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가다] 부평에 가면 풍물이 보인다 – 부평문화원의 캠프이야기


더위가 지나가고 학생들의 여름방학이 끝이 났다. 방학에는 대개 학교를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찾는다. 특히 여름에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야외 캠프가 많이 진행되는 것도 그런 이유일 터인데,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다양한 주제와 특징을 가진 캠프들이 방학동안 진행되었다.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부평문화원에서는 올해 학교-지역연계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8월 7일부터 12일까지 5박 6일 동안 전통문화예술 캠프를 진행했다. 학생들과 교사들을 포함하여 무려 120명이 참여했다는 이 캠프는 전통문화예술에 대해서, 지역에 뿌리를 두는 문화에 대해서,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과정과 형태에 대해서,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원론적인 명제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부평문화원의 김지연씨를 만나 이 많은 이야깃거리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부평문화원의 전통문화예술 캠프

캠프에 참여한 학교들은 고등학교 한 곳과 초등학교 다섯 곳이었다. 대개 이런 캠프는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완전히 다르고, 함께 캠프를 가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러나 부평문화원의 캠프는 학교별로 반을 구성해서 연령을 구분했을 뿐 모두에게 동일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는데, 대신 작년과 다르게 놀이 개념을 도입했다고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초등학생들이 많이 참여했는데 이들이 좀 더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요. 공연을 ‘창작놀이’라고 부르면서 놀이하듯이 공연 준비를 하도록 했어요. 매일 저녁 아이들과 강사들이 모여서 어떤 주제로 공연을 꾸밀 것인지를 자유롭게 논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유로운 사고에서 풍물을 대하도록 하는 거죠. 이때 나오는 얘기들을 비록 다 공연에 선보이지는 못하지만, 그 자체로 창의적인 사고를 길러줄 것입니다.”

 

 

 

캠프의 일정은 매우 빡빡했다. 매일 사물놀이의 여러 가락을 배우고 마지막 날 전체 학생들이 반별로 공연을 하는 프로그램. 아침 8시부터 식사를 하고 나서는 2-3 시간 동안 사물놀이 장단을 연습하고, 식사 하고 또 연습한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낮에 배운 장단들을 가지고 어떻게 창작 놀이를 만들어 공연할 수 있을지 구상하는 논의 모임을 갖는 것이다. 이런 모임이 없다면 마치 운동선수들의 전지훈련과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 저녁 학생들은 피곤함도 잊고 모여서 기발하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을 내놓았다. 장구 대신 종이 박스를 친다든가, 수영장에서 악기 대신 물을 친다든가, 혹은 악기를 뒤로 매고 앞 사람의 악기를 친다든가 하는 아이디어를 나누는 과정은 전통문화에 대한 친화력을 높이고 창의력과 협동심을 길러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제가 맡은 팀에서는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노래에 맞춰 장구 배틀을 해보자고 했어요. 그런데 정작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는 부끄러움을 너무 많이 타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지요. 무대에 서는 경험이 없어서일 텐데, 이런 기회를 자주 가지다 보면 알게 모르게 발표력도 향상되겠지요. 또한 이런 합숙 생활이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언니들과 초등학생 동생들이 어울려 있으니 친구를 배려하고 동생을 돌보며 선생님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단적으로 방에 열 명이 자는데 화장실은 하나라고 하면 서로 사용하는 순서를 정하게 되지 않겠어요? 자기네들 안에서 질서를 잡아가는 방법도 배우고요.”

이 캠프는 특이하게도 교사반이 별도로 있어서 학생들과 함께 사물놀이를 배웠다. 문화예술교육 담당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학교에서 학생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교사들이 직접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곤 한다. 이것은 일선의 교사들의 욕구이기도 했다. 그래서 교사들은 이 힘든 일정을 학생들과 함께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강사들 사이에서 교사 워크숍이 따로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이 진작에 나왔던 터였다. 여기에 교사들의 적극적인 반응이 더해지면서 이번 캠프에서 교사반이 등장하게 된 것. “캠프에 상모를 개인적으로 준비해 와서 연습하는 교사도 계셨어요. 상모가 생각보다 매우 힘들고 머리가 아픈 것인데, 연습하다가 토할 정도로 열성을 보이시더라구요. 아직은 교사들이 직접 학생들을 지도할 만한 단계는 못되지만, 앞으로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풍물을 매개로 이어지는 것들

부평문화원에서 문화예술교육 담당자로 일하는 김지연씨는 사실 부평문화원에서 풍물을 배웠다. 7년 전 그녀가 부평여자공업고등학교에 다닐 때 시작한 풍물은 현재까지도 그녀와 부평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고 있다. “당시에 우리 학교가 풍물 동아리 활성화학교로 선정되었어요. 그때는 부평문화원에서 풍물 기본을 배우고 부평 지역 풍물 동아리가 있는 학교끼리 교류를 해서 서로 배움을 주고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실력도 대단해서 전국대사습놀이에도 참가하고 해외 초청 공연을 간 적도 있어요.”

현재 부평문화원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것 외에도 김지연씨는 타악 퍼포먼스팀에서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풍물은 그녀와 부평의 연결고리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10대와 20대를 관통하는 핵심어이기도 하다. 그때 같이 풍물을 배우던 친구들 중에서 풍물이 직업이 된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이제껏 지역사회의 문화예술교육의 중요한 지점 중의 하나는 ‘지역문화’의 고양이라고 지적하는 많은 이들을 여러 차례 만났다. 그리고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문화단체가 지역 주민의 문화 향유권와 소속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도모하는 예 역시 상당수 보았다. 그런데 그런 노력들이 성과를 보이는 ‘정점’은 바로 지역 문화를 배우며 자란 젊은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자신이 배운 지역 문화를 전수해주는 광경이 아닐까 한다. 바로 김지연씨의 예처럼. 수줍은 표정과 상냥한 말투를 가진 그녀가 “저도 부평문화원에서 풍물을 배웠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러한 예를 문화적 분위기가 무르익어 향취를 풍길 법한 지역에서가 아니라 문화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들로 먼저 다가오는 부평에서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56만의 인구를 가진 부평은 비슷한 인구 규모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문화 시설이 1/2에서 1/4 수준이라고 한다. 문화도시의 면모를 갖추기에는 초라한 실정이다. 이런 환경에서 부평문화원의 고군분투는 시작되었다. “부평문화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부평구민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보건소 옆 건물 정도로 알고 찾아오는 분들도 많아서 안타까워요. 그런데 새로 지은 부평 기적의 도서관을 관할하고 있는 것이 부평문화원이고, 매주 부평사랑방에서는 마임, 타악 퍼포먼스, 사물놀이, 클래식, 연극, 마술 등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어요.” 부평문화원에서 벌이는 사업은 이렇게 광범위하고 다양하지만, 부평문화원의 힘은 다채로운 사업의 목록이라기보다 그것을 통해 지속적으로 부평의 문화적 특징을 만들어나가려는 지향에서 온다.

문화원의 여름 캠프에 강사로도 참여했던 부평문화원 조성돈 사무국장은 특히 풍물이 부평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도록 한 장본인이나 다름없다. 김지연씨가 고등학생일 때 풍물을 가르쳤던 강사도 바로 이 조성돈 사무국장이다. 조성돈 사무국장의 명함은 두 종류인데, 하나는 부평문화원 사무국장의 명함이고, 다른 하나는 부평풍물대축제를 주관하는 부평구축제위원회 행사국장의 명함이다.

부평풍물대축제는 올해 10주년이 되는 행사로, 부평역부터 중심가 8차선을 막고 매년 한 차례씩 축제를 벌인다. “메인 무대에서는 김덕수패가 공연을 하기도 하고 부평문화원에서 배운 학생들의 공연이 올려지기도 해요. 풍물과 비보이가 함께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요. 더욱 특징적인 것은 부평의 각 동마다 어머니 풍물단 등 주민들로 구성된 풍물단들이 전부 이 축제에 나와서 공연을 한다는 점이죠.” 부평역에서 시작된 8차선 도로를 꽉 메운 주민 풍물단의 공연을 상상해보면, 또한 그런 축제가 10년이나 지속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문화도시로서의 부평에 지나치게 박한 점수를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참여가 주축이 되고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자부심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부평풍물대축제에 대해 말을 하는 김지연씨의 달뜬 표정에서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부평에 뿌리를 내리는 문화예술교육

부평문화원이 문화부평을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도 풍물을 중요한 매개로 생각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학교-지역사회 연계 시범사업의 2006년도 계획에 따르면, 오는 9월부터 12월까지는 “신명나는 전통문화예술”이란 이름으로 학기 중에 풍물을 배우는 프로그램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김지연씨는 여름 캠프에 참여했던 학교와 학생들은 캠프에 대한 만족도가 커서 이후 사업에 참여가 수월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 보았던 많은 사례에서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한계는 있다. 학기 중에 진행되는 학교-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학생들과 교사들의 적극성만큼이나 학교에서의 지원이 성과를 좌우한다. 물론 학교에서 지원이 적고 불편함이 많더라도 학생들의 열의가 남다르다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열의로 극복한다는 추상적인 선언이나 기대보다 실제 시스템으로 정착해야 할 구체적인 지원이 필요한 단계이며, 여기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학교장을 포함한 학교 관리자들의 인식이다. 학교 교육에서 문화예술교육이 필수적인 교과목의 하나는 아니지만, 교과 과정을 풍부하게 할 수 있으며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인 인성 교육에도 적합하다는 것이 학교 안팎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런데도 학교 안에서 혹은 학교 밖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의 사례들을 보면 또한 공통된 의견으로 관리자들의 지원이 아쉽다고 말한다.

“학교장들을 모셔 놓고 워크숍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보세요, 이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좋은 겁니까, 라고 말이죠. 그걸 몸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학교장들이 앞서서 지원해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지원이 적극적으로 되는 학교와 아닌 학교는 학생들의 적극성에서도 차이가 나고 효과 면에서도 차이가 나요.” 초중고등학교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은 이제 더 이상 학생들이나 교사들의 인식 전환에 주력할 필요가 없을 만큼, 현장에서의 학생들과 교사들의 요구는 팽배하다. 지금은 이런 요구들을 적절하게 담아 줄 시스템과 인프라가 필요한 단계인 것 같다.

 


부평문화원의 김지연씨

 

문화예술교육의 작은 역사

“이런 의견도 있었어요. 풍물공연에서 패션쇼의 형식을 빌려 오면 어떨까 하는 거죠. 그러니까 무대 위에서 악기를 매고 일렬로 선 다음, 패션쇼에서 모델이 한 명씩 앞으로 나가 모습을 뽐내는 것처럼, 한 명씩 앞으로 나가 실력을 뽐내고 다른 사람들은 뒤에서 받쳐주고…”

부평문화원의 문화예술교육 담당자 김지연씨의 대학 시절 전공은 의상 디자인이다. 그러나 현재는 문화예술교육에 종사하고 있다. 교과목의 개념으로는 대학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상 디자인 전공자이기 때문에 풍물 공연의 형식을 위와 같은 아이디어로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이란 이런 것이다. 구분과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창의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인생의 매 국면이 정확하게 분절되기보다는 모호하게 통합되어 새로운 맛을 내는 것임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다. 김지연씨는 자신이 부평에서 배운 그런 사실을 후배들에게도 계속해서 알려주고 싶을 것이다. 그 작은 역사들이 되풀이될수록, 부평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과 다른 도시들에서도 자꾸만 그런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