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 지화자, 좋~다!!!”
다 같이 팔을 번쩍 들어 올리자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참여자들의 얼굴에 함박꽃이 핀다.
“손님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자식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 이래 뿌는 기다, 알았제?”
아닌 밤중에 춤과 걸쭉한 경상도말 이야기꽃이 핀 이곳은 대구근로자건강센터. 2015 문화예술 명예교사 사업인 ‘특별한 하루’가 열리는 날, 서비스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마음을 다스리는 춤> 프로그램에 명예교사로 참석한 춤꾼 하용부(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 선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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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진행하시는 <마음을 다스리는 춤>에 대해 간단히 듣고 싶다.
요즘 서비스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많이 힘들다는 얘기를 듣는다. 사람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도통 여유가 없다보니,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분들을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그러니 손님을 대하는 게 짜증날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손님으로 인해서 아이들 공부도 시키고, 밥도 먹고,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구나’라고 마음을 고쳐먹으면 손님이 오는 것이 짜증나기보다는 고맙게 느껴질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던 ‘누구 때문에’가 아니라 ‘나를 위해’ 사는 것이다. 오늘 이 자리는 삶과 사람에 지친 분들과 함께 내가 겪었던 이야기도 하고 몸도 풀어가면서 한 번 더 쉬어가자는 취지다. 몸을 움직이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마음을 좀 내려놓게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

최근 ‘특별한 하루’처럼 일반인들과 강연이나 워크숍으로 만나는 기회가 많은 것 같다.
강연이나 공연 요청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나는 그냥 세상 산다. 기준 같은 것 별로 없다. 요즘은 지역마다 문화의집 같은 게 거의 다 생겨서 그런 곳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올 때가 많다. 무엇보다 하용부가 사랑 받는 게 좋다. 내가 대학을 나온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정말 어릴 때부터 현장에서 했던 사람이지. 근데 대학교수가 하는 강의는 재미없는 경우가 많더라.(웃음) 그냥 사람들한테 내가 살아보니까 세상이 어떻더라, 하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나는 지금도 잘난 놈이 아니다. 그냥 한 길을 걸어오다 보니까 어느 날 인간문화재가 되었을 뿐이지. 인간문화재가 뭐 대단한가. 그저 이런 기회로 만난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아, 하용부 좋은 사람이다.’ 그러면 인연이 되는 거다.

이렇게 일반인들과 만나는 작업들이 재미있으신지?
나만큼 재미있고 좋은 세상을 사는 사람 드물다.(웃음) 어릴 때부터 생각했던 일을 커서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나는 어떤가. 세상에 좋은 것도 모르고 나쁜 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부터 춤을 추다가 끝내는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있잖나. 이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 이 일 하면서 밥 먹고도 살고.

예술을 하면서 밥을 먹고 사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 않은가.
나도 30대에 애들 키우다 보니 예술 해서는 못 살겠더라. 심지어 원양어선 탈까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데 그 고생이 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려고 한 고생이니, 고생이 아닌 거다. 그냥 이 계통으로 평생을 하다 보니 알아주는 것이겠지. 사실 돈 벌고 잘살 거였으면 판검사 될 공부를 했겠지. 그래도 예술 하는 사람들한테는 남들 공부할 때 폼도 잡고 연애도 하고 세상에 반항도 하고 자기 좋은 것을 하느라 바친 시간들이 있지 않나. 어떤 분야든 정상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특별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고, 그냥 하다 보니 그만큼 간 것이다. 직장 생활이라고 다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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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직접 추는 것과 사람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일은 다른 작업일 텐데.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춤을 추는 것과 가르칠 때 마음가짐은 별로 다른 게 없다. 그리고 평생 하다 보니 남을 가르치는 일이 춤을 추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깨달음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자들을 고쳐주거나 할 때 내 자신이 깨닫는 게 많고.

그러면 가르치는 일을 하실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 세상에 중요한 게 뭐 그리 있겠나. 내가 세상을 살아온 것과 그 마음가짐을 이야기할 뿐이다. 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거기에 쫓기게 된다. 내 자신이 날카로워지기도 하고. 세상은 열심히 살아야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내가 살아 보니 이러이러한 것이 이러저러해서 좋더라, 혹은 그게 맞는 것 같다는 정도의 이야기랄까. 그걸 꼭 실천하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는 거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히마리(힘)가 없나?(웃음)

요즘 시대에 ‘전통춤’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금은 전통이 굉장히 많이 무너졌다고 본다. 그저 형식으로 배우는 전통이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2세대이다. 할아버지이신 하보경 선생께 배웠으니까. 우리 춤에는 서양처럼 1번, 2번, 3번, 그 다음 4번 하는 식으로 딱 떨어지는 동작이 없다. 그래서 무슨 무슨 ‘류(流)’라고 하는 거지. 만일 내가 남자인데 여자 선생님께 배웠다 치자. 어떻게 똑같이 하겠나. 그걸 받아와서 내 것‘화’ 시켜야 되는 거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하면 안 된다고 본다. 시대의 리듬에 맞게 가 줘야한다. 내가 죽고 난 뒤에 ‘하용부류’라는 게 생길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해 오신 연극 활동이나 오늘과 같은 강연 등이 나름 ‘시대의 리듬’을 타는 작업인가.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나는 온갖 것을 다 한다.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에피탑(Epitaph)>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장사익 씨 음악 가지고도 춤춘다. 세상이 바뀐 거다. 자, 누가 “하용부 선생님 춤 좀 춰주십시오.” 했다 치자. 그런데 나는 ‘인간문화재’니까 복식도 갖춰야 되고 사물놀이도 있어야 되고·…… 그런다면 어디서 춤을 추겠나. 그런 무대를 누가 다 만들어 줄 것인가. 옛날 것이 왜 좋은지는 말 안 하고 그냥 좋다고만 해서 되겠나. 오늘 같이 하용부가 이야기하는 자리에 온 사람들도 어쨌거나 춤을 보고 싶을 것 아닌가. 그러면 장사익 씨 음악 하나 틀어 놓고 추면된다. 변화가 없으면 전통은 죽는다. 앞으로 더더욱 설 무대가 없을 텐데?! 그래서 사람들이 하용부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아닌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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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나이가 들수록 유연함이 없어지고 자기 것만 고집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전통을 하시는 분들은 더더욱 그렇고……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웬만한 것들은 다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함이 있으신 듯해 놀랍다.
‘폼’만 잡다가는 나만 잘나고, 나만 돈 벌고, 나만 잘 먹고 잘 살기 십상이다. 게다가 이제는 전통이 너무 형식에 얽매이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유연하게 열려 있어서) 옆에 가고 싶고 한 번 더 보고 싶은 사람들이 되어야 할 텐데……. 전통의 미래는?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을 가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미래는 지금 배우는 사람들이 걱정해야 할 것이고.(웃음)

이 글을 읽을 예술교육 종사자 혹은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신다면?
‘길은 끝이 없다. 오직 갈 뿐이다.’
이게 내 삶, 내 춤의 주제이자 철학이다. 내 만족은 없는 것 같다. 당신들도 그렇지 않나. 글 써 놓고 ‘와, 잘 썼다!’ 하지 않잖나. 솔직한 얘기로 오늘도 (인터뷰하면서) 내 잘난 척만 한 것이지. 사실 나는 내 공연 비디오도 잘 보지 않는다. 내가 봐도 춤을 진짜 못 춰서 볼 수가 없다. 남들이 아무리 칭찬을 해도 내가 잘못 한 것을 나는 아는 것이다. 그래서 길은 진짜 끝이 없다. 나 죽고 나서야 어떤 평가가 될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하용부 선생은 마치 동네 아주머니들과 당산나무 아래 평상에 모여 수다를 떨듯 강연을 이어간다. 메시지는 단호하다.
“네 자신을 위해 살아라!”
그리고 호흡을 쓰는 법, 굿거리장단을 타는 몸짓, 추임새 등을 참여자들에게 알려준다. 처음에 쑥스러워하던 참여자들도 하나 둘 손을 번쩍 들고 장단을 타는 몸짓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울고 웃으며 한 편의 모노드라마와도 같은 강연이 훌쩍 지나가고, 강연이 끝나갈 때쯤 “인간문화재라고 만났는데 춤도 못 보면 서운하겠제?”하며 씨디 플레이어에 음악 한 곡 걸어 두고, 무대도 없고, 조명도 없고, 변변한 의상도 없이 즉흥 춤을 이어 간다.
참여자들의 눈이 반짝, 빛난다. 50년을 춤추며 살아온 예술가의 재담과 몸짓을 따라가다 만나는 이 ‘위로’의 감정. 이렇게 가까이 예술가를 마주하고 평생을 통해 얻은 삶에 대한 통찰을 만날 수 있다니. 삶이 고단한 누군가의 곁에서 웃음과 위로가 되어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문화예술교육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강연을 보는 내내 ‘리듬’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보았다. 리듬. 잦아들었다가 커지고, 길어졌다가 짧아지고,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그 시간의 새김. 그것을 몸에 실으면 춤이 되는 걸까. 어찌되었건 폼 잡을 것 없이 유연하게 시대의 리듬을 타는 일, 그것이 이 시대 ‘전통’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예술가의 과제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하용부
하용부

밀양연극촌 촌장,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 문화예술 명예교사. 몸의 시인으로 불리는 춤꾼 하용부는 다섯 살부터 할아버지이신 故하보경(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 옹에게 양반춤, 범부춤, 북춤을 사사 그 뒤를 이어가고 있다. 하용부는 1980년부터 밀양백중놀이를 연 20회 이상의 공연을 하며 밀양백중놀이를 알려왔다. 공연과 함께 부산 동아대학교, 경성대학교 강의, 프랑스 ART 초청 워크숍 지도를 하였다. 연극 <오구-죽음의 형식>에서 안무와 박수 석출 역을 맡아 대중에게 더욱 많이 알려졌으며, 1997년에는 연극 <어머니>로 백상예술제 인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는 밀양과 서울을 오가며 후학양성과 국내외 공연과 강연 등을 하며 더 많은 친구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진 _ 빈흥선(마루스튜디오)

이은진
이은진_칼럼니스트
지역, 교육 및 육아, 커뮤니티 언저리에서 끄적거리고 싶은 사람. 지리산 자락 경남 함양에서 커피를 내리며 산다.
svjin9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