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고 춤추며, 추억을 기른다

 

예술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일까? 적어도 이 아이들에겐 아니다. 누군가는 멀고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를 손에 쥐고, 누군가는 어느 유명 뮤지컬 배우 못지않은 솜씨로 ‘도레미 송’을 부른다. 지난해 9월부터 5개월간 이어진 힘든 연습과정을 지나 이제 첫 무대를 연 해피아트 커뮤니티 공연 <꿈꾸는 아이들>. 그 맑고 푸른 아이들의 꿈을 만나봤다.

지난 1월 23일 토요일. 서울 노원구 창동에 위치한 서울 열린극장 무대에서 조금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공연의 이름은 ‘꿈꾸는 아이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원장 이대영)과 사단법인 예술교육지원센터가 함께 주관한 이 무대에 공연자로 오른 이들은 무려 150여 명의 학생들이다. 바로 사회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인 ‘해피아트 커뮤니티’에 참여한 노원과 수서 지역 아동, 청소년들이 그 주인공. 5개월 동안 전문예술인 지도교사들의 특별 수업을 받아 밤낮으로 연습하고 몸에 익힌 뮤지컬, 클래식, 합창 공연을 드디어 무대 위에 올리는 순간이다.

 

땀과 열기로 가득한 단 한 번의 무대

 

어둠이 내린 무대. 정적 사이로 뮤지컬과 클래식 공연자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는다. 이날 공연의 오프닝 곡 ‘애니 드림 윌 두(Any dream will do)’가 이미진 음악감독의 지휘에 맞춰 객석을 가득 메웠다. 관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자 곧 이어 교장선생님과 지도 선생님으로 분한 네 사람이 무대 위에 올랐다. 오늘 ‘꿈꾸는 아이들’ 공연의 준비 과정을 관객들에게 이야기로 들려주고 무대 진행을 담당하는 이들은, 말하자면 그리스 연극 속의 ‘코러스’인 셈이다. 코러스 배우들은 이제부터 클래식 반, 뮤지컬 반, 합창 반이 겪어온 연습의 과정을 이야기로 들려주고 소중하게 준비한 공연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배우들이 펼치는 연극적 틀 안에 학생들의 합창, 뮤지컬, 클래식 공연을 한데 묶은 오늘의 공연이 드디어 시작된다.

 

보고 듣기만 했던 오케스트라를 무대 위에서 직접 연주에 나선 클래식반의 발표곡은 ‘미뉴에트’. 이어 합창반 55명의 앳된 목소리가 어우러진 ‘멋쟁이 할아버지’. ‘아름다운 세상’이 무대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이어진 무대에서는 뮤지컬반이 준비한 ‘도레미 송’과 ‘에델바이스’가 울려 퍼진다.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대표곡으로 누구나 귀에 익어 흥겨운 멜로디다. 분위기가 잔뜩 고조된 가운데, 이번에는 합창, 클래식, 뮤지컬이 모두 한데 어우러진 축하공연으로 아바의 히트곡을 뮤지컬로 만든 <맘마미아>의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 ‘댄싱 퀸(Dancing queen)’, ’아이 캔 헬프 폴링 인 러브(I can’t falling in love)’가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춤과 노래가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사이, 어느덧 객석에서도 흥얼흥얼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무대를 마주하고 앉은 오늘만큼은 무대 위의 배우와 관객이 따로 없고, 선생님과 학생이란 구분도 모두 사라지는 듯하다. 모두가 배우로, 연주자로, 댄서로, 가수로 무대를 넘나들며 뜨거운 박수와 열정을 나눴다. 공연이 끝나갈 무렵, 단 하루의 공연을 위해 5개월간 구슬땀을 흘리는 장면을 보여주는 메이킹 필름이 돌아가자 관객석도 절로 숙연해지는 듯하다. 그 동안의 노력과 행복, 그리고 오늘 그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보여준 사람들 사이에서 따뜻한 박수가 퍼져나갔다.

 

행복을 키우면 아이들이 자란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대영 원장은 “요즘 많은 우리 아동, 청소년들의 삶이 행복하지가 않다. 그 아이들에게 음악이나 미술, 뮤지컬 같은 예술 교육을 통해서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 바람이 있다.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예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삶은 그렇게 힘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것.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 바로 해피아트 사업의 의미”라고 설명한다.

 

저소득층 자녀들을 중심으로 예술 교육 사업을 펼치는 ‘해피아트 커뮤니티’는 베네수엘라의 예술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에서 착안해 시작됐다. ‘엘 시스테마’는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고안하고 1975년부터는 베네수엘라 국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저소득층 음악 교육 프로그램. 세계적인 지휘자 구스타브 두다멜과 베를린 빈 오케스트라 단원 에딕슨 루이즈를 키워내 그 효과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저소득층에서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전문적인 예술 교육이 가져다주는 지역민들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대영 원장은 감사의 글을 통해 “아동, 청소년기의 예술교육은 수혜자인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속한 지역 전체에 파급되는 영향력이 크다”며 한국형 ‘엘 시스테마’, 즉 해피아트 커뮤니티 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제야 막 첫걸음을 뗀 사업이지만, 쟁쟁한 전문 예술인들이 대거 참여한 점은 해피아트 커뮤니티 사업의 미래에 기대를 품게 한다. 뮤지컬 배우 김선경은 명예교사로 참여해 ‘꿈꾸는 아이들’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고 <돈 주앙>, <하이스쿨 뮤지컬> 등을 연출한 김규종 감독과 민경수 조명감독, 김기영 음향감독 등 공연계 전문 스태프들이 참여해 프로페셔널 못지 않은 공연의 완성도를 이끌어냈다. 또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와 신아라 자매는 일일 교사로 참여해 클래식반 특강을 가진 바 있다. 아이들이 전문 예술인을 보다 가까이 느끼고 인생의 롤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며, 교사로 참여한 이들 역시 만족도가 높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해피아트 커뮤니티 사업은 앞으로 민간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더욱 확장될 예정이다. 2010년에는 총 다섯 개 권역에서 오케스트라단을 만들어 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 이대영 원장은 “올 해는 더 많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면서 “지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문화부 기관으로 정부와 국회의 예산 통제를 받고 있어 사업 확장에 제약이 없진 않다. 그러나 주무부처 장관들이 친 서민 문화정책에 관심이 많고, 모든 국민이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 서민 위주의 정책을 실행할 예정이다. 이제는 문화예술이 삶의 장식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오늘 공연에 참여한 학생들에게는 자아실현과 표현력, 창조력이 향상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렇듯 어렸을 때 느끼는 행복이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그 자신감이 미래에 대한 긍정적 마인드로 자라나지 않을까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