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서쪽 끝 태안반도에서도 한참이나 더 들어가야 나오는 조그마한 바닷가 마을 만대. 하루에 버스가 네 번 밖에 들어오지 않는 이곳은 ‘하도 멀어서 가다가 만대~’라는 이유 때문에 ‘만대’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믿지 못할(?) 전설의 마을이기도 하다. 이 외진 곳에 ‘춤바람’을 일으킨 당찬 무용분야 예술강사가 산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태안지역 최초의
무용예술강사

 

한참을 기다려 만대마을행 군내버스를 타자 운전기사가 “그 ‘꼴(골짜기)’에는 왜 갑니까?”라고 물어 오셨다. “만대에 무용 가르치는 선생님이 계신다고 해서요.”라고 기자가 말하자 기사님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만대에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고요~?” 반문하신다. 그렇다. 있다. 앞으론 바다, 뒤론 꽉 막힌 산이 있는 만대마을에서 농사 짓고 낙지 캐던 아주머니들과 새카맣게 그을려 뛰어 노는 아이들을 불러 낸 예술강사. 작은 마을에 들썩들썩 춤바람을 일으킨 ‘춤 선생’. 그는 바로 최화정 무용분야 예술강사다. 바닷바람보다 더 거세고, 남풍보다 더 따사로운 춤바람에 마을 사람들의 가슴이 열리고 웃음이 꽃피는 현장. 기자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만대마을 춤 선생, 최화정 예술강사를 만나러 갔다.

 

 

취재 전 전해 들은 이야기는 이것뿐이 아니었다. 최화정 예술강사는 춤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도 굽고, 스토리텔링도 하고, 노래도 만들고 같이 부른다 하였다. 도시 사람들이 열광하는 ‘친환경 대안교육’이 바로 만대에 있었다. 최 강사와 함께하는 아이들은 직접 몸으로 느끼고 겪고, 맨발로 흙 밟고 바닷가를 첨벙첨벙 뛰어다니며 그 모든 예술교육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생태 교육, 친환경 예술교육이었다. 태안 지역 최초로 무용분야 예술강사가 된 사람, 지금도 유일무이한 태안의 춤 선생인 최화정 예술강사를 만나보고 싶다는 바람이 뭉클뭉클 커져 온다.

 

눈가 주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환한 미소를 온 얼굴 가득 담아 기자를 반기는 최화정 예술강사. 이 먼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덥석 악수를 청하는 최 강사의 손바닥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아 궁금한 이야기를 모두 풀어놓아 보기로 했다.

 

마을을 아름답게,
예술을 신이 나게

 

아르떼진_안녕하세요! 선생님 ‘소문’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참 만나 뵙고 싶었던 선생님이세요. 잘 지내시지요?
최화정 예술강사(이하 화정)_네! 반갑습니다.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르떼진_‘하도 멀어 가다가 만대~’라는 마을 전설이 무척 실감났어요. 서울에서 여섯 시간 가까이 걸리더라고요. 참 먼 곳인데, 어떻게 이곳에 터를 잡게 되셨는지요?
 
화정_결혼과 함께 만대마을을 알게 됐어요. 남편(양승호 도예가) 고향이 여기거든요.
올해 제 딸이 아홉 살인데요. 작년에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이제 우리 가족도 어딘가 정착을 해야 될 때라는 생각이 들어 시부모님이 살고 계신 만대마을에 들어오게 됐지요. 딸이 학교 가기 전까지는 유럽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남편을 따라 전시회가 열리는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어요. 지금은 이곳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직접 농사를 지어 먹고 살지요. 물론 남편도 저도 여기서 예술 활동을 하고요. 딸은 학교 잘 다니고 있습니다.

 

아르떼진_아~ 이 아름다운 마을이 남편분의 고향이었군요. 그렇다면 이곳에서 선생님이 하고 계신 예술 교육은 어떤 것인지 소개 부탁 드립니다.
 
화정_제가 몸은 하난데 벌인 일은 여러가지네요. 호호~ 일단 만대마을을 중심으로 ‘엄마와 딸’ 커뮤니티 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교육진흥원에서 ‘엄마와 딸’ 커뮤니티 댄스 연수를 받으면서 이것을 지역에 적용해 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곳의 엄마와 딸, 지역에 거주하는 문인, 예술가, 그리고 아동복지시설의 어린이들과 함께 커뮤니티 댄스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안도서관과 함께 ‘숨쉬는 돌’이라는 이름의 초등학생 학력 신장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요. 또한 ‘우리동네 강강술래’라는 예술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 중인데요. 만대마을의 자연을 소재로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직접 만지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자연과 예술이 있는 이곳,
좋은 춤꾼이 나오리

 

아르떼진_정말 대단하신데요. 대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다 해 내실 수 있나요?
화정_이곳 만대마을은 남다른 에너지가 있어요. 큰 움직임이 있죠. 그 에너지를 느끼면 저도 모르게 힘이 솟아요. 수업을 해 보면 부모님이나 아이들 모두 확실히 달라요. 저는 오래 무용을 해 왔고, 대학과 대학원 강의도 했었는데요. 춤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수한 무용가들을 많이 봤죠. 그런데 많은 무용가들이 테크닉은 우수하지만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지는 않는 ‘기술적인’ 춤을 곤 해요.
 
하지만 만대마을 아이들은 심장이 살아 있어요. 자유롭고, 독창적이고, 야생적이죠. 가르쳐 준 대로 하지 않고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더합니다. 제가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에너지를 받고 뭔가를 배워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진 것을 끄집어 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창작이 돼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이곳이 비록 아주 외진 시골마을이지만, 여기서 반드시 좋은 춤을 추는 큰 춤꾼, 가슴으로 살아있는 춤을 추는 무용가가 나올 것 같아요. 제가 만대마을에 집을 지을 때, 그 이름을 ‘나오리’라고 지었는데요. ‘좋은 춤꾼 나오리’라는 바람이 담긴 이름이에요. 제가 아이들과 함께 만대마을을 주제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같이 강강술래를 하는 것은 아이들의 에너지가 저를 움직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마당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나오는 노래도 우리 아이들이 직접 지어서 부른 노래죠.

 


 

아르떼진_저는 판매하는 동요 레코드인 줄 알았어요. 아마추어 실력이라 하기엔 정말 잘 하는걸요.
화정_녹음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죠. 아이들 단속하고 작품 만드는 것도 힘들었지만 녹음할 곳도 없고…. 다행히 태안문화예술회관의 협조로 녹음도 잘 하고 작품도 만들었어요.
아르떼진_만대마을 강강술래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
화정_제가 처음 강강술래에 관심을 가진 것은 대학원 논문 작업 때였어요. 그때 알게 된 것이, 강강술래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되는 민속놀이인데, 동작도 노래도 다 같아요. 원래는 각 지역마다 모습이 달랐을 거에요. 그런데 민속놀이를 전승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획일화가 된 거죠. 그래서 일종의 단체 매스게임 같은 무용이 된 거에요. 그런 점이 부담스러웠고, 개성을 살려 ‘우리들’ 만의 작품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여지를 많이 발견했어요.
 
그래서 이곳 만대마을에 와서 ‘갯마을 강강술래’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마을 이야기, 사람 이야기를 강강술래와 함께 펼치는 거죠. 여기는 낙지가 유명해요. 동네 여인들은 낙지철이 되면 갯벌에서 낙지를 캐느라 바쁘죠. 그래서 강강술래 노래에 낙지 캐는 이야기를 넣고, 낙지가 꿈틀대는 동작과 낙지 캐는 모습 등을 무용으로 표현했어요. 또 하나, 마을 전설 중에 뒷산에서 용이 나온다는 동굴 이야기가 있거든요. 용트림 하는 모습, 용과 함께 하늘을 날고 싶은 모양을 춤사위로 표현하며 용트림 노래를 부른 거에요.
 
또 하나, 만대마을도 몇 년 전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의 피해지역이었어요. 그때 온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쓰레기를 치우고 마을을 정비했죠. 그때의 아픈 기억을 강강술래 노래로 만들었어요. ‘거센 파도 밀려와도, 우리 서로 도와가자’는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은 자신의 아픔을 승화시켰어요.

 

아르떼진_민속놀이로만 여겨졌던 강강술래가 창작의 촉진제가 되고, 치유와 승화의 단계에 이르렀네요.
 
화정_네. 그렇습니다. 고물고물한 지역 어린이들이 모두 힘을 합쳐 노래하고 춤을 추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요. 아시다시피 여기는 워낙 외져서 차도 잘 다니지 않는데 어린이들은 하루에 두 번 오는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와서 춤과 노래를 배우죠.

 

아르떼진_와서 춤만 추는 것이 아닌 것 같네요. 춤 추다가 내키면 도자기 굽고, 논두렁과 바닷가를 뛰놀며 공 차고 그림 그리고. 힘들다 싶으면 강아지 한 마리씩 데리고 평상에서 쉬다가 솔숲으로 달음박질도 하고.
 
화정_맞아요. 하하~ 진짜 자연 속에서 함께하는 거죠. 저희가 예전에 유럽에 살 때, 스위스에서 딸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는데요. 그곳의 교육 방식은 발도로프 교육이었어요. 교보재와 교구가 모두 살아 있는 자연물이었죠. 예컨대 유치원 마당에서 직접 보리를 심어 키우고, 그것을 수확해 찧은 다음 빵을 구워 같이 먹는다든지요. 그 과정을 아이들이 직접 하다 보면 자연, 과학, 수학, 감성, 노래, 무용 등 다양한 분야의 통합 교육이 가능하거든요. 저는 이 만대마을의 자연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개발하고 길 내고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여기가 바로 그런 교육을 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자연과 일상을 하나로 아울러 교육하기에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없어요. 앞은 바다, 뒤는 산. 이보다 더 좋은 교재가 어디 있을까요.

 

지역의 문화와 마음을
먼저 내 안에 받아들이길

 

아르떼진_선생님, 정말 부럽네요. 아마 이 글을 보는 많은 예술가와 강사가 선생님처럼 자연과 함께 지역에서 예술교육을 펼치고 싶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이 어떤 것을 먼저 고민해야 할까요?
 
화정_일단 만대마을과 같은 지역 농어촌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것 자체가 환영 받을 만한 일입니다. 요즘 농어촌에 젊은 사람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하물며 예술교육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그래서 어르신들이나 동네분들이 좋아하세요. 그렇지만 일단 지역 내에 천착하다 보면 다른 지역이나 수도권의 문화예술교육 흐름을 놓치는 경우도 있어요. 다소 좁아진다고도 봐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깊숙이 밀착을 해야 해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나, 지역은 지역. 나는 예술가.’ 이런 식으로 마음의 벽을 갖고 있는 예술가들도 있어요. 지역의 성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역에 녹아 들지 못한 채 상처를 입고 떠난 예술가도 본 적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점은 ‘나는 예술가다’라는 것보다 ‘나는 이 지역의 이방인이나, 이 지역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지요.

 

아르떼진_귀한 조언을 주셨네요. 그렇다면 선생님과 만대마을의 관계는 어떠신지요.
화정_만대마을에 터를 잡고 이곳을 저의 고향으로 삼은 후, 바닷가에 나간 적이 있어요. 너른 갯바위를 발견하고 그것에 등을 기대었는데 정말 많은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편안해지기도 하고, 이제야 고향에 온 것 같기도 하고. 그 푸근함이 있어 제가 이 동네 아이들과 함께하며 여기서 예술 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지역문화에 대해서 많이들 이야기하죠. 그리고 지역의 문화예술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내 안에 지역의 문화와 사람, 그리고 지역의 마음이 전해져서 쌓여 올라오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래야 지역에 기반한 진짜 예술이 생겨나요. 저도 그것을 위해 결혼 후 1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지금도 해 나가는 중입니다.
 
아르떼진_선생님, 오늘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참 많은 이야기, 참 많은 느낌 받아 갑니다.
 
화정_저도 고맙습니다. 비록 서울에서 많이 먼 곳이지만, 언제라도 찾아 주세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글.사진_ 정진영 서울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