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덟, 아홉시의 태양과 같은 열정”으로 뭉친 동아리 “얼쑤”

 

“아침 여덟, 아홉시의 태양(早上八九点钟的太阳)”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1957년 모스크바를 방문한 당시 중국국가 주석인 마오쩌둥(毛泽东)이 러시아 현지에 있는 중국유학생들을 열정과 패기를 아침의 찬란한 태양과 같다 비유한 말이다. 당시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중국의 태양, 즉 현지에 있는 중국유학생들을 통해 중국을 알아갔고, 그로부터 50년 후, 현재 중국에서 한국의 태양들이 그들의 열정을 불태우며 북경에서의 유학생활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그 중에서 젊음의 패기와 사물놀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 또한 이를 통해 한중 대학생간의 교류를 도모해가는 “얼쑤”를 찾아가 보았다.

 

“얼쑤”의 정식명칭은 “얼쑤 베이따”이다. ‘베이따(北大)’는 중국어로 북경대학교를 가리키는 약자로써, 2005년 중국학생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한국 소리의 신명을 나누고자 창설된 북경대학교 한국인유학생 사물놀이 동아리이다. “얼쑤”는 한중 양국의 대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방면의 교류활동과 한국 및 한국문화예술에 대한 지명도를 높이자는 취지로 시작되어 중국 내 국가기관 및 대학교 문화제(文化节) 등에서 공연을 해오고 있다. 그들은 외국인들과 소리를 통한 교류의 장을 만들자는 목표로, 한국 전통문화예술을 알리는 ‘전달자’가 되길 희망하고 있다.

 

쉽지 않았던 유학생활, 그리고 만난 “얼쑤”

“아실지 모르겠지만, 유학생활의 최대 적은 외로움이거든요……” 말문을 연 얼쑤회장 이정현양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말은 안 통하고 문화는 생소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식 다 접고 집에 돌아갈 생각을 했는지 몰라요, 근데 설상가상으로 중국학생들과 친해지기조차 어려운 거에요, 학생들이 다 공부하느라 바뻣던 거죠, 그러던 차에 얼쑤를 만났고, 중국학생들과 기존의 방법이 아닌 좀더 획기적인 방법으로 접근을 해야겠다 생각을 했어요, 그 답이 바로 사물놀이였고요.” 당시 4기 회원을 모집 중이었던 얼쑤에 그는 가입하였고, 그 후의 생활은 180도 바뀌게되었다. 우선 얼쑤를 하면서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한국유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어요, 같은 처지를 하소연할 친구가 생긴 것이 너무 좋았거든요!” 타향살이의 어려움 때문인지, 얼쑤 회원들간의 정은 날이 갈수록 끈끈져 갔다. 이들은 동아리 회원을 가족이라 부른다, 얼쑤는 이들에게 집이다.

 

동아리의 달콤함도 잠시, 이제 곧 중국학생들과 유학 온 외국학생들 대상으로 사물놀이를 선보일 날이 다가왔다. “저희가 너무 어렸던 것 같아요, 너무 낙천적으로 생각했던 것도 같고요” 같은 시기에 얼쑤에 가입한 신정화양은 그때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하였다. “중국에는 타악기만으로 구성된 선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 현악기와 조합을 이루고 있지요, 하지만 사물놀이는 오로지 타악기만으로 연주하는 것이기에 중국인들한텐 많이 생소했을 탠데, 그떄는 저희가 이 점을 몰랐어요.” 결과는 낙담적이었다. 몇몇 리듬을 타는 외국인들을 제외하곤 온통 귀를 틀어막고 인상을 찌푸린 중국학생들뿐이었다. 공연 후 피드백 시간, 사물놀이를 기존에 보여주기만 하는 방식에서 알려주는 방식으로 전환해 보자는 발언이 나왔다. 얼쑤의 문화예술교육의 첫 발상이었다.

 

“예전엔 동아리소개만 간단히 하고 공연을 시작했던 반면, 그 후로부턴 공연 전 사물놀이의 유례에 대해 짧은 설명을 하기 시작했어요, 농악에서 유래해 무대 예술로 발전한 사물놀이에 대한 설명과, 사물이 상징하는 4가지의 하늘의 소리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죠, 원래 중국인들이 은유적인 표현을 좋아하거든요.” 결과는 미세했지만 확실히 존재했다. 학생들은 시끄럽게만 들렸던 꾕가리음이 번개와 빛 중 어느 소리를 가리키는지 들어보려는 듯 보였다, 소음으로만 들렸던 사물놀이가 드디어 음악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정말 우레와 같은 박수였어요, 우레와 같은……”당시를 회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연 후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와서 사물놀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질문을 해왔다, 사진을 같이 찍고, 사물놀이를 알려달라 부탁을 해왔다. “공연 후 사귀게 된 친구들 중에 아직도 연락하는 친구가 대부분이에요, 처음은 단순히 사물놀이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저희와 친해지고, 한국도 좋아하게 된 경우죠.” 유학 초기의 외로움이 없어진 지는 이미 오래이다, 공연을 할 때마다 연락해달라는 외국인친구가 부지기수고, 신명은 어떻게 해야 느끼는지 물어오는 중국인들도 많아졌다. 동아리 가입목적인 외로움은 해결했지만, 얼쑤는 요새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다. 바로 중국친구들에게 한국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실전으로 느낀 문화예술의 의미

 

실로 문화예술의 존재는 얼쑤 가족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공부하느라 정신 없던 중국학생들이 저희 사물놀이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마냥 고맙고, 놀랍게 다가왔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중국학생들의 사고의 전환을 유도했다는 점에 있다. “문화예술이 과거의 여유와 사치를 대표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문화예술은 이미 저희 생활에서 꼭 있어야 할 필요 구성요소라고 봐요.” 회장 이정현씨가 말을 이어갔다. “한국의 문화만큼 한국사회의 정서와 사고를 잘 표현하는 매개체는 없어요, 언어는 교류를 하는데 필요한 도구지만 문화예술은 교류 그 자체입니다. 한나라를 이해하려면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해야 하듯이, 한국을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선 한국의 문화와 예술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 한다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문화예술이 저희 양국학생간의 교류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죠.

 


” 그들이 이해하는 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신정화양의 답변은 명확했다, “저희가 봤을 때 문화예술은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교류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왜 교육이란 단어를 들었을 땐 왠지 주입식이고 피동적인 느낌이 들잖아요? 또 선생 대 제자로써의 관계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관계를 정의해버리는 것 같고요. 그래서 저희는 교육보단 교류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생각해요. 저희와 상대가 모두 학생이다 보니 신분의 차이도 없고, 부족한 실력으로 한국의 전통문화예술에 대해 설명하려다 보니 교육이란 단어가 왠지 가시방석처럼 다가오더라고요. 무엇보다 저희는 외국학생들을 대상으로 사물놀이를 가르칠 때 교감을 가장중요시 여깁니다. 이건 교육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저흰 단지 그들이 사물놀이를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는거죠, 같이 배우는 입장이 되다보니 교류라는 단어가 더 편하기도 하고요.

 

” 젊음의 재산은 열정이라고 했던가? 얼쑤는 북경대내의 동아리 중에서도 열악한 재정환경으로 유명한 동아리다, 게다가 중국당국에서 집단모임에 엄격한 규제를 하기 때문에, 외국인의 신분으로 무엇을 모여서 한다는 것 자체에 학교에서도 매우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얼쑤는 동아리방은 고사하고 빈 강의실 조차 마음껏 쓰지 못하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허나 이에 대해 얼쑤는 매우 긍정적으로 얘기를 하고 있다. “물론 한국에 비해 동아리에 대한 지원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위기가 기회다’라는 말도 있듯이, 저희가 연습실을 못 구해 공원 잔디밭을 전전하게 된게 오히려 더 많은 중국인들에게 사물놀이를 선보이는 기회가 되었죠!” 기존에 교내 대학생들 위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던 얼쑤의 공연이, 야외연습을 통해 중국의 일반시민들도 사물놀이를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연습공연은 정말 보잘것없거든요, 박자가 안 맞아 틀리기가 일쑤고, 복장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연습을 하는데, 많은 분들께서 그런 모습조차 좋게 봐주시니 저흰 정말 감사할 따름이죠. 참! 한번은 연습을 하고 있는데 어느 할아버지 한분이 손자 손에 이끌려 저희 연습을 보러 가까이 오시더라고요, 손자가 사물놀이의 장단에 신나 폴짝거리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를 보는 그 뿌듯함은 정말 말로 표현 할 수 없어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주변 관객들이 저희와 사진 찍기를 부탁하고 조촐한 연습공연에 박수를 쳐주실 때와 저희 주변에 모여든 세계각국의 유학생들의 연이은 감탄사를 듣자면, ‘아, 정말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정말 더 열심히 연습해서 좀더 완성도가 높은 공연을 보이겠다는 다짐을 하곤 하죠.

 

한중문화교류의 오늘과 내일

 

그렇다면 이들은 현재의 한중 양국간의 문화교류형태에 대해선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인터뷰 중 내내 밝던 표정이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진지해지더니, 잠시 후 신정화양이 말문을 이어갔다. “올해로 한중수교가 18년째로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한중양국간의 문화교류는 미디어매채를 통한 한류와 중국 문화 유적지를 방문하는 투어(tour)식의 단순하고 일반적인 교류가 대다수에요, 제가 보기엔 이런 식의 교류는 양국간의 우호증진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한류가 중국 대륙을 휩쓸고, 중국 내 해외 관광객 중 한국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해도 반한(反韓)감정과 반중(反中)감정은 날이 갈수록 드세지기만 할 뿐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일방적인 교류보단, 사람을 통한 문화교류가 절실하다고 봐요, 이 때문에 저희가 저희가 얼쑤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지요. 보세요, 한류를 통해 한국을 사랑하게 되는 중국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만리장성과 천단공원을 방문하고 나서 중국을 사랑하게 된 사람이 없듯이 말이에요, 허나 좋은 한국친구를 둔 사람 중에서는 한국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죠. 물론 현재 양국학생들간의 교류프로그램이 많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경제, 정치 등 학술적인 교류뿐이에요, 이런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학생들끼리 우정을 다지기엔 주제가 너무 딱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교류보단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한 학생활동을 늘려야 한다고 봐요. 국적을 떠나 사람들과 우정을 쌓아가기에 문화예술적인 측면으로 다가서는 것이 저희의 경험으로 봐도 훨씬 효과적이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긴 인터뷰의 마지막으로 사물놀이를 받아들이는 외국학생들에게 바라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얼쑤는 ‘열린마음’을 부탁했다. “아무리 잘하는 풍물단이 와도 꽉 닫힌 마음을 비집고 들어갈 순 없습니다. 가끔 문화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중국학생들을 접할 때가 있어요. 전 지구상에서 중화권의 문화 외에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친구들이지요. 이런 경우에는 저희도 방법이 없죠. 하지만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와준다면 저희가 사물놀이라는 한국의 소리를 좀 더 쉽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낯선 것에 대해 거부감이 먼저 드는 경우가 있어요. 사물놀이에 대한 외국인들의 거부감은 사물놀이를 자주 접해보지 못해, 생소함에 대한 적대감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에 대처하기 위해 저희는 더 많은 사물놀이공연과 수시로 게릴라 콘서트를 열어 중국학생들에 사물놀이가 더 이상 생소한 이방인의 문화가 아닌 같이 더불어 가는 이웃의 문화로 다가서려 합니다. 이와 더불어 한국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습니다.”

 

홀몸으로 어린나이에 이국객지에 와선 공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유학생들이, 우리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열정 하나만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대견해 보였다. 사실 많은 외교사절단과 문화탐방단이 양국을 오가고 있지만, “얼쑤”야말로 한중대학생들의 문화예술교류를 이끄는 주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디 그들의 이 열정이 오래 지속되어 한중 관계를 활짝 비추어줄 태양으로 성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