 담은 영상이 실시간으로 중개되도록 카메라가 준비되어 있고 단원들이 연주할 있도록 보면대와 악기들이 각자의 위치에 서 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트럼펫, 트럼본, 플루트, 오보에, 다양한 타악기 등 이번 합주를 위해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익숙한 모양새다. 단원들이 입장한다. 객석을 바라보는 시선엔 긴장감이 역력하다. 모두들 자리를 찾자 지휘자가 단상으로 등장한다. 이제 드디어 합주가 시작됐다. 귀에 익은 익숙한 멜로디, <렛잇고(Let it go)>가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객석에 있던 아이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온 공연장이 떠나갈 듯 합창이 된다. 합주와 합창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로 어우러진다. 같은 시간, 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 진정한 하모니란 이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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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연주된 곡은 꿈의 클래식 메들리다. 신나고 경쾌하며 가벼운 여러 개의 곡은 ‘라라라라……’ 안정감 있게 다가 왔다. 500석 되는 객석의 호응과 연주가 마무리 되었다는 안도가 단원들의 얼굴에 가득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음폭을 지키며 자연스레 연주했고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다. 1년~3년이라는 활동 시간 속에 쌓인 겹겹의 경험들과 나름의 지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1시간 30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연주하기 위해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악기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아이들이 악기에 익숙해지기 까지 어떤 교육과정이 필요할까? 참여한 학생들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인성까지 좋아질까? 공연 보는 내내 들었던 의문은 김종헌 예술감독(전라도지역 합동공연 총감독)을 통해 해소되었다. 그는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해 음악을 알아간다고 표현한다. 음악을 알아간다? 통상 오케스트라는 주로 현악기와 목관 악기가 멜로디 파트다. 이와 대조적으로 타악기, 금관악기 등은 반주 파트다. 멜로디 파트는 전체 곡을 알지만 반주 파트는 합주를 하기 전까지는 어떤 곡인지 알지 못한다. 이때 각 파트를 연습하고 합주를 하게 되면 각각의 파트가 어떤 선율로 이루어졌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한 소리, 한소리가 모여 음악의 짜임이 되고 이 짜임을 알게 되면 음악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음악을 알게 되면 흥미를 느끼게 되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다른 곡들을 알고 싶어지는 선순환이 형성된다. 이것이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각각의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모두 구별하게 되고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합주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까지 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바이엘 교본으로 피아노를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오케스트라에도 처음은 있다. 바로 파트별 앙상블이 그것이다. 바이올린 앙상블, 목관, 금관 악기 앙상블 등을 통해 단계별 연습을 한다. 악보에 의존하지 않고 악기 소리나 운지법 등을 통해 연주를 먼저 익힌다. 리듬을 통한 음계 연습도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수업이다. 넷잇단음표, 셋잇단음표처럼 이론으로는 너무 어려운 것은 입으로, 몸으로 먼저 익힌다. 딴딴따따 딴딴따따…… 3년 정도 단원생활을 하면 신입단원이 들어왔을 때 동료학습이 가능하다. 친구나 선배가 신입단원이 쓰는 언어로 아이의 눈높이에서 가르쳐 주니 교육적 효과가 매우 크다. 배우는 아이도 가르치는 아이도 모두 성장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우리 아이들이 평창에 모였다. 연주 실력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엔 개인차가 무의미하다. 개인연주에서는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금방 탄로가 나지만 합주에서는 아는 부분은 연주하고 모르는 부분은 그냥 지나가도 좋다. 결국은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중요한 것이지 연주를 잘하는 네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족이 임계점을 넘으면 만족이 아니라 감탄이 된다. ‘아!’하는 순간의 탄성이 만들어 내는 반항의 시간이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 너머 시간에도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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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후기] 협력과 조화에서 배려와 존중까지
조가현_‘꿈의 오케스트라 강릉’ 음악감독
10월 26일부터 3일간 평창 알펜시아는 수준 높은 ‘꿈의 연주회장’으로 변모하였다. 전국 꿈의 오케스트라 22개 거점기관에서 1,200여 명에 이르는 음악인(음악감독, 강사, 단원)들이 한데 모여 멋진 음악의 향연을 펼친 덕분이었다. 그동안 많은 형태의 음악제나 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해 보았지만 이처럼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연주하고 소통하기는 아마도 처음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이다.
이번 합동 페스티벌 개최 소식을 접하고 참여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다. 10월 16일 강릉에서 열리는 제96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 우리(강릉)를 비롯한 춘천, 원주, 정선 등 강원지역 4개 꿈의 오케스트라가 개회식 연주를 맡았기 때문이다. 꿈의 오케스트라가 공식적인 행사의 연주를 맡기는 처음이며 더구나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대한민국 최대의 체육행사 개막식의 연주를 하는 것은 강원지역 뿐만 아니라 모든 꿈의 오케스트라의 자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기에 그만큼 부담스럽고 많은 노력과 준비가 필요했다. 게다가 곧바로 이어지는 합동 페스티벌에 다시 참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처럼 큰 행사를 준비하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노력과 수고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더욱이 전국에서 귀한 손님들이 강릉 옆 동네(평창)로 찾아오는데 우리가 빠지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무리가 있지만 참여를 결정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하다. 참여 자체를 고민하던 어제와 달리 참여를 결정하고 나니 전국에서 모일 꿈의 오케스트라 가족들이 함께 모여 연습하고 연주하며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니 말이다. 게다가 우리 강원도 4개 꿈의 오케스트라는 전국체전에 앞서 진흥원 공모사업으로 추진한 드림페스티벌 행사를 함께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전국체육대회에도 같이 출연하며 호흡을 맞추었기 때문에 합동연주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단원들은 함께 어울려 연주하는 경험을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함께 연주할 곡을 정하고 연습 스케줄을 짜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하였다.
드디어 꿈의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이 시작되고 첫날 저녁 첫 번째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먼 곳에서부터 평창까지 오느라 힘이 많이 들었을 텐데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하게 임하는 단원들의 모습에서는 여느 전문가들 못지않은 힘을 볼 수 있었다. 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꿈의 오케스트라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축제의 장이다. 누가 더 잘하는 지를 경쟁하는 자리가 아닌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연주하는 그 자체를 즐기는 순수한 화합의 한마당 잔치인 것이다.
지역별 연주를 들으면서 상당한 수준의 합주와 음악적인 깊이를 느낄 수 있어 놀라움을 준 거점도 있고 열정에 비해 조금은 더 시간이 필요한 곳도 있었다. 또한 능숙하게 바이올린 활을 쓰는 모습이나 비브라토를 원숙하게 구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이에 반해 활이 능숙하지는 않아 템포를 맞추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연주 내내 긴장을 풀지 못하지만 연주를 끝내고 큰 박수소리에 안도하며 미소를 되찾는 어린 연주자들도 있었다. 이 아이들 중 미래에 엘 시스테마에서 성장한 세계적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이번 행사에서 단원들은 무대 위에서는 연주자가 되지만 이후에는 객석에 앉아 감상자가 되는 경험을 하였다. 그런데 첫날 연주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아이들의 감상 태도는 연주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흐트러졌다. 연주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는 친구도 많았지만 옆 사람과 떠들고 장난치고, 움직이며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아이들로 연주장이 무척 산만해졌다. 오케스트라가 “협력과 조화”라면 감상은 “배려와 존중”이다. 우리 아이들이 평소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힘이 부족한 것은 그들의 탓하기보다 기성세대가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는 생각에 조금은 착잡한 마음으로 첫날을 마무리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마치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소란스럽던 아이들이 음악에 집중하고 힘찬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어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주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과는 다른 감사와 고마움을 느끼며 “그래 우리가 만들어가는 꿈의 오케스트라는 분명 가치 있는 일이야!” 라는 가슴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2박3일 간의 축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유난히 파란 평창의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2018년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꿈의 오케스트라가 멋진 연주를 하는 모습을 그려보며 대관령 길을 내려왔다.
이효순 _ 상상놀이터
이효순 _ 상상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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