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가다]“오페라? 우리에겐 즐거운 놀이~”부산 그랜드오페라단

공연을 물론 상시적인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지역 주민과 호흡하는 부산 그랜드 오페라단.


 

오페라, 지역주민과 소통하다

아이들 소리로 시끄러워야 할 초등학교 운동장이 조용하다. 그저 건물 한 켠에서 합창소리가 들릴 뿐이다. 자세히 들어보니 교과서에 제목을 올린 익숙한 동요가 아니라 쉽게 들을 수 없는 오페라 아리아곡이다. 교실에 들어서자 부산그랜드오페라단의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인 ‘오페라야 놀자’ 수업이 한창이었다. 3학년부터 6학년까지 70여명의 아이들이 음악실에 옹기종기 모여 하나같이 악보를 펼쳐들고는 화음을 맞추고 있다. 누구 하나 딴 짓 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부산그랜드오페라단은 부산에서 올해로 창단 10주년을 맞이한 대표적인 민간 오페라단이다. 1996년 창단 이래 매년 2회의 정기공연을 펼치고 있고 ‘찾아가는 문화 활동 및 청소년 음악 캠프’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지역 문화 발전과 지역주민의 정서 함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병원이나 고아원 등 문화 혜택을 누리기 힘든 곳을 찾아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지역의 역량 있는 음악 인재 발굴을 위한 교육 사업도 펼치고 있다. 국내외 음악 전문가들을 초청한 마스터 클래스와 성악캠프를 개최해 성악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페라 공연에 관한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문화관광부와 교육인적자원부가 주최하는 2005 학교-지역사회 연계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교육활동에 날개를 달았다. 오페라를 통해 이웃과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던 그들이 아이들에게 오페라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70여명의 아이들이 “오페라야 놀자”수업에 참여한다.

 

학교 교실에서 울리는 오페라의 선율

지난해부터 시작된 ‘오페라야 놀자’는 학생들을 찾아가는 교육이다. 아이들이 오페라를 배우기 위해 오페라단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페라 전문 강사들이 직접 아이들이 있는 학교로 찾아간다. 부산그랜드오페라단이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을 시작한 지난 해에는 공연 위주의 교육에 그쳤다 한다. 예술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공연 중심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다. 오페라가 오르기 1시간 전에 백 스테이지를 관람하고 공연 에티켓 설명을 듣는 수업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스스로 오페라를 만들어보는 창작의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총 8개의 학교가 참여하고 있는 ‘오페라야 놀자’ 교육 프로그램은 매 학기가 시작되기 전 부산 시내에 있는 초,중,고에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공문을 보내 신청을 받는다. 이 중에서 비교적 문화적 혜택을 받기 어려운 학교를 선정해 일주일에 한 번씩 총 5번의 교육이 진행된다. 보통 수업에 20명 내외의 학생들이 참여하는데 자발적으로 신청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뭔지 모르고 수업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지만 수업을 듣고 나면 수업태도가 능동적으로 변한다고한다.


“오페라야 놀자”는 오페라를 배우는 과정은 물론 오페라를 직접 완성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오페라야 놀자’는 그림자 인형극과 오페라 애니메이션 극장, 영어 오페라 체험교실, 공연 관람교실, 오페라 합창 등 다섯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그림자 인형극은 아이들이 직접 그림자 인형을 그려 색칠하고 움직이면서 한 편의 오페라를 완성한다. 아이들 스스로 기획하고 공연하며 오페라의 전반적인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오페라 애니메이션 극장은 자칫 어려워 보일 수 있는 오페라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한다. 2시간 짜리 공연을 30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에 담아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고. 여기에 오페라 등장인물을 그려 넣고 무대 미니어처를 만들어보고 나만의 오페라 스토리를 만드는 창작 활동을 함께 한다. 영어 오페라 체험교실은 자신이 직접 오페라 속의 배우가 되어 보는 시간이다. 그것도 영어 대사로 진행된다. 첫 시간에 원어민 강사와 함께 영어 대본을 외우고 두 번째 시간에 음악을 배운다. 그리고 연기를 배운 후 마지막 날에는 영어 대사를 외우고 노래를 부르면서 완벽한 한 편의 오페라를 만들어 본다. 이날 찾았던 부산 과장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영어대사를 외우며 연기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오페라 합창 수업은 음악을 배우는 시간이고 공연 관람 교실은 직접 오페라 공연장을 찾아 공연을 관람하고 그 준비과정을 경험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쏙쏙’ 빨아들이는 스펀지 같은 아이들

이렇게 구성된 교육 프로그램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수준에 맞지 않거나 흥미를 이끌어 낼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단지 학교 수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시간 때우기 식 수업에 불과한 것이다. 그랜드오페라단의 ‘오페라야 놀자’는 오페라의 눈높이를 낮춰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이날 수업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 모두가 호기심에 가득 차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출석률 또한 100%를 자랑할 만큼 참여도가 높았다.
부산 금샘 초등학교에서 오페라 합창을 지도하고 있는 이성훈 강사는 “대학생만 지도하다 어린 초등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아이들이 마치 ‘스펀지’ 같다고 할까요. 제가 말한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신기하더라고요.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서 열심히 따라부릅니다”라고 수업분위기를 전했다. 금샘 초등학교의 오페라 합창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안겨 줄 예정이다. 9월 30일과 10월 1일 이틀간 그랜드오페라단의 ‘꼬마청소부 구출작전’ 공연에 함께 참여하는 것. 직접 무대 위에 올라 연기를 하고 노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극이 진행되는 중간 중간 객석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연기자와 함께 합창을 하며 관객인 동시에 연기자가 되어보는 색다른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아이들은 오페라에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영어 오페라 체험 교실 역시 강사의 연기 지도에 아이들이 눈을 떼지 못했다. 문을 어떻게 열고 몸을 어떻게 숨기는지 설명하는 선생님의 손동작 하나까지 유심히 살핀 아이들은 서로 연기를 선보이겠다며 손을 흔들어댔다. 게다가 영어 대본까지 외워 대사를 줄줄 외는 모습은 정규 수업시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이었다. 얼마나 많이 넘겨봤는지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지경이다. 이날 수업 시간에는 ‘꼬마청소부 구출작전’이란 오페라의 숨바꼭질 에피소드 연습이 진행됐다.

 

오페라 교육은 문화예술교육의 종합선물세트

오페라는 다양한 문화의 특징을 포함하고 있는 장점이 있다. 한가지 분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오페라에 녹아 있는 음악, 연기, 무대미술, 의상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이야기가 있는 음악을 통해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을 이해하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오페라의 예술 기법과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고 활동하고 느끼면서 아이들의 숨어있던 감성을 개발한다. 연기를 하는 감성, 노래를 부르는 감성, 의상과 무대 디자인을 생각하는 감성을 자극하다 보면 이 중에 적어도 한 가지는 아이들의 소질과 맞닿게 된다. 이처럼 자신의 소질과 맞닿은 문화적 감성은 성장하는 동안 잊혀지지 않고 또 다른 문화적 자극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러한 경험을 전달해 줄 오페라 전문강사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오페라에 녹아 있는 음악, 연기, 미술 등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자극을 받게 된다.

 

그림장 인형극 수업의 경우, 가장 인기 있는 강좌 임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인형극을 아이들에게 지도해줄 강사가 없다는 이유로 단 한 곳에서 밖에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초등학교 수준에 맞는 눈높이 프로그램 개발도 병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환경과 조건이 갖춰졌다 하더라도 어렵고 난해한 교육프로그램은 흥미유발이라는 첫 단계를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문화에 대한 지역민의 갈증과 예술가의 열망이 지역문화예술의 기반”
그랜드오페라단 안지환 단장

10년째 부산 오페단을 이끌며 한편으로는 “오페라야 놀자”를 통해 지역 사회와의 연계를 꾀하고 있는 안지환 단장

-오페라 전문극단으로 지역 문화와 연계하고 있다. 일선에서 느끼는 활동의 어려움이 있을 텐데. 나름의 발전방안이라면.
“부산에서 오페라단을 창단한 지 10년이 됐다. 그 동안 가장 실질적인 문제는 재정적인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역 스스로 열등감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부산을 문화의 외딴지라며 자괴감에 빠져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지역이 가진 가능성 또한 찾을 수 있다. 좋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보니 좋은 공연을 보고 싶은 지역 주민들의 열망이 그 어느 곳보다 크다. 그리고 지역에 몸담고 있는 예술인들 역시 좋은 문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열망이 크다. 이런 갈증이 만나 하나의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면 지역 문화는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 물론 지역이라는 범위의 한계점, 지원의 한계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 범위 내에서 최대한 극대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이 1년 더 남았다. 어떤 프로그램으로 이끌어 갈 생각인가.
“첫해에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할 때는 오페라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오페라 공연이 중심이 됐다. 아직 오페라 공연을 접해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오페라가 어떤 건지 맛만 보여 준거다. 그리고 올해는 좀 더 발전해 아이들에게 오페라를 소재로 한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해 인형극을 하기도 하고 직접 오페라의 한 장면을 연기하기도 했다. 음악교실을 통해 오페라 곡을 부르기도 하면서 그냥 관람하던 오페라에서 벗어나 함께 참여하는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년에는 이런 오페라 체험 교육의 파급효과가 널리 퍼져 많은 학교에 훌륭한 강사진을 보내려 한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 역할에 맞는 의상을 직접 만들어보고 분장을 하면서 창작 오페라 공연을 올릴 수 있게 유도할 생각이다.”

-문화예술교육 추진 시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면.
“문화회관이나 교육회관처럼 문화 교육 단체들이 본격적인 교육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학교를 방문해 교실을 빌려 강의하고 있지만 좀 더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교육공간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