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장르 문화예술교육을 넘어 복합 장르 교육의 시대로

 

이미 성인이 된 당신에게 누군가가 ‘만약 당신의 유년시절에 풍부한 문화 예술교육을 받았다면 당신은 지금 삶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라고 질문을 한다면?

 

한국보다 앞서 생활 속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한 독일은 이제 한 보 더 진보하여 한 장르 문화예술교육 시대를 지나 복합 문화예술교육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미 한 장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모든 예술장르를 거쳐 두루 선보였고 이에 대한 교육·문화계 및 지역사회의 긍정적인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독일에서는 새로운 문화예술교육 장르개발과 두 장르 이상이 접합된 복합적인 문화예술교육으로의 변화를 꾀하는데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독일 연방주 문화교육위원회에서 기획 및 주체하고 있는 두 가지 생활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미 어린 학생들에게는 잊혀진 지 오래지만 새로운 문화예술교육의 일환으로 최근 들어 새롭게 교육효과의 기대를 모으는 ‘서커스 문화예술교육’과 날로 발전하는 디자인을 접목한 영상물 제작을 문화예술교육에 끌어들여 각광을 받고 있는 ‘영상매체 디자인 문화예술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한눈에 보아도 상반되는 이 두 프로그램은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줄까?

 

쿠부바찌 기관(Cubuwazi)의 ‘서커스 문화예술교육’

 

지난 가을, 프랑스에서 일선 여교사가 ‘서커스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쿠부바찌(Cubuwazi) 기관으로 다음과 같은 학생들 간의 대화 내용을 보냈다.

 

“지난 번 초등학교 3학년들을 대상으로 인디언 프로젝트를 했는데, 게임 중 참여한 학생 몇몇이 포획한 먹잇감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는 중에 이 게임을 점심때까지만 하지 말고 일주일 이상 더 하자는 말을 꺼냈습니다.” 아이 1: 만약 우리가 더 오래 이 게임을 할 수 없다면 나는 그냥 3학년에 있을래. 그럼 내년에 인디언 프로젝트 주가 돌아오면 다시 할 수 있잖아.아이 2: 그렇지만 우리가 4학년이 되어서도 어쩌면 이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지 몰라. 그러면 다시 여기에 올수 있어.아이 1: 그렇구나, 그럼 계속해 볼까?

 

학년을 올라가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을까봐 근심하는 아이들의 대화 내용 속에 등장하는 프로그램인 인디언 프로젝트가 속해 있는 서커스 교육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이 같은 대화를 나눈 학생들이 참여했던 인디언 프로젝트도 궁금해졌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름 그대로 아이들에게 서커스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재주와 묘기들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으로서 기존의 무용과 음악의 접점에서 나아가 스포츠의 일종인 체조를 접목시켜 좀 더 복합적이고 새로운 장르로 틀을 갖췄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게임형식을 띄고 있는 이 인디언 프로젝트는 ‘서커스 문화예술교육’에서 개발 및 보급한 1500여 개의 프로그램 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서커스 문화예술교육’을 주관하고 있는 기관인 쿠부바찌(Cubuwazi)는 사회적 및 교육학적 목적을 가진 청소년 문화단체이다. 다문화 도시의 원조격인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주축으로 끼 있고 가능성 많은 어린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 기관에서 주최하는 ‘서커스 교육’이 요즘 청소년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생소한 장르가 주는 ‘신선함’이다. 과거에 사랑 받았던 공연 장르를 교육적 및 예술적인 부분과 접목시킨 프로그램으로서, 무엇보다도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들에게 흥미를 유발하고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의 신체발육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평가가 이어지자 신청 학교 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쿠부바찌에서 실시하는 서커스 트레이닝은 9세부터 무료이며 매주 약 650여명 이상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쿠부바찌에서는 학생들의 가정형편에 상관없이 누구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제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현재 베를린에 있는 학교에서 매년 150개 가량의 프로젝트 주간을 지정해서 진행하고 있으며 동유럽과 서유럽 학생 서커스 단체들과 교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편 매년 ‘융어 서커스 오이로파’(Junger Circus Europa)에 대한 경제적인 후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도와주세요, 우리 학교 운동장이 불타고 있어요! (Hilfe, unser Schulhof brennt!)’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어느새 2년째 독일의 문화예술교육을 소개하고 있는 필자에게도 참 생소했다. 지금까지의 경력이 무색하게도 어느 장르인지 짐작을 할 수 없었던 필자는 기관조사가 거의 끝날 무렵에서야 비로소 청소년 영상물 디자인 제작 프로그램임을 알게 되었다. 프로젝트 ‘도와주세요, 우리 학교 운동장이 불타고 있어요!’는 건축 및 조형예술교육을 바탕으로 학교 운동장과 학교건물 곳곳을 영상 디자인 무대로 삼아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이다.

 

 

‘학교를 영상 디자인으로 색깔 있게 보자’라는 기획의도 하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교와 학생들이 학교 곳곳을 촬영한 후 다양한 영상물 디자인 기법을 사용하여 새로운 색감을 더하거나 편집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의 손에서 재탄생한 학교건물은 더 이상 한 가지 색깔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무지개 색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각종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은 어른처럼 본인들의 사진에 담배를 물리기도 하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학교와 선생님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챙겨올 준비물은 단지 ‘상상력’과 ‘흥미’뿐이라고 하니 어찌 이 프로그램이 즐겁지 않겠는가?

 

‘생활문화예술 배우기’의 지난 2년, 그리고 앞으로의 1년

 

한국에 비해 생활 속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독일에서도 여전히 문화예술 학습기회에 대해 소외되고 있는 이주 가정 및 저소득 청소년들이 많다. 이들을 대상으로 독일 연방주 청소년 문화교육위원회는 ‘생활문화예술 배우기’ 프로젝트를 실시해왔다. 지난 2007년에 시작되어 2010년까지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실생활 가까이에서 생활화된 문화예술교육부터 전문적인 직업양성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교육 수혜자의 기호와 능력에 맞춘 전문교육을 자랑하고 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마지막 1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성과에 대한 기관과 지역사회 및 학생들의 반응은 상당히 뜨겁다. 기본 원칙인 ‘평등한 기회제공’도 철저히 지켜지고 있으며 이 프로젝트 내에서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에 대한 평가도 2년 전 프로그램이 실행되기 전 우려했던 바와는 다르다. 앞으로 1년에 대한 기대도 긍정적이다.

 

문화예술교육이 주는 결과, 과연 중요한가

 

그렇다면 다시 필자가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마디로 대답하기 참 힘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예술교육은 긍정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도 단순히 수학적인 수치를 적용해 산출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뒤집어 ‘문화예술교육은 실제로 우리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가?’에는 오히려 역으로 ‘왜 우리는 결과물에 연연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여러 문화예술교육 주관 단체를 조사하고 기사화하면서 독일이 한국과 다른 점은 프로젝트에 대해 눈에 보이는 결과를 단기간 내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산이 집행되어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단지 처음부터 상당한 기대치를 가지고 그 기대치가 어느 순간 당연한 결과물로 귀결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물론 독일에서도 이러한 경제논리를 전혀 배제해 두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특별한 인재가 나와야 주목을 받는 문화예술교육은 애초 목적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혹시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우리에게 제 2의 정명훈을 발견하리라는 기대심리를 갖고 있지는 않은가. 누구나 참여하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문화예술교육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는 시선이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에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