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프로그램으로 영화와 예술의 접점 찾는 시네마데크 프랑세즈

글_노철환(아르떼 프랑스 통신원)

태권도의 종주국을 우리나라라 하고 축구의 종주국을 영국이라고 하는 것처럼, 흔히 영화의 종주국으로 프랑스를 꼽는다. 1895년 12월 28일이라는 번듯한 생일도 있다. 이날은 뤼미에르 형제(Freres Lumiere)가 파리의 그랑 카페 지하실에서 최초의 유료 상영을 했던 때이다. 1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프랑스는 자국의 영화 산업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지구상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파리 베르시 가 51번지에 새로 둥지를 튼 시네마데크 프랑세즈


영화애호가의 산실, 시네마데크 프랑세즈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영화를 문화와 교육 그리고 산업적인 측면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문화 통신부 산하 국립영화 센터인 CNC(Centre National de la Cinematographie)는 프랑스 영화 환경의 총괄적인 방향을 설정하는 핵심 기관이다. CNC 지휘권 안에 자리한 시네마데크 프랑세즈(Cinematheque Francaise)는 대를 이은 영화 애호가(Cinephile)를 만들어내는 영화 교육관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인들의 영화에 대한 폭넓은 사랑은 그냥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 아니다.
1936년 9월 2일 그 첫발을 뗀 시네마데크 프랑세즈가 고희를 맞은 올해 가을, 처음으로 번듯한 제 집을 마련했다. 메신느 가(街), 샤이오궁 등 여러 셋집을 전전하던 시네마데크는 지난 9월 28일 베르시 가 51번지(51, rue de Bercy)에 새 둥지를 텄다. 건물 표면적만 14,400㎡에 4개의 상영관, 특별 및 상설 전시관 그리고 도서관과 식당까지 겸비해 영화의 본거지로서 구색을 갖춘 셈이다1).그 안을 채우고 있는 내실 역시 만만치 않다. 현재 시네마데크 프랑세즈가 보유하고 있는 필름의 숫자는 약 4만여 편에 이른다. 4천여 종에 달하는 영화 기자재들, 1,500여 종의 소품들, 1천여 벌의 의상이 소유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2004년 한 해 동안 보존, 복원한 장단편 영화도 120편에 달하며, 매년 10만 명이상의 관객들이 이곳의 상영회를 찾고 있다.

영화의 매력과 비밀을 나누어주는 곳
시네마데크 프랑세즈가 내세우고 있는 3대 목표는 보존과 복원(Conserver et restaurer), 상영(Montrer) 그리고 전달(Transmettre)이다. 이들은 영화 유산의 박물관으로서 손실되어 보기 힘든 영화들을 찾아 복원하고,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보존하여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영화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제공함으로써 진정한 영화 애호가를 키워내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시네마데크 프랑세즈의 대표를 맡고 있는 클로드 베리(Claude Berri)는 “우리의 교육 프로그램은 영화 예술에 대한 취향을 전달하고, 그 실제를 알려주고자 하는 야망을 가지고 모든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즉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비밀을 나눔으로써 관객이 영화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교육 프로그램으로 영화와 예술의 접점 찾기
현재 개관 기념으로 열리고 있는 <르누아르/르누아르(Renoir/Renoir)>전은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였던 아버지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와 영화사의 가장 중요한 감독중 하나인 아들 르누아르(Jean Renoir)의 예술 세계를 비교 전시하는 흥미로운 행사이다. 장 르누아르의 1946년 작 <시골에서의 하루(Une Partie de Campagne)>를 중심으로 영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흔적과 영향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전시회이다.
시네마데크 프랑세즈는 전시회 프로그램을 교육과 연결지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영화와 예술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연말까지 총 4회로 편성된 “게임의 법칙(La Regle du Jeu)2)”은 6-9세, 9-12세로 나뉘어 진행될 예정인데, 감독 르누아르의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화가 르누아르의 이미지를 찾아보고 어린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기를 계획하고 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어려운 전시회를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스스로 전시회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같은 전시회와 관련해 중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 “빛과 색깔(Lumiere et Couleur)과 고등학생을 위한 프로그램 “작업에 있어 르누아르들(Les Renoir au Travail)”을 각각 마련해 눈높이 전시회를 선보이고 있다.

르누아르/르누아르 전의 포스터


다각적인 파트너십
시네마데크 프랑세즈는 2005-2006년 시즌3)의 청소년 프로그램으로 “영화, 젊음의 100년(Le Cinema, Cent Ans de Jeunesse)”을 제시하고 있다.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 프로그램은 영화에 있어 빛의 역할을 찾아보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극장에서 영사의 방법, 영화 속의 빛에 대한 분석,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실험 등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영화의 기술적인 면에서 예술적인 면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학생과 어른이 함께 참여하는 영화의 빛에 관한 글쓰기 대회도 내년 6월께 계획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파리와 근교(Ile-de-France)지역 학생들에 대해 진행할 예정이며, 스페인 등 유럽 전역에 소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중고등학생과 영화를 연결지은 교육 프로그램이 가능한 배경에는 교육부와 문화부의 지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네마데크 프랑세즈에는 교육을 전담할 교육팀과 작품을 만들어낼 작품팀이 구성되어 있다. 교육 프로그램에는 시네마데크가 가지고 있는 기자재와 소장품들이 가동된다. 상영되는 영화를 보고 생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가 쌓아온 역사의 산물과 직접 조우하며, 영화 제작 현장에 다가감으로써 영화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가능케 하기 위함이다.
프로그램 계획과 진행에서 돋보이는 것은 시네마데크 프랑세즈 혼자의 힘이 아닌 다른 기관 및 단체들과 연계 지점이다. 큰 틀에서는 화가 르누아르 작품을 기꺼이 대여해주고 카달로그를 공동 집필한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또 프랑스 5(France 5) 방송국에서는 전시회 관련 사이트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했다.4). 보다 구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파리 17구에 위치한 시네마데크 로베르 리넹(Cinematheque Robert Lynen)이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시네마데크 프랑세즈가 자리 잡은 새 건물의 건축사적 의미를 짚어보는 것이다. 또 크레테이으 아카데미(Academie de Creteil)에서는 중고등학생들에게 3일 동안 시네마데크 프랑세즈 소장품들의 작동 방법을 교육하는 “영화 열정(Passion Cinema)” 교실을 진행한다. 이외에도 17구에 위치한 발작(Balzac), 14구에 위치한 라스파이으(Raspail), 12구의 폴 발레리(Paul Valery) 고등학교들과도 손을 잡고 선택 혹은 의무 과목으로 시네마데크 프로그램과 연결지은 영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네>와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의 <시골에서의 하루>의 한 장면


프랑스 극장에 들어설 때 가끔은 부러움을 느낀다. 영화 상영과 관련한 각종 시설이야 한국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상영되는 영화들의 풍성함과 또 그 영화를 찾는 관객의 폭넓음은 탐날 수밖에 없다. 부모님 손을 잡은 어린 아이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들이 시내 중심가의 멀티 플렉스부터 동네 구석의 예술 전용관의 좌석을 채우는 나라가 프랑스이다. 관객의 상당수가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 사이인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연령대는 35세에서 49세 사이다. 심지어 50대 관객 숫자가 25세에서 34세 사이의 젊은 관객수보다 많을 정도이다5).
때로는 영화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다르지 않나 싶다. 젊은이들이 즐겨보는 할리우드 영화 상영에는 팝콘 부석거리는 소리와 떠들썩한 기운이 가득하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안에서 맑은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자세는 대단히 신기하다.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은 실험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학구적인 태도는 사뭇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프랑스인들의 영화에 대한 애정은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운명처럼 그들을 찾아온 것이 아니다. 영화를 문화 산업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정부의 인식과 이를 관객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하고자 애쓴 영화 애호가들의 노력이 영화를 향한 애정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에 대한 작은 증거를 시네마데크 프랑세즈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발견했다면, 억지라고 말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1)육면체와 원통과 원뿔을 붙여 놓은 듯한 형태의 시네마데크 프랑세즈 건물은 미국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의 작품
이다. 해체주의(Deconstructivism) 건축의 대표적인 인물인 그는 미국문화원으로 계획된 이 건물을 1992년에 설계했다.
2)<게임의 법칙>은 장 르누아르가 1939년에 연출한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3)프랑스의 학제는 9월에 새로운 학년이 시작한다. 각종 기관들의 프로그램 역시 9월에서 시작해 이듬해 8월까지 진행된다.
따라서 이들은 ‘2005-2006 시즌’식으로 표기되는 것이 일반이다.

5)CNC가 2004년 연감에서 밝힌 연령대 관객 비율은 다음과 같다. 6-10세 6.6%, 11-14세 5.2%, 15-19세 7.0%, 20-24세 6.7%, 25-34세 14.1%, 35-49세 23.0%, 50-59세 14.7%, 60세 이상 22.7%, CNC, Les films en salle, Bilan 2004, p.13.

노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