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위에 세워진 어린이 문화도시 홀론

글_서혜림(힘마건축 대표)

지중해에 접한 텔아비브(Tel-Aviv)에서 이스라엘의 동쪽을 가로질러, 예루살렘 그리고 사해로 이동하는 거리는 불과 2시간. 하지만 도로를 따라 눈앞에 펼쳐진, 마치 낙타들의 거대한 혹과도 같은 사막의 풍경은 깊이 축적된 시간의 거대함을 느끼게 했다. 요르단과 경계를 이루는 사해를 출발하여 사막에서 양을 치며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텐트를 지나면 중세를 연상시키는 예루살렘을 만나게 되고 조금 더 지나면 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미래지향적인 도시 텔아비브를 만나게 된다.
1933년에 설립된 홀론(Hollon)이란 도시는 텔아비브 남쪽에 접해 있는 교외 주택지다. 모래땅, 즉 사막이라는 뜻인 홀론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따른 성장뿐만 아니라 미래의 시민들을 위한 도시의 소프트웨어에도 투자하고 있었다.

사막, 어린이를 위한 문화도시로 변신하다
대부분의 도시가 시민을 위한 극장, 공연장, 미술관 등 문화 공간들의 구축에 중요성을 부여하듯이 홀론 역시 사막을 도시화하는 과정에서 문화복합 공간들을 설립하는 데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아이들의 문화도시’라는 모토를 내걸고 체계적이며 참신한 프로그램으로 꼬마 시민들, 즉 미래 세대의 문화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신념과 에너지가 넘치는 홀론 시의 부시장(city manager)인 하나 헤르츠만(Hana Herzman)은 홀론 시를 아이들을 위한 문화도시로 설정함으로써 많은 젊은 부부들이 정착했고, 이를 통해 활력이 넘치는 젊은 도시로 만들어 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먼저 아이들을 위한 다양하고 특별한 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소규모의 보육 센터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은 EQ 발달을 돕는 교육효과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또한 2001년 3월에 개장한 이스라엘 어린이 박물관의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홀론 시의 위상은 국가적인 어린이 센터로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그 후 하바 예다 어린이 과학박물관(Hava Yeda Interactive Science Children’s Museum), 그리고 최근에는 미디어테크(Mediatheque)라는 큰 규모의 도서관과 어린이 전용극장의 복합시설이 도시의 중심에 완공됨으로써 아이들을 위한 문화도시의 위상을 더해가고 있다. 미디어테크 바로 옆 부지는 현재 대형 디자인 센터를 설계 중이라고 했다. 헤르츠만 부시장은 도심 한가운데에 이러한 거대한 어린이문화복합공간을 세움으로써 도시의 삶과 적극적인 연결을 도모하고, 도시 곳곳에 이야기가 담긴 공원들을 배치하여 내 외부 문화공간이 접속하며 어린이 문화도시를 만들어 가는 것이 홀론 시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홀론 시에서는 1년에 네 번, 아이들을 위한 축제가 벌어진다. 고전문학에서 현대문학까지 구연동화 방식과 전시 및 공연들을 통해 아이들로 하여금 문학에 대해 친근감을 갖게 하는 <어린이독자축제>, <국제인형극축제>, 음악과 공연의 축제인 <아이들세상축제>,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영화제인 <매직 스크린>이 그것이다. 또한 홀론 시 일곱 곳에 위치한 이야기공원 프로젝트는 문학과 조각의 만남으로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홀론 시는 명실공이 아이들을 위한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요람에서 시작되는 문화예술교육 – 보육센터

음악, 연극, 미술 영역을 통합한 창조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예술복합문화 보육센터


미래의 시민들을 위한 문화생활의 일환으로 초기에 시도된 홀론 시의 보육시설은 이제 다양한 과외활동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음악 보육센터, 실생활 보육센터 그리고 우리가 방문한 예술복합문화 보육센터 등이 있다. 이 시설들은 유치원 프로그램과는 별도로 운영되는 곳이나 유치원생들이 유치과정의 일부로 정기적인 참여를 하고 있다.
음악 보육센터에서는 말 그대로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창조성을 기르고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운다. 세 살 이상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클래식부터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음악과 친근해지도록 한다. 또한 홀론 시는 교육청과 함께 도시의 유치원생들을 위해 매년 10회의 특별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그들의 연주로 음악회를 연다.
3세에서 5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생활 보육센터는 매일 터득해야 하는 일상 속의 습관적인 기술을 올바른 사회성과 함께 배우는 곳이다. 이곳의 모토는 삶에서 접하게 되는 여러 가지의 도전을 개인의 성장이나 발전의 기회로 바꾸어나간다는 것이며 사람은 누구든지 각자의 삶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어린 나이부터 예기치 않은 상황들에 대비할 수 있는 인내력, 자신감 그리고 책임감을 기르도록 하며 변화와 대립에 대처하는 방법을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예술복합문화 보육센터는 음악, 연극 그리고 미술 영역을 통합하여 진행하는 창조적인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에게 자기표현이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강화시키고 있다. 연극을 통해 제스처나 대화를 익히며 음악으로 리듬과 음색, 음조 등을 통한 대화 방법을 익히기도 한다. 미술전시장은 예술가들의 원작 그림들을 전시하는 일반적인 갤러리 공간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림들을 전시하는 점이 이채로웠다. 방문을 하면서 흥미롭고 참신하다고 느낀 부분은 다양한 분야의 접목이었다. 가령 미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가지각색의 천을 나누어 주고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면서 미술을 가르쳤다. 이렇듯 이곳에서는 문화, 예술의 복합성을 통한 교육을 강조하고 있었다.

감성을 창조하는 아이들의 놀이터 – 어린이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어린이들이 상상과 환상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북돋워주는 곳이다


작은 호수를 끼고 넓게 펼쳐진 공원에 위치한 어린이박물관을 찾아갔다. 이제는 국립어린이센터가 된 이 박물관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어린이 미술관이나 박물관과는 차별화된 창조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박물관은 ‘감정, 사고, 지각’을 주제로 한 건물과 ‘일생의 순환(Cycle of Life)’이야기를 담은 건물이라는 두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이 교훈적이거나 인식체계로 배워가는 방법이 아닌 EQ의 증진을 통한 배움에 중요성을 두는 이곳은 서로 대화형식의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써 아이들의 상상과 환상을 현실 세상에서 펼쳐나갈 수 있도록 자신감을 주는 곳이다.
어린이박물관에서는 4세에서 8세까지, 8세에서 11세까지의 두 개 그룹으로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선 공예 및 미술 워크숍에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 그룹 당 10명 미만의 박물관 전문 가이드들 -이들은 전문 연극인이기도 하다- 이 안내와 함께 1시간 30분에 걸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아이들은 스토리를 따라 마치 3차원의 무대공간인 듯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들의 감수성, 사고 그리고 감정들을 키워가게 된다. 갈등이며 다양한 감정들의 경험을 통해 사고와 감정의 차이에 대해 배워나가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은 스토리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스토리의 줄거리를 함께 풀어나간다. 그들이 영웅이나 주인공으로 돌변하기도 하고 스토리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교훈적인 가르침이나 하나의 정답을 제공하기보다는 재미를 통해 창조적인 감정의 경험으로 얻는 배움을 주기 위함이다.

어린이박물관의 프로그램은 하나의 정답을 제공하기 보다는
재미를 통해 창조적인 경험으로 얻는 배움을 주고자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는 <어둠 속에서의 대화>라는 독일에서 기획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8개월 동안 70,000명이 방문했고 반응이 좋아 더 연장했다고 박물관 디렉터인 지비아 빈더(Zvia Binder)가 설명했다. 8세부터 입장 가능한 이 전시는 캄캄한 7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10명 이하의 인원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전시장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가이드들은 모두 시각장애인이다. 숲 속의 공간, 바닷가의 보트, 도시의 거리, 시장, 숙소, 뮤직 룸을 거쳐서 카페테리아에 도착하는 코스다. 어둠 속에서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감각을 이용하여 실제로 만지고, 변하는 온도를 느끼며, 냄새 맡고, 소리를 통해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1시간에 걸친 이 전시의 경험은 개인적으로 감명이 깊었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출발했던 전시여행은 어느덧 머리 속에 ‘믿음 ’이라는 단어를 맴돌게 했다.

미래를 디자인하는 최첨단의 문화공간 – 미디어테크

홀론 시 한가운데 세워진 대규모 어린이 복합문화예술공간 미디어테크


작년에 문을 연 미디어테크는 도서관과 어린이 전용극장을 혼합한 문화공간이다. 이곳의 디렉터인 라지 아미타이 박사(Dr. Razzi Amitai)의 말을 빌자면 마치 문화의 바구니(basket of culture)처럼 다방면의 문화가 얽힌 곳이다. 또한 이스라엘 아지테크(ASSITEJ-Israel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Theater for Children and Young People)와 소마리온 조합(Somalion Association, 이스라엘 동화 작가와 시인 조합)의 집이기도 하다. 홀론 시 도심 중앙에 위치하여, 초기에는 시립도서관으로 계획되었다가 어린이 전용극장과 어린이 도서관 그리고 전시장 등을 접목시키면서 복합문화의 활기를 불어넣게 되었다. 그 옆으로 이스라엘 디자인센터가 들어설 계획인데 아이들에게 시각, 공업, 그래픽,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디자인 영역을 접하게 하고 새로운 재료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미디어테크는 도서관과 어린이전용극장, 전시장을 접목했다


미디어테크에는 세 개의 극장(에그, 블랙박스, 어린이 전용극장), 어린이 도서관, 일반인 도서관, 음악 도서관, 식당 그리고 전시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다. 멀티미디어 룸, 컴퓨터 룸 등을 비롯하여 테크놀로지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공간들은 분리되어 있기보다는 연결되어 있었는데 단면상으로 어린이 도서관과 일반 도서관이 서로 열려 있다. 10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하는 에그 극장은 어린이 도서관과 바로 접하고 있어 도서관에서 선택한 책으로 구연동화나 공연을 진행하기도 한다. 블랙박스 극장은 관객과 공연자의 영역이 구분되지 않는 멀티 공간이며, 400명을 위한 대극장은 어린이 전용극장답게 아이들의 시선 및 동선 그리고 좌석 디자인까지도 세심하게 배려하였다. 무대공간 및 극장의 내부공간은 좁은 통로들을 통해 답사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으며 아이들은 극장공간과 구조가 어떻게 설계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미디어테크의 어린이전용극장은 아이들의
시선 및 동선, 좌석디자인까지 세심하게 배려했다


아이들을 위한 전문 연극단을 운영하는 미디어테크는 일 년에 다섯 개의 프로덕션을 창작하고 공연한다고 했다. 작품은 단순한 흥미위주나 오락이 아닌 미래의 시민이 될 아이들을 위한 수준 높은 공연들이다. 공연관람 및 참여는 홀론 시의 초등학교 수업의 일부로 한 달에 두 번씩 연극공연을 보러 오는 것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한 연극을 적극적으로 배우는 아이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2학기 단위로 드라마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으며 시의 교육부와 함께 운영한다고 한다.

일상이 곧 문화예술이 된다면
홀론 시를 뒤로 하고 지중해의 햇빛을 한껏 받으며 텔아비브공항으로 향하면서 아들과 다시 오겠다고 다짐한다. 디즈니랜드나 어린이대공원이 아닌 문화적인 프로그램들을 우리 어린이들이 기쁨과 즐거움을 통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하기를 바란다. 또한 그들의 세상과 그들의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창의적인 복합 문화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유태인들의 어린이 교육에 대한 열정에 다시 한번 감동하면서, 시간의 깊이를 담은 듯하던 이스라엘 사막의 풍경을 실험적이면서도 체계적인 방법으로 꼬마 시민들을 위한 문화도시로 바꿔가고 있는 홀론 시는 그렇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끝으로 이 답사를 가능하게 해준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특히 라지 아미타이 박사의 많은 도움과 아낌없는 배려에 감사한다.

서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