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행복을 선물하고 싶다

 

지난 3~4년간 국내 영화계는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황기를 겪었고 언제쯤 완전히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 다시 호황을 누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 해 평균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예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고 수많은 영화들이 기획됐다 무산되는 등 영화 한 편 제작해 개봉시키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진 것이 냉혹한 현실. 하지만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한국 영화계에서 비슷한 시기에 두 영화를 개봉시키며 동분서주하고 있는 한 영화인을 만났다.

 

 

영화 <의형제>와 <평행이론>을 기획, 제작한 장원석 프로듀서는 영화 프로듀서계의 대표적인 젊은 피 중 한 명이다. 영화 <왕의 남자> 등 여러 작품의 제작팀을 거치면서 프로듀싱 경력을 쌓아왔고 이제는 어엿하게 자신의 이름을 건 영화를 만드는 PD가 됐다.

 

<평행이론>, 할리우드에서도 안 썼던 소재

 

설 연휴 극장가에서 흥행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 한 <의형제>에 이어 인터뷰가 진행된 시점에는 <평행이론>이 개봉을 코앞에 두고 있던 터라 장원석 프로듀서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장원석 PD는 “기대가 큰 만큼 불안한 마음도 있다. 나는 재미있다고 확신하고 자신하고 있지만 관객들도 그렇게 받아들여줄 지가 개봉을 며칠 앞둔 현재 가장 큰 걱정”이라며 “<의형제>는 <영화는 영화다>의 장훈 감독에 송강호, 강동원이 있으니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평행이론>은 할리우드에서도 한 적이 없는 이야기를 할리우드적 스타일로 풀어나가니까 이렇게 새로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내심 궁금하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평행이론>은 링컨과 케네디가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같은 운명을 반복했다는 실례로 더욱 유명한 평행이론 학설을 극화한 영화. 새 소재 발굴에 관심이 높은 할리우드에서조차 활용되지 않았던 소재일 정도로 영화계는 물론 일반 영화팬들의 관심도 높다.

 

장원석 PD는 두 작품모두 자신이 제작했지만 이미 ‘1등’을 하고 있는 <의형제>보다 <평행이론>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듯 했다. 장 PD는 “<평행이론>은 투자사의 시나리오 모니터링에서 5점 만점에 4점이 넘은 거의 유일한 영화로 200편이 넘는 영화 시나리오 중 1등을 했던 작품”이라며 “그때가 마침 한국영화계가 한창 안 좋던 때라 6개월간 촬영에 못 들어가 그동안 각색 작업을 했는데 각색한 시나리오가 원래 시나리오의 기록을 또 이기는 기록을 세웠다. 후반작업 역시 내 영화 인생을 통틀어 가장 오래했을 만큼 너무 많은 공을 들인 영화라 정말 잘 되길 바라는 작품”이라고 애착을 드러냈다. <의형제>와 <평행이론>은 2006년부터 개발에 들어갔던 작품들. 장원석 프로듀서의 말처럼 당시에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영화계 위기’가 시작되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빠져나가고 영화 제작이 들어가기가 전에 없이 힘든 시기였다. 장 PD는 “두 영화모두 투자가 결정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2006년부터 개발했던 작품인데 <의형제>는 2009년 초, <평행이론>은 20088년 10월부터 촬영을 할 수 있었다”며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이 이렇게 쉽지가 않구나’라고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장원석 PD의 주변인들은 그의 열정과 추진력을 칭찬한다. 많은 영화인들이 일자리가 없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장원석 프로듀서는 결국 두 작품을 모두제작해 개봉까지 하게 된 것도 그의 이러한 장점 때문이다. 장 PD는 이에 대해 “거의 2005년부터 기획하고 개발했던 영화들이 지금에서야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일 뿐”이라며 “내가 잘났다기보다 열심히 했고 운이 많이 따랐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 이런 성과가 있지 않았나 싶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할리우드 앞설수 있는 것은 아이템과 이야기

 

그렇다면 긴 불황기의 충무로에서 소위 ‘잘 나가는’ 젊은 프로듀서인 장원석 PD가 한 편의 영화를 만들려고 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킬링 아이템’이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엽기적인 그녀>, <조폭마누라>처럼 특별한 아이템이 필수다. <의형제>와 <평행이론>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재미있을 것 같다’는 훅킹 포인트(hooking point)’가 있는, 관객들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는 이야기를 개발하려고 노력한다”고 답했다.

 

또 장원석 PD는 <아바타>가 몰고 온 ‘3D의 난’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스토리의 힘’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장 PD는 “한국 영화계가 열악한 환경에 관객들 눈높이는 높아질 대로 높아져 그걸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밖에 없다”며 “해외 영화관계자들은 제작비 대비 가장 질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한국이라고 이야기한다.

<올드보이>를 30억 원에, <괴물>을 1천만 달러에 만들었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한국인들에게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짜는 힘이 강한데 나라는 작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고 유행에도 민감해 그 수준에 맞추려면 만드는 사람도 업그레이드 돼야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그는 또 “전 세계를 통틀어 이렇게 독특한 시장은 없을 것이다. <아바타>보다 훨씬 적은 40억 원짜리 영화로 1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할리우드의 대규모 물량공세에 이만큼 맞서고 있는 것은 한국영화인들이 정말 잘 하고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만심일 수도 있지만 <평행이론>도 국내 흥행에 성공할 경우 반드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될 거라 생각한다.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된다면 꼭 직접참여해서 더 좋은 환경에서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관객이 가장현명하다

 

장원석 PD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의 멤버다. PGK는 기존의 영화제작가협회보다 젊고 독립된 PD들 200여 명이 모인 단체로 PD들이 어떤 방향으로 한국영화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영화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자구적으로 노력하는 집단이라고 한다.

 

이처럼 영화계 전체를 위하는 일에도 빠지지 않는 그에게 최근 한국영화계의 가장 크게 또는 자주 드러나는 문제점에 대해 물었다. 바로 3D 영화로의 전환과 스릴러 영화 홍수다.

 

장원석 PD는 먼저3D 영화에 대해 “대세는 3D 영화다. 관객들은 영화라는 환영과 이야기를 점점 실제처럼 받아들이고 싶어 하기 때문에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하지만 조심해야 하는 것은 결국 테크놀로지는 외양에 불과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스토리라는 것이다. <아바타> 이전에도 3D 영화들이 있었지만 <아바타>가 성공한 것은 스토리에 공감했기 때문에 3D란 외양이 빛을 발했던 것이다. 영화의 내용 먼저 알차게 하는 노력들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추격자>의 대 성공 이후 스릴러 영화로만 제작이 몰리는 추세에 대해서는 “관객이 가장 현명하고 앞서간다고 생각한다.

 

<추격자> 이후 관객들의 스릴러에 대한 요구가 있었고 제작비 대비 가장 알차게 만들 수 있기때문”이라며 “일각의 우려처럼 이제 스릴러 영화도 주기를 한 바퀴돌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다른 영화 장르로 자연스럽게 옮겨갈 것이기 때문에 우려할 수 있지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현명한 관객들이 취사선택할 것이고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위 있는 영화제 수상도 한 명의 관객과 바꿀 수 없다는 장원석 프로듀서. 그는 끝으로 “영화를 통해 삶에 지친 관객들에게 2시간 동안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남겼다.